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생활의 기본 요소로 의식주(衣食住)를 꼽는다. 하지만 살면서 이보다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이 병원을 상징하는 의(醫)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안다. 결코 줄일 수 없는 게 병원비라는 것을. 병원은 그만큼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런데 최근 의료민영화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Issue 1 정부 주도로 시작되는 의료민영화
필수 요소지만 의식주만큼 격차가 큰 항목도 드물다. 입고, 먹고, 사는 곳에 따라 한 사람의 경제 수준이 여실히 드러난다. 거리에는 유명 디자이너 옷을 입은 사람과 이월 상품 옷을 입은 사람이 뒤섞여 지나간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의 답이 그 사람의 형편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돈으로 차이가 정해지는 자본주의 사회니까. 하지만 병(病)의 문제로 접근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같은 위암에 걸렸는데 어떤 사람은 부자라서 최고의 병원에서 최상의 진료를 받고, 또 어떤 사람은 가난해서 치료를 못 받거나 영세 병원을 전전한다면 이것을 수용할 수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의료복지 확대 정책으로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질환 등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이라는 장밋빛 공약을 내놨다. 그런데 당선 뒤 인수위 활동 기간에 이르러 비급여 항목인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간병비는 제외된 공약이라고 밝혔다. 복지 강화를 외치던 정부는 의료민영화에 대한 정책을 연이어 내놓았다. 이를 관철하려는 정부 측과 반대하는 시민·의료계의 팽팽한 대치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10월에 열리는 국정감사에서도 의료민영화가 핫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Issue 2병원, 뭐가 달라지는 거지? 병원 주식회사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건의료와 교육 등 5대 유망 서비스 업종에 대해 관계 부처 합동 TF를 만들어 규제 완화 대책을 이행하도록 정부의 모든 역량을 쏟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규제 완화의 목소리가 의료 영역에까지 확대된 것이다. 영리 자법인의 설립이 허용되면 환자 편의를 위해 운영했던 기존의 병원 부대사업인 주차장, 장례식장, 구내식당을 넘어 부동산, 건강식품, 의료기기업, 화장품 등을 만들고 판매하는 ‘의료사업체’를 차릴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의료법인도 인수합병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병원의 자회사가 의약품 제조와 유통을 장악한 뒤 환자 진료와 연계해 최적의 수익을 낼 수 있게 한 것이다. 필수가 아니더라도 “이 약이 좋다”라는 의사의 한마디는 환자에게 처방전과 같은 효과를 지닌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와 보호자는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일 것이다. 이처럼 병원과 연계된 자회사는 환자의 불안을 이용해 땅 짚고 헤엄치며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현재의 비영리법인 병원 구조에서는 수익이 발생해도 이를 병원 내로 재투자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즉, 수익이 생기면 인력, 시설, 장비 등 병원 내로 재투자해야 하며,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병원 외부로 돈을 빼돌릴 수 없다는 것. 우리나라 병원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특징과 관련 있다. 그런데 의료기관이 영리 자법인을 설립해 그 수익을 배분하는 것은 ‘의료기관의 비영리성’을 규정한 의료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정부는 “영리 자회사는 의료기관과 분리된다. 의료기관으로 들어오는 수익이 외부로 배분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리 자회사는 의료기관의 샴쌍둥이와 같다. 이 둘은 분리되지 않으며 의료기관의 수익은 영리 자회사를 통해 외부로 빠져나간다. 법인인 주식회사를 통해 외부로 수익 유출이 가능해지면 병원의 수익을 빼돌릴 계획으로 영리 자법인을 설립할 수도 있다. 현재 의료법인은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파산하는 경우 남은 재산을 국고로 귀속시켜야 한다. 하지만 영리 자법인은 의료법인의 수익·자산을 회수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공공재인 의료 부문에 영리 자법인 설립이 허용되면 투자라는 미명 아래 의료 공공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자법인의 허용을 의료민영화의 포석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정부가 9월부터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원격진료는 참여 의료기관의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환자가 혈압, 혈당 등을 자가 측정해 인터넷 포털과 스마트폰 앱 등을 통해 전송하면 의사는 PC나 스마트폰을 통해 진료를 한다. 참여 의료기관에는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 및 화상 상담 등 통신 기능을 탑재한 노트북, 현장 원격의료 수행 인력 등이 지원되고, 일정액의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환자에게는 혈압계(고혈압), 혈당계(당뇨), 활동량측정계(공통) 및 전송장치 등 필요 장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보건복지위원회는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노인과 장애인 등의 접근성을 높이고 만성질환의 상시적 관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첨단 의료산업의 발전 및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의협은 의사가 직접 살펴봐도 진단하기 어려운 것이 병인데, 원격진료가 과연 국민건강을 위한 것인지 되물었다. 원격진료 추진의 중심에 보건복지부가 아닌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보다 의료 장비 업체와 대형 병원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다. 원격진료의 일환인 스마트 케어 서비스 시범사업의 결과에 따르면 환자 1인당 건강관리로 1천31만원이 소요됐고, 1개월에 약 27만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해서 1년간 당화혈색소(HbA1c)가 0.34% 감소했다고 한다. 의협은 이를 근거로 비용 대비 효율과 의학적 근거에 의문을 제기했다.
의협은 “원격진료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달린 중대한 의료제도의 변화인데 의료의 중심에 서 있는 의사들을 배제한 채 추진되고 있다”라며 “일방적인 시범사업은 국민 건강은 물론 전국 11만 의사들의 전문성을 철저히 무시하는 처사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소화제 하나를 개발하는 데도 보통 10여 년의 연구 기간과 1조원의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이는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휴대전화 진료에 5천만 국민 건강을 맡길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 의협은 휴대전화 진료 허용은 진단의 정확성을 떨어뜨리고 동네 의원의 1차 진료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Issue 4 보험, 몇 개나 가입했나요? 민간보험 활성화
의료민영화의 뒤에는 민간보험이 있다. 바꿔 말하면 의료민영화의 핵심은 민간보험의 활성화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수준은 실제 발생하는 의료비의 60%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암처럼 큰 병에 걸리면 몸보다 돈 걱정이 앞선다. 전세금 빼서 병원비를 내는 경우도 태반이고, 치료비와 생활고에 시달려 환자나 보호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때문에 사람들은 큰 병에 대비해 민간의료보험 상품에 가입한다. 국민건강보험 이외에 다른 대응 수단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질병 발생 위험에 대비해 돈을 더 지불할 의사가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국민의 건강 보장을 위한 재정정책은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세금을 더 걷어 공공 의료를 확대할 것인가, 국민 개인이 직접 부담하도록 민간 재정을 확대할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공공 의료를 확대하면 세금이 늘지만 부자가 가난한 자를, 젊은이가 노인과 어린아이를, 건강한 자가 아픈 자를 돕는 연대적 성격의 건강보장제도가 된다. 반대의 길로 들어서면 민간 보험이 활성화된다. 선택권이 넓어지는 만큼 부담도 늘어난다. 취약계층에게는 치명적이다. 국민건강보험이 위축되면 민간의료보험 가입이 필수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저소득층의 의료 이용은 더욱 어려워진다.
Issue 5 진료의 양극화 부를까? 적극적 복지의 중요성
오랫동안 지속된 신자유주의는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집값이 오르면서 주택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경쟁에서 낙오되는 사람이 늘어났고, 일자리와 노후, 건강과 의료가 불안해졌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국가는 시장과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경제적 부에 학력의 대물림 현상까지 일상으로 굳어지고 있다. 여기에 ‘빈곤과 질병의 대물림’까지 겹쳐지고 있다. 최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건강 수준이 고소득층 자녀들의 건강 수준보다 나쁜 것으로 조사됐다. 건강 불평등의 문제가 구조화돼가고 있는 것이다. 보건의료를 자본에 맡기면 건강의 불평등 현상과 ‘빈곤과 질병의 대물림’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당연시 여기거나 체념한다면 그 사회는 정의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이 없는, 희망 없는 사회다.
보수 진영과 신자유주의 정치 세력은 경제와 복지를 ‘성장이냐 분배냐’의 대립적 이분법으로 구분해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했다. 작은 정부는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고용 불안을 심화시켰고, 이른바 낙수 효과 부재로 한계를 드러냈다. 이제 보편적이고 적극적 복지를 통해 ‘우리는 한 배를 타고 있다’라는 경제사회적 안정감을 제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회의 평등을 이루고,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안정적으로 확충할 수 있다. 복지는 경제와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라 경제체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Mini Interview
“의료민영화, 비용 대비 효과 낮을 수도 있다”
이상이(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학교 교수)
의료민영화의 쟁점은 무엇인가?
의료민영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민영화(Privatization)는 국가가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공적(Public) 영역을 민간에 내주는 것이다. 제대로 된 국가에서는 의료를 공적 영역으로 간주한다. 민간 자본은 이윤 추구가 목적이기 때문에 영리를 극대화하려고 애쓴다. 자본의 목적은 ‘돈’이다. 우리나라의 의료 공공성은 매우 취약한 상태다. 그럼에도 의료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은 국민건강보험을 통한 통제와 함께 법인 병원을 비영리로 운영하도록 규제했기 때문이다. 의료의 공공성을 확충해야 할 시점에 영리 자회사 설립 허용과 원격진료 도입으로 의료체제의 공공성을 흔드는 법안을 내놓은 것이다. 공공성이 강한 영역인 의료를 자본의 투자처로 허용하려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 정부와 현 정부의 의료민영화 차이점은?
이명박 정부가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추진을 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자회사 설립 허용과 같은 세밀하고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의료민영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의료민영화를 하겠다고 공약했다. 어찌 보면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는 공약을 지키기 위한 시도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의료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오히려 당시에 ‘의료 공공성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지금 공약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내세웠던 복지 공약을 파기하고 역행하는 셈이다.
의료민영화의 긍정적인 점은 무엇인가?
보통 시장을 더 많이 도입하면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서비스를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것이 시장의 장점인데, 의료민영화는 복지국가에서 관료주의적 비효율이 나타날 때 일부 도입할 수 있다. 즉, 공공성이 지나치게 높아 부작용이 나타날 때 부분적 민영화로 긍정적인 효과를 일부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시장과 경쟁이 너무 과도해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료 개혁이 이뤄져야 하는 부분은?
스웨덴의 병원을 예로 들고 싶다. 스웨덴에서는 병원을 전부 국가가 관할한다. 비용도 국가가 조세를 통해 조달한다. 모두 사실상 공짜로 이용하는 것이다. 광역 지역 간 의료 수준의 격차가 없고, 국민 누구나 같은 병원을 이용하기 때문에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중산층이 목소리를 높이고 국가는 이에 따라 병원에 더 많은 재원을 투자한다. 중산층과 부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상향 평준화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이렇게 가야 한다. ‘특정적 평등주의’라는 말이 있다. 소비자의 구매력과 무관하게 같은 품질의 서비스를 소비자의 필요에 맞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 영역인 의료 서비스가 여기에 해당된다. 복지와 사람에 대한 투자가 공정하게 확대되면 인적 자본이 튼튼해진다. 이렇게 쓰이는 돈은 소비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사회적 투자’이고 경제성장의 원천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이자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의료관리학 전공)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활동을 하며 의료복지 정책의 문제점에 눈을 떴다. 국민건강보험제도, 의약분업,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도화하는 데 기여했고,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보라(프리랜서) ■사진 / 김성구 ■도움말 / 이상이(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학교 교수) ■자료 제공 / 대한의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