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도 꿈을 꾸는 듯한 호주의 수평선&해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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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도 꿈을 꾸는 듯한 호주의 수평선&해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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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는 하나의 거대한 대륙이다. 한국인들은 시드니와 골드코스트에 많이 몰리지만 호주의 관광자원은 무궁하다. 몇 해 전부터 주목받은 곳이 바로 멜버른과 빅토리아 주. 빅토리아 주의 주도 멜버른은 호주 남부 관광의 거점 도시로 유럽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고풍스럽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라는 그레이트 오션로드, 펭귄 퍼레이드로 유명한 필립 섬 등 볼거리도 많다.

이름이 아깝지 않은 해안도로 ‘그레이트 오션로드’
해안도로에 ‘그레이트’란 수식어가 붙은 곳은 아마도 호주의 그레이트 오션로드밖에 없을 것이다. 흔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란 별칭이 붙은 오션로드는 기점과 종점을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보통 와남불에서 토케이까지 400km 안팎을 잇는 해안길. 깎아지른 절벽에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박혀 있고, 파도를 걸러주는 오목한 만(灣)에는 항구도시가 들어섰다.

그레이트 오션로드가 시작되는 도시인 와남불. 해안도로 주변에서 가장 큰 도시지만 고층건물은 고사하고 5~6층짜리 빌딩도 보기 힘들다. 멋을 내지 않은 옅은 베이지색 집들이 오밀조밀 들어선 주택가를 지나면 플래그스태프 언덕. 19세기 등대와 새 등대가 나란히 서 있는 언덕에서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지금은 가족 여행객이나 연인들이 많이 찾는 아름다운 공원이지만 예전엔 바다가 거칠기로 유명했다. 안개, 광풍과 함께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악명 높은 해안이었던 것. 곧장 망망대해와 마주하고 있는데다 절벽으로 이뤄진 와남불 앞바다에는 29척의 큰 배가 침몰해 해저에 수장되어 있다. 주변 해안까지 합하면 약 1백60여 척의 배가 물에 잠겼다. 그래서 이름도 난파선해안(shipwreck coast)이다.

침몰한 범선에서 발견한 선원의 일기장에는 ‘지옥 같은 적도에서 벗어나 추운 남반구의 바다까지 항해했다. 마치 바늘귀에 실을 집어넣는 것같이 힘겹고 위험한 항해였다’고 당시의 어려웠던 상황이 적혀 있었다. 당시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은 막연하게 꿈을 찾아 미지의 대륙으로 떠날 때의 범선 여행을 ‘노예선에 탄 아프리카인 같은 심정’이라고 했다. 최근엔 명나라 때 중국 정화가 이끄는 거대한 정크선이 이곳에서 좌초됐다는 증거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바다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고래 때문이었다. 와남불 앞바다는 참고래가 새끼를 낳는 곳이다. 지금도 6월부터 10월 사이에는 고래를 볼 수 있다. 19세기 중반 포경선들이 늘어나면서 마을도 형성됐다. 1980년 포경이 완전히 금지될 때까지 와남불은 고래항구로 이름을 떨쳤다. 와남불에는 항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이 있다.

바다가 거칠고 험할수록 오히려 경치는 좋은 법이다. 와남불에서 1시간쯤 달리면 ‘베이 오브 아일랜드’에 닿는다. 여기서부터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웅장한 제 모습을 드러낸다. 베이 오브 아일랜드는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크고 작은 섬들이 요트처럼 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지형이 만들어진 것은 2천만 년 전. 부석부석한 바위로 이뤄진 해안은 거센 파도에 깎여 굴이 파이고, 지반이 약한 곳이 무너져 육지와 분리되면서 섬이 됐다. 지금도 침식작용이 계속되고 있어 1년에 13cm 정도씩 해안이 깎여나간다. 베이 오브 아일랜드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런던브리지’가 바로 이런 지형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2개의 아치 모양으로 이어져 있던 런던브리지는 92년 한쪽이 붕괴돼 섬처럼 떨어져버렸다(당시 이곳에서 아내와 남편 몰래 불륜 여행을 즐기던 호주인 커플이 헬기로 구조됐는데 이 장면이 TV로 생방송되면서 두 사람의 불륜이 발각됐다고 한다).

로카드 고지에서는 난파선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로카드는 1878년 6월 영국을 떠나 3개월의 항해 끝에 이곳에서 난파된 범선의 이름. 선원과 승무원 52명을 태운 로카드호는 악천후를 만나 머튼버드 아일랜드의 절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생존자는 단 두 명. 선원 톰 피어스와 에바 카미클이란 18세의 숙녀였다. 파도에 쓸려 다행히 협곡 안의 해안으로 밀려온 선원 톰 피어스가 살려달라는 소리를 듣고 에바를 구했다. 두 사람은 동굴에 피신해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구조됐다.

여행자들은 은근히 두 사람의 운명적인 러브스토리를 기대하지만 이후 단 한 차례도 만나지 못했다. 가족과 함께 떠나온 에바 카미클은 아일랜드로 돌아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고 톰은 선장이 됐다고 한다. 그래도 여행자들은 모래사장에 사랑하는 연인의 이름을 써놓곤 한다.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하이라이트는 포트 캠벨 국립공원의 12사도상이다. 12사도상이란 해안 절벽을 따라 섬처럼 떠 있는 바위들이 예수의 12명 제자를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베드로, 바울 등 사도의 이름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바위도 12개가 넘지만 어쨌든 눈부시게 아름답다.

안내판에는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현실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레이트 오션로드의 상징이 된 12사도상은 호주 관광 포스터에도 자주 등장한다.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은 더 장관이다. 종점인 토케이는 서핑의 명소.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슬픈 항해의 기록과 함께 곳곳마다 멋진 해변이 펼쳐지는 그레이트 오션로드. 그레이트란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길임에는 틀림없다.

동물 주인처럼 살고 있는 ‘필립 섬’
빅토리아 주의 주도 멜버른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필립 섬은 호주에서도 유명한 생태 여행지다. 펭귄들의 서식지가 있고, 코알라를 연구하는 코알라센터도 있다. 필립 섬은 제주도와 비슷하게 생겼다. 검은 현무암으로 둘러싸인 해변과 모래사장이 적당하게 섞여 있다. 크기는 제주도보다 작다. 둘레가 140km로 한나절이면 돌아볼 수 있다. 산레모라는 해안과 연륙교로 연결돼 있는 필립 섬은 낮에는 코알라센터를 둘러보고 밤에는 펭귄을 돌아보는 것으로 투어 일정을 짠다. 펭귄은 밤에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펭귄 퍼레이드다. 필립 섬 펭귄은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페어리 펭귄. 키는 30cm 안팎이다. 매일 밤 해가 지고 나면 바다에 나간 펭귄들이 둥지로 돌아오는데 이를 보기 위해서 매일 수백 명의 관광객이 전세계에서 몰려든다.

펭귄 퍼레이드가 시작되는 해변은 관광객을 위해 스탠드까지 마련해놓았다. 저물 녘이면 관광객이 스탠드를 가득 메운다. 해가 저물고 별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할 무렵, 펭귄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펭귄은 파도가 닿는 해변 가장자리에서 두리번거리며 동료들을 기다린다. 여우나 물새 같은 천적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다. 7~8마리 이상의 펭귄이 모이면 마치 경보를 하듯 아장아장 걸으며 모래해변으로 올라선다. 마치 걸음마를 처음 시작한 돌배기 아이처럼 걷는 펭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관람객들이 앉아 있는 시멘트 스탠드를 피해 정확하게 모래해변 사구로 숨어드는 펭귄의 본능도 놀랍다. 동료를 기다리다 지쳐 단독으로 모래밭을 빠져나와 걷는 펭귄들도 보인다. 이렇게 하룻밤에 볼 수 있는 펭귄은 적으면 2백 마리. 가장 많았던 때는 1천6백 마리까지 관찰됐다고 한다. 펭귄은 천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해가 뜨기 전에 바다에 나가고, 해가 진 뒤에 움직인다. 펭귄 퍼레이드는 50분 정도 진행된다.

펭귄이 사는 집은 모래해변의 사구로 해변으로 걸어가는 펭귄을 볼 수 있도록 나무로 된 관찰로를 마련해놓았다. 먼저 뭍에 올라 짝을 찾으며 소리를 내는 수컷이나 암컷의 모습은 애처롭고, 나란히 서서 서로의 털을 어루만지는 부부 펭귄의 모습은 아름답고 귀엽다. 관람객들에게는 야생에서 살아가는 펭귄의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감동이다. 펭귄의 집 위에 나무 데크로 산책로를 만들어놓아 관광객들이 펭귄의 모습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야생 상태의 펭귄을 보려면 매너가 필요하다. 수백 명의 관람객이 몰려 있지만 누구 하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밤에만 활동하는 펭귄에게 갑작스럽게 플래시를 터뜨리면 눈이 멀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립 섬은 바다표범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이 섬의 남단에 있는 바위지대에는 수천 마리의 바다표범이 살고 있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해안을 따라 놓인 산책로에서 햇볕을 쬐는 바다표범을 볼 수 있다.

코알라센터에서는 호주의 마스코트 중 하나인 코알라의 생태를 엿볼 수 있다. 코알라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구역을 나눠놓고, 나무로 만든 다리를 이어 관찰로를 마련했다. 여행자들이 만나는 코알라는 대부분 잠에 곯아떨어져 있다. 하루 20시간 이상 자는 코알라는 유일하게 호주에만 사는 동물이다. 잠이 많은 것은 유클립스라는 독성이 강한 나뭇잎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잎 속에 알코올 성분이 많아 취해서 잠을 잔다. 유클립스의 독성 때문에 다른 동물들이 공격하는 일도 없다. 이 밖에 호주에만 사는 카뮤는 영락없는 타조 모양을 하고 있다.

관람객들이 내는 입장료 수입은 야생동물 보호에 사용한다. 필립 아일랜드 공원은 관공서가 아닌 주민자치위원회가 관리한다. 필립 섬은 여전히 동물들이 주인처럼 살고 있는 땅이다.

숲으로 이루어진 도시 ‘멜버른’
멜버른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블룸버그 통신이, 2004년에는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젠트 유니트사가 외국인들이 장기간 거주하기에 가장 좋은 곳을 조사한 결과 전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됐다.

멜버른은 도시 전체가 숲으로 이뤄져 있고, 어디서나 나무와 꽃으로 가득한 공원을 만날 수 있다. 대도시지만 택지나 상업지에 대한 공원·녹지 비율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전원적이다. 멜버른을 가든 시티(Garden City)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호주에서 공연장과 극장, 콘서트홀이 가장 많아 ‘문화의 도시’‘미식가의 도시’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어 ‘호주 속의 유럽’으로 통한다.

멜버른 여행은 당연히 공원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현충원 같은 국가유공자 기념관을 끼고 있는 로열 보태니컬 가든을 비롯해 피츠로이 가든, 퀸 빅토리아 가든 등 어디서나 공원을 만날 수 있다. 로열 보태니컬 가든은 10만8천 평으로 멜버른에서 가장 크다. 한 번 돌아보는 데 한나절이 걸릴 정도로 드넓다. 공원에서 가장 높은 언덕배기에 있는 기념관은 멜버른 시내의 중심가에서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한국전 참전, 베트남전 참전 등 참전용사들의 기록과 전시물이 보존돼 있다.

피츠로이 가든은 쿡 선장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대륙을 발견한 쿡 선장의 집은 원래 영국의 그레이트 에이톤에 있었지만 1934년 빅토리아 탄생 1백 주년을 기념해 피츠로이로 옮겨왔다. 돌로 된 생가 안에는 짚을 넣어 만든 매트리스 등 옛날 건물과 도구들을 그대로 보존·복원해놓았다. 주변에 자그마한 식물원이 있고 아름드리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휴식하기 좋다. 멜버른 사람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멜버른 박물관은 2000년 10월 2억6천만 달러를 들여 완공했다. 남반구에서는 가장 큰 박물관으로 11개 전시장에 공룡화석 회화 의학기술과 인체의 모습전, 열대우림 갤러리 등을 갖추고 있다.

플린더 역 맞은편에 있는 페더레이션 광장(사진 왼쪽)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미한 건물이 눈길을 끈다. 프랑스의 퐁피두센터와 흡사하다. 플린더 역사 뒤편에는 야라 강이 흐르는데 이곳 바에서 맥주 한잔 들이키는 것도 좋다. 강변의 사우스뱅크 주변은 밤에 가면 좋은 곳. 유람선이 운항하며 거리에 명품점과 카페가 늘어서 있다. 우리로 따지면 강남의 압구정동쯤 되는 이곳에는 거리의 악사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거나 마술쇼, 차력쇼 등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진다.

멜버른에서 가까운 발라랏과 단데농도 관광객이 많다. 발라랏의 소버린힐은 호주 금광시대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일종의 민속촌이다. 발라랏은 1850년 금을 캐기위해 몰려든 광부들이 들어오면서 마을이 생성됐다. 소버린힐에 들어가면 관광객들은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양장점, 가게, 선술집, 교회 등을 재현해놓았다. 관광객들은 시냇물에서 사금도 직접 채취할 수 있지만 양은 많지 않고 기념품 정도로 가져갈 만하다. 소버린힐 인근에 발라랏 야생동물공원이 있는데 거대한 나무들 사이로 길이 뚫려 있다.

멜버른에서 1시간 거리의 단데농도 옛날 호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백 년이 넘는 증기기관차 퍼핑밸리가 명물. 관광객 대부분이 창밖으로 다리를 내놓은 채 창에 달라붙어 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행·수·첩

서울에서 직항편은 없고 시드니나 홍콩을 거쳐 가는 것이 일반적.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매일 1편 이상 시드니행 항공편을 운항한다. 캐세이퍼시픽은 홍콩을 경유, 멜버른에 들어간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거리는 22km, 승용차로 30분 정도 걸린다. 택시는 공항에서 시내까지 45호주달러 정도. 시내에서는 무료 트램(전차)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자주색 트램은 도심순환선으로 무료로 운행된다. 문의 호주 빅토리아관광청 한국사무소 02-752-4138

호주는 기후가 한국과 반대다. 한국의 봄은 호주의 가을. 낮에는 25℃까지도 올라가지만 밤에는 15℃까지 떨어진다. 보통 아침 저녁은 흐리고 추우며 낮부터 하늘이 트이는 경우가 많다. 더위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은 2~3시간에 불과하다. 빅토리아 주는 시드니보다 2℃ 이상 기온이 낮고, 필립 섬은 빅토리아 주도 멜버른보다 1~2℃ 더 낮다. 그래서 두꺼운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필립 섬은 밤에 펭귄을 봐야 하기 때문에 더 춥다. 윈드 스토퍼가 가장 적당하다. 펭귄 서식지는 낮에는 들어갈 수 없고 펭귄이 들어오기 1시간 전인 오후 7~8시 무렵부터 입장이 허용된다.

글·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매거진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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