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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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정기용은 말했다. 우리 삶에는 유년 시절을 보냈던 기억의 집, 현재 살고 있는 집, 살아보고 싶은 꿈속의 집이 있다고. 당신은 어떤 집에 살고 있는가. 경제적 가치에 함몰된 삶의 터전, 집을 바라보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뜨겁고도 차가운 시선을 담아봤다.

당신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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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다
집의 사전적 의미는 ‘벽과 지붕이 있어 바깥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곳’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집에 대한 단상은 단순한 물리적 의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태어나 처음 가족을 만나는 곳,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장소, 추억을 함께하는 주체. 이렇듯 집은 우리의 기억과 정서에 농밀하게 연결된 소중한 공간이자, 고단한 몸을 뉘일 수 있는 삶의 터전이다.

하지만 집이 부의 상징이 돼버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집이 어떤 공간으로 꾸며졌는지,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위치가 강의 남쪽인지 북쪽인지, 몇 ㎡인지, 자가인지 전세인지가 집을 판단하는 기준이 돼버렸다. 아르코미술관과 글린트의 협력기획전 ‘즐거운 나의 집’에 출품한 작가, 건축가, 디자이너, 영화감독 등 동시대 예술가들이 우리에게 집의 의미를 물어왔다.

집을 향한 뜨거운 시선
하나의 거대한 집으로 꾸며진 미술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곳곳에서 오래된 물건들을 발견하게 된다. 손때 묻은 액자와 전화기, 라디오를 보며 집의 정서적 가치를 생각해봤다. 오후 6시가 되면 퇴근하는 아빠를 놀라게 해 주려 식탁 밑에 숨던 꼬마. 짝사랑하던 남자아이에게 거절당한 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여고생. 우리의 집은 살아 있는 액자이고, 추억이다. 주로 아이들이 차지하는 작은방의 경우 시간의 구애를 가장 많이 받는다. 아이가 커가면서 공간의 분위기와 가구가 바뀌고, 이들이 독립한 뒤에는 부모의 취미 공간 혹은 창고로 쓰인다. 방은 가족의 성장을 함께 겪는다.

당신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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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향한 차가운 시선, 확률가족
부모 소득까지 동원해 내집 마련에 평생을 바쳐야 하는 에코 세대(1979~1992년생)의 현실을 표현한 ‘확률가족’. 10개의 문 앞에는 82만5,000원부터 700만원까지 숫자가 쓰여 있다. 자신의 월급과 비슷한 금액을 따라 문을 열고 들어선다. 정면에는 본인 급여 수준을 담보로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최대 금액(A)이, 오른쪽에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인 부모가 자녀에게 증여할 수 있는 최대 금액(B)이 적혀 있다. A와 B를 합산하면 에코 세대가 집을 사기 위해 필요한 독립 자금이 계산된다. 바로, 바닥에 깔린 숫자다. 대부분 마이너스다(은행에서 빌리는 돈을 마이너스로 책정하는데, 자신의 연봉과 부모의 증여 액수를 합친 금액보다 대출금이 많은 경우 마이너스로 표시된다). 에코 세대가 집을 사기 위해서는 빚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짊어져야 하는 주거비 부담을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는 작품이다. 다소 절망적이지만 자신의 현실을 객관화시킴으로써 관람객들이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연대를 만들어가기를 바란다는 것. 확률가족의 작가이자 디자인, 도시와 교통 인프라, 부동산 조사 연구 그룹으로 이뤄진 시각 창작집단 ‘옵티컬레이스’의 창작 의도다.

어떤 집에 살고 싶나요?
어떤 집에 살고 싶냐는 질문을 던지면 많은 사람들이 ‘규모가 크고 화려한 집’이라고 말한다. 수영장이 딸린 펜트하우스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같은 곳 말이다. 하지만 주택의 면적을 넓히기보다는 이를 나눠 마을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집 안에 작은 도서관과 카페를 만든 A씨와, 다섯 살배기 아들이 뛰놀 수 있는 마당과 아내의 전공을 살릴 도예 공방을 만든 B씨의 집은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개인의 삶을 배려해 맞춤화된 집. 가족 구성원의 삶을 반영해 구석구석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집. 작고 소박할지라도, 살고 싶은 멋진 집이다.

전시 기획자와의 대화
글린트 김범상 대표

당신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당신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집을 전시한다는 발상이 독특했다. 집을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적 의미를 두고 구분한 점도 인상 깊었다. 사람들이 집을 생각했을 때 처음으로 떠올리는 게 인테리어다. 어떻게 꾸미고 사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집에 대한 의미를 환기시키고 싶었다. 집을 사고 예쁜 소품들로 채우는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우리에게 집이라는 게 왜 중요한지 어떤 존재인지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

다른 전시와 달리 전시된 소파에 앉아도 되고, 침실에 들어서니 누워 자도 괜찮다고 하더라. 미술관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건드리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제일 싫어한다. 반대로 ‘제발 좀 만지시오! 뛰어노시오!’라고 적었다(웃음).

특별히 애착이 가는 전시물이 있나? 조혜진 작가가 철거촌에서 가져온 물건들로 만든 ‘섬’. 그리고 문성식 작가가 마당에 관련한 추억을 그린 작품이다.

고향집에 온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하다가 ‘확률가족’을 보면서 집이 부의 상징이 된 현실이 안타까웠다. 한 중년 관람객은 모든 걸 숫자로 표현한 게 슬퍼서 울컥했다고 하더라. ‘확률가족’에서는 에코 세대가 겪는 어려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지금 청년들은 베이비 붐 세대인 그들의 아버지보다 더 힘든 세상을 사는 것 같다.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떤 칸을 밟느냐가 인생을 결정하는 상황이 마치 ‘확률게임’ 같더라. 그래서 제목이 ‘확률가족’이다.

살고 싶은 집은 생각보다 소박했다. 입이 떡 벌어지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관람객들의 판타지를 깨고 싶어서 건조하게 마무리했다. 예쁜 집만 전시하는 건 모델하우스에 가면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300년 된 한옥에서 살고 있는 83세 권헌조 옹의 일상을 담은 전시물을 보면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해서 요양원에 가야 하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집을 떠나지 않는다. 한옥은 오래 비우면 망가지기 때문이다. 그에겐 그곳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은 집인 것이다. 사람들이 동화 속 궁전 같은 집만을 원하는 건 아니다. 사는 사람을 배려한 집이야말로 살고 싶은 집이 아닐까.

전시를 통해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개인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살아왔다. 하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집을 사기 위해 회사 다닌다고 하더라. 집값 부담하느라 다른 창의적인 활동을 못하는 게 참 안타깝다. 그런 현실이 조금이나마 나아져야 하지 않겠나.

당신에게 집이란? 살아가는 흔적들이 묻는 곳. 삶을 기억하는 집에서 살고 싶다.

나에게 집이란?
제게 집은 물리적인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내면적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강합니다. 작품 활동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다 보면 집이란 곧 제 자신이더군요. -금민정(화가)

편안한 휴식처. 모든 걸 보여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대상.
-박소연(그래픽 디자이너)

봄이 오면 목련과 벚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고, 비탈길 비료 부대 썰매를 타던 곳. -베리띵즈(크리에이터스 그룹)

‘정산’의 공간. 하루 동안의 기억을 정리하고 피로를 정리하니까. -정진수(영상 작가)

외부와 개인을 나누는 경계선. 무엇으로든 간섭받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기에 충분한 곳. 그럼으로써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 -김기조(디자이너)

현재 한국에서 덜 비참하기 위해, 더 안전하고 안정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물질적 대상. -조혜진(조각·설치 작가)

행복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실패와 좌절, 힘든 부분을 보듬어줄 수 있는 어머니의 품.
-한수정(설치 작가)

집은 결코 부서져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나의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고 전쟁터같이 될지라도 집은 거기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져 보호돼야 한다. -정재호(화가)

* 글린트는 전시와 출판을 기획하는 회사로 2013년 ‘음악을 전시한다’라는 독특한 기획으로 독일계 음악회사 ECM의 앨범을 전시해 극찬을 받았다.

■글 / 서미정 기자 ■사진 / 김정원 ■도움말 / 차승주(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참고 서적 /「즐거운 나의 집」 전시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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