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만한 가슴과 개미허리, 실제할 수 없는 비율의 긴 다리와 탐스럽게 굽실대는 긴 머리까지...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 다섯이 된 그녀는 불로초라도 먹은 듯, 여전히 아름다운 그 모습 그대로다. 혹자는 그녀를 두고, 우리가 인간인지 아닌지를 실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신은 그녀를 아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구인이 확실하다.
1959년 3월 9일 탄생한 이래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여인은 다름 아닌 바비 인형이다. 전 세계에서 1초당 2개씩 팔린다는 바비. 지금까지 팔린 바비를 한 줄로 세우면 지구를 네 바퀴나 돌고, 세 살에서 열 살 사이의 미국 소녀들은 평균 10개의 바비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추종자들이 만든 팬클럽과 인터넷 팬사이트는 이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고, 그동안 학계에서 발표한 그녀에 관한 논문도 엄청나다. 그녀의 브랜드 가치는 무려 22억 달러, 그녀를 소유한 마텔사가 바비를 통해 벌어들이는 한 해 수입만도 50억 달러가 넘는다.
지난 40여 년 동안 미녀의 전형으로 굴림해 온 바비는 해를 거듭해 오면서 각 시대의 미적 취향을 반영, 선도해 왔음은 물론 시대정신까지도 나타내 왔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찬미와 증오는 극단적인 줄다리기를 해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바비로 인해 많은 소녀들이 ‘도저히 불가능한’ 몸매를 절대적인 미적 기준으로 삼게 됐다고 분개한다. 더불어 바비는 여성에 대한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겨온 혐의로 집중적인 비난의 포화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신디 잭슨’이라는 미국 여자는 바비처럼 되기 위해 수십 번의 전신 성형수술을 마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패러디한 테러리스트 그룹 ‘바비해방기구(BLO)는 1993년 크리스마스 시즌 때, 전시장에 있던 말하는 바비를 몰래 훔쳐 “수학은 골치 아파’라는 말 대신 ‘총알이나 먹어’라는 말을 입력시키는 방식으로 그녀에게 시위하기도 했다. 애초에 금발의 백인 여성으로 태어난 그녀는 또한 백인 우월주의를 대변하고 있다는 인종차별 논란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단순히 현모양처에만 머무르지 않고 의사, 군인, 대통령 후보 등으로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소녀들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자의식을 심어줬다는 칭찬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비난과 찬미를 차치하는 사실 하나는, 그녀가 여전히 전 세계 소녀들의 성장기를 통해 가장 친근한 친구로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바비의 매력은 어린 소녀들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여성들까지도 사로잡고 있어, 바비를 수집할 뿐만 아니라 동호회를 만들어 그녀의 생일마다 기념행사를 기획하는 등 ‘키덜트’(KID와 ADULT의 합성어)족들로부터 그녀는 여전한 지지를 받고 있다.
‘플라스틱 여신’의 탄생
1959년, 미국의 장난감회사 마텔사의 여사장 루스 핸들러는 종이인형을 가지고 노는 딸을 보고 착안, 딸의 이름인 ‘바바라’의 애칭을 따서 바비를 만들어냈다. 아이들의 인형이라면 대부분 커다란 아기인형 일색이었던 당시, 글래머 몸매에 화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바비의 등장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줄무늬 수영복을 입은 최초의 바비를 포함하여 1961년까지는 긴 머리를 묶은 ‘포니 테일 바비’시리즈가 등장했다. 그 다음이 바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버블 컷 바비’시리즈. ‘버블 컷’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캐네디의 헤어스타일이다.
1963년에는 헤어스타일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가발이 들어있는 ‘패션 퀸 바비’시리즈가 나왔다. 당시엔 대부분의 백화점에 전문가발 숍이 있을 정도로 여성들 사이에서 가발이 유행했는데, 꼬마 소녀들이 ‘바비인형’을 가지고 놀 때 자기 맘대로 가발로 헤어스타일을 바꾸며 놀 수 있으므로 가발의 유행은 바비에게 있어서 좋은 아이디어였다. 이어서 다리와 무릎이 구부러지는 ‘미스 바비’가 등장했고, 바비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바비의 가족과 친구들까지 대거 등장했다. 바비의 남자 친구인 ‘켄’, 여자친구 ‘미지’, 여동생 ‘스키퍼’, 켄의 친구 ‘알렌’, 사촌 ‘프랭키’, 남동생 ‘투디’와 ‘토드’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1967년에 들어서 바비의 얼굴은 보다 어리고 순수한 모습으로 바뀌었는데, 이때 등장한 ‘트위스트 엔 턴 바비’는 허리를 돌릴 수 있게 제작되었다. 1968년에는 처음으로 말하는 ‘토킹바비’가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인형은 목 뒤에 장치되어있는 끈을 잡아당기면 ‘오늘 저녁에 데이트가 있어요’, ‘패션 모델이 되고 싶어요!’등의 6가지의 말을 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70년대 들어 바비는 자신의 첫 애완동물인 말 ‘댄서(1971)’를 가지게 되었고, 1972년 친구 스테피(1972)를 비롯해 한꺼번에 많은 친구들을 갖게 되었다. 사회에 진출하는 여성들이 증가함에 따라 ‘워킹바비’의 등장이 많아진 것 또한 70년대의 일이다. 1977년에는 바비가 미국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인정받아 200년 후 열어볼 타임캡슐에 포함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완벽한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한 바비
1980년대 이후를 ‘모던 바비 시대’라고 한다. 이전까지 백인의 모습만을 하고 있는 바비 인형은 1980년대에 들어서 ‘흑인바비’, ‘히스페닉 바비’등 ‘인터내셔날 바비 시리즈’를 선보이면서 인종차별적 장난감이란 비난을 불식시켰다. 그 첫 시리즈로 ‘이탈리안 바비’, ‘파리지엔 바비’, ‘로얄 U.K 바비’등이 나왔고, 현재까지 50여 개국의 ‘인터내셔날 바비’시리즈가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바비가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90년대 이후에는 더욱 많은 양의 바비가 생산되고 있어, 99년 들어 선보인 바비 인형들만 해도 수백 여 종에 이를 정도. 이는 바비 수집가들의 증가에 발맞춘 현상이기도 하다.

바비는 지금까지 약 75개의 직업을 가졌다. 1963년 대학을 졸업하고 65년 우주비행사, 73년 외과의사, 86년 여성 사업가, 90년 비행기 조종사, 92년에는 대통령 후보, 97년은 치과의사 가 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 왔다. 그밖에도 바비의 직업은 패션모델에서 활강스키선수, 뉴스앵커, 외교관, 랩 가수, 야구선수, 응급구조대 등으로까지 다양해졌다. 바비가 처음 소개되었던 1960년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당차고 성공적인 여성상을 그려내고 있는 셈이다. 또한 400명에 이르는 유명 디자이너, 조각가, 엔지니어, 심리학자 등이 바비를 다양한 모습을 갖춘 다재 다능한 여성으로 만들어 왔다.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 캘빈 클라인, 도나 카란 등이 그녀만을 위한 드레스를 디자인했고, 까르띠에가 그녀를 위해 기꺼이 보석을 제작하기도 했다.
때로는 미국적 상업주의와 성공 지상주의의 상징으로 비난받기도 하는 바비. 명실상부한 스타인 바비는 남자 친구는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 독신이다. 그녀는 성공한 여성이며 소녀들의 우상이자 그녀들의 이상형이다. 어쩌면 그녀는 대리 만족이라는 인간의 심리가 만들어낸 20세기 드림 비즈니스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인 것이 아닐까 싶다.
바비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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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연정 기자 사진/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