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남성복 디자인의 ‘국가대표’ 디자이너 장광효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

⑤남성복 디자인의 ‘국가대표’ 디자이너 장광효


‘디자이너’라는 직업에는 ‘카리스마’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패션계는 특히 그렇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미국 「보그(Vogue)」 편집장 ‘안나 윈투어’나 전 구찌(Gucci)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톰 포드가 그렇다. 까탈스럽고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는 그들은 세련된 ‘패션 피플’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그러나 장광효에게는 그 ‘과장된 카리스마’가 없다. 대신 나긋나긋한 말투와 순수한 감성이 자리 잡았다. ‘국가대표’ 남성복 디자이너이자 사려 깊은 남편인 디자이너 장광효를 만났다.


관용과 포용의 매력, 비합리적인 일은 ‘명상’으로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⑤남성복 디자인의 ‘국가대표’ 디자이너 장광효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⑤남성복 디자인의 ‘국가대표’ 디자이너 장광효

장기자 : 이번에 드라마 의상 디자인을 맡으셨죠?
‘국립수라원’. MBC에서 방영할 거 같아요. 휴가 다녀와서 감독과 통화했더니 MBC에서 프러포즈 와서 결정은 아직 안 났지만, 할 것 같다고. ‘국립수라원’은 전통 있는 학교예요. 원래는 고려 때인데, 2백 년 된 학교로 나와요. 젊은 스타가 40~50명 나오고, 나이 드신 분은 이계인씨와 유지인씨가 교장 선생님 같은 캐릭터로 나오죠. 그 옷을 맡아 하는 거죠. 제가 의상감독이니까. 학교니까 유니폼도 있고, 거기 출신이 영부인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귀족학교예요. 그러다 보니 럭셔리하고, 전통도 중요시하고. 음식을 다루는 학교니까 한국적인 것도 포함되어야 하죠.

장기자 : 영화나 드라마 의상 디자인하실 때 어려움은 없나요?
지금까지 뮤지컬, 드라마, 영화의상을 3백 편 만든 거 같아요. (속삭이며) 애로사항이 많지만 제가 많이 해봤기 때문에 잘 알고, 교통정리를 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잘해요. 오히려 제가 쉽게 그쪽에 맞추는 경우가 많죠. 출연자도 장근석, 고은아 젊은 애들이 40~50명 나온다는데. 제작사나 PD가 다 협조적이에요. 제가 연장자라 대우도 해주고(웃음). 이번 작품에서는 한 4백 벌 만든 것 같아요. 디자인 다 하고 샘플 다 만들어서, 얼마 전 제작발표회 했고, 이달(8월) 20일부터 메인 들어가요.

장기자 : 드라마나 영화의상 만들 때, 노력과 열정을 쏟을 텐데 그만큼 ‘보람’은 어떠세요?
언제나 열정에 비해서 결과는 미흡하죠. 오래 하다 보니 미흡하다 해도 제가 스스로 조절해요. 충격 안 받으려고. 하하.
정기자 : 충격이요?
이를테면, 처음에는 선생님께서 옷 해주시면 드라마가 빛날 거고, 좋은 드라마 될 거고 자막도 어떻게 해줄 거고 그래서 기대에 부풀어서 시작해요.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면 의상 협찬사가 열댓 개 되고, 마지막 스크롤도 천천히 올라가는 게 아니라 휙 지나가서 확인도 안 되고(웃음). 옛날 같으면 디자이너가 의상을 해주면 배우나 가수나 그 옷을 그대로 입었는데 지금은 스타일리스트가 다 있잖아요. 스타일리스트는 명품 브랜드와 밀접한 관계가 있죠. 처음에는 내 옷을 입혔다가 나중에 인기를 얻으면 명품 입혀요. 그럴 땐 너무 속상해. 하지만 세상이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고, 상처 안 받으려고 스스로 치유해버려요. 흐흐.

장기자 : 선생님은 모진 사람이 아닐 것 같아요.
모질지 못하다기보다, 저한테는 굉장히 정확해요. 스스로는 여유가 없죠. 정확해야 해요. 그래야 탁탁, 하는데. 다른 사람들하고 일을 하는데 내가 그렇게는 못하겠더라고. 이해와 관용, 포용이라고 봐야죠. 그래야 사람들이 편안하게 생각하니까. 처음에는 ‘바보 아니야?’ 하고 생각했다가도, 그런데 그건 아니거든. 내가 바보는 아니니까 오히려 더 좋아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정기자 : 이미 넘어서셨군요?
제가 한마디 해요. ‘이러이러한 건 내가 많이 가슴 아팠다’. (소근거리며)사실 별로 안 아팠는데, 가슴 아팠다고. 하하. 다음엔 이렇게 하지 마라. 그리고 내가 찍어주죠, 이러이러한 건 불편하지 않느냐. 네가 내 입장이 돼봐라. 이건 아니다. 그럼 죄송하다고 하고. 서로 풀어버리죠.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⑤남성복 디자인의 ‘국가대표’ 디자이너 장광효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⑤남성복 디자인의 ‘국가대표’ 디자이너 장광효

장기자 :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카리스마는 호통을 치거나 위압적인 게 아니라 조근조근 말로 푸는 스타일이네요.
말 안 하고 스스로 삭이는 게 카리스마가 아닌가 싶어요. 남한테는 가능한 한 결례를 안 하려고 해요. 내 스스로는 힘들 때가 있는데, 이기는 방법을 터득했죠. 어떤 일이 잘 안 되고 비합리적이다, 억울하다 생각이 들 때는 눈 감고 명상을 해요. 10분 정도 하면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용서가 돼요.


옳은 말로 직언하는 아내,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러워요”


정기자 : 언제부터 그런 게 가능하시던가요?
7~8년 전. 그 전에는 와이프한테 화내고 부수고 그랬어요. 공연히 짜증내고 그랬는데 와이프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죠. “그건 못난 거다. 바깥일은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와야지 집에서 바깥일로 화풀이하는 건 남자로서 못된 일이다. 그건 안 될 일이다. 난 그런 남편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장기자 : 멋지네요.

그럼, 어떻게 해요. 그건 아니라는데. 내가 스스로 고치고 삭이고 그렇게 터득한 거예요.

장기자 : 보통 남편들이 와이프 얘기는 순순히 안 듣잖아요.
(와이프가) 옳은 말을 하니까. 내 테이스트에서는 그게 맞구나. 맞는데, 맞는 걸 알면서 짜증낸 건 있어요. 그건 오래 안 가죠. 내가 인간이라면 고쳐야하고. 부부관계에서 가정은 정말 행복하고 질서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겠다’싶은 것은 얼른 고치게 되죠.

정기자 : 아내가 궁금해지네요. 어떤 분이 디자이너 장광효를 다독거리며 사는지.
제가 중심을 못 잡을 때는 와이프한테 얘기해요. ‘이런 일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해?’ 그럼 조언을 해주죠.

장기자 : 아내는 어떤 분이세요?
음대 교수(목포대 길애령 교수)예요. 그쪽도 예술을 하니까 저 못지않게 예민해요. 성악하는 사람이 의상하는 사람 못지않게 민감하거든요. 그런데 노래할 때만 그렇지 일상이나 부부관계에서는 본인이 그걸 잘 감수하고 드러내지 않고 편안하게 해요. 지혜가 있고 경우도 있고. 전 지혜가 좀 부족하고 약간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것 같아요, 직업상. 성격도 그렇고.

장기자 : 두 분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정말 그래요. 「레이디경향」 독자들이 신세대 주부들이 많잖아요. 제가 코멘트 하나 하고 싶은 건, 좀 더 부부가 조화를 이루어서 잘해야지 해로할 거 같아. 몇 년 전에 내가 40대 성공한 사람들 모임이 있어서 파티에 갔는데 전부 이혼 경력에 별거에 가정이 편치가 않아요. 저만 빼고. 그 집단에서는 ‘내가 정상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 와서 와이프한테 얘기했더니 막 웃더라고.

현대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자유롭고 싶고 새로운 사람 만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런 거에 앞서 더 큰 것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적응을 잘하고 평안을 유지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가정적인 평화나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노력 없는 행복은 없잖아요.

젊은 세대들은 글로벌화되고 인스턴트 좋아하죠. 사랑도 그렇고. 그건 굳이 옛날 노자 공자 안 찾아도, 옛 어른들이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중요시하면 나이 먹어서 인간의 행복을 느낄 수 있어요. 그게 가정이 아닌가 싶고.

장기자 : 보통 패션계의 사고나 행동이 자유분방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정반대예요. 저도 공부할 때는 자유분방했죠. 귀도 뚫고.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원하는 대로 옷도 입고. 그런데 세상 살고 나이 먹고 보니, 그게 다 단계인 것 같아요. 나도 패션계가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겪어보니까 구태여 그러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할 수 있거든요. 옷 디자인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어요.

작업하는 순간은 음악 틀어놓고 10대처럼 하죠. 어린 모델들과 같이 호흡하니까. 저는 50대인데, 마음은 10대예요. 누가 물으면 ‘제가 속이 없어서, 철이 덜 들어서’라고 해요. 반면 가정이나 대인관계는 너무 클래식해요. 모든 사고가 그렇죠. 술도 먹고, 밤문화 즐기고 그런 것은 선입견이죠. 저는 전혀 달라요. 술, 담배는 전혀 못하고. 9시 반에 출근해서, 7시에 퇴근해요. 저녁 먹고 개랑 산책하고 오면 한 10시 되고. 11시까지 책이나 신문 읽다 보면 11시 반쯤 돼서 졸려요. 눈이 슬슬 감겨(웃음). 그때 자야 해요. 그 시간 넘어가면 3시까지 잠을 못 자니까. 그때 딱 쓰러져 눈 뜨면 7시죠.

정기자 : 상상하던 톱 디자이너의 생활은 아니네요, 너무 규칙적인데요.
가능한 한 와이프 힘든 거 안 시키고 제가 다 해요. 그러니 일이 너무 많아. 가정주부야(웃음). 일주일에 한 번 마트 가서 장보고 생필품 사지. 각자 일을 하니까. 바빠요. 때때로 와이프 드레스 해줘야지. 구두 사줘야지. 핸드백 사줘야지. 우리가 1년에 네 번 여행을 가요. 음악하고 패션, 둘 다 예술하니까 멋지게 살자고 했죠. 아기는 갖지 말자고 했어요. 그게 지금까지 지켜진 거죠. 추석하고 구정은 가까운 곳. 여름, 겨울방학은 가고 싶은 곳에 가요. 4년 정도 그렇게 했지.

아이디어가 시작되는 그의 책상과 벽에 붙어 있는 사진들.

아이디어가 시작되는 그의 책상과 벽에 붙어 있는 사진들.

정기자 : 미니홈피를 보니 최근에 아내와 이스탄불을 다녀오셨죠?
내가 늙으면 이 친구랑 여행 못 다니겠다 생각했어요. 여행도 건강해야 하지. 시간과 돈도 있어야지. 늙으면 휴양지 가서 잠이나 잘 것 같더라고. 와이프가 너무 귀하고 소중해요. 지금도 자다가 화장실 갈 때 머리 만져봐요. 열이 있나 없나, 숨 잘 쉬고 있나 하고. 30~40대 주부들이 조금 양보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애정을 가지면 행복한 가정이 될 것 같아요. 좋은 집에서 빌딩 가지고 매스컴 타고 그러면 행복한가? 그건 한두 달이에요. 그 다음에는 돈, 건물, 그런 거 몰라요.

1년이면 와이프에게 몇 개씩 보석을 사줘요. 24년 전, 제가 해간 함이 꾀죄죄했대요 하하. 그래서 ‘돈 벌면 창피하지 않게 해줄게’ 했어요. 목돈 생기면 큰맘 먹고 좋은 보석을 사줘요. 근데 선물받았다고 좋아하는 건 일주일도 안 가요. 차지도 않고. 물질적인 것은 그런 거예요. 순간이죠. 늘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아침마다 행복하게 보내야지. 그런 생각이 가정의 평화를 줘요. 아내는 항상 내 의사 잘 들어주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고, 코멘트를 해줘요. ‘경솔하지 마라. 조심해라. 공인이니까 말, 행동 조심해라’. 처음에는 몰랐는데, 여행 가든 어딜 가든 나를 알아보니까 감사하게 생각하고 디자이너로 대중에게 더 가깝게, 따뜻한 마음으로, 좋은 옷 만들어야지 생각해요. 공인으로서 사회에 좋은 일 해야지 생각하니 이제 좋아요. 지금은 못 알아보면 왜 나를 모르지? 하고 내가 되물어요. 제가 좀 엉뚱한 데가 있죠? 하하, 봐줄 만해요.


디자이너 장광효의 각별한 인연, 그리고 준비 중인 책


장기자 : ‘장광효’ 의상 입는 친구들은 참 다양해요.
노홍철씨는 개인적으로도 친하고. 저한테 ‘형, 형’ 그래요. 형, 동생 하는 거 저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노홍철씨는 큰 소리로 형, 광효형, 이러면서 와요.

정기자 : 장근석씨도?
근석이는 모델로 나한테 데뷔를 했고. 이번에 ‘국립수라원’ 주인공이죠. 나한테 아버지라 그래요. 종씨니까. 그러면 저는 그러죠. 앞에 ‘작은’ 자만 붙여라. 하하.

저는 디자이너로서 럭키해요. 직장 다니다가 제 브랜드를 처음 차리고 압구정에서 작게 시작했어요. 첫 달에 한 6백만원 팔았어요. 지인들이 많이 도와줬죠. 그때가 87년 9월, 조용필씨가 정말 ‘날릴’ 때예요. ‘내가 그래도 디자이너인데, 남성복에 점을 찍는 디자이너인데, 조용필씨 같은 톱 스타가 내 옷을 입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벤츠가 우리 집 앞에 서더니 조용필씨가 내리더라고. 가슴이 뛰었어요. “방송국에서 옷 잘하는 사람 있다는 소문 들었다”고 하면서. 신나게 제 테이스트를, 끼를 부렸어요. 그때 단골이 지금까지 오고 있어요. 저는. 연예인들은 다 한 것 같아요. 안성기, 박중훈, 황정민씨, 비까지. 금난새씨도 17~18년 단골이에요. 정치인, CEO들도. 내가 보고 싶은 연예인, 신인 뜬다 하면 딱 와요.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⑤남성복 디자인의 ‘국가대표’ 디자이너 장광효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⑤남성복 디자인의 ‘국가대표’ 디자이너 장광효

장기자 : 여자 디자이너와 여자 연예인은 사이가 각별하잖아요. 남자 디자이너와 연예인 관계는 어때요?
여자가 훨씬 돈독하죠. 지춘희 선생님의 경우, 패밀리를 딱 싸고 있어요. 마트에 갔더니 연예인 세 명이랑 같이 시장을 보고 계시더라고. 여자들은 의리가 있어요. 근데 남자들은 여자를 좋아하죠, 하하. 저를 선생님으로 예우를 하지, 그렇게 밀접하지는 않아요. 여자끼리가 돈독하지. 현빈에게는 애착을 가지고 있어요. 돈독하죠. 강지환씨도 내가 데뷔시켰고. 이진욱씨도. 그렇게 셋이 가장 친해요. 그 친구들은 촬영하다가도 제가 같이 쇼하자고 하면 올라오고 그래요. 식구 같죠. 빈이 부모님도 저를 참 좋아하세요.

정기자 : 책을 쓰고 계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자서전 비슷한 에세이에요. 12월에 출간 예정이죠. 출간하면 이벤트도 할까 생각 중이고.

장기자 : 어떤 의도나 취지가 있으세요?
유명 인사들 책 내는 것이 다반사잖아요. 그것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 박 실장(박성목 장광효 카루소 기획실장)이 출판사 기획자를 데리고 와서 진지하게 얘기했어요. 재주 부리지 않고 인간적으로 하겠다. 디자이너들은 글보다 눈요깃거리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선생님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진지한 얘기를 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하자고 했죠. 화려한 것 없이, 인간적으로. 글을 좀 쓰는 사람이 봐도 괜찮다고 느낄 정도로. 몇 달간 준비했어요. 나도 궁금하고 창피해요. 제가 책 쓸 만큼 위대하거나 내면이 알찬 것도 아니고. 와이프한테는 비밀로 했다가 여행 가서 얘기했더니 ‘노(no)’ 했어요. 좋아 보여도, 그건 아니다. 책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안 하고 에세이식으로 할 거라고 했죠. 심사숙고하라고 조언했어요. 오점이 없도록. 그랬더니 그냥 정신이 바짝 드는 거야.

정기자 : 와이프께서 직언을 해주시네요. 섭섭한 적은 없어요?
처음에는 ‘어쭈 이거 봐라. 남편 알기를…’ 그랬죠. 그런데 저는 항시 옳고 그른 걸 금방 알아요. (처음엔 기분 나쁘다가도) 한 10분 정도 지나면, ‘저런 게 필요하긴 하지’ 하고 받아들이죠.

정기자 : 받아들이기는 해도 그 과정은 괴롭더라고요, 얘기했을 때 딱 아니라고 하면. 아무리 그게 맞는 말이라도요.

정말 사랑으로 직언해주는 건 와이프밖에 없다는 것을 아니까요. 정말 누가 보더라도 오점이 없게 쓰려고 해요. 과장되지 않게. 요즘 학벌 위조 너무 시끄러운데….

장기자 : 패션계에도 그런 분들이 있나요?
그렇겠죠? 보도 나오는 거 보고 나도 ‘내 학벌이 가짠가?’ 그랬어요. 나를 의심했다니까. 하하.

장기자 : 책에서만 처음 털어놓는 얘기도 있나요?
있죠, 서브 테마를 열댓 개 잡아서. 가정 생활이나 결혼 생활, 청담동, 강북과 강남, 독신 이야기 등 내 느낌대로 쓰고 있어요.


클래시컬(Classical)하고 금욕적인 생활, 대중 앞에 설 때의 장광효


정기자 : 장광효 선생님은 참, 신기한 사람이네요. 보통 패션 디자이너는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환상’ 같은 게 있잖아요. 일상도 좀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도 그런 게 좀 있는데, 좀 다르죠. 이를테면 헤어하는 제 친구는 자기 성에서 왕이에요. 가보면, 정말 왕같이 하고 있어(웃음).

저는 팝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전통적이고 클래식하고 귀족적인 면도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경직되고 금욕적이고 수도승 같고 가정적이고 그렇죠. 결론은 바른생활이죠. 옷도 마찬가지에요. 수도승처럼 바르게. 디자이너는 먹는 것도 보는 것도 굉장히 좋은 것을 취해야 그걸 소화해서 내뱉겠구나(옷으로 표현하겠구나) 하는 의무감이 있어요. 내가 술 마시고 밤문화 즐기고 그랬다면 아마 이 자리에 못 있을 거야.

정기자 : 정말 이 사람이 내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컨셉트와 가장 잘 맞는 사람이 있다면요?
MBC-TV ‘경제야 놀자’에 나왔던, 겉은 멀쩡한데 속은 완전 해진 금난새씨의 턱시도 기억해요? 그걸 수선하러 오셨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 제가 나중에 박물관 만들면 보관할게 저 주세요’하고 하나 새로 해드렸죠. 자기 일에 얼마나 정열적이면 이게 다 해질까. 정말 수만 번 열정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그 안감이 해지는 일은 없거든요. 내가 미안한 마음이 다 들더라고요. 감동 받았죠.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⑤남성복 디자인의 ‘국가대표’ 디자이너 장광효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인터뷰]⑤남성복 디자인의 ‘국가대표’ 디자이너 장광효

한번은 이런 적이 있어요. 영국 유학생을 둔 부모님인데 남매가 영국에 있어요. 누나는 의대 다니고, 남동생은 세인트 마틴에서 파인아트를 공부한대요. 어머니는 선생님이고, 아버지는 사업이 부도가 나서 막일을 하시는. 한 달에 학비랑 생활비가 천만원 정도 되잖아요. 영국이고, 또 의대, 미대니까. 그래서 어머니가 가정교사로 학비를 조달하고 계셨어요. 근데 아들이 ‘카루소’가 입고 싶다고 해서 가격을 물어보시더라고요. 2백만원인데, 그 말이 입에서 안 나왔어요. 그래서 ‘알아서 주세요’ 했지. 그랬더니 10만원을 주시더라고요. ‘어머니 옷 값이 10만원은 아닌데요’ 했더니 ‘나중에 주겠다’ 하시고는 여섯 번에 걸쳐서 60만원을 주셨어요. 그래서 나중에 아들 한국 오면 맛있는 거라도 드시라고 20만원을 내드렸어요. 원단 값이 60만원 정도 하거든요(웃음). 마음이 찡했어요. 부모님이 이렇게까지 해서 아이들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 1년에 학비만 2억이래요. 다 팔고 이젠 팔 것도 없다고 하시고. 숙연해졌죠.

장기자 : 장광효 의상을 홈쇼핑에서도 만날 수 있었어요. 의외였죠. 디자이너 브랜드를 홈쇼핑에서?
안 한 지 2년 정도 됐어요. 3년간 많이 팔렸죠. 그전에 제가 좀 어려웠어요. 그래서 IMF 때 사업을 많이 접었어요. 집도 팔고, 이 카루소 건물 하나 두고 다 팔았어요. 거지는 아니었지만 우울했는데, 어느 날 홈쇼핑 하자고 그러시더라고요. 당시 분위기가 일류 디자이너는 홈쇼핑 안 할 때였어요. 좀 ‘창피하다’ 이런 거. 그런데 기왕 할 거 제대로 한번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덤볐더니 한 시간에 12억씩 팔기도 하고. 난리가 났어요. 재계약하자고 하고. 많이 벌었어요. 이렇게 5년만 하면 테헤란로에 빌딩 하나 사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6월부터는 인터넷에서 판매를 하고 있어요.

정기자 : 선생님 보면 안 그러실 거 같은데, 굉장히 앞서 가시네요.
하하, 사람들이 나보고 너무 영특하다고 해요.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잘했는데, 영특하게 머리를 써서 한 건 아니고(웃음). 어느 날 인터넷 쇼핑몰 제의를 받았는데 내가 사실 기계치라 인터넷도 잘 안 하거든요. 그런데 고가 정책으로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이미지도 좀 높이겠다고 해서 했는데, 계속 대박이에요. 만드는 족족 다 팔리고.

정기자 : 스스로 ‘스타’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뇨. 남들이 스타라고 하니까 그러는 거죠. 어제 SBS에서 신인 디자이너 콘테스트가 있어서 두 번째 심사를 했어요. 나를 앙드레김 다음가는 디자이너라고 소개하더라고요. 하하. 저는 스타라고 생각을 안 하는데 스타 대우를 해주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스타보다도 더 중요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장기자 : ‘장광효’ 차세대 디자이너 계획은 있으세요?
가지고 있죠. 60정도 되면. 누구 하나 키워서… 지금 젊은 친구들 눈여겨보고 있어요.

정기자 : 선생님은 시트콤에 출연하거나 대중을 만나는 기회가 다른 디자이너 분들에 비해서 많았어요. 대중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간 셈이죠. 그런 과정이 옷 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중요해요. 그전에 내가 열심히 파리 컬렉션 하고 왔는데 아는 사람만 알지 잘 몰라요. 그런데 방송 한 7개월 출연하고 나니까 상황이 뒤집어졌지. 대중매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구나 느꼈어요. 정말, 정말 중요해요. 그러니까 디자이너들도 서로 방송 출연하려고 하는 사람 많죠. 그런데 시트콤처럼 파워는 없는 것 같아. 하하.

장기자 : 시트콤 출연은 굉장히 파괴력이 있었죠.
해외에 여행 가도 다 알아봐요. 다운 받아서 본대. 너무 좋아하시는 거야. 그런데 디자이너들도 시트콤 한번 해볼까? 그러기는 하는데, 난 ‘그걸 아무나 하나?’ 그래요. 하하. 받쳐줘야지 인물이. 인물이 혐오감, 비혐오감 있잖아요. 아무나 해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 일단 내가 한번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또 나와도 감이 떨어져(웃음).

정기자 : 선생님의 ‘무엇’이 시트콤에 얼굴을 비췄을 때 대중을 매료시켰을까요?
얼굴이 비호감은 아닌 것 같고요. 어렸을 때부터 잘생겼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내가 못난이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근데 키가 작으니까. 하지만 비호감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늘 자신감을 가졌고. 그리고 내가 너무 세속적이지는 않은 것 같애. 약간 엉뚱하고 나이에 비해 동안이고, 어리바리한 것 같은데 순수하고 안 웃긴 것 같은데 은근히 웃기고. 그런 게 어우러져서. 어떤 사람들은 늙다리가 개그맨으로 나와서 연기하는 줄 알았대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너무 유명한 디자이너인 거예요. 거기서 오는 시너지도 많아요. 너무 좋아하는 거야. 미니홈피에 내가 시트콤 할 때 거의 몇 만 명이 들어왔어요. 관리가 힘들더라고.

장기자 : 지금은요?
지금은 2백~3백 명 오는데,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어디 가서 밥을 먹으면 쑥덕쑥덕 하는 거예요. 뒤를 돌아보면 나를 보고 웃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시트콤을 생각하면 우스우니까, 그래서 웃은 것 같애. 전 좋아요.

정기자 : 차기작을 생각해 보신 적은?

‘동막골’ 감독 장진씨하고 친해요. 옷 하러 왔는데, 후기작 뭐 하느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뭐라고 얘기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장국영’ 한번 하라고 했어. 그거 하면 내가 주인공 하면 어떨까? 그랬더니 막 웃더라고요. 하하. 그냥 우스갯소리로. 멜로도 한번 해보고 싶고. 이건 그냥 우스갯소리예요. 디자인을 잘해야지. 후배 디자이너들 파리로 진출하는데, 저는 중국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문화도 비슷한 점이 있고. 중국 쪽으로 좀 해서 국위 선양을 해야 하지 않을까.


장광효가 손석희씨와 고등학교 때부터 친분이 두텁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둘은,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며 서로 “잘될 줄 알았다”고 한다. MBC 입사 시험 때도 함께였다. 손석희는 아나운서로, 장광효는 무대 미술 디자이너로 지원했다. 장광효가 말하는 손석희는 ‘들꽃 같은 친구’다. 냉철하게 비춰지는 방송 모습에 비해 착하고 순수하다. 며칠 전에도 함께 저녁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고 한다. “4시간 동안 수다 떨었지 뭐, 수다스러워 둘 다, 하하.”


정기자 : 지금 세상에 없는 사람 중에 만나고 싶은 사람 있으세요?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장광효는, 남자는 제임스 딘을, 여자는 코코 샤넬을 만나고 싶어 했다. “제임스 딘은 너무 좋아했고, 코코 샤넬은 디자이너니까.”

그가 제임스 딘을 만났다면, 20년 전 그의 압구정 숍에서 조용필씨를 만났을 때처럼 가슴 뛰며 옷을 지었을 게 틀림없다. 코코 샤넬과는 오랜 지기 손석희씨와 그랬던 것처럼, 디자인과 철학에 대한 ‘수다’를 몇 시간이고 풀어냈을지도 모른다. ‘장광효 카루소’를 입은 ‘제임스 딘’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지만, 관계없다. 코코 샤넬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괘념치 않는다. 한국에는 장광효가 있고, 그는 여전히 진행형이니까.

진행 / 장회정·정우성 기자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이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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