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영화 ‘건축학 개론’을 보면 남자 주인공이 약혼녀를 두고도 다시 만난 첫사랑에 흔들리잖아요. 숱한 남성이 공감하는 걸 보면 비단 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일단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 이건 사실이 아니에요. 지난 인터뷰부터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남자들은 한 가지만 생각하거든요. 지난 사랑을 담아두면서 지금의 사랑까지 생각하는 멀티풀한 종족이 아니란 말이에요(웃음). 현재의 부부 관계가 원만하다면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요. 분명히 첫사랑을 잊어버렸을 겁니다. 아! 물론 가끔씩 기억은 하겠죠. 인간의 뇌에서 기억이 완전히 없어지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남편들에게 첫사랑이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애절함이 아닌 그냥 기억에 남아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듯해요.
[남편 탐구생활](9) 내 남자의 첫사랑
아내의 입에서 ‘첫사랑’이란 단어가 나왔다, 하면 일단 대다수의 남편이 긴장할 겁니다. 마치 성적표를 받아오던 날이나 숙제 검사를 할 때처럼 말이에요. 자연 발생적으로 남자들은 잘못한 것이 있건 없건 ‘첫사랑’이란 존재 자체에 눈치를 보게 되거든요. 만약 남편이 화를 낸다면 긴장감을 극복하고 싶고 피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해요. 아내의 공격이나 따짐을 방어하기 위한 본능인 거예요. 더욱이 “남자들이 죽을 때까지 못 잊는 것이 첫사랑이다”라고 하는 말이 있다 보니 이건 분명히 아내가 나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마음을 졸이게 되는 거죠.
Q 남자의 첫사랑과 여자의 첫사랑은 어떻게 다른가요?
이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과학적이거나 통계적인 답변이 아닌 제 임상들을 토대로 한 지극히 주관적인 사견임을 고려해주세요. 남자들은 첫사랑이라고 하면 행위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어요. 첫 키스, 첫 포옹 그리고 처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던 순간이나 느낌. 이렇게 첫 경험을 생각합니다. 반면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감정적이다 보니 첫 번째로 헤어졌던 기억을 떠올리죠. 그래서 상담을 하다 보면 여자들은 “내가 몇 살 때 어떤 이유 때문에 헤어졌다” 하는 아픔에 대해 주로 이야기합니다. 그에 반해 남자들은 눈에 보이는 행위에 초점을 맞춥니다.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첫사랑에 대해 말하기를 꺼린다는 거예요(웃음). 남자들은 아내 이전에 누군가와 육체적인 관계를 이뤘다는 이야기를 하기가 아무래도 껄끄러울 테죠. 또 여자들은 ‘첫사랑에 실패했다’, 혹은 ‘그 끝에 마음이 아팠다’로 귀결되니까 떠올리기가 싫은 거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남편에게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나는 이렇게 헤어졌다. 이런 아픔이 있었다”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남자들은 이해해달라는 아내의 숨겨진 뜻을 읽지 못하고 “그래서 어디까지 갔어?”라고 묻죠. 왜? 첫사랑 하면 떠오르는 건 ‘경험’이니까. 아내가 말하고 싶은 상실감이나, ‘그렇지만 난 당신과 결혼했다’ 하는 의도와 전혀 다르게 이야기가 흘러가다 보니 열에 아홉은 부부싸움이 되는 겁니다.
Q 여자들의 마음도 궁금해요. 내 첫사랑은 꼭꼭 숨겨두면서 남편의 첫사랑은 어떻게든 알고 싶더라고요. 들어봤자 속만 상할 텐데 굳이 그렇게라도 남편의 과거를 캐겠다는 건 무슨 심보일까요? 저만 그런 건가요?(웃음)
사랑을 하면서도 남편의 첫사랑에 대해 물어보는 건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받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부부란 깨질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가’가 아내들에게는 대단한 이슈예요. 다시 말해 첫사랑에 대해 질문을 하는 부인들의 마음은 결국 ‘남편이 첫사랑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라는 이 말이 듣고 싶은 거예요.
과거에 남편이 어떤 사랑을 했던 간에 나보다 덜 뜨겁게 했다는, 그 확신을 성립시키기 위해 위험 부담을 안고도 증거를 캐고 추궁을 하는 겁니다. 동시에 첫사랑과 헤어졌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을 느끼고 싶은 거예요. 왜, 헤어지고 슬픈 만큼 사랑했다고 하잖아요. 남편들에게 팁을 드리자면 ‘첫사랑이랑 헤어진 건 별것 아니었지만 당신이랑 떨어져 지낸 며칠은 지옥 같았다’라고 대답하시길 바라요. 이건 부부 사이가 좋든 아니든 마찬가지예요.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는 것은 또 자존감과 연결되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Q 주제와 관련해 인터넷을 검색하다 ‘남편이 첫사랑과 다시 연락을 하게 됐다’라는 고민을 올린 아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원장님께도 이런 사례들로 상담을 청하는 분들이 많은지요?
네, 정말 많아요. 심각한 상태도 종종 봅니다. 예전에는 남편이 외도를 했다 하면 그 대상이 아주 한정적이었어요. 직업적으로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라든가 술집에서 만난 여성들이라든가….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곳을 가지 않아도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해졌고, SNS가 발달하면서 지나간 연인이나 지인들과 바람을 피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예요. 저를 찾아오는 분들 중에도 불륜이나 남편의 바람 때문에 오는 부인들의 절반 이상은 첫사랑 혹은 동창생과의 관계를 말씀하세요. 상당히 위험하죠. 동창 커뮤니티에서 시작해 문자메시지로 이어져요. 그것이 덜미가 잡혀 알게 되는 분들이 많아요.
Q 남편을 믿고 두자니 불안하고 그렇다고 따지자니 소중한 추억을 깨뜨리는 것 같은, 이중적인 마음이 드는 거겠죠.
그렇죠. 가만히 보면 젊은 여성들일수록 특히 ‘쿨’하다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어요. 나 그런 것에 대해 쿨해, 그냥 둬, 라고 하는 걸 멋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삶을 동경해요. 하지만 인간의 질투심이란 굉장히 뜨거운 존재거든요.
그러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뜨거운 질투심이 더 바람직하다고 봐요. 남편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편의 추억까지 지켜줄 의무는 없어요. 연애나 결혼은 상대방과의 관계 독점이에요. 추억은 너랑 나만의 것일 때 의미가 있는 것인데 굳이 다른 첫사랑과의 추억까지 이해해주는 건 쿨하려다가 불덩이를 껴안는 꼴이에요. 믿기는 믿되 추억은 나랑 쌓자, 라고 남편에게 주지시킬 필요가 있어요. 또 주의할 것 하나! 상담자들 중에 남편이 동창들과 함께 1박 2일로 MT를 간다고 하는데 허락을 해야 할지 고민된다면서 묻는 분들이 가끔 있는데, 부부 동반이 아니라면 절대로 허락하지 마세요. 아내를 두고 다른 이성들과 여행을 떠나는 것이 삶에 꼭 필요한 일일까요? 사실 유부남, 유부녀들이 밤 12시 넘어 간곡히 나눌 이야기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들이 아니에요.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추억은 좀 깨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결혼이다, 라는 당위성은 불변의 법칙이라고 생각해요.
Q 그렇다면 아내의 첫사랑을 바라보는 남편들의 심리는 어떤가요? 참고로 저희 남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랍니다(웃음).
남편들이 아내의 첫사랑을 바라보는 심리는 한 단어예요. 분노. 여성들이 첫사랑과 끝까지 이뤄지지 않아 자책을 하거나 아픔을 갖고 있다면, 남자들은 “어디까지 갔어?”가 제일 중요한 이슈거든요. 그래서 분노(웃음). 화날까 봐 묻거나 따지지도 않아요. 조절이 안 되는 분들은 물으면서도 따져요. 이는 단순한 궁금함이나 이해심이 아니에요. 기저에 깔린 분노가 있음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남편에게 아내의 첫사랑은 결코 아름답지 않아요. 아내가, 설령 과거라 할지라도, 내가 아닌 누구와 첫 경험을 했을까만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팁을 드리자면 아내들, 차라리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세요. 혹은 “누가 첫사랑인지 헷갈려”라고 회피하세요. 뚜렷하게 이야기를 나눴다가 앙금이 오래가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특히 딸 가진 부인들이 사춘기 딸에게 자신의 첫사랑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는데 이는 위험합니다. 자식들이 아빠에게 말하기도 할뿐더러 스스로도 불쾌해하거든요. 성적인 테마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Q 남편에게 첫사랑이 나타났다! 추억이 불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케이스별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인지 알려주세요.
나타났다! 일단 만나기 전이라면 만나지 못하게 하세요. 사랑이란 회로와 중독이란 회로는 늘 같이 갑니다. 그래서 남편이 첫사랑을 만난다는 것은 알코올중독자가 술을 끊었다가 20년 만에 다시 술을 마시는 것과 똑같아요. 아무리 오랜 시간 참았어도 마시는 순간 다시 시작되거든요. 뇌세포는 살아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반응할 수 있습니다. 남편에게 연락하지도 말고 만나지도 말라고 이야기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남편이 불륜으로 빠질 수 있는 빌미와 명분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미 만났다! 만났다는 의심이 든다! 그럴 땐 무조건 믿어야 해요. 그러면서 믿고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해주세요. 그래야 남편이 혹여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다가도 부인이 이렇게 믿고 있는데 차마 그럴 수 없더라, 하면서 멈추게 돼요. 또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의심하고 비난하고 구박하면 남자들은 혼난 게 아까워서, 여기서 넘어가나 안 넘어가나 부인은 의심하니까 손해 볼 것 없어 하는 심리가 생기거든요. 그러니까 무조건 믿으세요. 불륜으로 이어졌다! 확실하다! 이럴 땐 모든 증거를 수집한 뒤에 전문가인 변호사나 정신과 전문의를 찾으세요. 결혼생활에서, 부부 사이에서 불륜이란 폭탄과 같은 존재입니다. 혼자 감당하기에 무척 힘든 일이에요. 끙끙 앓지 마세요. 끝으로 시댁 식구들이 며느리 편을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세요. 하늘이 무너져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남편 탐구생활](9) 내 남자의 첫사랑
중앙대학교 의과대학과 동 대학원 정신과를 졸업했다. 음성 현대병원을 거쳐 온세병원·온세 소아청소년 심리연구소 진료 원장으로 재직했으며, 현재 윤홍균 마음건강연구소 원장으로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중독정신의학회 간사, 성 중독치료학회 자문위원, 부부·가족치료 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 / 김지윤 기자 ■사진 / 김성구, 안지영 ■일러스트 / 이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