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날카로운 교육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유대인. 이들에게 가정이란 민족적인 정체성을 보존하는 살아 있는 교육의 장소다. 동시에 가정에서 거행되는 결혼식도 과거의 아픔과 고통을 되새기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축제이자 교육의 장이다. 유대인들은 결혼식을 통해 화목한 가정과 나아가 민족이 한마음이 되는 비결을 수천 년 동안 유지해왔다.
기쁨의 절정에서 금식하는 신랑, 신부
결혼식은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행복한 순간이다. 그러나 특히 유대인의 결혼식은 신랑과 신부에게 가장 행복하고 신성하게 여겨진다. 이 날은 결혼의 의미뿐만 아니라 새롭게 가정을 시작하는 부부에게 ‘욤키푸르’라고 부르는 대속죄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과거의 모든 잘못이 용서되고 새롭게 완전한 영혼으로 신랑과 신부가 하나가 되는 날인 것이다. 이러한 혼례식을 위해 일반적으로 신랑과 신부는 혼례식 전부터 끝날 때까지 금식을 한다. 그들은 혼례식 전날 저녁부터 금식을 하며 그들이 성장해오면서 행한 모든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설렘 속에서 결혼을 준비한다. 일반적으로 유대인의 혼례식은 늦은 오후에 행해지는데 이는 그들의 금식이 해지는 시각에 끝나기 때문이다.
평상복과 다름없는 결혼식 의상
유대인의 결혼식은 대체로 검소하다. 의상도 단촐하며 천막식 결혼식장인 후파 아래 어떠한 장식품도 착용하지 않는다. 신랑은 흰 남방과 신부는 수수한 하얀 드레스를 입는다. 후파 기둥을 잡는 신랑의 들러리도 평소의 남방 차림이다. 그것은 신랑신부의 혼인 배경이 그 인간됨일 뿐이지 그들이 물질적인 소유에 의한 관계가 아니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또 신부가 쓰는 면사포에도 일맥상통하는 뜻이 있다. 신부에게 베일의 의미는 겸손함의 상징이며 그녀의 외모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아닌가에 따라 결혼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부의 영혼은 보이는 외적인 면을 떠나 가장 아름답고 순결함을 상징한다.
유리잔 깨뜨리기
혼례식이 끝남과 동시에 유리잔을 바닥에 놓고 신랑은 발로 밟아 이를 깨트린다. 이 습관은 그들의 ‘가정교육 지침서’인 탈무드 이야기에서 기인한 것으로 유랑에 대한 슬픔을 깨뜨리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또 예루살렘 성전의 붕괴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깨어진 유리잔의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듯 혼인한 부부에게 그들의 혼인도 이젠 되돌릴 수 없는 영원한 것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유리잔을 깰 때 악기 연주팀은 흥겨운 음악을 손님들과 함께 연주한다. 참석한 하객들은 신랑신부를 향해 ‘마잘톱!’(축복을 빈다는 뜻)이라 소리치며 춤추며 축하해준다. 때로는 혼례식에서 신랑이 유리잔을 깨뜨리다 부상당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굳이 그러한 의식을 행하는 이유는 결혼식에서도 성전 파괴의 슬픔을 기억하자는 의도이다.
천막에서 결혼식? 후파
유대인의 결혼식에서 빠질 수 없는 시설이 후파다. 마당이나 회관 등에 사방 2미터의 붉은 융단 가장자리를 수시로 엮어 내리고 네 귀퉁이를 장대에 고정시킨다. 요즈음에는 신랑의 친구들이 장대를 붙잡기도 한다. 이것을 ‘후파’라고 한다. 아들을 낳으면 삼나무, 딸을 낳으면 소나무를 심었는데 이 나무를 베어서 천막을 받치는 장대를 만들기도 했다. 오늘날 화려한 웨딩홀이나 교회를 두고 불안하기만한 조립식 천막 같은 곳에서의 결혼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후파는 밀폐된 장소가 아니라 사방으로 열려 있다. 즉, 부부가 함께 가정을 세우나 언제든 어떤 풍파에 노출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내와 남편이 든든한 기둥이 되어 세우는 후파는 바람의 요동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풍차의 날개처럼 바람을 따라 돌아가게 된다. 인생의 사나운 바람을 삶의 에너지로 바꾸라는 의미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가장 기쁠 때 가정 고통스럽고 어려웠던 과거의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는다. 가장 기쁜 결혼식에 금식을 하는 그들의 관습에서 우리는 인생 최고 절정의 순간에 최악의 순간을 잊지 않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유리잔을 깨는 과정을 통해 유대인 결혼식은 신랑과 신부가 한 가정을 이루는 단순한 결혼식의 차원에서 민족적인 차원으로까지 그 의미가 승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깨어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유대인 가정의 힘이다. 2천년간의 유랑을 마치고 이스라엘 땅에 다시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저력, 그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유대인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갈수록 깨어지는 가정이 많은 이때 유대인들의 이러한 힘과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정리 / 이유진 기자 일러스트/정세은 자료발췌 / 세계의 혼인문화(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