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0주년 맞은 김우식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부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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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과학기술인으로 사는 이유와 아내·자녀들에 대한 고마움과
젊은 부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평생을 과학기술인으로 살아온 한 남자가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에 온 열정을 쏟아 붓고 있는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이다. 김 부총리가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데는 부인의 공로가 크다. ‘가정보다 나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에게 서운한 게 많을 법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 사랑하고, 이해하고, 인내하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이 부부의 삶을 엿본다.


초등학교 때부터 과목 중 ‘자연’을 싫어했던 기자는 ‘과학’의 ‘ㄱ’자만 들어도 거부 반응이 이는 특이체질이다. 꼭 기자만큼은 아니어도 평범한 사람들에게 과학은 생소하고 어려운 분야임은 틀림없다.

결혼 40주년 맞은 김우식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부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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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소비하는 모든 것이 과학기술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쉽게 예를 들면 잡지 「레이디경향」의 매끈하고 질 좋은 종이도 과학기술의 원리와 연구에 의해 가능한 것이지요. 과학기술은 우리 생활 자체이며, 우리의 생활을 변화·발전시키는 기반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김우식(68)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의 말이다. 한평생 과학기술인으로 살고 있는 김 부총리는 일반인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잘 먹고 잘 사는’ 비결은 과학기술
올해는 과학기술부가 출범한 지 꼭 40년 되는 해다. 김 부총리가 과학기술 분야에 몸담은 지는 50년이 됐다. 김 부총리에게 2007년이 더욱 뜻 깊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문득 돌아보니 반세기라는 세월이 흘렀지 뭐예요. 그동안 한국은 경제적, 삶의 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초고속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과학기술이라는 성장 동력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 과학기술 인재들과 우리 과학기술부 직원들이 인생을 걸고 연구하고 일한 덕분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합니다.”

1957년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한 김 부총리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과학기술’이라는 한길만을 걷고 있다.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학과장과 학장, 연세대학교 총장을 거쳐 현재는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재직 중인 것. 김 부총리가 과학기술에 특별한 애정을 쏟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과학기술은 ‘국가의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50년 전의 한국을 되돌아본다면 지금은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발전을 이루었어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는지, 국민들이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하면 답은 하나, 바로 과학기술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다가올 미래는 공학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외숙부의 말씀은 진로를 고민하던 김 부총리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원래 화학을 좋아하기도 했던 김 부총리는 당시 화학공학이 가진 비전을 듣고 완전히 매료됐다. 화학공학의 기본 원리를 응용한 다양한 공정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로 인해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대학 생활 적응 못해 휴학할까 고민도
당시에는 무시험 추천제를 통해 대학 입학을 할 수 있었다. 충청도의 강경상고에서 전교 1등을 했던 김 부총리는 큰 어려움 없이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에 합격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대학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해서 학교 교과 내용이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친구가 없는 게 더 힘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서울에 있는 주요 고등학교 출신들끼리만 같이 다니는 문화가 아주 강했거든요. 특히 점심시간이 싫었어요.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가면 과 친구들이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던 기억도 나네요. 견디다 못해 나중에는 학교 뒷산에 가서 물을 마시는 것으로 점심을 해결하곤 했어요. 강의시간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봤고요. 정말 억지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방학이 되어 시골집으로 가면서 ‘방학이 끝나면 휴학을 하거나 그만둬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게 기대를 걸고 있는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둘 각오라면, 대학 생활에 한번 빠져봐야겠다고 결심했지요.”

김 부총리는 1년 반 동안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다. 글 쓰는 걸 좋아했던 터라 즐기면서 대학신문 기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 뒤로 공과대학 학우 회보의 편집을 맡아 책도 만들었다. 대학교 3학년 때는 화학공학과 학생회장으로도 활동했다. 4?9가 일어났던 대학 4학년 때는 ‘전국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학생회’를 출범시킨 뒤 초대 회장을 맡았다. 그 당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현재 우리나라 공학 교육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고.

결혼 40주년 맞은 김우식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부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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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재직 당시 학생들에게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습니다. 제 때만 해도 모든 게 참 어려웠으나 요즘은 그때만큼은 아니잖아요. ‘혈혈단신으로 시골에서 올라와 열심히 노력해서 총장 된 나도 있으니, 너희들은 더 열심히 공부해서 나라를 이끌어갈 훌륭한 과학도가 되라’고 당부하곤 합니다.”

김 부총리는 배운 것은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공부하는 노력은 혼자만의 것이지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사회와 역사이기에 열심히 공부해서 이룩한 성과를 꼭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김 부총리의 교육철학이기도 하다.

핵심 과학기술 확보와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 중요
1년 9개월째 과학기술부의 사령탑을 맡아오고 있는 김 부총리. 그가 그동안 거둔 성과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지식 기반 사회의 무한경쟁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핵심 과학기술을 확보해 미래의 성장 동력을 창출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과학기술 경쟁력은 두 가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략적인 연구 개발 투자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핵심 과학기술을 확보하는 것과 이를 담당할 과학기술 인재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 이 두 가지 부분의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사실 대학에서 이공계가 비인기학과가 된 게 한두 해는 아니다.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지도 꽤 오래됐다. 이공계 학생에서부터 연구자, 교육자 역할을 모두 경험한 바 있는 김 부총리에게 과학기술 인재 육성에 대한 고민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우리나라 이공계 문제는 예비 과학기술인과 현직 과학기술인이 가지고 있는 과학의 성장 가능성과 비전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집니다. 이에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 과학기술 인재들이 자신의 뜻을 활짝 펼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다고 결심했지요. 무엇보다 먼저 그동안 개별적이고 산발적으로 운영됐던 과학 인재 양성 사업들을 체계화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유년에서 황혼까지를 아우르는 ‘전주기적 과학기술 인력 양성 정책’이지요. 이 정책을 통해 이공계에 대한 전반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주기적 과학기술 인력 양성 정책은 ‘2088 인재지기’로도 불리고 있다. 2088 인재지기란 2세 과학 영재부터 88세 퇴직 과학 기술인까지 생애주기적인 지원을 통해 인재를 지킨다는 말이다. ‘이공’계 과학기술 인재들이 ‘팔팔’하게 공부하고 일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담고 있다.

“2088 인재지기는 교육, 연구, 취업, 은퇴 연구자 등 각 단계에 해당하는 정책 수혜자들에게 필요한 지원 사업을 총망라한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보다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입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이공계로 진출해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도록 힘껏 도울 것입니다.”

그 외에도 김 부총리는 할 일이 많다고 한다. 생명, 에너지, 환경 등 우리 공공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핵심 기술들을 확보해나가는 게 우선이다. 더불어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과학기술을 어렵지 않게 인식하고, 애정과 관심을 쏟을 수 있도록 과학기술의 대중화와 생활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아내 환갑 선물로 부부 음반 선물한 남편
반평생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온 힘을 쏟았을 김 부총리. 그의 가장 든든한 백이 ‘가족’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저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함께해야 할 순간에 함께 있어주지 못한 적이 많거든요. 특히 부인에게 고마운 마음이 가장 큽니다.”

지난 2003년은 김 부총리 부부에게 특별한 한 해였다. 부인 손덕(65) 여사의 환갑을 기념하는 의미로 부부 음반을 만든 것. 평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부인을 위해 김 부총리가 생각해낸 환갑 선물인 셈이다.
“부인은 성악을 전공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활동을 많이 했지만 저와 결혼한 뒤로는 내조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취미로라도 성악을 즐길 겨를이 없었어요. 저도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지라 환갑잔치 대신 기념음반을 내자고 했지요.”

음악실을 찾은 부부는 부인이 16곡을, 남편이 1곡을 불렀다. 김 부총리가 부른 곡은 애창곡인 ‘울고 넘는 박달재’였다. 김 부총리는 주인공은 부인이기에 자신은 ‘찬조출연’만 했을 뿐이라면서 웃었다.

“그 음반으로 부인이 40년 동안 가졌을 서운함을 한 방에 만회했습니다. 부인의 환갑기념 음반은 부인을 위한 선물이었지만 결국 우리 부부,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하게 됐답니다.”

결혼 40주년 맞은 김우식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부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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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자상한 남편’의 역할에는 다소 소홀한 김 부총리. 하지만 부인이 좋아하는 일을 적극 지지해주는 면모도 지녔다. 1년 전 만들어진 연세대학교 고위 여성 지도자 과정 음악 아카데미가 그것.

“예순이 넘은 할머니들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은 아주 대단해요. 매년 이탈리아 등으로 음악 테마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데, 테마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해에 공연할 노래의 가사를 모두 외운다고 해요. 치매 예방에도 아주 좋은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연세 음악 아카데미는 오디션을 통과한 사람만 멤버가 될 수 있다. 음악적인 실력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하는 것. 그러나 환자의 경우에는 노래 실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받아준다. 음악을 통한 치유의 효과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손덕 여사가 이끄는 연세 음악 아카데미는 매년 공연을 연다. 세 번째 공연은 올 11월 28일에 열린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와 가요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공연 수익금은 연세대학교 불우 학생들의 장학금과 연세대학교 근교에 자리한 초·중등학교 어린이 가장 돕기에 사용된다.

가정보다 나라가 더 중요한 남편과 살기
1968년 12월 결혼한 김 부총리 부부는 어느덧 결혼 40주년을 맞았다. “일이 최우선인 남편을 내조하느라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고 말하자 손덕 여사는 속내를 비쳤다.

“남편은 성공한 남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솔직히 그런 남편을 곁에 두고 있다는 건 부인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에요. 무엇보다도 평생 나라 발전을 고민해온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중매로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 초반에는 서로의 스타일에 적응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요. 지금은 괜찮지만요.”

김 부총리는 살가운 남편은 못 됐다. 자상하고 세심하게 선물을 챙겨주지도 못했고, 부인과 오붓하게 여행 한번 떠난 적이 없다는 것. 부인의 말을 듣던 김 부총리는 “마음의 선물은 많이 줬다”며 웃어넘겼다.

“연세대학교 총장 시절, 결혼해서 처음으로 지압을 해줬어요. 한두 번으로 끝났지만 감동적인 선물이었지요. 부부 동반 모임으로는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둘이서는 가본 적이 없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서운하다가도 남편의 말 한마디에 씻은 듯이 녹아버리곤 해요.”

김 부총리 부부는 아침저녁으로 아파트 근처를 산책하는 걸 즐긴다. 워낙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 김 부총리는 비가 와도 우산을 들고 산책할 정도. 둘 다 음악을 좋아하는지라 주말이면 함께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너무 쉽게 헤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부가 된다는 것을 신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물론 시대가 변하긴 했습니다만 옛말에 ‘결혼한 부부는 석 달 사랑하고, 삼 년 싸우고, 삼십 년 이해하는 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정도로 결혼 생활을 유지해나가는 게 쉽지 않다는 의미지요. 마음속으로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끼게 됩니다. 그리고 살다 보면 참는 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김 부총리의 말을 경청하던 손덕 여사가 말을 잇는다.
“40년을 살아본 경험에 의하면 사랑, 존경, 인내가 가장 필요한 것 같습니다. 험준한 일이 닥쳐도 인내한다면 그 고비를 넘길 수 있어요. 결혼할 두 딸에게도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인내하라고 말해줬어요.”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김 부총리는 슬하에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세 자녀 모두 잘 자라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두 딸은 모두 의사를 만나 결혼했다. 큰 사위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로 현재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다. 둘째 사위는 뉴욕에서 외과의사로 있다. 막내아들 역시 결혼 뒤 미국 애틀랜타의 조지아 공대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전공하고 있다. 자녀 셋이 모두 외국에 머물고 있어 적적할 것 같았다.

“세 아이들이 매일 전화해서 소식을 전하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는 줄 모르고 지내요. 추석 때 둘이 차례를 지내다 보니 그때는 좀 적적하더라고요.”

김 부총리는 자녀들에게 아주 엄한 아버지였다. 퇴근 뒤 집에 들어왔을 때 현관에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지 않으면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한번은 아들이 시험 성적에 대한 부담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장이 꼬여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아버지가 엄했던 반면 어머니는 자애로웠다. 아이들에게 ‘아니오’라는 말 한번 한 적 없을 정도. 김 부총리는 아내를 “희생정신이 아주 강한 어머니”라고 말했다.

“아들이 건축에 관심이 많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결국 화공을 택했어요. 아들이 지금은 그때 아버지의 말씀대로 하기를 잘했다고, 아버지 말씀대로 ‘화학공학이 공학의 꽃’인 것 같다고 말해요. 하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안 된 마음이 들어요.”

가끔 자녀 교육이 힘든 적도 있었지만 세 자녀는 모두 잘 커주었다. 특히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과학기술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김 부총리의 자녀 교육 노하우를 들었다.

“저는 집에서도 ‘공부해서 남 주라’는 말을 합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되 꼭 남한테 도움이 되고, 사회가 발전하는데 힘을 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지요. 아이들이 착해서 그런지 제 뜻을 잘 따라주었습니다. 항상 가까이에서 대화하며 세세한 조언을 주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이 ‘내 삶을 보고 배우는 바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김 부총리는 요즘의 젊은 부부들에게도 조언을 잊지 않았다. 자녀 교육 광풍에 대한 우려에서다.
“아이들 교육에 있어 인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나만 잘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됩니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거기에 전문 교육이 더해져야 합니다. 자기가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인성 교육 없이 전문 교육만 하면 모두 로봇이 되어버릴 겁니다.”


학부모들이 과학기술인 육성에 관심 가졌으면
인터뷰 말미, 김 부총리는 과학 영재 교육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리나라는 요즘 ‘영재 열풍’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학부모들의 영재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러나 영재를 발굴해서 꾸준히 성장시키려면 가정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김 부총리는 성공적인 과학 영재 양성을 위해서는 영재의 조기 발굴은 물론이고 최적화된 단계별 교육을 통한 지속적인 성장이 보장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이하 아동의 경우는 3단계 심사를 거친 뒤 영재로 판별되면 과학 신동 프로그램에서 영재 교육을 받게 됩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주말과 방학 동안 전국에 설치된 과학영재교육원, 고등학생은 과학영재학교와 과학고등학교를 이용할 수 있고요. 대학생은 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생은 광주 과기원 같은 특화된 교육기관을 통해 지속적인 교육이 가능하도록 체계를 갖추고 있답니다. 송유근 학생과 같이 특별한 경우에는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신장시킬 수 있도록 전문가를 배정해 1:1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또래 학생들과의 사회성 함양을 위해서 예능 등 교양 교육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부총리는 인터뷰 중 간간이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국가와 기업, 어떤 작은 조직과 가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재라는 것. 이에 독자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창조적인 이공계 인재들이 각 분야에서 크게 성공하고, 국가에 기여하는 과학기술 인재들이 주목받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사회가 더욱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압니다. 과학기술 분야의 영재를 발굴하고 자녀를 교육시키는 중심은 학부모님, 바로 「레이디경향」의 독자님들입니다. 독자님들은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대한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과 의지를 믿어주십시오. 당장의 이공계 문제라는 화두보다는 좀 더 넓은 시야로 자녀의 과학적 재능을 키워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민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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