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호르몬 요법을 받고 싶지만 암에 걸릴 수 있다던데….”
2000년대 초반 갱년기 증상 치료를 위한 호르몬 요법(HT)이 암이나 심장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이는 65세 이후 갱년기 여성들이 호르몬 요법을 사용하기 주저하게 만드는 정설로 굳혀졌다. 그러나 65세 이후 호르몬 요법은 그 복용량과 시기에 따라 안전하다는 주장을 담은 새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호르몬 요법의 정식 명칭은 호르몬 대체 요법으로 감소한 에스트로겐 혹은 프로게스틴을 약으로 먹는 것을 말한다. 호르몬 요법은 안면 홍조, 식은땀, 질 건조증, 뼈 손실 같은 갱년기와 관련된 증상을 관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2003년 발표된 여성 건강 이니셔티브(Women’s Health Initiative) 임상시험으로 호르몬 요법이 기피되기 시작했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틴의 조합은 심장병, 뇌졸중, 혈전, 치매 및 유방암의 위험 증가와 관련있다고 발표됐기 때문이다. 암이나 심장질환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 탓에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6.86%만이 호르몬 요법을 처방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계에서는 해당 연구가 이미 심장마비, 뇌졸중, 혈전 등의 위험이 큰 65세 이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연구했다는 점, 여성이 호르몬 요법을 받기 시작한 나이 같은 중요한 정보를 분석하지 않은 점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미국 야후 라이프는 G. 토마스 루이즈 산부인과 전문의의 말을 빌려 “여성 건강 이니셔티브의 연구는 많은 갱년기 환자를 두렵게 했지만 제대로 설계되지 않은 연구다. 이는 호르몬 대체 요법 개념에 큰 해를 끼쳤다”라고 전했다.
기존 논란을 뒤집은 완경(폐경)학회(The Menopause Society)에 발표된 새 연구는 2007년과 2020년 사이에 메디케어에 가입한 노인 여성 1천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65세 이후 호르몬 요법을 사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은 여성이 복용하는 유형, 경로, 용량에 따라 다르다고 결론지었다. 연구진은 여성이 나이만을 근거로 호르몬 치료를 중단하는 기존의 규칙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 연구에서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틴 요법을 병용한 사람들은 유방암의 위험이 증가했지만, 환자가 경피(패치를 통해) 또는 질 프로게스틴을 저용량으로 복용했을 때는 오히려 유방암의 위험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또한 호르몬 요법에 프로게스틴을 사용하면 자궁내막암, 난소암, 허혈 심장 질환, 울혈성 심부전 및 정맥 혈전 색전증의 위험이 많이 감소한다고도 덧붙였다.
또한 최근 갱년기(Menopause) 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에스트로겐 단독요법, 즉 에스트로겐만 복용하면 사망률, 유방암, 폐암, 대장암, 울혈성 심부전, 정맥혈전색전증(정맥에 혈전이 형성될 때), 심방세동, 급성 심근경색(심장마비라고도 함) 및 치매의 위험이 많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발표된 한 연구는 완경기 시작 무렵 호르몬 요법에 돌입한 사람들이 알츠하이머병의 특징인 뇌에서 타우 단백질을 발달시킬 위험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호르몬 요법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낮출 수 있음을 시사했다.
새 연구 내용에 대해 대부분의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동의하는 추세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파인버그 의과대학의 산부인과 임상 교수인 로렌 스트라이처 박사는 “압도적인 다수 여성에게 호르몬 요법이 단기적·장기적으로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데이터는 매우 확실하다”며 “갱년기 전문가들은 특정 나이에 호르몬 치료를 중단하지 말라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