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일대에서 발생한 지진해일 대참사를 지켜보면서 말 그대로 무력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재난’을 넘어 ‘재앙’에 가까운 현실에 비감히 몸서리도 친다. 직접적인 사망자수만 1월 18일 현재 족히 2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니, 이것이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에 경악할 따름이다. 스탈린이 그랬다던가.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요,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라고. 그러나 대참사로 인한 이 엄청난 희생이 안일한 보도 속에서 ‘통계’로 취급되는 일은 경계돼야 할 것이기에 조심스럽게 르포를 구성한다. 그 수많은 죽음은 그 하나 하나가 말 그대로 더할 수 없는 비극일 것이므로… 그러나 진흙 속에 피어나는 연꽃의 붉은 꽃잎처럼 남은 자들의 삶은 뜨겁게 계속된다. 그리고 삶이 계속되는 한 희망의 빛 역시 꺼지지 않고 반짝일 것이다.
태국 푸케트&카오락 일대 취재일지
기간 2004년 12월 31일~2005년 1월 5일
취재 경향신문 사회부 송형국 기자
◆ 생지옥의 현장
쓰나미가 삼키고 간 태국 푸케트의 피해 현장은 천혜의 절경을 지닌 푸른 바다와 폐허로 변한 죽음의 땅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엇갈린 무수한 이들의 생과 사를 품고 있는 듯했다.
급한 출장 결정에 서둘러 찾아간 현장은 다른 말이 필요 없는 생지옥. 생존 그 하나만을 갈구하다 죽어간 수백 구의 익사체가 한눈에 들어왔을 때 내게 다가온 것은, 유치하기 짝이 없게도 생에 대한 안도였다. 익사체는 하나같이 괴로워한다. 체내 가스로 인해 몸은 2배로 불어 있고 안구는 얼굴 밖으로 나와 있다. 수습 시절 부검실에서 맡았던 역겨운 냄새는 그곳에 비하면 향기에 가깝다.
그들의 명복을 빌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몸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이 머릿속에 가득 차 오른다. 대개 한두 사람의 시신을 볼 때는 식욕이 없어지거나 슬프다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척하게 된다. 이번엔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먼저 찾아왔고, 배가 고팠다. 그날 숙소로 돌아와서는 준비해간 스니커즈 초코바를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새해 첫날 태국 팡아 주(州) 북부의 사찰 왓 방무앙(‘왓’이 사찰이라는 뜻.) 쓰나미 발생 6일째인 이곳의 피해 해안은 어느 정도 시신 수습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한편 사체 집결지에는 수천 구의 시신이 쌓여가고 있다. 팡아 주 카오락 해안에서 희생당한 외국인 시신은 인근 세 곳의 사원에 분산 배치돼 가족들의 확인 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태국인 사망자들은 현지에 화장하는 관습이 있는데다 부패 진행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발굴되는 대로 화장하고 있지만, 외국인 희생자들은 유가족 확인이 없으면 처리할 수 없는 탓에 장기간 방치할 수밖에 없다. 태국의 화장 문화 탓에 병원에는 냉동보관시설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왓 방무앙에만 집계조차 되지 않은 수천 구의 시신이 널려 있다. 사체 특유의 부패한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곳곳에서 사체를 실어 나르는 트럭이 드나들며 희생자들을 떨궈놓고는 떠난다. 사체의 치열을 통해 신원을 파악하는 의료진과 사진확인작업 등을 돕는 자원봉사자들로 지휘본부 역시 북새통이다. 울며 불며 주검을 확인하는 가족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날이 갈수록 사체들의 부패가 심해짐에 따라 태국 대책본부는 12월 31일부터 드라이아이스를 동원, 이송 날짜가 많이 지난 순서대로 부패를 막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서는 냉동 컨테이너를 들여와 지원하고 있다. 태국 당국이 소독약을 동원해 방역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더운 날씨와 높은 습도 등으로 인해 언제라도 전염병이 번질 우려가 있는 상황이다. 벽마다 사체 사진을 붙여놓고 사진을 컴퓨터로 저장해 유가족들의 확인작업을 돕고 있지만 익사체의 특징상 사진만 가지고 확인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사체를 언제까지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각국의 실종자 가족들이 확인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태국 당국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 생존자가 전하는 당시 상황
”피를 철철 흘리며 산속에서 밤새웠습니다”_ 박수재씨(26)
사상 최대의 재앙인 남아시아 쓰나미는 영화에서 나오는 해일 장면과는 사뭇 달랐다는 게 생존자와 목격자들의 증언이다. 우선 바닷물이 평소보다 1~2km 빠지면서 장관을 이루었다. 관광객들은 영문을 모르고 “멋지다”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러기를 잠깐. 규모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 휴양지를 덮치고 아차 싶은 순간 생과 사는 엇갈렸다.
박수재씨(25)는 말레이시아 어학 연수중에 친구 이모씨(23)와 지현진씨(23·30일 사망 확인), 외국인 친구 2명 등과 함께 배낭여행을 왔다. 푸케트 옆의 작은 섬인 피피섬에서 스노클링을 준비중이었다. 피피섬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비치’의 배경이 된 곳. 현지 안내원들이 파도 상황을 보면서 자꾸 시간을 미루는 게 이상하긴 했다. 물이 크게 빠졌다 들어왔다를 두 차례 반복하더니 갑자기 멀리서부터 거대한 파도가 밀려왔다. 박씨는 순식간에 물길에 휩쓸렸고 물에 잠겨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나중에 보니 건물 잔해에 의해 손과 발목 부위에 상처를 입었는데 발에는 손가락만한 살점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가까스로 물살을 헤치고 나와 공장 건물 안쪽에 몸을 피했다가 사람들이 산으로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같이 뛰었다.
산으로 올라가보니 일행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고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서야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현지인 젊은이 3명이 그를 도와 눕혀주고 지혈하면서 상처를 살펴줬다. 물 한 통을 함께 나눠 마시고, 주변에서 과자도 구해와 나눠먹었다. 박씨는 “이름도 알 수 없는 그들이 너무도 고맙다”며 “2차 해일의 공포 속에서 수백 명이 그렇게 산속에서 밤을 보냈다”고 전했다. 체온이 올랐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는 상태로 흘러나오는 피를 눌러 막으며 밤을 샜다. 날이 밝자 그곳에서 알게 된 한국인 한 명이 기진맥진한 박씨를 업고 내려왔다. 크라비 병원에 옮겨져 봉합수술을 받았지만 전쟁통과 같은 병원은 이미 중상자들이 맨바닥에 눕혀져 있을 정도였다. 수술도 불결하게 돼 수술 부위가 곪기 시작했고 다음날 푸케트 병원으로 후송돼 봉합 부위를 열고 이물질을 제거하는 치료를 받다가 귀국했다.
가수 고영준씨 절망의 새해 첫날
동생이 동남아로 여행을 갔다는 얘기만 알고 있던 가수 고영준씨(51)는 사태 이후 동생의 소식이 없어 수소문에 나섰다. 고씨는 ‘타향살이’ ‘황성옛터’ 등의 노래로 1950년대 국민의 시름을 달랜 고(故) 고복수·황금심 부부의 큰아들. 동생 병준씨(42·본명 고흥선)는 ‘여인천하’ ‘다모’ 등 MBC의 드라마 음악감독이다. 동생이 예비신부와 함께 피해 지역인 카오락에 놀러 갔다는 말을 들은 고씨는 31일 밤 급히 태국행을 결행했다. 한국 외교부가 푸케트에 마련한 현장지휘본부를 찾아 실종신고를 했다. 이때만 해도 고씨는 물론 대사관 직원들은 설마 하며 어느 지역에선가 여행하고 있을 것으로 희망하면서 새해 첫날을 맞았다. 전날 다른 배낭여행 학생 3명도 실종신고 돼 있었으나 태국 북부에서 여행중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등 사망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기대했다.
1일 오전 카오락 가든비치 리조트가 있던 자리를 수색하던 현지인 민간구조대원들이 한국인의 여권을 발견했다며 당국에 인계했다. 고씨가 찾던 이름과 여권번호 등이 정확히 들어맞는 여권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영준씨는 울컥 했다. 정말 세상을 떠났단 말인가. 새 신부감을 만나 행복한 미래를 기약하며 여행을 떠났는데….. 백화점카드와 현금카드, 본인 명함 등도 함께 발견됐다. 이곳에서 이날 오전중 시신 15구가 발굴됐으며 이중 3구가 동양인인 것으로 추정, 남자 1명, 여자 2명인 이들 사체 중 고씨 커플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에 고씨는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급히 시신 발굴 장소로 이동했다.
이날 낮 비가 오락가락한 탓에 현장에서 더이상 사체를 부패하도록 둘 수 없어 현지인 대원들은 사체집결지로 시신들을 옮겼고, 고씨는 다시 현장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팡아 주 북부의 사원 왓 방무앙에 마련된 사체집결지로 달려갔다. 거무튀튀하게 불어 있는 익사체 수천 구가 썩어가고 있는 현장에서 이미 망연자실한 고씨는 “이게 다 사람이란 말인가”하며 “동생을 내 눈으로 못 볼 것 같다”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문제의 동양인 남성 사체 1구에 대해 확인에 나선 고씨는 서울 가족들과 통화를 계속하며 “동생 금니가 몇 개냐, 수술 자국이 어디에 있냐”는 등 특징을 찾으려 애썼다. 체내 가스로 몸이 팽창된데다 심한 부패가 진행돼 이미 육안으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었다. “수염이 많다”는 검시관의 말에 동생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판단되지 않았다. 그후 6일 동안을 사체집결지와 폐허로 변한 해안을 맨손으로 뒤졌지만 영준씨는 동생 커플의 시신을 찾지 못한 채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 실종자 가족들 눈물의 위령제
영준씨뿐만이 아니다. 시신을 찾은 가족들은 그나마 다행스런 경우다. 시신이 거센 파도에 휩쓸려 먼바다로 떠내려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구조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실종자 가족들도 이제는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가족들은 5일 밤 귀국길에 오르면서 사고 현지에서 가까스로 찾아낸 실종 가족들의 유류품만 하염없이 만지작거리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겨야 했다. 이날 오후 실종자 가족들은 외교부 현장지휘본부, 푸케트 교민회 등과 함께 카오락 현장에서 실종자 합동 위령제를 열고 `‘영혼 장례식’을 치렀다.
“같이 가자, 같이 가자. 여기 있지 말고 엄마랑 같이 가자….” 태국 팡아 주 카오락 해변으로 신혼여행을 왔다가 남편과 함께 실종된 허모씨(30·여)의 어머니는 사고 현장에서 발견한 딸 내외의 여행가방을 매만지면서 비통함을 참지 못했다. “영혼이라도 있으면 새로 마련한 신접살림에 가서 같이 밥이라도 한끼 먹자….” 눈물은 이미 말라붙었지만 통곡은 그칠 줄 몰랐다. 아버지 허씨는 가방을 끌어안고 “신혼여행 간다기에 최고급으로 사준 건데, 이것만 갖고 어떻게 고국으로 돌아가나”며 바다를 향해 울부짖었다. 한국에 돌아간 부모는 애써 마련한 신접살림과 혼수를 처분하며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릴까.
딸의 시신을 찾느라 수백 구의 익사체를 맨손으로 뒤진 어머니 조씨는 걷지도 못할 만큼 건강이 악화됐다. 사위의 시신은 첫날 발견됐다.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은 사돈댁이 조씨는 차라리 부럽다. “○○아, ○○아….” 곱디고운 딸을 집어삼킨 바다를 향해 딸 이름을 수도 없이 외쳐보지만 에메랄드빛 바다는 아무 말이 없었다.
◆ 차마 못다 쓴 사연들…
한 며느리는 시댁에 알리지 않고 남편과 함께 친정 부모를 모시고 여행을 왔다가 남편을 잃었다. 아들을 잃은 한국의 시부모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왜 나만 살렸나. 서울에 무슨 낯으로 돌아갈까….” 한 신혼부부는 현지 사정으로 출발 직전 공항에서 숙소를 바꿨다가 변을 당했다. 애초에는 내륙 쪽에 있던 호텔이었다. “값비싼 해변 호텔이라는데, 이때 아니면 언제 그런데서 자보겠어….”사연 없는 죽음은 없다. 그들의 처지를 취재하며 기자도 울었다. 차마 기사로는 쓰지 못했다. 애끓는 불행을 더이상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다시는 재난이 없기를 바라지만 어디서든 재난은 찾아온다. 사람이 어떻게 해볼 도리는 그곳에 없다. 살아 있는 삶은 무조건 소중하다.
스리랑카 트링코말리 난민촌 취재일지
기간 2005년 1월 7일~15일
취재 경향신문 사회부 장관순 기자
◆ 난민촌에서 펼친 인술(仁術)
경향신문과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은 지진해일로 피해를 입은 스리랑카 현지에 공동의료지원단을 파견,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다. 이번 지진해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스리랑카는 1백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나 의료시설과 의료진이 부족해 많은 환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공동의료지원단은 한의사 18명과 행정요원 5명, 본사 취재진 2명 등 25명으로 구성됐으며, 7일 스리랑카로 출발해 15일까지 현지에서 의료활동을 전개했다.
공동의료지원단은 1만여 명의 현지 피해민을 대상으로 침과 뜸 등 전통 한의학과 한방 외용 치료제 등을 이용해 환자들을 진료했다. 또 비타민과 영양제 등 현지인에게 필요한 2억여원 상당의 응급의약품도 전달했다.
◆ 한방의료봉사에 현지인들 눈물 글썽
“이쿠망터 수워웨느(어서 나으세요).”
“보호마 이스투티(정말 고맙습니다).”
참혹한 쓰나미 재앙을 겪고 있는 스리랑카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경향신문·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 소속의 의료진과 현지 환자들이 자주 주고받는 대화다. 9일 스리랑카에 도착한 봉사단은 10일 본격 진료활동에 들어가 스리랑카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본 북동부의 트링코말리 지역에서 600여 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돌봤다.
인구 13만여 명의 항구 도시인 트링코말리에서는 이번 사태로 주민 950여 명이 사망하고 1만5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의료진은 이날 트링코말리 시내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뒤 2개 팀으로 나뉘어 인근 어촌 팔라토탐 난민촌과 아유르베딕 전통의학병원에서 한방의학을 시술했다.
팔라토탐 난민촌에 진료소가 마련되자 해일 피해 환자 300여 명이 저마다 먼저 진료를 받기 위해 앞다투어 몰려들었다. 진료소라고 해봐야 따가운 햇빛과 30도를 웃도는 열기를 막기 위한 대형 임시 천막이지만 피부병, 천식 등을 앓는 환자들은 1분이라도 더 오래 몸을 맡기겠다고 다투곤 했다.
통증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환자들은 의료진의 따스한 체온이 배어 있는 침과 뜸이 몸 구석구석에 닿자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코리아, 보호마 이스투티(한국, 정말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특히 즉석에서 고통이 가시거나 가벼워진 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스러워했다.
이 난민촌에는 전체 370가구 2000여 명 중 313가구 1500명이 천막 등 임시 거처에서 지내고 있다. 해일 사망자는 3명이며 전체 60척의 어선 중 55척이 파손·유실돼 생계 수단을 잃었다. 구호물자에만 의존하는데다 모기 등 해충에 밤낮 없이 시달려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
◆ ‘키니야’ 난민촌에서 만난 사람들
11일 오전 스리랑카 북동부의 쓰나미 피해지역인 트링코말리 인근의 키니야 마을을 찾았을 때였다.
“침 옛날 맞아봤어요.”
분명히 한국말이었다. 외관상으로는 현지 주민인데 느릿느릿하지만 비교적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모습이 한국의 한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청자의 배꼽을 잡게 하는 ‘블랑카’를 연상시켰다. “43살 먹은 카루나라트라”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한국에서 한의사들이 왔다는 소식에 일행을 따라왔다”며 거듭 한국어 실력을 자랑했다.
봉사단이 키니야의 알렉사 초등학교에 진료소를 마련하자 그는 “진료를 받고 싶어요”라며 자리에 누웠다. 카루나라트라는 1998년에서 2003년까지 경기 안산의 주물공장에서 일했으며 그때 발목을 다쳐 침을 맞은 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 벌어온 1천여만원으로 부인과 딸, 세 식구가 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는 이번 쓰나미로 졸지에 집을 잃은 채 난민촌에서 지내고 있었다.
쓰나미는 키니야 해안 200여 채의 가옥을 무너뜨렸다. 해안에는 집의 형체도 거의 보이지 않았으며 힌두 사원과 기독교 교회도 무너졌다. 키니야 전체 인구 1600여 명 중 500여 명이 사망했다. 키니야는 트링코말리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으로 지난 8일에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방문하기도 했다. 생존자들은 식욕 감퇴, 전신 무력증 등 공황 상태에 빠져 나날이 쇠약해져가고 있었다. 두통을 호소하던 카루나라트라도 침을 몇 대 맞고 약을 먹은 뒤 다소 회복세를 보였지만 가족 생계 걱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는 이날 한의사들과 현지 환자들의 의사소통을 돕기 위해 이러저리 바쁘게 뛰어다녀 또다른 ‘자원봉사자’ 역할를 자처했다. 그는 “한국에서 고생하며 모은 재산을 모두 잃었지만 가족이 살아남은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라며 “한국에서 일할 때 사장님이나 한국인 직장 동료들로부터 간혹 얻어맞기도 했지만 오늘 한국인들의 선행을 보니 매우 반갑다”고 말했다.
쓰나미를 피하던 중 다리를 삐었다는 스리왈다나(20)도 침과 뜸으로 치료를 받았다. 할아버지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는 그는 “평소 허리 통증을 자주 호소한 할아버지가 이번에 치료를 받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키니야에서 군인 사상자 처리를 맡고 있는 스리랑카 육군의 사만헤이랏 상사(37)는 “시신과 동물 사체에서 나는 악취가 코를 찌르는 처참한 현장에서 인술을 베푸는 한국 한의사들이 존경스럽기만 하다”며 “이스투티(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 음료수라도 대접해야 맘놓는 현지인들의 순박함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은 가는 곳마다 소박하고 토속적인 환영을 받았다. 의료팀 김길섭 원장은 12일 트링코말리 카팔투라이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스메타지타니라는 환자로부터 `이상한’ 메모를 받았다. 메모에는 환자의 이름과 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김 원장은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쓰는가 보다 했는데 그 길이가 긴데다 숫자가 끼어 있는 등 이상해 물어보니 주소를 함께 적어준 것이었다”며 “펜팔하자는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시간 날 때 우리집에 들르라’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의료진도 대부분 이 같은 초대장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특히 팔라토탐 난민촌에서 일부 의료진은 환자의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과 한국 주소 및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왔다. 일부 환자는 취재진들에게까지 자신의 주소를 적어주는 등 정겨운 모습으로 친밀감을 표시했다.
바쁜 일정 탓에 실제로 환자의 초대에 응한 의료진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일단 환자의 집에 의료진이 들어서면 현지인들은 대체로 음료를 대접했다. 키니야 난민촌에서 진료중이던 구자승 한의사는 자칭 주스공장 사장인 중년 남성의 집까지 따라가 파인애플 주스를 얻어 마셨다. 그는 “소변이 급해 환자에게 화장실 위치를 물었더니 손목을 잡고 자신의 집 화장실로 데려가더라”며 “말은 안 통하지만 나름의 성의를 보여주는 이들의 순박함이 참 보기 좋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캐니야딕 지역에 왕진을 나간 이종안 한의사도 한 노인의 집에서 집안 소독 등을 해주고 음료수를 대접받았다. 집 주인은 친히 파파야 등 열대 과일을 갈아 한컵 가득 내놓았다. 그는 “현지에서 음료나 물을 함부로 마시는 것은 금물이지만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며 “시원하게 잘 마셨고 지금까지 아무 이상 없다”고 자랑했다.

봉사단의 통역 업무를 맡은 한국국제협력단 김세민씨(28)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고맙다는 의미로 자신의 집에 초대해 차나 음료 등을 대접하는 풍습이 있다”며 “물자가 풍족하지 못한 탓에 소박한 정성을 보이면서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봉사단이 병원과 난민촌 등으로 이동할 때마다 마주치는 무장 군인들도 의료진의 버스를 보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반겼다. 키니야 난민촌에서는 군인들이 탄산음료수를 사다 의료진에 제공하기도 했다. 당초 반군 출몰과 재난에 따른 위험 등으로 외지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의료진의 지속되는 선행에 감복하게 된 것이다.
# 난민촌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싹을 보다
의료봉사활동을 마치고 16일 오전 귀환한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의 표정에는 자부심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의료진은 활동 기간 중 5000여 명의 환자를 돌보고 인근 초등학교에 학용품 등을 전달했다. 피해 지역에서의 전염병 감염 우려도 이들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이들은 “일하느라 정신 없어 난민촌의 악취를 맡지 못할 정도”로 온 힘을 집중했다. 당초 의료진은 세번째인 스리랑카 봉사활동 실패에 대한 막연한 불안도 느꼈다. 북부 자프나 지역에 나갔던 2003년에는 타밀족 반군의 위협으로 조기 철수했으며, 지난해에는 한 단원이 심장마비로 숨지는 불행이 이어졌던 탓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든 우려를 씻어내고 한방의학과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이번 활동은 한방 사상 최초로 해외에서 응급 구호를 벌였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남짓의 빈국 스리랑카는 이번 해일사태로 5만여 명이 사망하는 등 피해가 막심하다. 의료진이 스리랑카를 택한 이유는 이재민에 대한 의료 서비스가 미흡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희망의 싹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휴가를 반납한 채 타밀족 지역인 북부 일대에서 복구에 여념이 없는 싱할라족 군인들은 국가 통합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어린이들이 흐릿한 촛불 밑에서 공부에 열중하고, 젖은 책을 말리느라 진땀을 흘리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악조건 속에서도 학업에 열중하는 아이들은 스리랑카의 희망임에 분명했다.
기획 / 박연정 기자 글 / 송형국·장관순 기자(경향신문 사회부) 사진 / 김대진(경향신문 사진부)
자원봉사 및 피해자 구호를 위한 단체 정보
*한국 SERVICE FOR PEACE(http://www.sfp.or.kr) 이타주의 정신을 전파해나가는 민간현지구호 단체. 직접 봉사단을 파견해 현장을 돕고 있다. 문의 737-3721
*한국자원봉사협의회(http://www.kcv.or.kr ) 여러 자원봉사단체간의 유대를 강화해 국민들에게 봉사 정신을 고취시키고 나아가 복지 국가 건설 이바지를 목표로 삼는다. 문의 737-6922, 제일은행 279-20-099862(예금주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유니세프 한국위원회(http://www.unicef.or.kr ) 세계적인 빈민 어린이 구호 단체. 아동의 권리 홍보 및 모유 수유 권장, 세계 교육 등의 사업을 통해 어린이 권리를 신장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문의 060-700-0007, 조흥은행 376-03-004006, 국민은행 343-25-0003-316, 우리은행 327-040399-13-101(예금주 xxxxxxx)
*한국월드비전(http://www.worldvision.or.kr/) 세계 최대의 기독교 구호 단체. 전세계 100여 개 국에서 9천만 명을 대상으로 긴급구호사업, 지역개발사업, 옹호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우리은행 143-059362-13-030 (예금주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
*대한 적십자사(http://www.redcross.or.kr)사랑과 봉사 정신에 입각하여, 의료활동, 복지활동, 혈액산업, 북한돕기산업 등을 펼치고 있는 사회봉사단체. 문의 3705-3710~8, 우리은행 108-05-002144, 농협 386-01-016915(예금주 대한적십자사)
*세계청년봉사단(http://www.kopion.or.kr) 21세기를 이끌어갈 젊은이, 중장년층 전문가, 퇴직자 및 일반인들을 세계 각국의 NGO 및 비영리기관에 국제 자원봉사자로 파견, 지구촌 이웃 사랑과 봉사 정신을 실천할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민간기관. 제일은행 279-10-014347(예금주 (사)세계청년봉사단)
*한국제이티에스(http://www.jts.or.kr/kor) 1993년 인도 캘커타 메디컬센터에서부터 시작한 JTS. 인도, 아프가니스탄, 북한, 그외 아시아의 빈민 지역에서 기아와 질병, 문맹을 퇴치하는 활동을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다. 국민은행 086-01-0339-246 (예금주 (사)한국제이티에스)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http://www.kfhi.or.kr) 가난과 굶주림에 고통받는 나라들의 실상을 알리고 기아봉사단 파견, 긴급구호 및 개발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민은행 469301-01-064885(예금주 기아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