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해변과 크고 작은 섬들, 그리고 정글로 뒤덮인 산악 지대와 휴양지가 공존하는 곳. 말레이시아.
이곳은 서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 섬이 있는 동말레이시아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섬 보르네오가 유명한데 이 섬의 북서 해안을 따라 형성된 사라와크주에 이반족이 살고 있다. 호전적인 결혼 풍습을 갖고 있는 원주민 이반족과 오늘날 말레이시아인의 결혼풍습을 함께 알아보자.
예복 대신 투구와 칼을 차고 입장하는 신랑
사와라크의 이반(iban)족은 예부터 전쟁에 참가하여 사람을 죽이고,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던 호전적인 종족이다. 이반족의 호전성의 경우 과거에는 인두사냥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들은 특히 땅과 재산을 물려받는 것보다 성취 자체를 중요시 여겨 목숨을 불사하고 상대방을 죽이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이반족의 옛 가옥을 살펴보면 이들이 사람을 사냥하고 해골을 보관해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결혼 풍습에서도 그 호전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얼핏 보면 결혼식인지 전쟁 출사를 준비하는 의식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
신랑은 조개껍질 등으로 만든 갑옷 상의를 입고 머리에는 투구를 쓰며, 옆구리에 칼을 차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온몸에 파란 잉크로 문신을 한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입장한다. 신부는 방울 장식으로 치장된 상의와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금빛으로 화려하게 만든 관을 쓴다. 신랑의 들러리들이 북과 징을 두드리며 앞장서 나온 후 신랑신부가 부모들과 함께 그 뒤를 따르면 곧 오색으로 치장한 신부의 들러리들이 나온다.
식이 시작되면 신랑신부가 하객을 향해 있는 단상의 위에 앉고 들러리 중의 한 사람이 신랑신부 머리 위에서 산 닭을 휘돌리며 주문을 외운다. 바로 여기서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산 닭의 목을 친 후 피를 신랑신부의 이마에 찍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말레이시아 사라와크의 이반족 전통혼례식 모습이다. 게다가 목을 친 닭의 피를 신랑신부와 함께 마신 후 화려한 피로연을 한다. 보르네오 섬의 사라와크는 말레이시아와는 또다른 그들만의 독특한 결혼 풍습을 갖고 있다.
결혼 학교에서 정규 교육 받아야 혼인 인정
오늘날 말레이시아 결혼 풍습은 형식적으로는 회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문화적으로는 인도의 영향을 받아 남녀 모두에게 엄격한 규율과 책임을 준다. 정혼 후 남자 쪽에서 파혼을 요구할 경우 여자 쪽은 순순히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여자 쪽에서 정혼을 번복할 경우 받은 예물의 몇 배를 보상해야 한다.
결혼식 풍습의 특징은 매우 다양한 축하행사들이 식전에 치러진다는 점이다. 신랑은 준비한 반지와 보석을 가지고 약혼식에 참석하게 되는데 약혼이 이루어지면 정부가 인정하는 회교지도자 앞에서 공식적인 혼인 선서를 하게 된다. 이때 남자가 첫 번째 결혼이면 이를 증명할 증인이 동석해야 하며 두 번째 부인 이상을 얻을 경우에는 현재의 부인 혹은 부인들의 결혼 동의서가 첨가돼야 한다. 남자가 4명의 부인을 얻을 수 있는 일부다처제의 부산물이다. 약혼식이 끝나면 신랑과 신부는 정부가 운영하는 결혼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2~6시간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수료증을 받아야 결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정식 결혼식의 경우 예전에는 결혼식 전에 1차로 잔치를 했으나 현재는 신랑신부의 신혼집에서 약식 절차로 끝이 나고 부모나 친지들이 ‘조겟’이라는 전통 춤을 추거나 ‘컴팽’이라는 북을 두드리며 두 사람의 결혼식을 축하해준다. 하이라이트는 신랑신부가 들러리의 시중을 받으며 입장해 화려하게 장식된 단상 위에 마련된 의자에 자릴 잡고 앉아 축하 행사를 즐기는 것. 이때 하객들이 신랑신부의 손바닥에 꽃가루를 뿌려주고 어깨 위에는 쌀을 뿌린다. 쌀을 뿌리는 의미는 부부가 평생 배불리 잘 먹고 잘 살라는 뜻이다.
글 / 이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