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끝자락에 서서 비경을 보다 ‘氣의 고장 영암’

여행스케치

한반도 끝자락에 서서 비경을 보다 ‘氣의 고장 영암’

영암은 붉다. 월출산의 암반 주석질인 홍색 화강암과 길가의 황토, 일정한 해풍과 일조량에서만 자라는 그곳 특산품, 무화과까지 모두 붉다. Be the reds! 우리가 월드컵에서 경험했듯이 붉은색은 에너지 창고다. 한반도 끝자락, 전라남도 영암에서 샘솟는 氣를 흠뻑 받았다.

첫번째 이야기
월출산, 불꽃같은 산이여!
봄이 오고 있다. 멈칫거리긴 해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온다. 먼 산에 남아 있는 희끗한 눈밭에도, 깊은 산 계곡의 얼음장 밑에도 봄이 오고 있다. 그리고 여기 월출산은 봄을 가득 담아내고 있었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 산기슭에서 ‘영암아리랑’ 노래비를 지나 작은 오솔길로 접어든다. 숲을 지나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 대숲에 스치는 바람의 청량감과 진달래, 동백, 산수유 등 봄꽃의 향기에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 된다.

좀 걷다 보니 몇 갈래 길이 나와 잠시 갈등한다. 하나는 구름다리를 지나 천황봉으로 가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바람폭포를 지나 천황봉으로 가는 길이다. 아무래도 사진으로만 봐왔던 월출산의 구름다리가 궁금해 그쪽 길로 접어든다.

자, 이제 오름의 시간. 오르고 또 오른다. 비포장 오르막길, 나무 계단, 철계단…. 등줄기에 땀이 배어나기 시작하면서 숨이 거칠어진다. 이쯤 되면 무수한 잡념이 점점 없어지며 ‘오르겠다’는 일념만 남는다. 존재하는 것은 거친 호흡 그리고 배낭 속 찰랑거리는 물뿐이다. 삐죽한 산봉우리들과 영겁의 세월 동안 숨 쉬고 있는 암석에서 강한 기가 느껴진다.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으로 기가 쏙쏙 배어드는 느낌이다. 이래서 산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월출산을 찾았나 보다.

거친 숨을 몰아쉬니 어느덧 높이 120m, 길이 52m인 구름다리 앞이다. 한 발 내딛어보니 봄바람에 바람 난 처녀 치맛자락처럼 살랑살랑 흔들린다. 구름다리를 건너며 보는 바위 봉우리와 푸른 소나무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수석 위에 일부러 꾸민 분재 같아 보인다. 북쪽 방향의 장군봉과 작은 바위 봉우리들은 불꽃이 타오르듯 서 있고 저 멀리 바람폭포의 모습도 보인다. 폭포 위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아주 운치 있다. 마음속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월출산의 등반 코스는 다양하나 산의 진면목을 보려면 천황사지~도갑사까지 5시간 코스를 선택해야 한다.

사자봉을 휘감아 돈 뒤 평탄한 길에서 구정봉을 바라본다. 경포대 방향으로 뻗어 내린 능선과 계곡,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포근해 보인다. 산 안에 이런 부드러운 풍경이 있다는 게 놀랍다. ‘불꽃 월출산’은 흡사 겉으로 큰소리치지만 내면에는 푸근함과 의리가 숨겨져 있는 전라도 남자와 많이 닮아 있다.

등반 코스 천황사지­구름다리­사자봉­천황봉­구정봉­억새밭­도갑사 약 8.5km 5시간

두번째 이야기
영암의 볼거리 이모저모
구림마을 구림마을은2백년 전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옛마을이다. 키 작은 황토 담벼락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평온이 찾아든다. 문득 전생의 기억이 떠오를 것 같은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정취뿐만이 아니라 도선 국사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 버려졌다는 국사암을 비롯해 5백년 전통의 구림마을 대동계가 열리던 집회 장소 회사정 등 역사 유물도 함께 볼 수 있다. 전통 민박 체험도 가능해 이제는 맛보기 힘든 따뜻한 아랫목의 정취도 느껴볼 수 있다.

영산강 낙조 사진 전시회에 가면 빠지지 않는 풍경이 있다. 영산강 하구의 낙조다. 어스름 푸른 물빛과 황금빛 낙조가 조화를 이뤄 카메라의 셔터만 누르면 무조건 작품 사진이 된다. 분위기가 고즈넉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영산강은 담양에서 발원해 광주, 나주 그리고 영암을 지나 황해로 흘러든다.

도기문화센터 영암은 황토가 유명하다. 길바닥도 황토 천지다. 그냥 길에서 흙을 퍼 담아 구우면 빛 좋은 질그릇이 될 듯하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영암은 질그릇도 유명하다. 구림중학교인 폐교에 전시실과 공방, 가마터를 꾸며 도기 문화센터를 만들었다. 전통 도기 감상은 물론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장도 운영하고 있다.

세번째 이야기
왕인 속으로! 벚꽃 속으로! 왕인축제
일본 아스카 문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왕인. 일본에서는 왕인을 ‘학문의 신’으로 받들고 있다. 입시 철이나 정월 초하루가 되면 그를 모셔놓은 신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매년 11월에 ‘왕인 묘전제’라는 축제가 5일간 간사이 지방에서 성대하게 열리기도 한다. 이렇듯 일본에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인 왕인의 고향이 바로 영암이다. 그는 서기 405년, 일본 천황의 초청으로 천자문 1권과 논어 10권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태자의 스승으로 일본인들에게 논어와 천자문을 전수했으며 아스카 문화의 시조가 되었다.

영암에는 왕인 박사의 탄생지 ‘성기동’과 공부하던 ‘책굴’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또한 4월 8~11일까지 왕인축제가 열리는데 특히 올해는 10주년 행사로 그 규모가 더욱 확대되어 4백여 명의 일본 관광객이 전세기로 이곳 영암을 찾는다.

축제 중 가장 화려한 볼거리는 ‘왕인 박사 일본 가오’ 퍼레이드이다. 왕인공원 주무대에서 시작한 행렬은 ‘왕인로’와 ‘왕인 사당’을 거쳐 박사가 일본으로 떠나며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봤다는 ‘돌정고개’를 지나 ‘상대포 항구’까지 진행한다. 참가 인원이 1백82명이나 되는 대형 퍼레이드다. 또한 왕인 사당에서 펼치는 추모제인 왕인 박사 춘향대제, 왕인 1천 등 행사, 우리 종이 공예전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이 기간에 영암을 찾는 사람들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축제현장에서 알차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문의 영암군 문화관광과 061-470-2350

영암군 찾아가는 길
영암은 전라남도 서남부에 자리하고 있다. 나주평야를 가로지른 영산강이 영암의 서쪽 경계를 이루며 서남해로 흐른다. 목포에서 국도 2호선으로 빠져 지방도 819호로 갈아타면 도로 가득 벚꽃으로 뒤덮인 영암 벚꽃터널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출발(5시간 소요)
서울­호남고속도로­ 광산 IC­국도 13호선­ 영암
서울­서해안고속도로­목포 IC­ 국도 2호선­영암

광주 출발(1시간 20분 소요)
광주­나주­국도 13호선­영산포­ 신북­영암

고속철도
서울­목포(3시간 소요), 서울­나주, 광주(2시간 30분 소요)

고속버스
서울­영암(5시간 소요)

영암의 이모저모
바다와 육지의 만남 갈낙탕
맛도 좋고 몸에도 좋아 영암의 최고 별미로 뽑히는 갈낙탕. 특히 영암 낙지는 빛깔이 희고 깨끗한데 싱싱한 영암 낙지에 갈비를 넣어 끓여 깔끔하고 시원하다. 반찬도 18가지의 젓갈로 한 상 푸짐하게 차려져 여행객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가격 1인분 1만3천원. 청하식당(061-473-6993)

고가(古家)에서의 하룻밤, 안용당
안용당은 3백40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가를 변형해 만든 민박집이다. 따끈한 아랫목에서 잠결에 듣는 풍경 소리와 대숲 바람소리가 운치를 더한다.
요금 2인 기준 1박 3만원(주말 표준), 1인에 5천원씩 추가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박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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