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건강검진 결과지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는 중년 여성이 늘고 있다. 특별히 식습관이 나빠진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총콜레스테롤과 LDL(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눈에 띄게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기 쉽지만, 이 변화는 갱년기의 신호일 수 있다.
여성의 몸은 폐경을 전후로 큰 변화를 겪는다. 대표적인 것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급격한 감소다. 에스트로겐은 단순히 생식 기능에만 관여하는 호르몬이 아니다. 혈관을 보호하고, 지방 대사를 조절하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문제는 이 에스트로겐이 줄어들면서 시작된다. 에스트로겐이 충분할 때는 간에서 LDL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기능이 활발하지만, 갱년기에 접어들면 이 기능이 떨어진다. 그 결과 혈액 속 나쁜 콜레스테롤은 늘고, 심혈관 질환 위험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실제로 폐경 이후 여성의 심장병 발생률이 남성과 비슷한 수준으로 급격히 올라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시기의 콜레스테롤 상승은 단순한 수치 변화가 아니다. 몸이 보내는 일종의 경고 신호에 가깝다. 갑자기 뱃살이 늘고, 예전보다 피로가 오래 가며, 혈압이나 혈당까지 함께 오르기 시작했다면 갱년기 변화가 본격화됐다는 뜻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까. 호르몬 변화를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지만, 속도를 늦추고 위험을 줄이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그 출발점은 식탁이다.
갱년기 이후에는 ‘적게 먹는 것’보다 무엇을 먹느냐가 훨씬 중요해진다. 먼저 포화지방 섭취를 줄여야 한다. 삼겹살, 버터, 튀김류, 가공육은 콜레스테롤을 빠르게 끌어올린다. 대신 올리브유, 견과류, 아보카도처럼 불포화지방이 풍부한 식품이 도움이 된다.
식이섬유 섭취도 중요하다. 귀리, 보리, 현미 같은 통곡물과 콩류, 채소는 장에서 콜레스테롤 흡수를 줄여준다. 특히 귀리에 들어 있는 베타글루칸은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데 효과적인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단백질 선택도 바꿀 필요가 있다. 붉은 고기 대신 등 푸른 생선이 좋다. 고등어, 연어, 정어리에 풍부한 오메가-3 지방산은 혈중 중성지방을 낮추고 혈관 염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일주일에 두세 번만 꾸준히 먹어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콩, 두부, 두유처럼 식물성 에스트로겐(이소플라본)이 들어 있는 식품을 더하면 갱년기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이소플라본 섭취가 콜레스테롤 개선과 혈관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도 보고됐다.
물론 음식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가벼운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배가된다. 특히 근육량이 줄기 쉬운 갱년기 이후에는 운동이 사실상 ‘치료’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갱년기 이후 콜레스테롤 상승을 방치하면, 몇 년 뒤 심혈관 질환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 시기에 변화를 알아차리고 관리에 들어가면 충분히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콜레스테롤 수치의 변화는 몸이 보내는 신호다. 갱년기는 피할 수 없지만, 그 이후의 건강은 선택의 문제다. 식탁과 생활습관을 조금만 바꾸는 것만으로도, 숫자 뒤에 숨은 위험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