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남동의 갤러리이자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은 테이크아웃드로잉.

한남 포럼이 열리는 테이크아웃드로잉 2층 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 인근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손수 인테리어를 한 매장은 아늑했다. 몇 달 전까지는 사람이 거주하던 공간이라고 했다. 그곳에 살던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인근은 공사장을 방불케 하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골목까지 상권이 확장돼 오래된 다세대 주택을 상가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인구 이동에 따라 지역이 고급화되고 활기를 띠게 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단어다. 상류 계급 혹은 신사 계급을 의미하는 젠트리(Gentry)에서 유래했지만, 외부인이 유입되며 본래 거주하던 주민들이 밀려나는 부정적 상황을 표현하는 데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낮은 금리로 재테크가 어려워지고 투자보다 임대 수입에 기대야 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더 극대화돼 나타난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홍대 앞의 상업화로 예술가들이 자꾸만 배후로 밀려나는 현상이다. 도심 배후의 주거지역에 저렴한 임대료의 공간을 찾는 예술가들이 몰리고, 이 지역에 문화예술적 분위기가 생기면서 도심의 중·상류층이 대거 유입됐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임대료가 올라 지금까지 살고 있던 사람들(특히 예술가들)이 살 수 없게 되고 마을이나 지역 특성을 잃어버리는 현상이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한남동과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 앞은 그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곳에 스튜디오나 숍, 카페를 냈다가 다른 곳으로 밀려나간 이들이 부지기수. 이 지역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 주역들이었지만, 결국 상권이 커지고 뛰어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나듯 공간을 비워줘야 했다. 10년간 삼성동, 성북동, 혜화동을 거쳐온 테이크아웃드로잉은 한남동에서도 결국 같은 일을 겪고 말았다.
현행법상 새 건물주 싸이 측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이 평화롭지 않았다. 지난 3월 중순, 용역을 앞세운 강제집행이 이뤄졌고 때문에 이 분쟁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6월 들어 싸이의 소속사 양현석 대표의 중재로 합의가 이뤄지는 듯했다. 합의금
3억5,000만원을 받고 테이크아웃드로잉과 계약을 맺은 작가들의 전시기간인 11월 30일까지만 운영한 뒤 공간을 비우기로 합의했다. 재건축 후 입점을 보장한다는 항목도 있었다.
현재 테이크아웃드로잉은 SNS(www.facebook.com/takeoutdrawing)에 공론화하며 공감과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또 이를 통해 사회적 의제를 예술의 장에 끌어올려 토론하고, 창작하는 일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억울함을 호소하기보다 사건이 담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취지를 담은 ‘한남 포럼’이 결성됐다.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 홍대 건축학과 교수 조한, 인류학자 김현경, 공연기획자 황경하, 뮤지션 한받과 야마가타 트윅스터 등이 참여한 한남 포럼이 발제와 토론, 공연으로 테이크아웃드로잉 2층 공간을 빼곡하게 채웠다.
“카페나 도서관 같은 공간은 운영 주체가 민간이냐 공적 기관이냐를 떠나 어느 정도 공공성을 갖는다. 흔히 소유권을 물건과 사람의 관계로 착각하지만, 물건은 근본적으로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없기에 소유권은 사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소유권은 시민권의 이름으로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나친 소유권은 공적 공간을 말소시켜 우리가 시민으로 누릴 수 있는 공적 권리를 박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현경)
“건물의 소유권은 건물주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생겨나는 가치까지 소유주가 독식할 순 없다. 건물의 가치는 이용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지 콘크리트와 벽돌이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발생하는 가치는 건물을 사용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눠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용자는 물론 임대인만을 이르는 것은 아니며 공간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부당하며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소유, 이용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함성호)

번화한 대로변 너머 한남동 뒷골목도 이른바 힙스터들의 천국이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특정 공간을 이용하는 ‘이용자의 권리’는 아직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심지어 임차인의 권리조차 온전히 법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는 형편이다. 유동 인구가 많고 목 좋은 곳에 가게를 내려면 임대료와 설비비 외에 이전 임차인에게 상당 금액의 권리금도 내야 하지만 이 암묵적인 계약은 법적 근거가 없어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경우로 따지자면 셀 수 없이 많지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례 1) 부부는 전 재산에 대출까지 받아 1억원이 넘는 돈을 칼국수집에 투자했지만 공항철도 건설로 철거 보상금 300만원만 받고 가게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례 2) 건물주가 재계약을 거부하며 카페를 비워달라고 했다. 카페를 하지 않을 것이라 하여 권리금 1원도 받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전한 몇 달 후 그곳에 다시 카페가 들어섰다.
사례 1의 경우는 잘 알려졌듯 홍대 앞 칼국수집 ‘두리반’에 일어난 일이었다. 임대료가 올라 공연장을 잃으며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였던 홍대 앞 뮤지션들이 하나둘 찾아들어 함께 이곳을 지켜내지 않았다면 정당한 보상금을 받고 새로운 터에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힘없이 쫓겨나야 했던 사례 2와 같은 사람들은 힘을 합쳐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법이라는 것을 배웠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바람은 하나다. 그저 지금처럼 시민들과 예술가들을 잇는 역할을 이어나가길 바랄 뿐.
“새로운 개념의,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문화 공간을 운영하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의 활동이 평화롭게 지속되기를 바란다. 당연히 임차인으로서 의무를 잊지 않을 것이다. 성실하게 재계약에 임할 준비도 돼 있다. 건물주가 종전 합의에 따라 2015년 11월 30일까지 임대차 기간이 종료한 후 더 이상 임대차 존속을 원하지 않는다면,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임차인의 권리를 제대로 인식하고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이 바람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두 차례에 걸친 강제집행은 가까스로 버텨낼 수 있었지만 운영진 중 한 명은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전시 중이던 작품들은 창고에 억류됐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문화에 관심이 많은 청년층이다. 제 집을 가졌지만 이자에 허덕이는 ‘하우스푸어’도 되지 못한 채, 치솟는 전월세에 떠밀리는 이들의 모습은 이곳과 닮아 있다.
■글 /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참고 서적 /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임동근·김종배 저, 도서출판 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