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상: 이유 없이 울적할 때, 뭘 해도 지겨울 때, 하루에 한 번 1분 이상 멍해질 때. 처방: 아르헨티나의 탱고 마을 ‘보카’를 방문해 일주일 동안 탱고를 배우고 올 것. |
“테오, 여기는 탱고의 도시야. 탱고의 도시에서는 탱고를 배워야 하는 거야. 카메라는 치워두고 보카의 거리에 나가. 그리고 탱고를 배워.”
보카, 탱고를 잉태한 거리
아르헨티나의 분주한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보카가 있습니다. 탱고가 태어난 마을. 탱고의 음악과 탱고의 춤과 탱고의 영혼이 태어난 마을. 보카는 탱고 세계의 바티칸입니다. 성지입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곳을 보카 공화국이라 부를 만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볼리비아를 방문하는 길에 잠시 들른 아르헨티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알레한드로의 조언에 따라 버스를 타고 마을에 들어섰습니다. 보카는 입구부터 탱고로 가득한 마을입니다. 골목 어디에나 탱고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고, 벽에는 탱고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옷도, 인형도 탱고입니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까지 영문 없이 탱고를 추는 걸로 보일 지경입니다. 열린 문들 사이로 탱고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남미식 아코디언으로 탱고를 연주하는 사람 앞에는 콧노래로 탱고를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춥니다. 어깨를 흔듭니다. 속삭이듯 탱고를 연주합니다. 옆사람의 콧노래를 따라,아코디언의 멜로디를 따라. 보카가 보여주는 붉은빛 탱고의 숨소리를 따라 탱고를 연주합니다. 그리고 행복해집니다.
음악에 취해 있을 때 누가 엉덩이를 두드립니다. 그리고 에스파뇰 비음이 가득 섞인 영어로 말을 겁니다. “초상화를 그려줄까? 처음 보카를 방문한 사람들은 누구나 초상화를 그리거든. 내가 보기에 당신은 처음 보카를 방문한 사람이 틀림없어. 그러니까 초상화를 그려야 해. 동전 한 개만 받을 테니 내 앞에 어서 앉아.”
열두어 살 쯤 되어 보이는 소년입니다. 수다스러운 소년의 호객에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하고 의자에 앉습니다. 소년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당황스러운 솜씨입니다. 누구를 그린대도 똑같은 그림이 나올 것만 같습니다. 깜짝 놀랄 만큼 일관성 있는 화풍입니다. 그에게 묻습니다. “지금 나를 그리고 있는 게 맞니?”
소년이 대답합니다. “그림 볼 줄 몰라? 코가 똑같잖아!”
그럴 리 없습니다. 특히 무성의해 보이는 부분이 바로 코였으니까요. 참지 못하고 따져 묻습니다. “코가 알파벳 O자처럼 생겼잖아. 내 코가 그렇게 생겼니?”
소년이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합니다. “당신은 동양인이잖아. 동양인 코는 당연히 O자로 그리는 거야. 미국 사람들은 L자로, 유럽 사람들은 거꾸로 된 U자로 그리는 거고. 당신은 모델이니까 화가인 내 말을 들어야 해. 동양인 코는 O자야. 오케이?”
걱정 말아요 그대, 나도 탱고를 몰라요
바람이 불고 탱고가 흔들립니다. 탱고가 그려진 티셔츠, 탱고를 노래하는 아저씨, 탱고를 추는 댄서들, 탱고를 그리는 소년의 머리카락이 흔들립니다. 어깨를 흔들며 거리를 걷습니다. 탱고 사이를 걷습니다. 탱고 가득한 마을 보카의 골목골목을 걷습니다. 거리마다 탱고를 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거리에 두 팀, 세 팀 탱고를 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열린 문 사이로 멜로디가 흐르고 그 위에 탱고를 추는 사람들이 리듬을 얹습니다. 아름답고 우아한 탱고, 재미있고 유쾌한 탱고. 수없이 많은 탱고들이 거리를 채웁니다. 웃으며 지켜보던 내게 탱고를 추던 탱고 댄서가 다가와 말합니다.
놀란 얼굴로 대답합니다. “노그라시아스. 나는 탱고를 몰라요”.
댄서가 손을 이끌며 속삭입니다. “걱정 말아요. 나도 탱고를 몰라요”.
진정으로 탱고를 모르는 여행자의 손에 탱고를 모르는 척하는 댄서의 손이 얹힙니다. 그리고 시작됩니다. 보카 거리의 수많은 탱고 중에서 가장 유난한, 춤이라고는 춰본 적이 없는 동양인 여행자의 첫 번째 탱고 댄스가.
숨을 몰아쉬는 여행자의 뺨에 댄서의 입술이 닿습니다. 그리고 속삭입니다. “멋있어요, 아미고. 이제 모자에 돈을 넣으세요”.
익숙하게 남미식 뺨 인사를 나눕니다. 댄서의 윙크에 미소로 답합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쳐줍니다. 가슴속으로 탱고가 흐르는 기분입니다. 보카 거리에서 가장 화려하게 탱고를 춘 댄서가 되어 거리를 나섭니다.
약속, 탱고와 함께하는 일주일
차오 보카. 굿바이 아르헨티나. 다음에 너를 찾을 때는 탱고를 배우겠어.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탱고를 위해 찾아오는 이곳에 꼭 다시 오겠어. 그들과 친구가 되어 탱고를 추겠어. 탱고를 배우러 온 프랑스 여자, 탱고를 배우러 온 잉글랜드 남자, 탱고를 배우러 온 중국 여자, 탱고를 배우러 온 이집트 남자와 함께 탱고를 추는 친구가 되어 일주일 내내 탱고를 추겠어. 일주일 내내 탱고가 되겠어.
늙은 미국 아저씨가 길거리에서 탱고를 추며 해준 말이 생각납니다. “뭘 해도 재미없을 때는 보카에 와서 탱고를 배워. 그러고 나면 모든 일이 재미있어질 테니까.”
펍에서 만난 이스라엘 아가씨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보카는 인생을 싱싱하게 만들어준다고. 그러니 와서 탱고를 배우라고.
삶이 심각하게 지루해지면 지도를 펴고 아르헨티나의 작은 마을 보카를 찾으세요. 그리고 다음 휴가 날짜를 적어 넣으세요. 당신을 위한 첫 번째 처방, ‘보카, 일주일간의 탱고 여행’입니다.
테오는 여행을 통해 얻은 성찰과 사진을 도구로, 지친 사람들의 일상을 치유하는 여행 테라피스트. 아프리카에서 5년, 남미에서 1년을 살고 돌아와 두 권의 여행 에세이를 쓰고 여러 기업과 학교에서 특강 형태의 여행 테라피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여행 테라피에는 남미에서 만난 히피, 아마존의 빵 굽는 여자아이, 아프리카의 북치는 사내아이, 잉카의 고대 점술사 등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너무나 정교하게 우리의 삶을 진단하고 치유한다. 야성이 도시를, 비일상이 일상을 치유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비가 내리면 기적이 일어나는 볼리비아 소금사막과 그곳 사람들의 삶을 들려주는 「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과 아프리카가 주는 위로와 치유의 목소리가 담긴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를 저술했다. 두 권 모두 ‘네이버 오늘의 책’에 선정되었으며 스테디셀러를 기록 중이다.
Travel Tip
●●● 숙박 정보
텔모탕고 호스텔
(Telmotango Hostel)
www.hostelmotango.com
| 679 chacabuco st,
Buenos Aires
찾아가는 법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86번 버스를 타고 차카부코 거리에서 내린다. 거리에 적힌 번호를 보고 679번가를 찾으면 된다. 잘 모른다면 버스에서 내린 후 택시를 타고 호스텔의 주소를 가르쳐주면 기본요금으로 도착할 수 있다. 참고로 버스에서 내린 위치는 호스텔과 도보 10분 이내의 거리이다.
●●● 보카 거리
보카는 탱고의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에서도 심장에 해당하는 곳이다. 1870년 황열병이 온 도시를 덮쳤을 때 부자들이 모두 북쪽으로 이주해 쓸쓸한 폐허로 남겨졌던 곳이 바로 보카다. 팜파스 지역에서 쫓겨난 혼혈 가우초(아르헨티나의 카우보이)들이 집값이 싼 이곳에 흘러들면서 밀롱가(Milonga)라는 전통 노래를 가져왔고 잇따라 보카에 자리 잡은 이탈리아 이민 노동자들은 이 경쾌한 무곡에 애잔한 선율을 가미해 탱고라는, 이제껏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격정의 춤을 창조했다. 인기 축구 클럽 보카 주니어스의 홈구장까지 지닌 덕분에 보카로 가는 버스는 무척 많다. 대부분의 호스텔에서 보카행 버스 노선과 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 텔모탕고에서 보카까지의 거리는 버스로 30분 이내이다. 보카 거리의 춤 교습소 역시 호스텔의 데스크를 통해 추천받고 예약하는 것이 가장 좋다.
●●● 일주일 동안의 탱고 여행 일정
호스텔의 도움을 받아 탱고 학원을 고르고 예약할 수 있다. 기본 동작을 배우는 3일 체험 과정을 포함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고 자신의 일정에 따라 학원을 선택한다. 첫날에는 호스텔 근처의 카페와 거리 여기저기를 산책한다. 최대한 작은 카페를 찾는 것이 요령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작은 카페들은 대부분 자기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인테리어, 소품, 메뉴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고유하며 아름답다. 둘째 날부터 탱고를 시작한다. 탱고 초급 과정을 배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이다. 탱고를 만나러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왔다는 공통점으로 그들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인터넷 탱고 클럽을 찾아 가입한다. 완전 초보의 실력이겠지만 본토에서 배워온 탱고라는 사실만으로도 열렬히 환대받을 것임에 틀림없다.
●●● 탱고 학원
호스텔에 비치된 학원 리스트를 보고 선택할 수 있다. 리셉션 데스크의 추천을 받아도 좋다. 보통 일일 레슨 티켓이 있으며 7천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10회권을 끊으면 좀 더 저렴하다. 선생님에게 1시간 동안 개인 레슨을 받는 것은 4만원 정도이며 개인 레슨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받으면 적당하다. 아래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도 있으며 학원으로부터 호스텔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Escuela Argentina de Tango
http://www.ccborges.org.ar/sede/esctango.html
DNI Tango http://www.estudiodnitango.com.ar
Academia Nacional de Tango http://www.anacdeltango.org.ar
■글&사진 / 테오(여행 테라피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