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가 대중에게 확산되면서 이제 주부들에게도 인기 있는 재테크 ‘아이템’이 됐다.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경매’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면서 주부들이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는 것. 부동산 경매 전문가 안정일씨와 함께 ‘주부들의 경매 성공 사례’를 공부하면서 한층 더 쉽게 경매를 배워갈 수 있는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신경자씨(가명, 50)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콧대 높은 사모님이었다. 돈 잘 버는 남편 덕분에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손에 물 한 방울 묻힐 일 없었고, 늘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카페에서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며 평온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씨의 일상이 180° 바뀌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때부터였다.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그야말로 집안이 쫄딱 망해버린 것. 결국 온실의 화초같이 살았던 신씨는 가족을 위해 돈벌이를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쉰을 넘긴 아줌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편의점이나 카페 같은 곳은 젊은이들만 아르바이트로 썼고,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신씨처럼 나이 든 주부를 찾는 곳은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부동산 경매를 공부하게 됐다. 부동산 경매라는 게 나이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공부해서 도전하면 가능한 일이라는 말에 왠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부동산 경매 관련 책도 사서 읽고, 경매 학원에도 다니고,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해 모임에도 나가는 등 부지런히 공부를 했다. 인터넷 동호회 모임에 나오는 회원들은 대부분 나이가 어렸다. 신씨보다 열 살에서 많게는 스무 살이나 어린 회원도 있었다. 신씨는 “젊은 주부들을 보고 있자니 기특하고, 돈 벌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았다”며 “그 모임 속에서 나도 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종자돈이 없다는 것!
부푼 희망을 갖고 부동산 경매에 대해 공부를 했지만 신씨의 가장 큰 문제는 경매에 투자할 종자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자금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경매 물건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강릉, 속초, 여수, 광양, 목포 등 서울을 벗어나 지방으로 눈을 돌렸다.
지방에서 물건을 찾기 시작하면서 신씨는 소형 아파트 위주로 입찰에 도전했다. 신씨가 경매 물건들을 조사하러 다닐 무렵에는 부도 임대 아파트가 많았는데 부도난 임대 아파트는 한 번에 100채까지 경매에 나오기도 했다. 한 채당 낙찰가가 2천만~3천만원이었다. 전세 가격도 비슷한 선에서 정해졌기 때문에 한 채당 실제 투자금은 200만~500만원을 넘지 않았다. 자금이 많지 않은 신씨에게는 딱 적당한 투자 물건이었다.
서울에서 경매로 아파트 한 채 살 돈이면 지방의 부도난 임대 아파트 20채는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신씨가 2010년 한 해 동안 낙찰받은 지방의 소형 아파트는 총 20채 정도다. 모두 전세 가격 수준에서 낙찰받아서 다시 전세를 줬기 때문에 실제로 들어간 돈은 거의 없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우연찮게도 2010년부터 대한민국은 전국적으로 전세 대란이 일어났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많이 오른 것. 지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1년에 들어서자 신씨가 낙찰받아놓은 아파트의 전셋값이 낙찰 가격을 넘기 시작했다. 전세만 놓았을 뿐인데도 수익이 나는 상황이 발생했고, 전세를 구하러 온 신혼부부가 아예 아파트를 사기도 했다. 신씨는 매우 운이 좋았다. 돈이 없어서 지방의 소형 아파트 위주로 경매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오히려 더 큰 행운으로 돌아온 것.
이런 성공에 힘입어 신씨는 요즘 수도권 경매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방 아파트의 투자금이 거의 다 회수된 덕분에 여유 투자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지방보다 부동산 시장이 덜 살아난 수도권을 노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밖에서 일하는 남편의 고생을 깨닫다!
신씨는 인터넷 동호회 모임 회원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남편에게 잘해줘라”라고. 경매를 시작하면서 물건 조사하러 하루 종일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돌아다니고, 법원에 입찰하러 가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서고, 낙찰받은 후에 명도 변경하기 위해 점유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겨우 되팔아서 수익을 보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신씨 스스로 힘들게 돈을 벌어보니 그동안 남편이 벌어다준 돈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깨닫게 됐다.
신씨는 인터넷 카페의 스터디 과정에서 만난 멤버들 모임에서 회장 역할을 맡고 있다. 별명은 ‘왕언니’ 혹은 ‘회장님’이다. 세상을 좀 더 산 선배로서 신씨의 인생 경험은 다른 회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신씨 또한 혼자라면 힘들었을 ‘경매’라는 재테크를 다른 회원들과 함께 경험하고 나누다 보니 모임의 동생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실감하게 됐다. 1년 반 동안 모임을 통해 경조사를 함께 겪은 멤버들은 이제 평생을 함께할 동지가 됐고 신씨 가족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된 것이다.
■기획 / 김민주 기자 ■글 / 안정일(http://cafe.daum.net/home336) ■사진 / 서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