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아요. 목표에 대한 확신과 추진력이 생겼어요”
‘직업상담사’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직업을 소개하는 사람인지, 적성을 찾아주는 사람들인지 아리송하다. 여성가족부 지정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홍종선씨(44)는 한국 직업상담사 1세대다. 두 명의 멘티가 그의 경험과 비전을 나눈다.
‘직업상담사’라는 직업은
직업상담사라는 말이 한국에 처음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8년, IMF 직후다. 취업이 어려워지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취업’은 시대의 화두가 됐다. 노동부는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홍종선씨가 주로 만났던 내담자(상담을 받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형편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 가정, 이혼 가정의 여성들이 많았다. 취업정보를 전달하고 경제적 어려움의 해소를 돕는 데 힘을 보탰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경험이 쌓일수록 직업상담사의 역할이 단순한 ‘직업소개’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실제로 내담자들의 속내는 쉽게 알 수 없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위축된 마음의 벽은 높았다. 그들의 속내는 상담을 시작하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들을 수 있었다. 홍종선씨는 정보 전달보다 마음을 보듬는 법을 아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직업상담의 한계를 느끼고 ‘정서지원’의 필요성을 절감한 시점이다.
“직업상담사로 시작했지만 1년 정도 지나자 모자람을 느꼈어요. ‘심리상담’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김현정 멘티도 직업상담과 심리상담을 같이 공부하고 있어요.”
대학에서 낙농과 컴퓨터를 공부한 홍종선 멘토는 졸업 후 ‘서울어머니학교’에서 일했다. 어머니들의 문해(문자해독, 이제 ‘문맹’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교육에 힘을 쏟았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1997년, 갑작스러운 부친상(父親喪)을 계기로 그는 ‘밥벌이’를 시작해야 했다.
“취업은 해야겠고, 그동안 해온 일을 생각해보니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사람들끼리 연결시켜주는 일이었어요. 마침 ‘직업상담사’라는 말이 돌고 있었죠. 상담이라면 재미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죠. 처음 만났을 때 걱정으로 생기 없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 보여요. 그렇게 변해가는 내담자들을 보면, 이 일 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월급날은 좀 짜증이 나죠. 정말 잠깐, 잠깐 동안요. 제가 순 빚으로 공부를 했거든요(웃음).”
직업에 대한 고민에서 ‘직업상담사’의 길로
유정은 멘티(31)는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했다. 졸업 후 영업 관리직으로 일했지만 늘 회의를 느꼈다. 통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고비는 3년 후에 찾아왔다. 더 이상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직장에 몸담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다니기 싫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죠. 친구들도 마찬가지예요. 좋아하는 일을 해야 기뻐서 하는데, 회사를 다니는 것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런 고민을 하다가 결혼을 했고, 일에는 미련이 없었어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던 그에게 ‘직업상담사’의 세계가 찾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몰라 방황했던 경험이 그를 ‘직업상담사’의 길로 인도했다. 항상 상담에 관심이 있었고, 직접 배워보니 재미도 있었다. 지금은 오는 11월에 발표되는 직업상담사 자격증 시험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고등학교 때 대학과 전공을 고르는 데는 적성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어요. 선생님은 점수별로 정리돼 있는 배치표를 줄자로 가리고 진학 가능한 대학과 전공을 고르라고 했죠. 적성검사 한 번 해본 적이 없어요.”
직업에 대한 고민은 김현정 멘티(31)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1999년에 졸업했다. 1999년 당시 취업준비생에게 직장을 고를 여유는 없었다. IMF의 여파로 여전히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졸업 당시 그는 ‘별다른 고민 없이’ 합격한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외국계 회사였다. ‘영어’를 쓸 수 있는 회사라면 좋다고 생각했다. 2년 후 회사는 해외로 이전했고, 그는 다른 외국계 회사에 새 둥지를 틀었다.
“전자계산을 전공하고 두 번째 회사에 6년 넘게 다니고 있어요. 임원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에는 만족하고 있지만, 이제는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영업 쪽에서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으면 승진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잖아요. 나가라는 사람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위축될 것 같아서. 미리 생각하고 행동에 옮겨서 여유를 찾고 있어요.”
고민 끝에 커리어컨설팅 회사를 찾아간 것이 2년 전이었다. 적성검사 결과는 ‘직업상담’이었다. 이후 각종 세미나를 듣고 책을 보고 혼자 공부했다. 자신을 스스로 탐색하고 분석하는 기간이었다. 지금은 ‘직업상담사’를 목표로 심리상담과 관련한 대학원 진학을 고민 중이다.
그들의 만남 이후는
“막막했어요. 등불 하나를 들고 밤길을 헤매는 느낌이었죠. 멘토를 만난 후에는 밝은 마을을 찾은 느낌이에요.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도 생겼으니까요.” - 유정은 멘티
김현정 멘티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목표에 대한 확신과 추진력을 함께 얻었다. 이들은 “나도 거쳤던, 하지만 별다른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스무 살의 고민’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직업을 고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활기를 나눌 수 있는 직업상담사가 되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직업상담사로 경력이 쌓이면, 중겙玆紵剋? 대학생들이 진로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강의도 하고 싶고.”- 김현정 멘티
“직업상담사 초기 멤버들이 정착을 위해서 했던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보고 있어요. 이젠 불안함보다는 확신이 커요. 저는 서른일곱 살에 시작했죠. 두 분 다 젊으시니까, ‘좀 실패하면 어때?’ 하고 과감하게 시작하는 것도 좋아요.”- 홍종선 멘토
길은 이미 열려 있다. 직업상담사라는 직업의 인지도도 높아지고, 처우도 차차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분야인 만큼, 개척하고 다듬을 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막 닦인 비포장도로를 가꿔가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 차세대 직업상담사인 멘티들의 몫이다.
●사이버 멘토링이란 온라인상에서 여성들이 삶의 지혜와 용기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만남의 시스템을 지칭한다.
●멘토란 멘토링 관계에서 역할 모델, 상담자, 교사, 후원자 역할을 하는 선배.
●멘티란 멘토로부터 다양한 조언을 듣고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 대화자.
●참여방법 위민넷(www.women-net.net) 홈페이지를 방문해 사이버 멘토링 회원 가입 신청서를 작성하면 내용을 기준으로 멘토와 멘티를 선정해 매칭해준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이성훈 ■장소협찬 / 커피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