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int 1. 눈과 축제의 영산 ‘태백산’

겨울 태백산은 눈과 축제의 산이다. 태백산에서는 매년 1월에는 눈축제가 열려 많은 이들이 찾고, 겨울 트레킹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태백은 3가지가 ‘검은’ 도시다. ‘산’과 ‘물’이 검고 마지막으로 ‘사람의 얼굴’이 검다고 한다. 태백은 탄광이 삶의 전부였다. 광부들은 태백의 아버지이자 가장이었고, 탄광에서 나오는 석탄이 태백의 밥줄이었다. 탄광에서 뿜어나오는 검은 연기와 물이 태백을 검게 물들였다. 그래도 그때는 탄광과 석탄이 있기에 먹고 살 수 있었다. 산과 물 그리고 사람의 얼굴이 검었어도 행복했던 때다.
하지만, 연탄 대신 기름과 가스보일러가 전국적으로 깔리기 시작하면서 탄광산업은 쇠락해갔다. 광부들은 하나둘씩 먹고 살기 위해 태백을 떠나기 시작했고, 탄광도 문을 닫는 곳이 많아졌다. 웃음이 가득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시름과 고통의 찌푸림이 자리 잡았다. 태백은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도시로 생기를 점차 잃어갔다.
활기가 느껴지지 않던 태백에 몇 년 전부터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석탄산업 대신 관광산업이 태백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특히 철도청에서 마련한 ‘환상선 눈꽃열차’는 숨겨져 있던 태백의 절경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겨울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환상선 눈꽃열차가 운행 될 때를 기다린다.
환상선은 영동선과 태백선을 돌아서 올라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눈꽃의 아름다움이 환상적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환상선 눈꽃열차는 청량리 역을 출발해 태백 역까지 가는 무박 코스다. 눈꽃열차의 묘미는 제천을 지나 영월부터 태백까지의 한시간 남짓한 거리다.

눈이 쌓인 영월, 증산, 사북, 주전역 구간은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피곤한 여행길이라해도 이 구간에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 열차를 탄 모든 승객들은 창 밖으로 펼쳐지는 매혹의 풍경에 빠져든다.
눈꽃 열차 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정암터널과 추전역. 철도 터널 중 가장 긴 터널인 4.5km의 정암터널과 해발 8백55m의 최고 높이의 역인 추전역.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바로 펼쳐지는 순백색의 세계, 추전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다. 철도청에서 운행하는 열차가 아니면 추전역에 내릴 수 없다. 눈꽃열차의 마지막 기착지는 태백역이다. 태백역에서 태백 당골로 이동하면 태백산 눈축제와 석탄 박물관, 눈썰매장, 태백산 트레킹 등을 즐길 수 있다.
환상선 눈꽃열차는 흰눈 가득한 곳만을 찾아다니는 상품이다. 특별한 것은 없을 수도 있다. 잠시 2~3군데 간이역에 내려 1시간 정도 눈 구경만 실컷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코스가 단순해 보이지만, 간이역에서 맛보는 설경은 평생동안의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눈꽃열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국내 여행사에서 색다른 코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무박과 1박 2일 코스로 영동선과 태백선을 거치는 것은 비슷하다.
다만, 태백에 도착해서는 태백산 당골로 이동해 태백산의 절경을 즐기고 돌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태백시는 동쪽은 삼척, 서쪽은 영월·정선, 남쪽은 경북 봉화군과 인접해 4개 시군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해발 평균 650m의 고원준령도시로 타지역에 비해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온다. 매년 1월에는 눈축제가 열려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이번 해에는 지난 1월 9일부터 18일까지 열렸는데, 예년에 비해 눈이 안와서 많은 아쉬움을 남게 했다.
민족의 영산이라는 태백산에는 눈 말고도 많은 볼거리가 있다. 특히 당골에서 천제단까지의 트레킹 코스(2시간 30분 소요)는 겨울에 더욱 매력적인 풍광을 보여준다. 1천4백70m의 높이에 위치한 망경사 경내에는 ‘용정’이라는 샘이 있다. 한국의 명수 1백선 중 으뜸수로 꼽히는데, 샘 위에 용왕각을 짓고 용신에 제사를 올린다고 용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태백산주봉인 장군봉 정상에 자리한 사각형의 제단인 ‘장군단’은 중요민속자료 제 228호다. 태백산 정상에 있는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원형제단인 ‘천제단’은 개천절에 천제를 지내는 곳이다. 그리고 강원도민체육대회의 성화를 이곳에서 채화한다. 가족 단위 관광객은 태백산 눈썰매장을 이용하면 된다. 해발 8백미터의 고지대에 위치해 하루 3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슬로프가 마련되어 있다.
철도청에서 운영하는 환상선 눈꽃열차는 1월 28일부터 2월 29일까지 계속된다. 좀더 다양한 여행을 원한다면 국내 여행사에서 마련한 눈꽃열차 여행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태백역에서 당골광장으로 가는 시내버스는 매시간 운행한다. 30분 소요.
point 2. 석탄 역사의 산교육장 ‘석탄 박물관’
지상 3층 지하 1층의 석탄 박물관은 석탄에 관한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다. 특수효과와 첨단 장비가 현실감있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동양최대 석탄 박물관이다.

석탄 박물관은 태백의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석탄 산업은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생명을 담보로 발전을 했다. 광산 노동자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수백미터 지하의 탄광에서 석탄을 캤다. 한번의 사고는 수십명의 사상자가 생기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태백시 사람들에게 광산은 삶의 터전이기도 했지만, 다시는 들어가기 싫은 눈물어린 공간이기도 하다. 석탄 박물관은 이런 아픔을 가지고 있는 석탄 산업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만들어놓은 곳이다.
석탄 박물관은 ‘석탄, 자연, 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제로 지난 1997년 5월 문을 열었다. 지상 3층 지하 1층의 박물관에는 테마별로 석탄에 관한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다. 영화 ‘쥐라기 공원’의 소재가 됐던 모기와 암모나이트, 화석 등 희귀품부터 석탄 산업에 필요했던 폭발물과 굴삭장비까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특히 노동자들의 계약서, 안전수칙 등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탄광 노동자들의 실생활도 엿볼 수 있다. 첨단 장비와 특수효과를 이용해 탄광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박물관 곳곳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석탄 산업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산 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다.
옥내전시실 7개, 야외전시실 2개, 갱도체험관, 이벤트홀, 영상실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제 1전시실은 지질의 구조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지질관’이다. 제2전시실은 ‘석탄의 생성 발견관’으로 한국의 석탄 분포도 및 삼척 탄전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비교 전시해 놓았다. 제3전시실은 석탄의 탐광부터 채굴 그리고 각종 장비의 발달사가 전시되어 있다. 제4전시실은 ‘광산안전관’으로 탄광사고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제 5전시실은 ‘광산정책관’으로 석탄개발 정책의 변화와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상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제 6전시실은 탄광촌의 독특한 주거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다. ‘태백지역관’인 제 7전시실은 석탄이 개발되기 이전의 태백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제 8전시실은 지상 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게 되어 있는데, 탄광갱도를 실제상황과 가깝게 연출했다. 갱이 무너지는 모습도 볼 수 있는 독특한 곳이다.
한편 야외 전시장에는 실내 전시장에 없는 채탄기·권양기·광차 등 대형 광산장비를 시대별로 전시해 놓았으며, 지하전시실은 조선시대의 원시적 채탄에서부터 기계화 채탄에 이르기까지의 변천 과정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다.(문의 033-552-7720, 태백산 당골에 위치)
point 3. 검은 태백시를 맑게 씻어주는 적멸보궁 ‘정암사’

주변에는 붉은 물이 흐르지만, 사찰에는 열목어가 살 정도로 청정한 물이 흐르는 정암사. 이곳은 태백과 정선 광부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준 곳이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나 신보(가사, 염주 등)를 모신 곳이다. 그래서 적멸보궁에는 불상이 없다. 부처님의 몸이 모셔져 있으니, 불상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적멸보궁이 5군데 있다. 경남 양산 통도사, 설악산 용아장성능의 봉정암, 강원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상원사 그리고 강원도 정선의 ‘정암사’다.
고한에서 만항쪽으로 뚫린 414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정암사에 닿는다. 정암사로 가는 굽이굽이 좁은 길, 그 옆으로 흐르는 개천은 온통 붉은 색이다. 폐광에서 흘러나오는 물 때문이다. 붉은 색 물이 흐르는 개천을 보고 있으면 눈이 아리다. 마치 탄광 노동자들의 땀방울이 모여서 흐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정암사는 이런 강원도 탄광촌의 흔적을 느낀 후에 만날 수 있는 절이다.
정암사가 소중한 것은 적멸보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암사 주위는 붉디 붉은 물이 흐르지만, 정암사에는 열목어가 살 정도로 아주 맑은 물이 흐른다. 사찰 가운데 흐르는 냇물 자체가 천연기념물 제 73호일 정도다. 힘든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해 주민들이 찾을 수 밖에 없던 절이다. 가슴에 쌓인 눈물과 탄가루의 흔적을 앃어준 곳이 정암사다. 그래서 정암사는 막장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안식처 역할을 했다.
정암사는 그리 규모가 크지 않다. 가람에는 건물도 그리 많지 않다. 범종각 뒤편에 적멸보궁이 보이고, 눈을 들어 산을 보면 우뚝 서있는 7층 석탑이 눈에 띈다.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탑이다.
이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보궁 오른편으로 난 비탈 계단을 힘겹게 올라야 한다. 10여분 천천히 걷다보면 보물 제 410호로 지정된 ‘수마노탑’에 도착한다. 마노석이라는 이름의 석회암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상륜부를 청동장식으로 씌웠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드문 7층 모전석탑(돌벽돌을 쌓아 만든 탑)이라고 한다. 탑을 만져보면 민들민들한 감촉이 느껴진다.(문의 033-591-2469, 고한읍에서 정암사 경유 만항행 버스 이용)
point 4 단종의 애절함 녹아있는 ‘청령포’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됐던 곳이다. 삼면은 강으로 둘러쌓여 있고, 한쪽은 층암절벽으로 막혀있어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다. 청령포 자체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이들이 많이 찾는다.
삼면은 깊은 강으로 둘러쌓여 있고, 육지와 이어지는 남쪽은 육륙봉의 층암절벽으로 막혀있다. 강은 눈이 시리도록 맑고, 절벽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장관이다.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 생활을 해야 하는 곳인데도 경치가 이렇게 아름다웠으니. ‘단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라는 상상을 하며 배를 타고 청령포를 들어간다.
청령포는 영월 팔경의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단종의 한이 어려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변했다. 청령포는 남한강의 상류인 서강이 삼면으로 둘러쌓고 있어 마치 섬 같은 느낌을 준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나룻터에서 배를 타야 하는데, 손님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사람을 태워 나른다.
청령포로 들어가면 맨 처음 아름드리 소나무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소나무 숲을 지나면 단종이 이곳에 귀양왔을 때 머물렀던 어소가 복원되어 있다. 왕이 머물렀던 곳이라고 하기에는 쓸쓸할 정도로 아담한 규모다.

단종어소 옆에는 1988년 천연기념물 제 349호로 지정된 수령 6백여년의 소나무인 ‘관음송’이 자리잡고 있다. 관음송이라는 이름은 단종의 유배생활을 보고 들었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단종은 이 나무 위에서 앉아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 옆에는 단종의 행동을 제한했던 ‘금표비’가 자리잡고 있다. 이 비각은 영조 2년에 세운 것으로 후면에 ‘왕이 계시던 곳으로 일반인의 출임을 금한다’는 뜻의 글이 새겨져 있다.
청령포 한쪽 끝에 있는 ‘노산대’는 단종의 시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배생활을 하면서 이곳에 자주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한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서강은 단종의 애끓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유롭게 흐르기만 한다. 마치 한 폯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서강의 풍경은 묘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이 곳에는 단종이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인 ‘망향탑’도 있다.
청령포는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특히 여름에는 청령포 옆의 넓은 백사장에서 야영을 할 수 있고, 서강에서 수영을 할 수 있어 나들이 장소로 좋은 곳으로 꼽힌다.
단종은 이곳에서 2개월 정도 지내다 홍수로 인해 읍내 관풍헌으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강원도 영월에는 단종의 흔적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1967년부터 한식을 전후해 단종문화제가 열리고 있다.(영월 역에서 매시간 청령포 행 버스가 있다)
글 / 최영진 기자 사진 / 이건무, 태백시청 문화관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