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나 졸리가 검색어 순위 상위에 랭크됐다. 영화 개봉도 뉴스도, 결혼 혹은 임신에 관한 소식도 아닌 유방절제술 관련 이슈 때문이었다. 유방암 발병 유전자인 BRCA1가 대체 무엇이기에 할리우드 섹시 아이콘이 이토록 엄청난 결심을 하도록 만든 것일까.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절제술을 감행한 까닭은…
섹시 아이콘, 유방절제술을 결심하다
지난 5월 14일 뉴욕타임스는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절제술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기고문을 실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치료 차원이 아닌 ‘예방’ 차원에서 유방절제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기고문은 ‘나의 어머니는 10년간 암과 싸우다 56세에 세상을 떠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졸리의 어머니인 배우 마르셀린 버트란드는 난소암으로 투병하다 지난 2007년 1월 사망했다. 첫 손자를 안아보기 위해 오랫동안 버텼지만 결국 바람을 이루지 못했던 것. 하지만 안타까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졸리에게서 유방암과 난소암 발병 위험을 증가시키는 유방암 유전자 BRCA1의 돌연변이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는 곧 70세까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63%로 추정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어느 날 아이들이 그녀에게 “엄마도 할머니처럼 암에 걸릴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겁에 질린 아이들의 눈을 보고 졸리는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말이다.
지난 2월 그녀는 유방절제술을 받았다. 이로써 유방암 발병 확률은 87%에서 5% 이하로 떨어졌다. 수술 후 그녀는 “이제 내 아이들에게 유방암으로 엄마를 잃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라며 “수술 결과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라고 자신의 상황을 언급했다. 아울러 “내 수술 자국이 아이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아 한다. 나는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것이다. 난 나의 여성성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조만간 졸리는 이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브래드 피트와 미뤄두었던 결혼식을 치를 거라는 소식도 들려온다.
유전자 BRCA1은 무엇?
BRCA1 혹은 BRCA2 유전자에 의한 유방암 발병률은 전체 유방암 발병률의 5~10%에 불과하지만,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가진 여성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85%에 이른다. BRCA1의 돌연변이가 있으면 보통 50세 이전에 60%에서, 70세까지 85%에서 유방암이 발생하며, 70세까지 65%에서 난소암도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
백남선 이화여대 여성암병원장은 “45세 미만의 유방암 환자의 30%는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에 수술을 받는다. 45세 전에 유방암에 걸리지 않더라도 세월이 흐를수록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라고 전했다. 유방암을 이야기할 때 가족력을 강조하는 이유도 유전적 요인으로 걸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졸리의 고백은 많은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CNN 여성 앵커인 조라이다 샘벌린은 자신도 예방 차원에서 유방절제술을 받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유방암 발병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졸리처럼 유방절제술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미국에서도 BRCA1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여성 중 예방적 차원에서 유방절제술을 받는 비율은 30% 정도로 알려졌다.
졸리는 8시간에 걸쳐 유두를 비롯한 피부는 그대로 살리고 정상 유방 조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보통은 3~5주 후에 유방재건술을 실시하지만 졸리는 2차 수술에서 임시 필러를 넣었다가 9주 후 보형물을 넣는 재건수술을 받았다.
백 병원장은 “환자가 원한다면 유방절제술 이후에 재건술을 실시한다. 요즘에는 (절제술과)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암이 림프절에 퍼진 경우에는 2, 3년 후에 가슴을 재건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유방재건술은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인공 보형물을 삽입하는 방법과 자가 조직을 이식하는 방법이다. 인공 보형물 삽입술은 비교적 수술이 간단하고 다른 신체 부위에 흉터가 남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수술 후 가슴이 딱딱해지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있고, 절제술을 할 때 신경이 함께 잘리기 때문에 바로 보형물이 들어오면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요즘은 자가 조직 이식법을 선호한다. 이 방법은 가슴 모양을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고 한 번 수술로 평생 가며, 동시에 복부 등에 있는 불필요한 지방을 제거하는 효과까지 있다.
한국에서도 유방암 유전자 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유방암 유전자 검사는 일부 종합병원에서 받을 수 있다. 혈액검사만 하면 결과를 알 수 있으며 검사 비용은 1백만원 선. 졸리의 경우 3천 달러의 비용이 들었다고 보도됐다. 백 원장은 “한국에서도 유방암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지만 아직은 가격이 높고 심리적인 거부감도 있다. 때문에 가족력이 있음에도 많은 여성들이 유전자 검사를 받고 있지 않다”라고 전했다.
한국은 30, 40대 유방암 환자 많아
미국 여성에게 가장 위협적인 암인 유방암. 8명 중에 1명이 걸릴 정도로 높은 빈도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방암 발병률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자궁암이나 위암에 이어 세 번째로 흔한 암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유방암 발병에서 특이한 것은 50대에서 자주 발병하는 서구와 달리 30대와 40대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발병한다는 사실이다. 원인은 여성의 활발한 사회 진출로 인한 늦은 출산과 짧은 모유 수유 기간, 과도한 스트레스로 추정되고 있다.
유방암은 여성호르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항호르몬제를 섭취하면 유방암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주기적인 검사로 초기에 암세포를 발견하면 비교적 안전하게 암세포 제거 수술을 할 수 있다. 유방암은 조기 발견시 완치율은 95% 이상이다. 유방암은 증상이 없기 때문에 수시로 자가 진단을 하는 것이 좋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여에스더 박사는 “생리가 끝난 직후에는 유방의 크기가 조금 줄어드는데, 이때가 자가 진단을 하기 좋은 시기다. 우선, 큰 거울 앞에서 상의를 탈의하고 자신의 가슴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혹시 움푹 들어간 부분이 있다면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다. 가슴속의 나쁜 조직이 다른 조직을 끌어들여서 파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라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자가 진단을 해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외에 습진이 수개월 동안 지속되거나 귤껍질처럼 울퉁불퉁한 부위가 있는 것도 유방암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35세가 넘으면 2년에 한 번씩, 40세 이상부터는 매년 유방암 검진을 받으라고 조언한다.
[유방암 고위험군]
-가족력이 있는 여성.
-만 11세 이전에 초경을 하거나 만 54세 이후에 폐경을 한 여성.
-40세 이후에 초산을 한 여성.
-모유 수유를 12개월 미만으로 했거나 하지 않은 여성.
-물혹이 많이 생기는 여성.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박은혜(프리랜서)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