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계선지능 아동, 진단은 어렵고 사회적 배려는 부족해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픽셀즈
학습과 사회 적응 속도가 또래보다 더딘 ‘경계선지능 아동’이 겪는 어려움은 생각보다 깊고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은 지적장애 진단 기준에는 미치지 않아, 적절한 진단이나 지원 없이 학교와 일상에서 놓이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홍순범 교수는 “경계선지능 아동은 단지 학습이 느린 아동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존재”라고 말한다.
■ 경계선지능이란
지능지수(IQ) 70~85 범위에 해당하는 경계선지능은, 지적장애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또래에 비해 인지·학습 능력이 떨어진다. 최근에는 IQ뿐 아니라, 의사소통·사회성·자기관리 등 ‘적응 기능’ 평가를 함께 고려하는 방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계선지능 아동은 처음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입학 초기에는 학습 격차가 두드러지지 않지만, 점차 교과 내용이 복잡해질수록 이해력 부족이 두드러진다. 언어 발달 지연이나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또래와의 비교 기회가 적은 유아기에는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이들의 어려움은 단지 공부에 그치지 않는다. 놀이 규칙을 이해하지 못해 또래 집단에서 소외되고, 사회성 발달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부모와의 관계도 마찰이 잦다. 이해가 더딘 아이에게 부모가 답답함을 느끼며 꾸짖는 일이 반복되면, 아이는 자존감을 잃고 부모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도 생길 수 있다.
■ 치료보다 중요한 ‘맞춤형 교육’
홍 교수는 “경계선 아동에게 가장 필요한 건 ‘치료’가 아닌 ‘교육적 지원’”이라고 강조한다. 같은 속도를 강요하기보다, 아이의 수준에 맞춘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학습 내용의 이해 가능성과 정서적 안정감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또한 의사소통·사회성·생활기술 등 적응 기능을 키우는 훈련도 병행돼야 한다. 청소년기에는 진로상담과 직업훈련을 통해 자립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아울러, 우울·불안·ADHD 등 동반 질환에 대한 진단과 치료도 중요하다.
가정에서는 무엇보다 ‘기다려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놀이 규칙을 함께 연습하거나, 일상 속 소소한 성공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나친 기대도, 완전한 방임도 피해야 한다. 아이가 작게나마 성취를 이뤄냈을 때는 아낌없는 칭찬으로 자존감을 북돋아야 한다.
홍 교수는 교육 현장의 경쟁 구도를 이렇게 비유했다.“체급이 다른 선수가 링에 오르지 않듯, IQ가 140인 아이와 70인 아이가 같은 시험을 치르는 건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지능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이를 종종 간과한다.” 그는 “똑똑한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는 것보다, 느린 아이를 건강한 어른으로 키운 부모가 더 존중받는 사회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