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나라 이탈리아. 그곳에 가면 누구나 사랑에 빠지고 입만 열면 모두 사랑의 시를 읊을 것 같다. 그러나 고대 이탈리아에서는 혼인을 가문 간의 계약 관계로 여겼으며 오늘날의 계약서를 작성해 이해관계를 따졌다고 한다. 또 요즘 이탈리아 여성들은 사랑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우선해 배우자를 고른다는 통계 결과가 나왔다. 게다가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여성들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고대 이탈리아
‘혼인은 가문과 맺은 계약, 지참금 펀드 성행’
18세기 일반적인 귀족 가문 여자들은 수도원에서 나오면서 곧바로 부모가 선택한 남성과 혼인했다. 남자는 일단 혼인이 결정되면 미래의 신부가 사는 집 창문에서 사랑의 인사를 했다. 당시 혼인에 의한 두 가문의 인연은 집안에서 벌어지는 성대한 피로연으로 기념하는 것이 보통이다. 저택의 가장 큰 거실에서는 실크, 칼 그리고 보석과 같은 물품을 공개해 혼인의 성대함을 자축했다.
현대 이탈리아어에서는 혼인을 하다라는 의미로 ‘contrare il matrimonio’를 사용하는데 즉, 혼인을 계약한다는 뜻이다. 이는 혼인을 비즈니스 계약 체결로 보던 중세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지참금은 혼인 계약에 있어 가장 민감한 부분인 듯하다. 지참금은 보통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의 아버지에게 직접 전달한다. 이때 시아버지는 지참금을 자식을 위해 사용하고 헛되이 탕진하지 않을 것은 물론 며느리가 사망하면 반환하겠다는 것을 문서로 약속했다. 즉 이탈리아에서 혼인은 개인들의 애정 관계가 아닌 두 가문의 이해관계로 바라보았으며 가문 간의 계약 관계인 것이다.
만약 지참금 없이 딸을 혼인시키는 것은 설사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치욕적인 불명예를 얻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적지 않은 지참금을 마련하는 일은 일부 부유한 권력계층을 제외하고는 결코 쉽지 않았다. 이를 위해 이탈리아, 특히 지방 자치도시들의 정부는 지참금 펀드를 운영했다. 아버지가 딸의 출생과 거의 동시에 혼인 시기를 예상하여 일정 기간 동안 적금 형태로 목돈을 모을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여러 가문들은 딸들의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정한 금액의 돈을 정기적으로 저축했다고 한다.
권력 가문의 집안이 아닌 하녀 출신의 여성들에게도 혼인을 위해 지참금이 필요했다. 이때를 대비해 고용주가 고용인 여자의 혼인 날에 품삯의 전액 지급을 약조하는 일종의 노동 지참금 계약을 맺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결혼의 지참금 제도가 지금의 금융기관 발전에 기여했을지도 모르겠다.
현대 이탈리아
‘결혼은 사랑이 아닌 편의를 위한 선택이다’
지난해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 부부 네 쌍 중 한 쌍이 별거를 하며 아홉 쌍 중 한 쌍이 이혼을 한다고 한다. 이탈리아 국민의 74%가 이혼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이혼은 배우자의 사망을 제외한다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흑의 터널을 지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법적으로 이혼을 신청하는 데 적어도 3년의 별거 기간이 의무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빨라도 3년 이상을 기다려야 이혼이 가능한 것. 가톨릭교회가 전파되면서 ‘신께서 부과한 것은 사람이 분리할 수 없다’는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혼인 관계의 해체불가원칙을 주장하게 되었다. 물론 중세와 근대를 거쳐 지금까지도 관념적으로 뿌리 깊게 내려온 것이다.
또 오늘날 혼인하지 않은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있다. 더 이상 혼인만이 사랑을 지켜내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욱 이탈리아뿐 아니라 현대 여성들은 개인적인 계획이나 만족을 위해 가족의 영역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추세가 아닌가. 결혼을 한 여성들조차 사랑이 아닌 개인적인 안위를 위해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 이탈리아 언론사가 조사한 실제 결혼을 하는 여성들의 혼인 이유를 살펴보자. 응답자의 27%는 혼인의 주요 동기가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이미 과거에도 혼인이 가족이란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비교적 용이한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혼자 남는 것이 싫어서” 혼인한다는 응답은 전체 19%를 차지했다. 그리고 16%는 “자식을 갖기 위해서” 12%는 “생계를 위해서” 나머지 8%는 “혼인한 친구들의 그룹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과거 결혼하는 첫 번째 이유로 뽑던 ‘사랑’은 이제 더 이상 없는 것인가? 전체 응답자의 14%만이 “혼인은 사랑의 자연스런 결과”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이런 조사 결과는 이탈리아가 인생에 사랑이 전부라고 노래하던 시인들의 조국이었다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든다.
정리 / 이유진 기자 자료발췌 / 세계의 혼인문화(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