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탐구생활](11) 아빠도 슈퍼맨이고 싶다!
표현 방식이 아내들과 다를 뿐이지 남편들도 임신 소식을 접했을 때 기쁜 마음이 가장 먼저 앞서기는 해요. 그렇지만 기쁜 마음보다 더 크게 생기는 감정은 혼란이에요. 아내들은 임신일까, 아닐까 밤새 끙끙거리다가 새벽에 일어나 테스트기를 통해 임신을 확인하잖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남편들은 무방비 상태로 아내에게 임신 소식을 전해 듣게 되거든요. 또 엄마들은 몸의 변화를 몸소 느끼는 데 반해 아빠들은 그렇질 못해요.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다 보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는 감정이니까요. ‘와, 좋아!’ 하고 기뻐하다가 다시 뚱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눈치 빠른 아내 입장에서는 ‘내가 임신한 게 싫은가, 부담스러운가’ 하는 오해를 하게 되는 거죠. 만약 주변에서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리액션을 잘해야 평생 잔소리를 듣지 않는다”라는 말이라도 들은 남편이라면 더 혼란스러울 거예요. 왜? 걱정거리가 하나 더 추가됐으니까요(웃음).
Q 임신 기간부터 모성애와 부성애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엄마들은 입덧을 하고 태동을 느끼면서 ‘내 안에 생명이 있구나’ 하는 기분을 본능적으로 미묘하게라도 느껴요. 그렇지만 아빠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아내의 말을 통해, 한 단계를 거쳐 알게 되잖아요. 당연히 그만큼의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보니 엄마만큼 감동이 확 와 닿지는 않죠.
산부인과에 가서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 신기하기는 해요. 까만 점이 콩닥콩닥거리니까(웃음). 하지만 병원에 대한 기억이 좋은 사람들은 없거든요. 남자들에게 산부인과는 다른 병원과 다르지 않은, 무서운 공간이에요. 평소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툰 남편이었다면 더더욱 환희나 신비로움을 드러내기 힘들겠죠.
또 하나. 부성애는 모성애에 비해 시간차를 두고 생겨요. 남자들은 ‘나의 아이다’라는 생각이 출산 후에나 확실하게 형성돼요. 신생아 때도 이 아이가 나랑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흥미로운 사실은 여자들도 임신하자마자 모성애가 생기는 건 아니에요. 열 달 동안 품으면서 점차 짙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 아빠들에게도 시간을 좀 주세요.
Q 입덧이나 태동과 같은 임신 증상을 남편과 공유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아이와 아빠를 좀 더 빨리 가깝게 하는 방법이겠네요.
맞아요! 남편들이 가장 마음이 약해질 때가 아내들이 배가 불렀을 때거든요(웃음). 엄마의 육아법이 아이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만큼 엄마의 기분이 좋아야 아이도 잘 돌볼 수 있겠죠. 그러려면 아빠가 육아에 참여해야 해요. 실제로 아빠가 육아에 참여했을 때 아이가 건강하게 자란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적다, 하는 논문들도 많아요. 다행인 건 요즘엔 인식이 바뀌어 아빠들이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추세잖아요. 잘 참고하시면 좋을 듯해요.
Q 전문가 입장에서 현재 육아 프로그램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인 아빠들 중 가장 바람직한 케이스를 꼽자면?
음…, 송일국씨가 세쌍둥이를 보살피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웃음). 많은 사람들이 육아의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하지만 사실 육아를 잘해내기 위해서는 강인한 체력이 바탕이 돼야 해요. 아빠들이 흔히 빠지는 오류가 ‘나는 감성적인 부분이 아내에 비해 약하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어’라는 착각인데, 의외로 아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많다는 걸 보여준 사례였어요.
그리고 타블로씨도 좋은 케이스였어요. 강혜정씨가 딸 하루를 혼낼 때 묵묵히 있어준 장면! 많은 부모들이 엄부자모라고 해서 균형 있는 훈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생각이 조금 달라요. 만약 그때 타블로씨가 아이를 감싸려고 “당신 왜 그래” 하고 의견 충돌을 보였다면, 혹은 아내의 행동을 제지했다면 아이는 더 혼란스러웠을 거예요. 마음이야 안아주고 싶었겠죠(웃음). 그렇지만 아내의 입장이나 체면을 존중하고 기다려준 것이 참 좋았어요.
Q 아이를 끔찍하게 싫어하지 않는 이상, 혹은 현실적인 사정이 있지 않는 이상 남자들에게는 결혼 후 아이는 꼭 낳아야 한다는 종족 번식의 본능이 있는 듯 보여요. 그리고 여자들에 비해 그 본능이 더 큰 것 같아요. 남자들에게 2세란 어떤 존재인가요?
나중에 나처럼 될 아이. 분신은 분신인데 현재가 아닌, 미래의 분신?(웃음) 사실 아이를 바라보는, 대하는 남녀의 차이는 분명해요. 포인트를 맞추는 시기가 다르죠.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빠와 엄마의 책임감이에요. 엄마의 책임감에는 자책이 더해져요. 예를 들어 아이가 아프면 엄마들은 다 자신의 탓 같아요. ‘내가 뭘 잘 못해서 그렇다’ 이렇게요. 반면 아빠들은 아이가 아프니까 어떻게 치료를 해야겠다는 것부터 떠올려요. ‘약이 필요하다? 내가 구해와야겠다’ 이렇게요. 아무래도 품고 있던 시간이 길다 보니 아픈 시점 이전의 것에 대한 책임감은 여자들에게, 이후의 시간에 대한 것은 남자들에게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겠죠. 같은 맥락에서 남자들은 좀 더 먼 미래를 내다봐요. 이렇게 키워야겠다, 결혼은 어떻게 시켜야겠다, 그렇게.
Q 남편에게 아들이란 그리고 딸이란 각각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전 딸만 둘이에요. 처음 성별을 알고 나서 나와 다른 성이라는 것이 조금 생소했어요. 아들이라면 내가 커온 경험이 있으니까 좀 덜 생소했을 텐데 이제 나는 정말 아내가 없으면 큰일 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웃음). 엄마들도 아들이 태어난다고 하면 궁금한 것, 호기심이 앞선다고 하더라고요.
남아 선호 사상이 있거나 ‘꼭 아들이어야 해’라는 마인드의 남편들은 남자로서의 자존감이 센 분들이에요. 아직은 남성 위주의 사회고, 어른들에게 ‘아들은 꼭 있어야 해’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남자라는 성에 대한 자존감이 더 셀 수밖에 없겠죠. 그런 케이스가 아닌데 아들을 바라는 경우는 대개 부자간에 관계가 좋았기 때문일 거예요. 최근에는 “나 같은 아들을 낳느니 그냥 딸이 좋겠어” 하는 분들도 많아요(웃음).
Q 출산 과정을 지켜보면서 감동을 느끼는 남편들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상황 자체에 충격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남편이 제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그게 남편의 정신 건강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웃음).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육아 커뮤니티에서도 갑론을박이 펼쳐지곤 해요.
어려운 문제예요. 전문가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진 답은 없다”예요. 출산이라고 하는 건 위험한 과정이거든요. 어느 선까지 같이 있느냐를 따지기 전에 일단은 아내가 긴장하지 않게, 두려워하지 않게 힘이 돼주는 게 더 우선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건 엄마들만 무서운 게 아니에요. 아빠들도 긴장되고 무서워요. 두 사람이 출산을 앞두고 여러 지인의 말도 들어보고, 책도 찾아보고 하면서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요.
Q 한 독자는 남편이 돌 지난 아들을 질투한다고 고민 상담을 청하셨어요(웃음).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긴 행복한 고민이었지만, 가만히 보면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남편들은 특히 아들들에게 묘한 경쟁 심리를 갖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놀이를 하다가도 꼭 본인이 이기려고 하고요. 왜 그러는 걸까요?
그래서 큰아들, 작은아들 키운다는 말이 나왔겠죠(웃음). 남자들의 경쟁심과 승부욕은 이성을 잃게 해요. 아내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질투로 좋게 포장을 하지만 그 기저에는 이 아이를 이겨야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심지어 핏줄일지라도. 남편이 히스테릭컬한 반응을 보인다면 관심을 좀 가져주세요. 가끔씩 ‘내가 당신도 지켜보고 있어’라고 어깨도 좀 토닥여주시고(웃음).
Q 끝으로 남편을 육아의 동반자로 이끌 수 있는 좋은 팁을 알려주세요.
일단은 시킨다. 그리고 칭찬한다. 그랬는데 못한다? 일단 칭찬하고 그다음엔 더 쉬운 걸 시킨다. 그리고 칭찬한다(웃음). 남편에게 구체적인 디렉션을 주세요. 할 수 있게,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게 쉬운 것부터 주세요. 찬찬히 남편이 따라올 수 있도록 말이에요. 사실 남편들도 아내가 임신한 이후에, 출산한 이후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감이 막중해져요. 그래서 공황장애가 오는 분들도 많아요. ‘내가 큰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건강 염려증으로 병원을 찾기도 하고요. 여성들은 임신 기간이 끝났다, 출산이라는 과제를 해냈다, 하는 단계를 거치지만 남편들은 그런 매듭도 없으니까 더 불안해요. 이런 마음을 좀 헤아려줬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엄마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건, 육아는 힘든 게 당연한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행복하게 해야 한다고, 엄마니까 참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런 강박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들고 짜증나고 괴로운 게 당연한 감정이에요. 그러니까 나쁜 엄마인가, 걱정할 필요 없어요. 힘들면 힘들다고 하세요. 완벽한 인간이 없듯 완벽한 부모도 없어요. 화초를 키우는 것도 힘든 일인데, 하물며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얼마나 어렵겠어요. 힘내세요!
[남편 탐구생활](11) 아빠도 슈퍼맨이고 싶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과 동 대학원 정신과를 졸업했다.음성 현대병원을 거쳐 온세병원·온세 소아청소년 심리연구소 진료 원장으로 재직했으며, 현재 윤홍균 마음건강연구소 원장으로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중독정신의학회 간사, 성 중독치료학회 자문위원, 부부·가족치료 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 / 김지윤 기자 ■일러스트 / 이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