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의 무대’ 홋카이도의  비에이&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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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의 무대’ 홋카이도의 비에이&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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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雪國)의 이미지로만 떠올랐던 홋카이도의 여름 풍경은 상상 그 이상이다. 특히 비에이와 후라노는 일본인들조차 ‘여기가 일본인가?’라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이색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겨울 여행지로 손꼽히는 홋카이도의 여름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길 떠나는 길]‘동화 속의 무대’ 홋카이도의  비에이&후라노

[길 떠나는 길]‘동화 속의 무대’ 홋카이도의 비에이&후라노

일본의 풍경사진 작가 중에 마에다 신조(前田眞三)란 사람이 있다. 홋카이도의 아름다움에 반해 비에이 지역에 머물며 사진을 찍었던 사람으로 일본 풍경사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거장이다. 1998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일본 사진 잡지 「풍경사진」은 1년 남짓 그의 작품을 실었다. 그가 반했던 홋카이도의 후라노와 비에이는 해마다 5백만 명 이상의 아마추어 사진가가 찾는 명소가 됐다.


[길 떠나는 길]‘동화 속의 무대’ 홋카이도의  비에이&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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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일본인가?’ 싶을 만큼 새로운 경험
일단 그의 사진 이야기를 먼저 하고 넘어가자. 도쿄 출신인 마에다는 자연과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학창 시절 들새를 연구하는 모임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그림도 곧잘 그렸다. 사진에 대해 관심은 많았지만 40대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풍경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마흔둘에 린호프란 사진기를 산 뒤 마흔다섯에 사진기 리스 회사를 차렸다. 마흔여덟, 어찌 보면 꽤 늦은 나이에 그는 일본 열도 종단 여행을 떠났다.

아름다운 자연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연 6만㎞씩 강행군을 했던 그는 71년 홋카이도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난다. 그곳이 바로 비에이다. 그가 사진으로 남긴 비에이의 풍광은 ‘여기가 일본인가?’ 싶을 정도다. 그의 이야기는 제주도에 반해 평생 제주 사진만 찍다 근육이 오그라드는 병으로 죽은 김영갑을 연상시킨다. 김영갑은 필름값 때문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으나 마에다는 46권의 사진책을 낼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고 인정도 받았다.

마에다 신조의 작품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홋카이도는 겨울 여행지라고만 생각했다. 홋카이도 하면 눈축제나, 겨울 설원 등 설국(雪國)의 이미지만 떠올린 게 사실이다. 막상 여름 홋카이도를 보고 와서 겨울철과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름 홋카이도의 풍광 역시 겨울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겨울보다 여름이 더 낫다.

마에다 신조의 사진 배경이 됐던 비에이조(美瑛町)와 후라노조(富良野町)는 ‘홋카이도의 배꼽’으로 불리는 비산비야의 구릉지대다. 원래는 숲만 빽빽했던 원시림. 130여 년 전 메이지유신이 끝나고 혼슈의 일본인들이 넘어와 피땀을 흘려가며 일군 땅이다. 평범한 농촌마을이었던 이곳은 1974년 마에다의 사진집 「고향의 사계」에 소개되면서 아름다움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 최고의 사진 촬영지로 각광받아
사진 찍기엔 비에이가 더 아름답다. 비에이는 들판이다. 주변에 높다란 산이 없어 들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시야가 탁 트였다.

구릉밭은 광활하다. 마치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 같다. 하늘과 닿아 있는 구릉밭은 선(線)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지평선은 꺾이거나 모난 곳이 없다. 여자 가슴처럼 봉곳하다. 각이 급하지 않고 완만해서 위압적이지 않다. 그래서 비에이에 가면 선의 아름다움에 반한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곡선 위에 교회의 종탑 모습을 한 하얀 미바우시 소학교가 소담스럽게 앉아 있다. 이 사진이 처음 나왔을 때 일본인들은 유럽의 소도시를 찍은 사진인 줄 알았다고 한다.

들판의 색도 화려하다. 비에이는 꽃밭과 밀밭, 수수밭, 감자밭이 섞여 있다. 수수밭은 여름엔 진홍빛으로 붉은색을 띤다. 밀밭은 노란색이다. 그 너머엔 푸릇푸릇한 감자밭이 펼쳐진다. 색과 색의 대비가 너무나 뚜렷하다. 마치 디자이너 이영희의 색 보자기를 보는 것 같다. 아마추어 사진작가들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작품이 된다고 할 정도다. 때로는 포스터처럼 강렬하고, 때로는 먹으로 농담을 표현한 수묵화처럼 담담하다. 이런 밭들이 한 구릉, 두 구릉, 세 구릉 겹쳐 있다.

일본인들은 이 밭고랑을 달리는 길을 두고 ‘파노라마 로드’란 이름을 붙였다.
이런 구릉을 예닐곱 개쯤 넘으면 신조의 사진을 모아둔 다쿠신칸(拓眞館)이 나온다. 87년 폐교된 다쿠신 지역에 1만 평의 터를 사서 만든 곳으로 자신과 지역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전시관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98년 죽을 때까지 찍은 작품이 걸려 있다. 안개가 쓸고 가는 구릉지대부터 겨울의 광활한 눈밭까지…. 어느 사진 하나 빼놓을 수 없다.

어쨌든 마에다 신조의 사진을 통해 비에이의 아름다움이 알려진 이후 일본인들이 사진기를 들고 찾는 최고의 명소가 됐다. 곳곳에서 삼각대를 받쳐놓고 촬영에 여념이 없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만날 수 있다. 국내에도 디카족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사진 촬영지로 찾을 만한 곳이다.


[길 떠나는 길]‘동화 속의 무대’ 홋카이도의  비에이&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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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
비에이에 비해 조금 풍광은 떨어지지만 후라노도 아름답다. 비에이와 후라노는 45㎞정도 떨어져 있다. 자그마한 관광열차가 두 지역을 잇는다. 국내 관광상품은 사실 비에이보다는 후라노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후라노는 일본 최대의 라벤더 산지로 꽃을 좋아하는 한국 여행객에게 딱이다.

광활한 들판에는 20여 종의 꽃이 심어져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게 라벤더다. 라벤더는 2차대전 직후 비누와 향수의 원료를 생산하기 위해 심었던 꽃이다. 한때 불황을 겪으면서 사라질 뻔 했던 라벤더 밭은 지금은 관광명소가 돼 있다. 라벤더는 여름 꽃이다. 보랏빛으로 들판을 물들이는 라벤더밭에서는 진한 꽃 냄새가 풍겨나온다. 후라노에는 도미타농원, 플라워랜드 등 대형 농원들이 10여 개 들어서 있다.

[길 떠나는 길]‘동화 속의 무대’ 홋카이도의  비에이&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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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에 보라색 꽃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개양귀비, 라벤더, 아이리스, 해바라기 등 다양한 꽃이 핀다. 꽃은 6월부터 10월까지 볼 수 있다. 지난 6월에는 아이리스, 루피나스, 포피가 피었고 7월에는 라벤더가 가장 많지만 시달세아와 백합도 꽤 된다. 8월에는 사루비아와 해바라기, 9월에는 기가라시, 10월에는 코스모스가 핀다.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는 온통 꽃향기가 가득하다. 후라노에서는 꽃을 이용한 각종 체험 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라벤더 비누 만들기, 베개 만들기, 치즈 만들기 등 내용도 다양하다.

비에이와 후라노는 영화와 드라마, CF 촬영지로도 이름이 높다. 고집스러운 역무원의 모습을 그린 영화 ‘철도원’도 후라노에서 찍었다. 후라노 남쪽 이쿠도라역이 바로 작품 속의 ‘호로마이역’. 역사는 옛 모습 그대로이며 그 옆에는 세트로 세워놓은 기숙사와 가게 등이 보인다.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대히트를 기록한 ‘기타노 구니카타’(북쪽 나라에서)라는 TV 드라마 역시 이 일대에서 촬영했다. 76년 처음 방영된 뒤 해마다 한 차례 이상 방영되는 시리즈물인데 아버지가 어린 남매를 이끌고 후라노에 들어가 정착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일본판 ‘전원일기’라고 보면 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구글 CF도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높고 낮은 구릉, 구릉과 구릉 사이에 환한 꽃. 비에이와 후라노는 언젠가 한번쯤 꿈꿨던 동화 속의 무대다.

[길 떠나는 길]‘동화 속의 무대’ 홋카이도의  비에이&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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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대한항공이 일주일에 다섯 차례 삿포로의 치도세공항까지 직항편을 운항한다. 비행 시간 2시간 30분. 라벤더 시즌이 되면 삿포로역에서 후라노까지 JR 열차가 하루 두 차례 다닌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후라노에서 관광열차를 타면 후라노, 비에이 등으로 들어갈 수 있다. 홋카이도는 라면과 맥주가 유명하다. 된장라면, 해물라면 등 라면 종류만 수백 가지에 달한다. 맥주는 일본에서 판매량 4위인 삿포로맥주뿐 아니라 가양주처럼 맥주를 만들어 파는 가게도 20여 곳이나 된다.
문의 일본관광진흥청 02-732-7525

글&사진 / 최병준 기자(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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