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넘어 제국의 도시로 - 이탈리아 오스티아 안티카

길 떠나는 길

시간을 넘어 제국의 도시로 - 이탈리아 오스티아 안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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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는 로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 고도의 흔적을 온전히 안고 있는 곳, 오스티아 안티카를 가봤다.

사라진 폼페이의 흔적을 찾아서
이탈리아는 역사 덩어리다. 어디서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돌 조각 하나하나가 숱한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도시에서 한 시대의 역사를 온전히 읽어내기는 힘들다. 도시란 짓고 부수고를 거듭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과 비교해보자. 서울은 백제 때부터 수많은 사람이 살았지만 백제의 흔적을 찾아내기는 힘든 것과 비슷하다. 로마도 마찬가지다. 현재 로마의 모습은 로마제국 이후에 형성된 것이다. 과연, 그럼 로마시대 로마인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은 없을까?

고대 극장의 무대 기둥.

고대 극장의 무대 기둥.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 사라져버린 폼페이에서 로마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로마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꼽으라면 오스티아 안티카 정도가 되겠다. 로마 여행을 수십 번 해봤다는 사람도 오스티아 안티카는 생소할지 모른다. 전철로 갈 수 있는 곳인데도 말이다.

오스티아 안티카는 BC 7세기 왕정시대에 안쿠스 마르티우스 왕이 오스티아란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로마에 복속됐다. 오스티아는 천연 항구였는데 이 도시는 소금을 만들던 곳이다. 고대에 소금은 돈이었다. 봉급을 뜻하는 샐러리란 말도 소금에서 나왔다. 소금광산은 곧 부를 의미했다(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도 소금성이란 뜻이다). 로마는 돈 되는 오스티아를 손에 넘으면서 강성해졌다.

이 도시는 한동안 번영을 누리다가 2세기 이후 다른 항구가 개발되면서 버려졌다. 전쟁으로 파괴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떠났다. 훈족과 게르만인의 침입으로 인해 파괴된 로마와는 달리 오스티아 안티카는 도시 모습이 온전한 채로 버려진 것이다. 해서 고대 로마의 생활사를 보고 싶다면 오스티아 안티카가 좋다. 왜냐하면 살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집도 목욕탕도 원형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와인을 담아놓은 것으로 보이는 항아리.석관 조각. 바닥에 타일이 깔려 있는 공동 목욕탕(사진 위부터).

와인을 담아놓은 것으로 보이는 항아리.석관 조각. 바닥에 타일이 깔려 있는 공동 목욕탕(사진 위부터).

로마인의 생활 속으로
로마인들은 도로를 잘 닦은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도시를 만들면서 길부터 생각했다. 로마에서 오스티아로 가는 길도 만들었다. 이 길이 바로 로마시대의 도로 비아 오스티안제이다.

입구는 꽤 넓었는데 우리로 치면 박석을 깔았다. 이 도로엔 바퀴 자국이 또렷하게 나 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수레가 오갔기에 이런 바퀴 자국이 났을까?
보통, 사람들은 로마의 밤은 고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왁자지껄한 바도 없었을 것이고 밤도 밝지 않았을 테니 낭만적이고 부엉새가 슬피 우는 밤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답은 반대다. 고대 로마의 밤은 시끄러웠다.

전성기 인구가 100만 명이나 됐던 로마인을 먹여살리려면 엄청난 양의 곡식이 필요했다. 마차 수백 대가 밤새 덜거덕 소리를 내며 식량을 실어 나르곤 했다. 마차 소음 때문에 위장병이 생긴 로마인도 있었다는 기록도 내려온다. 입구에는 잘생긴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희한하게도 우산이나 버섯처럼 가지가 퍼졌다. 폼페이 화산 폭발 당시를 기록한 문서에는 구름이 소나무처럼 피어올랐다는 증언이 나온다. 이런 소나무를 보지 못한 외국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게 분명하다. 한국인이라면 버섯구름이 피었다고 했을 것이다.

오스티아 안티카는 한 번 돌아보는 데 한나절이 걸릴 정도로 넓다. 도시의 경계가 분명한데 입구 이전에는 묘지가 있었다. 로마인들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영역을 구분했다. 기독교 전래 이후에야 성당 바닥에 묻을 수 있었다. 이어 도시로 들어가면 목욕탕이 나타난다. 일단 묘지부터 보자.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 석관도 길에 널려 있고 유골을 놓아둔 것으로 추정되는 자그마한 건축물도 많다.

지붕은 사라졌지만 벽은 남아 있는 오스티아 안티카.

지붕은 사라졌지만 벽은 남아 있는 오스티아 안티카.

다리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도시다. 로마시대엔 초입은 터미널이었다. 마차들이 입구부터 줄지어 늘어서 손님을 맞았다. 바로 옆에는 사우나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목욕탕이다. 2000년 전의 유적인데도 아직 타일이 깔려 있다. 타일에는 바다의 신 넵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로마인들의 목욕 문화는 유명하다. 보통 사람들이 다니는 공중탕도 있고 지금으로 치면 조합에서 운영하는 회원제 목욕탕도 있다.

한국인만 온돌을 쓴다고 알고 있는데 로마인들도 온돌을 썼다. 터키에서 터키탕에 가보면 거기에도 온돌이 있다. 온돌 문화는 오래전 유럽에서도 존재했다. 가이드 피올라는 올리브 오일을 몸에 바르고 긁어서 때를 벗기는 목욕 문화도 있었다고 한다. 이태리타월? 아니다. 이태리타월은 이런 역사와 무관하다.

고도(古都)의 돋보기, 오스티아 안티카
오스티아 안티카의 원형극장에 앉아 있는 관광객. 오스티아 안티카를 둘러보고 있는 관광객(사진 위부터).

오스티아 안티카의 원형극장에 앉아 있는 관광객. 오스티아 안티카를 둘러보고 있는 관광객(사진 위부터).

당시 인기 있던 로마인의 모습은? 공화정시대엔 생머리에 땀 냄새 나는 남자가 인기 있었다. 왜? 공화정시대의 미덕은 근검절약이다. 사치를 싫어했다.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는 남자가 인기 높았다. 생머리에 촌스럽게 생긴 조각상을 보면 공화정시대의 남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황제가 다스리던 제정시대로 넘어가면 미남상도 바뀐다. 조각상에도 파마머리가 나타난다. 돈 벌면 ‘폼 내고’ 싶은 법. 로마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은 돌에 구멍을 뚫고 엉덩이를 대고 용변을 보는 식이다. 밑에는 물이 흐르게 한 반수세식이었다. 화장실은 1인용으로 나뉜 것이 아니라 변기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다인용이다. 칸막이도 없다. 쉽게 말하면 여러 사람이 똥 누면서 담소를 나눴다는 얘기다. 참 어색한 화장실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인들은 아파트에 살았다. 당시 주택은 크게 개인 주택인 도무스와 공동 주택 아파트, 교외 별장격인 빌라로 나뉜다. 빌라가 여럿 모인 곳이 빌라주(이게 마을을 뜻하는 빌리지의 어원이다). 도무스에 사는 사람은 상류층으로 극히 적었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공동 주택에서 생활했다. 1층에는 가게가 있고 2층부터 주택이다. 높이 제한이 있어서 4층 이상은 짓지 못했다. 왜 더 못 지었을까? 높이 지으면 무너졌다. 로마인들은 공공 건축물은 철저하게 지었지만 집은 날림이었다. 수많은 사고가 터졌던 게 분명하다.

비아 오스티안제를 따라 펼쳐진 도시의 모습.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로마인들의 주택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사진 위부터).

비아 오스티안제를 따라 펼쳐진 도시의 모습.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로마인들의 주택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사진 위부터).

공공 주택의 가게 터에 들어갔더니 와인을 저장해놓은 것으로 보이는 항아리가 남아 있다. 여기서 뭘 마실까? 물론 포도주를 마셨다. 안주는? 서민들이 문자를 알 리 없다. 그냥 그림으로 안주가 그려져 있다.

가게 터도 비슷하다. 아케이드에 가보면 바닥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배를 만드는 곳에서는 배 그림이, 어물전에는 생선 그림이 바닥에 있다.

로마 하면 원형극장을 빼놓을 수 없다. 로마 원형극장은 그리스 원형극장과는 달랐다. 가이드는 로마의 극장은 아치형 지붕인데 그리스 극장에는 없다고 했다. 아치형 지붕 양식은 후대에 고딕 양식에 응용된다. 중세에 고딕 흉내를 냈던 것은 완벽한 건축 모형을 바로 로마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도시 곳곳에 신전이 있다. 신들의 왕인 주피터와 그의 아내 주노, 지혜의 신 미네르바를 모신다. 후대에는 황제도 신이 돼 그들의 얼굴도 새겨놓았지만 오스티아 안티카에선 아직 그런 모습까지는 볼 수 없었다. 신전도 있었는데 대리석은 다 떼어내 버리고 벽돌 벽만 남아 있었다.

오스티아 안티카는 AD 2세기 이후 잊혀진 도시가 됐다. 비록 사람들은 떠나버리고 없는 고도시지만 로마제국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돋보기로 충분하다.

여행 길잡이
피라미데 역에서 오스티아 안티카 역까지 전철이 다닌다. 1유로 정도다. 오스티아 안티카 입장료는 6.5유로. 한나절을 돌아봐야 할 정도로 넓다. 이탈리아 관광청 www.enit.or.kr, 라지오주 www.atlazio.it

■글&사진 / 최병준(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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