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바람이 찬 2월의 어느 오후, 늦은 점심을 앞에 두고 마주앉은 김숙자씨(가명, 34)의 얼굴에 시원한 웃음이 번졌다. 몇 달 동안 머릿속을 묵직하게 차지하고 있던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됐기 때문이다.
김숙자씨의 이야기는, 다섯 달 전 서울 남부법원 경매 법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사건번호 2010타경 ○○○ 사건 금액 1억 ○○○ 원에 서울에 사시는 김숙자씨께서 최고가 낙찰자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경매 법정 안에 집행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낙찰받은 것이다. 경매 공부를 끝내고 경험 삼아 입찰에 참여했는데 낙찰을 받은 것이다.
그날 현장에 동행한 필자도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번에 낙찰을 받다니…. 이런 운 좋은 경우는 정말 드문 일이다. 낙찰자 영수증을 받고 나오는 김숙자씨의 표정이 상기됐다. 법정 바깥에서는 대출업체 명함을 든 아주머니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그녀의 전화번호를 따려고 애를 썼다. 김숙자씨는 한순간에 스타가 됐다.
낙찰자 김숙자씨. 그녀는 이혼녀다. 그녀의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아직 앞날이 창창하다. 혼자서 뭐 하고 살까 고민하던 김숙자씨는 어느 날 서점에서 우연히 재테크 관련 책 한 권을 보고 경매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후 인터넷 카페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스터디 그룹에 참여해 경매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첫 번째 단계 ●스터디 친구들과 ‘소모임’ 결성
‘스터디’는 비슷한 생각, 같은 목표를 향해서 함께 가는 동지를 만날 수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김숙자씨보다 두 살 많은 골드미스, 아이들이 중학생인 40대 주부, 숙자씨보다 어린 주부 등 서로 나이며 환경이 다르지만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가는 동지들이 생긴 것이다. 이들은 모여서 토론도 하고, 현장 답사를 나가고, 법원에 가서 입찰도 한다. 혼자였으면 힘들고 포기할 일도 많았겠지만 함께여서 어려운 줄 모르고 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스터디의 장점이다.
우선, 인터넷으로 물건을 검색해 관심 가는 물건을 카페에 올려놓으면 멤버들이 살펴보고 온라인으로 토론을 한 뒤 날짜를 정해 모임을 갖는다. 모임에서 각각의 물건을 검토하고 현장 답사를 나갈 만한 물건을 고른 뒤에 직접 답사를 나간다. 물건이 있는 지역 주변 부동산에 들러 시세도 파악하고 물건도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김숙자씨는 “이 모든 일을 혼자 했으면 외롭고 힘들 텐데, 멤버들과 함께 다녀서 마치 쇼핑을 나온 듯 즐겁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법원에 입찰을 하기 위해 가면, 입찰한 물건이 순서가 될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럴 때도 혼자라면 하릴없이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만 멤버들과 함께 법원에 가면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수다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계 ●첫 낙찰 & 첫 투자
여러 날에 걸쳐 물건을 검색하고 답사를 다니던 중 김숙자씨는 드디어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했다. 그녀가 사는 동네 근처의 다세대 주택이었다. 동네 근처라 답사 다니기도 수월하고 혹시 낙찰을 받은 후에도 명도하거나 사후 관리하기에도 편할 것 같았다. 모임 멤버들의 도움으로 함께 시세를 파악하고 권리 분석을 해보니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김숙자씨는 “혼자서 판단하려면 혹시나 제대로 파악한 게 맞나 싶기도 했을 텐데 멤버들이 함께 봐주니 역시 든든했다”고 했다.
드디어 입찰 그리고 낙찰! 보통 다른 사람들은 20, 30번 입찰해야 겨우 한 번 낙찰된다고 들었는데 그녀에게는 무슨 행운이 따랐던 것일까.
이혼 후 김숙자씨에게 있던 돈은 6천만원. 재테크는 돈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스터디를 통해 소액으로도 충분히 부동산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번에 낙찰받은 다세대 주택은 그렇게 해서 투자를 하게 된 것. 전세난이 심각한 상황에 주택을 사서 전세를 놓으면 큰 돈 없이도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가 낙찰받은 물건은 서울에서도 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위치한 14평에 방 3개짜리 다세대 주택이다. 낙찰가는 1억1천5백만원. 동네 시세를 파악해보니 매매가는 1억4천 정도이고, 전세는 8천만원이었다. 그럼 단순히 전세만 놓아도 3천5백만원이면 투자가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녀는 스터디에서 배운 대로 대출을 활용해 투자금을 더 줄였다. 대출을 8천만원 받고,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를 놓은 것이다. 실투자금은 1천5백만원이다. 결과적으로 취등록세, 부동산 수수료를 감안하더라도 2천만원 정도 투자한 셈이다. 김숙자씨가 가진 종자돈 6천만원은 결과적으로 이런 물건을 세 채나 살 수 있는 큰 돈이었던 것이다. 이후 김숙자씨는 이런 방식을 활용해 급매물을 하나 더 구입했고, 그러고도 수중에 2천만원이 남은 상태다.
세 번째 단계 ●낙찰 후 명도의 과정
부동산 경매는 낙찰을 받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이후가 진짜 문제다. 바로 ‘명도’라는 껄끄러운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명도란 ‘집을 비우는 것’을 말하는데, 경매당한 집에 사는 사람이 순순히 집을 비워주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명도는 꽤 힘든 일이다. 보증금을 모두 돌려받는 임차인 같으면 큰 문제없이 집을 비워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나갈 수 없다”며 실랑이를 하게 된다. 이번 케이스도 마찬가지다. 낙찰받은 다세대 주택에는 5천만원에 전세를 살고 있는 임차인이 있었다. 그는 보증금을 절반 정도밖에 받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집을 비워주지 않았다. 결국 여러 차례의 협상 끝에 약간의 편의를 봐주고 명도하기로 합의를 봤다.
마지막 단계 ●세 놓고 보증금 회수
어렵게 명도를 하고, 그 집에 들어올 새로운 월세 임차인을 구했다. 전세난이 한몫을 해서인지 임차인을 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명도를 진행하는 와중에 급매물을 하나 더 매입해 투자금이 바닥난 상태였는데 월세 임차인이 들어오면서 2천만원의 보증금도 함께 들어와 다시 투자할 여력이 생겼다. 김숙자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총알이 들어왔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총알이 있어야 현장 답사를 다녀도 힘이 나는 법이다.
경매에서 가장 껄끄러운 명도를 완료하고 총알까지 장전했으니 요즘 김숙자씨는 무척 행복해 함박웃음을 짓고 다닌다. 주변에 직장 다니는 친구들은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 직장 동료들과의 갈등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에게서도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이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또 김숙자씨는 “이혼 후 사람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와 스트레스가 ‘경매’를 통해서 많이 해소됐다”며 “여자가 사회에 나와 혼자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 같아서 정말 기쁘다”고 했다. 경매가 힘들고 지친 김숙자씨에게 ‘희망’이 되었다니, 옆에서 지켜보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기획 / 김민주 기자 ■글 / 안정일(http://cafe.daum.net/home336)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