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은 이탈리아에서 여성 성해방의 혁명적 전환기로 본다. ‘68혁명’은 1968년 5월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독일과 이탈리아로 번지더니 체코와 영국을 거쳐 미국과 일본으로까지 확산됐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상상력에 모든 권력을’ ‘도망쳐라, 낡은 세계가 너를 뒤쫓고 있다’ 등의 파리 선전물에서 볼 수 있듯이 전 세계는 저항과 해방을 향한 젊은이들의 열망으로 가득했다. ‘68혁명’은 정치혁명인 동시에 20세기 인류문화의 근본을 바꾼 의식혁명이자 문화혁명이었다.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력이 여성들에 의해 충족됐고, 새로운 노동력 확보를 위해 정치권력이 성을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여성들은 가부장제의 오랜 허물을 벗기 시작했고, 대학에서도 성교육에 관한 강의나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임신중절이나 오르가즘에 대한 표현도 거침없이 오갔다. 1968년이 분기점이 돼 일어난 변화였다.
남성들의 사랑과 성관계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20세기 초반 사랑과 성관계가 별개의 것으로 간주됐던 것과 달리 1970년대 말 이탈리아 남성의 첫경험 조사에서 거의 대다수가 예비신부나 과거의 여자친구가 첫경험 대상이라고 응답했고, 극소수만이 성매매 여성이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1968년 7월 교황 바오로 6세는 교서 ‘인간 생명(Humanae Vitae)’을 반포했다. 일체의 피임약이나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생리주기상의 배란기만을 피하는 ‘자연피임법’을 유일한 피임법으로 승인·선포한 것이다. 1932년 교황 비오 11세가 자연피임법만을 용인하고 다른 피임법이나 낙태를 금지했었는데, 1960년 경구피임약이 세상에 나온 이후에도 피임에 대한 명백한 반대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바티칸이 승인한 ‘19일의 자연피임법’은 말 자체도 그렇고, 실제적으로도 논란의 소지가 많다. 여성의 몸은 생리일을 포함한 배란 전 안전기인 전피임기(생리주기에서 19일을 뺀 날짜), 배란일을 포함한 배란기인 회임기 9일, 배란 후 안전기인 후피임기 10일을 거치는데, 바티칸은 ‘누구나 전피임기 혹은 후피임기에 성관계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란주기를 계산해서 성관계를 갖는 자연주기법은 실제 피임 실패율이 높다. 이 때문에 바티칸의 자연피임법은 일종의 도박과 같다고 해 ‘바티칸 룰렛(Vatican roulette)’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를 두고 미국의 비평가인 헨리 루이스 멩켄(H. L. Mencken)은 “가톨릭교도 여성이 물리학이나 화학을 이용해 임신을 피하는 것은 여전히 금지돼 있지만, 수학을 이용하는 것은 합법적이다”고 비꼬았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여자의 몸을 가장 잘 보전해 주고 남녀가 함께 협조하는 자연피임법은 ‘사랑의 피임법’이라고 했으나 당시 이탈리아 사회에서는 큰 반향이 일었다. 젊은 가톨릭 신자들 중에서도 정치노선은 교회의 보수주의를 지지하지만 혼전 성관계나 피임도구의 사용 등에 관해서는 자유로운 입장을 지지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던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충분한 성적 자유와 여성의 성해방을 쟁취하지는 못했지만, 교회의 확고한 입장을 극복하고 피임과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평등주의를 향한 진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김선형은 누구?
간호학을 전공하고 임상 간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여성, 특히 일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그들이 처한 현실과 다양한 삶의 고충을 마주하면서 여성을 병들게 하는 것, 여성의 건강이 그들의 삶과 가정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은 여성 건강과 인권에 관한 주제로 번역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는 피임을 모른다’(도서출판 파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