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차라리 벽이랑 대화하고 말지…

남편 탐구생활

(7) 차라리 벽이랑 대화하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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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사를 앞두고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한 몇 가지 사안에 대해 남편과 상의하고자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대화는 채 10분도 되지 않아 “어휴, 답답해.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로 마무리됐다. 문득 궁금해졌다. 남자들에겐 여자들과 다른 언어 세계가 있는 건 아닐까?

[남편 탐구생활](7) 차라리 벽이랑 대화하고 말지…

[남편 탐구생활](7) 차라리 벽이랑 대화하고 말지…

Q 인터뷰를 앞두고 인터넷에 ‘남편과의 대화’를 검색해봤어요. “말이 안 통해요. 벽과 대화하는 기분이에요”, “남편은 제가 무슨 말만 하면 화부터 내요”, “제 말이 길어지면 남편 얼굴이 창백해져요”와 같은 고충들이 쏟아지더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남편들은 왜 이렇게 아내와 대화하는 것을 싫어할까요?
남자들이 대화를 바라보는, 대화라는 대상에 갖고 있는 이미지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겠어요. 대체로 여자들에겐 대화와 관련된 좋은 기억이 있어요. ‘친구들과의 수다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었고 엄마와의 수다를 통해 흥이 났다’와 같은 예들이죠. 하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대화는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기억들이에요. 정신과 용어로 ‘전의’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과거의 경험을 현재에 투영시켜 바라본다는 뜻이에요. 남자들이 어릴 적 집 안에서 주로 대화한 여자는 어머니예요. 그리고 모자간의 대화는 대부분 꾸중의 시간이었죠. 어머니께서 “요즘 학교생활은 어떠니?”라고 물으셨다? 열의 아홉은 ‘선생님께 무슨 말이라도 들었나?’라고 생각하고 괜히 뜨끔해해요. 꼭 무엇을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일단은 의기소침해지고 나도 모르게 방어하게 되는 거죠. 아내와 대화를 할 땐 이런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대화 경험이 투영되곤 해요. 아내가 대화를 진지하게 시작한다는 건 남편에겐 ‘아, 이제 혼날 시간이 왔구나’와 동급의 부담이라고 보시면 돼요.

Q 남편은 거짓말을 하면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더듬어요. 그래서 단번에 알아챌 수가 있는데, 그럼에도 남편은 매번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변명을 하곤 한답니다. 제가 다 알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임기응변에 능하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요(웃음).
여자들의 마음엔 공주가 살고 있다죠?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도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고요. 마찬가지로 남자들의 마음속엔 개구쟁이 한 명이 있어요. 끊임없이 장난치고 싶은 욕구가 있죠. 사실 아내에게 숨기고 들키고를 떠나서 이미 말썽은 부려놨어요. 그러니 아내와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이러다 말썽 부린 것이 탄로 나겠다’라는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누군가 뒤에서 쫓아오는 느낌이 들면 일단 뛰잖아요. 그건 본능이에요. 이런 본능적인 패턴이 습관적으로 쌓이다 보니 위험 신호에 즉각 반응을 하는 거고요. 아내가 나를 추궁한다? 에라 모르겠다, 당장 이 상황부터 벗어나야겠다, 도망쳐야 한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 하는 마음으로(웃음).

Q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도 있을 텐데요? 가끔씩 남편의 항변을 듣고 있자면 기승전결이 아닌 ‘결결결결’ 같아요.
개구쟁이 소년에게 논리가 어디 있겠어요(웃음). 특히 집 안에선, 아내 앞에선 그 소년이 더 어려지고 유치해지는데…. 여자들이 외출 전 화장을 하듯 남자들도 마음의 준비를 해요. 대화를 위한 마음의 준비 같은 거죠. 집으로 돌아온 여자들이 화장을 지우듯 남자들도 논리적인 사고로부터 무장해제돼요. 편안하게 있고 싶다는 본능에 스위치를 꺼둔 상태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 상황에서 아내가 논리적으로 나오면 당연히 당황하고,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될 수밖에요. 아내를 무시해서 대화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있고 싶어서라는 점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남편 탐구생활](7) 차라리 벽이랑 대화하고 말지…

[남편 탐구생활](7) 차라리 벽이랑 대화하고 말지…

Q 부부가 말다툼을 할 때 남편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왜 지난 일을 꺼내느냐”라고 해요. 사실 저희 부부도 그래요(웃음). 저는 화가 났을 때 시간 차를 두고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마음이 진정된 상태에서 말하면 덜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또 큰 싸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이유에서죠. 그렇지만 남편은 늘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해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남자들에게 대화란 힘들고 버거운 과정이에요. 육체적 반응에 비해 언어적 반응이 현저히 느린 남자들은 대화할 때 여자들보다 몇 곱절의 에너지를 필요로 해요. 지금 이 순간의 주제에 집중하는 것도 버거운데 과거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휴(웃음). 예를 들어 지금 시댁 문제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 대화의 시점이 갑자기 과거의 시댁에서 했던 남편의 어떤 행동으로 순간 이동했어요. 이때 남자들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아니 왜?’예요. 그러다가 대화의 범위가 넓어지면 ‘도대체 이 이야기를 지금 왜 하는 거지?’ 하면서 슬슬 짜증이 나죠. 저는, 부부 관계에서 특히 싸움을 할 때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승부에 대한 마음을 버려야 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사회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편이 더 나아요. 마음속에 소년을 품고 사는 남편들이잖아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정신 싸움에선 내가 승리했다’라고 넘어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봐요.

Q 때때로 감정 표현에 서툰 남편에게 서운할 때가 있어요. “나 아파”라고 했을 때, “괜찮아?”가 아닌 “그럼 병원 가”라고 답하는 남편의 감정 표현 지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대다수의 여자들이 “아프다”라고 했을 때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돌아오는 답변은 “어디가, 어떻게?”, “괜찮아?”와 같은 따뜻한 말들이에요. 그렇지만 만약 남자들이 “아프다”고 라고 했다면? “병원 가봐”, “남자가 아프면 돼?” 등의 타박부터 들을 거예요. 그게 우리가 보고 배운 거예요. 들어본 적이 없으니 말할 수도 없는 거죠.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좋은 남편들? 그분들이야말로 공공의 적이에요.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서(웃음)…. 전 여자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주면 좋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감정 표현에 서툰 건 몰라서 못하는 건데, 자꾸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안 해줬다고 서운해하면 남자들도 억울해요. 좀 귀찮더라도 “이럴 땐 이렇게 해줘”라고 교육시켜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에요.

Q 직접적으로 말하면 상처를 받을까 싶어 종종 돌려서 말하곤 하는데, 어쩜 그렇게 못 알아들을까요?(웃음)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내 사람이고 또 평생 함께할 친구잖아요. 그런 사람과 대화가 안 통한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에요. 내 남자와의 대화법에서 이것만은 꼭 기억해라, 하는 걸 꼽아주세요.
첫째, 오고 가는 단어의 숫자에 연연해하지 말았음 해요. 남편이 아버지와 통화하는 걸 본 적이 있나요? 그 시간을 보면 20초를 못 넘겨요(웃음). 안부 인사를 하고 용건을 말씀드리면 끝이에요. 남자들은 쓰는 단어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죠. 그러니 오고 가는 단어 수가 많지 않아 서운하다고 하면 아내만 괴로워져요. 서로 다른 언어 능력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도록 해요. 둘째, 남자들과 대화할 땐 대화 이외의 것을 함께하도록 하세요. 산책한다든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든가 등 남편이 좋아하는 것과 함께하며 대화를 하면 언쟁이나 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요. 끝으로 아내들이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직접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고 이야기하는 것도 시도해보세요. 변화를 기다리기보다는 개인 교습을 해주는 편이 훨씬 빠르다는 걸 늘 인지하면서요(웃음).

[남편 탐구생활](7) 차라리 벽이랑 대화하고 말지…

[남편 탐구생활](7) 차라리 벽이랑 대화하고 말지…

Profile 윤홍균 원장은…
중앙대학교 의과대학과 동 대학원 정신과를 졸업했다. 음성 현대병원을 거쳐 온세병원·온세 소아청소년 심리연구소 진료 원장으로 재직했으며, 현재 윤홍균 마음건강연구소 소장으로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중독정신의학회 간사, 성 중독치료학회 자문위원, 부부·가족치료 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김성구, 안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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