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부 경제권, 어디까지 공유하고 사세요?
물론 돈 문제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양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부 경제권은 누가 경제 권력을 가지는가 하는 헤게모니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관리해야 우리 가족이 행복한가?’ 하는 철학과 방법의 문제다. 각각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열심히 번 돈을 어떻게 잘 관리하고 사용해야 하는지 부부가 함께 대화하고 가정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정해야 행복 지수도 높아진다. 하지만 많은 가정들이 바쁘게 살아간다는 이유로 재무적인 결정을 내릴 때도 속 이야기나 평소 가치관에 대해 충분히 대화하지 못하고 있다. 삶의 우선 목표가 무엇인지, 서로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대화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가정경제는 가족이 함께 꾸려가는 것이다. 서로 대화하고 의견을 맞춰갈 때 선명한 청사진을 만들 수 있다.

부부 경제권, 어디까지 공유하고 사세요?
재무 대화로 알아보는 우리 부부 경제 신용등급
1 재무적인 계획과 용도에 대해 부부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2 큰돈 쓰기 전에 배우자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규칙이나 기준이 있다.
3 돈 문제로 부부싸움을 크게 한 적이 없다.
4 은퇴 후 어디에 살 것인지 부부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5 향후 자녀들의 양육비가 어느 정도 들어갈지 정보를 교환한 적이 있다.
6 가계부, 지출 내역 등을 함께 살펴보며 진지하게 마주한 적이 있다.
7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의 용도와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의한 적이 있다.
8 남편(아내)이 돈으로 행복하거나 불행했던 때가 언제인지를 안다.
9 가정의 재무목표와 우선순위를 부부가 함께 공유하고 있다.
10 향후 직장 환경의 변화에 따라 소득을 유지하기 위한 진로나 사업적인 계획을 나누고 있다.
* 7점 이상 부부 경제 녹색불, 4~6점 부부 경제 노란불, 3점 이하 부부 경제 빨간불

부부 경제권, 어디까지 공유하고 사세요?
“4,000만원의 빚 프러포즈로 시작한 결혼생활”
결혼 10년 차 박상훈(41, 재무상담사), 박영사(41, 출판사 대표)
경제 상황 공공 임대아파트 거주, 경차 소유
수입 외벌이에 가까운 맞벌이
자녀 아들 지후(8), 딸 지인(6), 내년 5월 셋째 출산 예정
신조 자산보다 ‘가정자원’에 집중하자.
경제권은 누가 가지고 있나요?
남편 제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강의나 상담할 때도 잘 하는 사람이 하라고 하거든요. 제 아내는 요즘도 폰뱅킹하는 사람입니다(웃음).
4,000만원의 빚으로 프러포즈를 하셨다는 말을 듣고 아내분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아내 학자금 대출에 부모님 전세금 보태려고 받았던 마이너스 대출. 그거 좀 빨리 갚으려다가 빚이 늘어난 건데 그걸 어떻게 탓할 수 있겠어요? 남편을 어렸을 때부터 봐와서 됨됨이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괜찮아, 내가 너의 미래를 사줄게”라고 화답했죠. 예·적금 털고 타던 차도 팔아서 저 남자의 미래를 산 거예요(웃음).
빚은 청산했지만 결혼할 수 있는 재정 상태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아내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으니까 추진력이 생기더라고요. 당시 9평짜리 달동네 단칸방 전세가 2,000만원이었는데 빚 4,000만원 갚아주고 나니 돈이 없잖아요. 그마저도 전세 대출과 혼례비 대출로 주택자금을 해결했죠. 그때 소원이 베란다에 빨래를 너는 것이었는데 5년 만에 베란다가 있는 21평짜리 아파트로 이사 갈 때 정말 행복했어요.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노하우를 공개해주신다면?
남편 생활비는 체크카드를 사용해 정해진 예산 안에서 지출하고, 신용카드 결제를 CMA 계좌로 해서 명절이나 여행처럼 특별한 날에 사용하는 것으로 정해뒀죠. 이렇게 하면 신용카드에 의한 충동적인 지출은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저희는 신용카드 계좌를 ‘쓰담쓰담 통장’이라 부르는데 ‘쓰자, 다음에’의 준말이에요. 소비 충동이 일어날 때 바로 지출하는 대신 쓰담쓰담 통장에 넣는 거죠. 무조건 아끼는 것보다 소비에 대해 생각하고 한 템포 늦추자는 의미도 있죠.
아내 1년에 1개월을 정해 ‘재정 소방 훈련’도 해요. 생활비를 반으로 줄여서 살아보는 거죠. 살다 보면 자연재해도 있지만 재정적인 재난도 있을 수 있잖아요. 소득 변화가 있을 때 최소 비용으로 살 수 있는지, 그게 얼마인지 실제로 해보는 거죠. 막연히 상상만 하는데, 실제로 해보면 몸으로 체득도 되고 현실로 닥쳤을 때 좀 더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겠죠. 물론 경제 교육도 덤으로 이뤄지고요.
남편 물에 빠지면 중요한 것부터 건지게 되잖아요. 그것처럼 재정 소방 훈련을 하면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선별 가능하게 돼요. 불필요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죠.
돈 때문에 싸운 기억이 있으신가요?
남편 아내가 180만원짜리 청소기를 샀을 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적 있죠. 이런 갈등이 있을 때 ‘지금 나 불편하다, 힘들다’라는 걸 나타낼 수 있는 표시가 있는 게 좋아요. 그래야 감정적으로 충돌하지 않거든요. 저는 그게 콧바람으로 나타나요. 콧바람이 좀 거세지죠.
아내 콧바람이 강하게 불 때는 제가 납작 엎드립니다(웃음).
남편 그래도 아내를 이해했어요. 첫째가 호흡기 쪽으로 많이 아팠던 터라 아내가 왜 그런 소비를 했는지 동기가 이해됐거든요. 그 마음을 알기에 다툴 정도의 소비는 없었습니다.
주변과 비교해서 위축된 적은 없었나요?
아내 미래에 대해 남편과 의논하고 함께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위축되거나 불안한 마음은 없어요. 남편이 버는 소득에서 마땅히 저출할 건 하고요. 주변을 보면 억대 연봉인데 쪼들리는 친구도 있고, 5,000만원도 안 되는데 1,000만원씩 저축하는 친구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실제 저축액이 연봉이라는 생각을 해요. 소비 패턴은 갑자기 바뀌지 않기 때문에 검소함도 자산이거든요.
다른 부부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남편 저는 사람들에게 “가진 것이 없어서 날 수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10년 전 결혼할 때 분당 서현동에 12평 아파트가 1억원 정도 했는데 그게 지금 2억5,000만원대더라고요. 그때 전부 대출을 받아 샀더라면 돈은 벌었겠죠. 하지만 대출이자 갚느라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못했을 것 같아요. 수익 관점에서 본다면 유지비가 더 많이 드는 아내의 출판사도 정리하는 게 맞지만, 숫자로 당장의 실리를 판단할 건 아니지요. 비전의 연속성과 미래를 봤습니다. 인적자원, 시간자원도 가정의 중요한 자원이거든요. 부동산, 금융자산이 많지 않아도 가정 자원을 키워나간다면 불안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공유하고 이야기하는 문화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부 경제권, 어디까지 공유하고 사세요?
부부 머니 토크 ②
“빚내서 공부하는 열혈 부부”
결혼 7년 차 임성빈(40, 경찰공무원), 박윤지(39, 주부 겸 대학원생)
경제 상황 자가 빌라, 중형차 소유
수입 외벌이
자녀 아들 유찬(7), 아들 찬민(2)
신조 수당은 나의 기쁨
경제권은 누가 가지고 있나요?
아내 제가 관리하고 있어요. 결혼 초에 남편이 관리할 줄 모른다면서 다 맡기더라고요. 저는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때부터 용돈기입장 관리하는 걸 매주 확인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경제적 트레이닝을 받은 셈이죠. 지금도 엑셀로 지출 내역을 관리해요.
결혼 당시에 경제 상황은 어떠셨나요?
남편 결혼할 조건이 아니었죠.
아내 친정에서 반대하셨어요.
남편 제가 서른두 살에 경찰이 됐거든요. 전자학과를 나와서 전산 쪽 일을 하다가 그때 막 경찰 시험에 합격한 상황이었죠.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것도 없고, 정말 경찰시험 합격한 거 말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내 근데 저는 이 사람의 성실성과 비전을 봤어요. 돈은 없었지만 안정적인 직업이 있고, 건전한 생각과 취미를 가진 사람이었거든요. 그때 동탄의 32평 공무원 아파트가 전세 8,000만원이었는데, 70%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어서 대출로 집을 해결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했죠.
두 분 다 학자금 대출로 대학원 공부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남편 계속 승진 시험공부를 했는데 젊은 사람들을 당할 수가 없더라고요. 근데 어느 날 아내가 “재미없으면 하지 마”라며 차라리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더군요. 아내 말을 들으니 책상 앞에서 승진 시험을 준비하는 것보다 공부하면서 레벨을 올리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서 서른아홉에 순천향대학교 법과학대학원에 들어갔죠.
아내 저는 미술을 전공했고, 미술학원을 운영하다가 아이를 낳으면서 쉬게 됐거든요. 앞으로도 어린이 미술 교육에 대한 계획이 있어서 숙명여자대학교 미술대학원에 들어갔죠. 육아를 하면서 어린이 미술 교육서도 3권 출간했고요.
하던 공부도 멈출 나이인데 빚까지 내서 공부하는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남편 계획이 있고 희망이 있으니까 투자하는 시간들도 행복하죠. 경찰의 경우 승진 시험이 아니더라도 제 일에 대해 전문성을 갖추고 보이지 않는 마일리지를 쌓다 보면 심사 승진이라는 제도로 승진할 수도 있거든요. 승진 공부와 대학원 공부 중 저한테 더 나은 것을 택한 것이기 때문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 단기적인 수익이나 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하기보다 저희 부부가 가진 목표에 초점을 맞췄어요. 돈만 생각했다면 학원을 계속 운영하는 게 방법이었겠죠. 하지만 제가 하던 미술의 영역을 더 넓게 개척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 중에 하나둘 차분히 준비해나간다는 생각이에요.
재테크 실패담도 있나요?
아내 대출 끼고 집 산 거요(웃음). 첫 신혼집에서 계속 살았어야 했는데 제가 운영하던 미술학원이 서울 상도동이었거든요. 동탄까지 왕복 4시간이 걸려 무척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시흥동에 있는 13평대 집을 1억2,500만원 주고 샀어요. 그리고 1년 반 있다가 미술 재료 둘 공간이 부족해서 석수역 앞에 있는 30평대 빌라를 샀죠. 집 살 때마다 주변에서 말렸는데 그때는 그런 소리가 안 들렸어요.
남편 그래서 집이 두 채예요. 공무원이라 수월하게 대출받을 수 있는 것도 독이 되더라고요. 집도 많고 빚도 많습니다(웃음).
경제적인 부분에서 상대방에게 불만이 있다면?
아내 마트 좋아하는 거요. 남자들은 불필요한 것도 막 담고 아이가 장난감 사달라고 하면 즉흥적으로 사주기도 하잖아요. 한 번 가면 못해도 기본 5만원은 쓰게 되는데, 주말이면 대형 마트 가자고 아주 난리예요.
남편 어느 특정 회사 제품에 꽂혔던 거요. 다이어트 식품이 100만원이더라고요. 그땐 하라고 했어요. 살 빼는 것도 자기계발이니까. 근데 정수기부터 살림살이가 그 회사 제품으로 점점 바뀌더니 영양제 하나 사달라니까 그 회사 제품 것으로 가져왔더라고요. 그래서 그땐 “이건 아닌 것 같다”라며 제재를 가했죠. 그냥 거기까지였어요.
주변과 비교해서 위축된 적은 없었나요?
아내 회계사랑 결혼한 친구가 동부이촌동에 5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좀 우울했어요. 친정엄마에게 말했더니 “50대 되면 사람 사는 거 똑같아”라고 하시는 거예요. 한번은 친구 가족과 다 같이 놀러 갔는데 그 친구가 저녁을 사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n분의 1 하자고 했더니 “너희는 연금 나오잖아. 우리는 그런 거 없어. 연금 나오면 그때 사”라고 하는데 친정엄마 말도 생각나고, 그들은 또 내가 모르는 불안한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부부만의 특별한 재정 노하우가 있다면?
남편 수당을 아내가 전혀 터치하지 않는 거요. 저는 월급을 아내에게 맡기고 제 취미생활은 오로지 수당으로 해결합니다.
아내 수당이 얼마인지, 어떻게 나오는지 전혀 몰라요. 술, 담배 안 하고 운동 좋아하니까 그건 거기서 알아서 하라고 하죠.
남편 제가 아이와 함께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데 이런 장비들을 수당으로 사는 거죠. 직업상 죽은 사람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현재를 즐기자는 생각이 강해요. 죽으면 끝이니까요.

부부 경제권, 어디까지 공유하고 사세요?
Expert Advice ① “재무 설계의 기본은 ‘사람’입니다”
박상훈(재무상담사)
돈은 보이지 않는 문제를 끄집어내는 자석과 같다. 평소에는 잠잠하던 일들도 급하거나 어려울 때 느닷없이 튀어나온다. 아이들은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어른이 없을 때 자존감이 낮아지고 소극적인 아이가 된다. 자꾸 움츠러들고 부모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부부도 마찬가지다. 재무상담사 박상훈씨는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소통하고 대화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서로 격려하고 고충을 들어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은 어색하고 힘들지만 가족의 행복을 위해 조금 더 시간을 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행복을 찾아가는 가정의 모습으로 완성돼 있을 것이다.
재무상담사가 제안하는 재무 설계 3원칙
1 “1월의 하루를 부부 재무 대화의 날로 정하라”
1월 중 하루를 ‘부부 재무 대화의 날’로 정한다. 이날은 모처럼 좋은 곳에서 둘만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 가까운 호텔이나 전망 좋은 스카이라운지 같은 곳도 좋다. 돈이 들더라도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는 행복한 사치는 필요하다. 새해 우리 집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백지에 서로의 꿈과 원하는 삶의 모양을 하나씩 적고, 1년 동안 들어갈 이벤트성 자금과 비정기 지출 등을 파악한다. 이런 것들이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부족한 건 어떻게 채울지 미리 점검해보는 것이다. 돈을 버는 목적은 결국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다. 그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 것인지 대화하고 목표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재무 대화다. 요즘처럼 전세난이 심하고 내 집 마련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상황에서 재무 대화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바라는 수준은 높은데 현실적인 상황이 받쳐주지 못하다 보니 그만큼 갈등의 소지도 많아진다. 이럴 때 재무 대화를 충분히 나눈다면 서로가 원하는 수준을 조율하고 기준을 세울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은 이해의 원동력이 된다.
2 “외벌이의 기준으로 계획을 짜라”
평생 맞벌이하기가 쉽지 않다. 맞벌이로 월 400만원을 버는 가정이나 700만원을 버는 가정이나 저축할 수 있는 기간은 15년 정도로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많이 버는 사람들일수록 15년 뒤 현금 흐름이 더 불안한 경우가 많다. 많이 버는 만큼 많이 쓰다가 직장의 변화 등 소득의 변화가 생기면서 갑자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소비는 하방경직성을 갖고 있어서 소비하던 수준이 쉽사리 내려오지 않는다. 맞벌이라도 서로의 수입을 공개하고 통장을 합치는 것이 당연하다. 맞벌이하면서 통장 관리를 각자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서로 ‘동상이몽’하게 된다. 공동의 목표가 없다 보니 새는 돈이 많아지고 돈도 모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혼하기도 더 쉬워진다.
3 “배우자의 가치를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라”
부부는 수십 년을 서로 다르게 살아왔다. 돈에 대한 가치도, 계획도 충분히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갈등이 있다고 처음부터 무리하게 변화를 요구하면 안 된다. 상대방이 언제, 어떻게 소비하면서 행복을 느끼는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서로가 생각하는 돈의 가치를 인정해줘야 한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아내를 위해서는 옷 통장을, 운동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서는 운동 통장을 마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목표에 맞는 통장을 만들고 소비하면서 부부는 연습과 훈련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현명한 재무 설계를 할 수 있다.
Expert Advice ②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대화해야 합니다”
길현정(부부 상담 전문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부부 관계를 망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기력을 소진하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그런 상황에서 남편들은 자신의 무능을 부끄러워하게 되고, 아내들은 과도한 부담을 느끼게 된다. 부부 상담 전문가 길현정씨는 기본적으로 누가 벌든 수입이 부부 공동 소유라는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한다. “약간의 비상금은 눈감아줄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경제권을 통제하는 데 대한 반발 심리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배우자는 우리 생활에서 가장 큰 안락함을 제공해주는 휴식 같은 존재여야 한다.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이 부부 관계를 파괴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중년 부부들 역시 서로의 의사소통 방식을 점검하고 경제권이나 의사 결정권 등 부부 권력이 어느 한쪽으로 쏠려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재무 대화를 이끄는 5가지 대화 법칙
1 “정직하라”
공인인증서까지 공유하는 부부들을 겨냥한 ‘스텔스’ 통장이 인기라고 한다. 본인 이외에는 은행 직원도 계좌의 존재 여부를 알지 못하고 거래 내역 조회 및 인출도 알 수 없어 스텔스기처럼 은밀하게 비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좋은 인간관계는 신뢰를 통해 형성된다. 과도한 카드 사용으로 인한 빚을 숨기거나 저축액을 부풀려 말하는 등 거짓말을 시작하면 관계는 급속도로 멀어진다. 배우자에게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부터 둘 사이는 호전된다.
2 “비난하지 마라”
배우자가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고, 형편에 맞지 않는 물건을 구입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비난을 하면 문제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잘못 일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잊어야 한다. 물론 상대의 잘못에 대해 관대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비난은 배우자를 위축시키고 서로를 멀어지게 만든다. 과거를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미래의 일은 결정할 수 있다. 잘못을 따지기보다 오늘을 계획하고 행동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일이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부부 관계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3 “여유 자금을 허용하라”
이것은 비밀스럽게 운용되는 비자금과는 다르다. 여유 자금은 서로에게 약간의 자유를 허용하는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여유 자금을 허용하기 위해서는 정직이 전제로 깔려야 한다. 서로 납득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결정하는 것이 좋다. 서로 여유 자금을 인정하면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생활에 활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4 “다툼에 돈 문제를 끌어들이지 마라”
우리는 가끔 부부 관계의 문제와 돈 문제를 혼동할 때가 있다. 가장 최근에 돈 문제와 연관돼 싸우게 된 일을 떠올려보자. 다른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항상 돈 문제로 끝나게 된다거나 배우자의 의견에 대해 반대할 때 경제적인 상황을 끌어내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보자. 실질적인 문제들을 돈 문제와 엮는 행동은 부부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5 “싸울 때라도 성역은 건드리지 마라”
배우자가 실직 상태나 본가의 열악한 재정 상태를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자. 또 한 가지 잘못에 대해 일반화를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너무 많이 사,” “매번 초과 지출을 해”라는 식으로 일반화해버리면 사소한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보라(프리랜서) ■사진 / 김동연(프리랜서) ■도움말 / 길현정(부부 상담 전문가), 박상훈(재무상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