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끊이지 않는 갑을 논쟁 권리금의 실체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끊이지 않는 갑을 논쟁 권리금의 실체

댓글 공유하기
지난 6월 10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는 이색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한 남자가 지지자들과 함께 불을 피워놓은 채 곱창을 굽고 커피를 내리며 일명 ‘곱창 시위’를 벌이고 나선 것. 그룹 리쌍의 신사동 건물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던 임차인이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 등의 시민 단체들과 함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펼친 퍼포먼스였다. 이미 그 전부터 법정 싸움에 들어간 리쌍과 임차인 간의 사연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이를 계기로 건물주와 임차인 간의 관계와 권리 보호에 관한 논쟁에 또다시 불이 붙었던 상황. 주변에서 종종 목격되는 이 끊이지 않는 논란의 쟁점은 결국, 권리금에 있었다.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끊이지 않는 갑을 논쟁 권리금의 실체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끊이지 않는 갑을 논쟁 권리금의 실체

건물주와 세입자를 모두 울린 권리금
음악 활동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큰 활약을 펼치고 있는 그룹 리쌍의 멤버 길과 개리가 건물 세입자와 임대차 분쟁을 벌이면서 한동안 화제가 됐다. 지난해 5월, 두 사람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50억원대 건물을 공동 명의로 매입했다. 해당 건물에 직접 가게를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은 36억원의 대출을 감수하고 매입을 강행했다고 한다.

이 건물 1층에는 2010년 10월부터 서윤수씨가 운영하고 있는 곱창집이 있다. 서씨는 처음 입주할 당시 건물주와 5년 영업을 보장한다는 구두 약속을 했고, 2년 임대계약(보증금 4천만원, 월세 3백만원)을 했다. 또 그 점포에서 장사를 하던 예전 세입자에게 권리금 2억7천5백만 원을, 인테리어 비용으로 1억1천만원을 썼다. ‘5년 동안’ 꾸준히 성실하게 일해서 손님을 모은다면 충분히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부담을 안고 자금을 쏟아 부었고 지난 1년 6개월 동안 그만큼 피땀을 흘렸던 것.

하지만 건물주가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건물주인 리쌍은 계약 기간인 2년이 만료됐으니 점포를 비워달라는 입장이고, 세입자인 서씨는 임대계약을 5년으로 연장해달라고 요구하며 버텼다. 서씨는 “이제야 겨우 장사가 조금씩 잘되기 시작했는데 이대로 나가면 3억원 가까이 들인 권리금을 고스란히 날린다”라고 반발하며 건물주의 일방적인 횡포에 ‘약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리쌍 측은 처음 건물 구입 단계에서부터 계약서에 명시된 기간이 만료되면 계약을 연장할 계획이 없었고, 건물주로서는 드물게 임차인의 입장을 배려한 제안까지 했으나 건물주가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보상 협의에 더욱 애를 먹고 있어 곤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이들의 갈등은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리쌍이 건물 임차인을 상대로 ‘가게를 비워달라’라며 제기한 법적 분쟁에서 지난 6월 5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자 임차인이 판결에 불복하며 다시 항소를 제기했고, 이에 대해 리쌍이 또다시 맞항소를 하며 법정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항소심 심리에 앞서 양측이 조정 기일을 갖기로 한 상태다.

연예인이라는 건물주의 특수한 신분과 세입자의 독특한 퍼포먼스 등이 주목을 받으며 이들의 사례가 인터넷 등을 중심으로 화제가 되자 곳곳에 숨어 있던 비슷한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건물주와 세입자 간 분쟁으로,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점포 거래 조건인 권리금이 자리하고 있다. 권리금은 점포의 위치나 보유하고 있는 시설은 물론 영업 방식 및 단골 고객 등 유·무형의 가치를 환산한 것으로, 점포의 주인이 바뀔 때 기존의 주인이 새로 들어올 주인에게 받는 금액을 말한다. 권리금은 관행적으로 인정되고 있기는 하지만 임의적인 것일 뿐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아 보상 책임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분쟁의 불씨로 작용하는 것이다.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끊이지 않는 갑을 논쟁 권리금의 실체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끊이지 않는 갑을 논쟁 권리금의 실체

법적 근거 마련과 법 개정이 우선 과제
권리금은 크게 바닥권리금, 영업권리금, 시설권리금 세 종류로 나뉜다. 우선 주변 상권 및 입지와 관련된 바닥권리금은 유동 인구가 많고 접근성이 좋은 곳일수록 높다. 따라서 새로 생긴 건물의 빈 상가에도 바닥권리금은 발생할 수 있다. 영업권리금은 기존의 가게가 얼마나 장사가 잘됐고 많은 단골을 확보하고 있었는지에 따라 책정되는데, 기존 점포가 보유하던 고객과 영업 방식을 넘겨받는 대가를 뜻한다고 보면 된다. 시설권리금은 점포 영업시설에 필요한 각종 비용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상권이 활발하게 형성돼 있고 장사가 잘되는 가게일수록 권리금이 높게 책정되는데, 종종 이에 따른 부작용도 생겨나고 있어 문제가 된다. 가장 흔한 예가 권리금을 앞세운 건물주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소규모 세입자들의 피해다.

최근 오랫동안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손님을 맞아온 한 수제 햄버거 전문점은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가정집을 개조해 포근한 분위기를 선보이며 인근 상권을 형성하는 선두주자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을 뒤로하고, 매달 무섭게 치솟는 월세와 권리금의 부담을 떨쳐내기로 한 것이다. 인근에 위치한 홍대 카페길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던 B 카페의 사례도 유명하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손님들이 대기할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것을 눈여겨본 건물주가 계약 만료 기간이 되자마자 계약 연장을 거부한 뒤 같은 자리에 아들을 사장으로 앉혀 그대로 카페를 차렸다는 것. 해당 카페는 독특한 분위기와 실험적이면서도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입소문이 나며 유명세를 탔는데, 건물주는 이러한 후광을 고스란히 챙기는 ‘얌체 짓’을 했던 것이다. 불과 2, 3년 전만 해도 개성 넘치는 디자이너들의 가게와 편집매장들로 가득했던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또한 권리금으로 인해 대기업 브랜드 및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서면서 고유의 색을 잃어버렸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비싼 권리금과 임대료를 안정적으로 지불할 수 있는 빅 브랜드들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형적인 권리금 현상이 하나의 거대한 문화 지도를 바꿔놓은 셈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놓이기 쉬운 임차인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마련돼 있기는 하다. 이는 임차인이 원할 경우 최장 5년까지 한자리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하는 법률로, 지난 2001년 영세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모두가 이 법의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지역 기준의 경우 월세를 전세처럼 환산한 월세환산액과 보증금을 합친 환산보증금이 3억원 이하인 임차인만 보장받을 수 있다. 현재 서울 시내에서 이 법의 보호를 받는 점포는 전체의 25%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나머지는 계약 기간 2년이 만료되면 건물주와 협상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사실 2년은 점포를 시작하며 들어간 권리금 및 투자 비용을 운영 수익으로 상쇄하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기간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토지정의시민연대 관계자는 “건물주의 처분이나 선의에 기댈 것이 아니라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해 안정적이고 확실한 보장을 담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권리금 및 보상 기준을 법적으로 명시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 권리금 등이 포함된 영업권을 무형의 재산권으로 제도화해 법적으로 권리금을 인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권리금에 관한 추산을 표준화할 수 있는 기준이나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업종에 따라 금액이 천차만별이고 이를 계량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따라서 권리금 관행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는 주장도 나오는 실정이다. 우선, 현재로서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해 계약 기간 5년이 보장되는 환산보증금 상한을 높이거나 없애는 일이 가장 시급해 보인다. 최소한 상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놓인 임차인들이 들인 비용만큼이라도 회수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주자는 차원에서다. 권리금의 비중이 계속 커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더 이상 이를 시장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인 제도적 장치와 방안을 마련해 이른바 ‘수건돌리기’ 게임으로 불리는 권리금 관련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김영길

화제의 추천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