올 겨울 최악의 한파가 몰아치던 1월의 어느 날 오후, 예지동 카메라 골목을 찾았다. 종로4가, 청계천변. 시계상가, 혹은 귀금속 시장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필름 카메라로 ‘사진 좀 찍는다’ 하는 이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매서운 바람도 이 작은 골목까지는 쫓아오지 못했는지 얽히고설킨 골목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추위는 저만큼 물러선다. 노상을 점포 삼아 점잖게 늘어서 있는 가판을 지나 얼마나 헤맸을까, 열을 맞춰 나란히 걸려 있는 카메라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네 이야기]‘찰칵’ 명멸하는 민초의 기록 - 예지동 카메라 골목
[동네 이야기]‘찰칵’ 명멸하는 민초의 기록 - 예지동 카메라 골목
200m가 조금 넘는 작은 골목. 최신 디지털 카메라가 앞 다투어 전시되는 대형 전자마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지만 필름을 감아 쓰는 아날로그식 카메라부터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구식 대형 카메라,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까지 없는 게 없는 카메라 천국이다. 강산이 서너 번 바뀌는 동안 이곳에서 카메라를 수리해온 장인들의 기술은 대한민국 최고. 이 작은 골목에 카메라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베트남전 이후 외국에서 들여온 카메라들이 거래되며 형성된 이곳의 역사는 카메라가 재산 목록 1호였던 1970, 80년대를 지나 현재까지 50년 가까이 이어져왔다. 전성기 시절엔 50개가 넘는 카메라 가게에 카메라가 놓이기 무섭게 팔려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팔려나갔던 카메라들이 또다시 모여들었던 대한민국 카메라의 메카. 하지만 이제 과거의 명성은 빛이 바래고 지금은 10여 곳만이 남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청계천변의 여느 오래된 상점들과 마찬가지로 예지동 카메라 골목도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지루하게 끌어오던 재개발 계획이 지난 연말과 올 연초 본격화되어 이제 봄이면 이곳에 남은 가게들은 길 건너 옛 전매청 자리로 옮겨야 한다. ‘태양사’라고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백발의 노인이 낡은 카메라를 들여다보고 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카메라를 매만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카메라는 이내 잃어버렸던 시간을 찾는다.
2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그렇게 카메라와 함께한 지 어느덧 30년이다. 맞은편 ‘세기사’의 이민주 사장도 35년 동안 이 골목을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이곳에서 일하며 자식들을 키우고 시집 장가를 보냈다.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한 삶의 터전을 떠날 채비를 하려니 섭섭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동네 이야기]‘찰칵’ 명멸하는 민초의 기록 - 예지동 카메라 골목
작은 골목에 반짝이며 불을 밝힌 카메라 가게들. 진열대 안, 묵은 카메라 렌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찰칵’ 셔터 소리와 함께 명멸하는 예지동 카메라 골목의 오늘이 기록된다.
[동네 이야기]‘찰칵’ 명멸하는 민초의 기록 - 예지동 카메라 골목
[동네 이야기]‘찰칵’ 명멸하는 민초의 기록 - 예지동 카메라 골목
예지동 카메라 골목 가는 길
을지로4가역 3번 출구로 나와 직진해 청계천 배오개 다리를 건너면 ‘시계·귀금속·카메라 도매시장’ 간판이 걸린 청계천4가 골목 입구가 보인다. 종로4가 세운상가 맞은편 ‘예지 시계·보석·금은도매상가’ 골목으로 들어가 청계천변 방향 골목 끝 쪽이다.
■글 / 노정연 기자 ■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