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낙태법의 역사 '셰리 핑크빈'

우리는 피임을 모른다

미국 낙태법의 역사 '셰리 핑크빈'

김선형 | 건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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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임을 모른다] 미국 낙태법의 역사 '셰리 핑크빈'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4월 11일 낙태죄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정부와 국회는 늦어도 올해 안으로 개선 입법을 이행해야 하고, 이때까지는 한시적으로 현행법이 유지된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정부의 낙태 관련 법안은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2019년 5월 앨라배마주에서는 성폭행 피해로 인한 낙태까지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고, 오는 7월1일부터 미시시피주에서는 이른바 ‘심장박동 낙태 금지법’이 시행될 예정이다. 바로 태아의 심장박동이 들리는 임신 약 6주부터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이다.

미국 낙태법 역사에서 기억되는 중요한 인물 중에 ‘셰리 핑크빈’이 있다. 1950~1960년대 미국 방송 어린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던 셰리 핑크빈은 1962년 다섯 번째 임신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의사로부터 태어날 아이가 심각한 기형아일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고 중절수술을 권유받는다. 교사였던 남편이 학생들을 데리고 유럽투어를 갔을 때 일반 상점에서 구입해 온 수면진정제를 셰리가 복용한 적이 있는데, 그 수면진정제에 탈리도마이드가 포함돼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탈리도마이드는 독일에서 만들어진 수면진정과 임신부 입덧 방지용 약이었다. 1958년부터 판매됐다가 1960년에서 1961년 사이에 부작용으로, 사지가 없거나 사지가 있어도 극단적으로 짧고 손발가락이 없는 등의 기형아들이 태어나 사용이 금지된 약이다. 당시 전 세계 46개국에서 1만 명 이상, 특히 유럽에서만 8000명이 넘는 기형아가 출산됐다. 이에 반해 미국에서는 FDA 승인 거절로 판매허가가 나지 않아 기형아가 17명밖에 생기지 않았다.

셰리가 살고 있던 미국 애리조나주는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었고, 예외적으로 어머니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만 허용됐다. 그녀는 탈리도마이드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익명으로 언론사 기자와 인터뷰를 했으나 정체가 드러나 버렸고, 언론은 폭풍같이 그녀의 이야기를 다루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그녀는 애리조나주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 상급 법원에 면책 특권을 요청했으나 판사 예일 맥페이트는 그 문제에 결정권도 법적 논쟁의 여지도 없다며 기각했다(1962년 7월30일). 그는 낙태에 관한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없으며, 한 인간으로서 이 심리를 허가하도록 압박감이 들었지만 판사로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셰리가 임신한 지 두 달 반이 됐을 때였다.

셰리는 고민 끝에 해외에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고 일본에 비자를 신청했으나 일본 영사가 비자를 거절해 스웨덴으로 날아가 합법적인 낙태수술을 받는다(1962년 8월18일). 스웨덴에서도 논쟁은 있었으나 셰리의 정신건강을 이유로 요청을 받아들였다. 낙태수술을 받은 셰리는 태아의 성별에 대해 물었는데, 의사는 “태아에게는 다리가 없고 팔도 하나 없었으며, 기형이 심해 성별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고 답했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셰리의 행적과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대서특필했고, 방송인이었던 그녀는 세상의 온갖 비난과 지탄을 받았을 뿐 아니라 기자들과 여론에 오랜 기간 사생활을 침해당했다. 교사였던 남편마저 학교 측의 휴직 권유를 받았다. 1965년 셰리는 다시 임신해 건강한 여자 아이를 출산했다. 셰리 부부 이야기는 1992년 영화로 각색됐고, 미국 낙태법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2020년 현재 애리조나주는 임신 20주 이후부터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우리는 피임을 모른다] 미국 낙태법의 역사 '셰리 핑크빈'

■김선형은 누구?

간호학을 전공하고 임상 간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여성, 특히 일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그들이 처한 현실과 다양한 삶의 고충을 마주하면서 여성을 병들게 하는 것, 여성의 건강이 그들의 삶과 가정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은 여성 건강과 인권에 관한 주제로 번역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는 피임을 모른다’(도서출판 파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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