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대한 얘기라면 밤을 샐 수도 있어요. 알수록 맛있는 술이죠”
요즘은 편의점에서도 ‘싸고 맛있는’ 와인을 판다. ‘와인 포차’에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삼청동 골목에는 몇 년 사이 와인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와인을 마시기 전, 잔을 비스듬하게 들고 불빛에 비춰 색깔을 감상하는 모습도 어색하지 않다.
만화 ‘신의 물방울’의 소믈리에들이 와인을 마시는 모습은 자극적이다. 와인 한 모금에 밀레의 ‘만종’을 떠올리고, 온갖 과일 향에 ‘감춰진 낙원’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림을 떠올린다.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와인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에는 충분하다. 그래서 전문 소믈리에에게 물었다. 와인을 마시고 그런 감상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론 과장된 점이 많죠(웃음). 하지만 와인을 마시면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향에 대한 묘사는 틀리지 않아요. 바닐라나 견과류, 산딸기, 버섯의 향도 느껴지거든요. 이 정도는 조금만 공부하면 다 느낄 수 있습니다.”
와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소믈리에라는 직업도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영어로는 ‘와인 웨이터(Wine Waiter)’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웨이터’와는 영역이 다르다. 와인의 구매, 관리, 감별부터 서비스와 마케팅까지 총괄하는 사람이 소믈리에다.
“와인의 특징을 잡아내고 어울리는 음식을 추천하기도 하면서 고객 만족을 극대화하는 사람들이 소믈리에죠. 매장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소믈리에 김창용씨(59)는 지금 동양공전에서 와인을 가르친다. 서울시의 산학협력사업의 일환인 ‘중소기업 맞춤형 현장기술 인력 양성 사업’의 ‘소믈리에 과정’을 맡고 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와인을 배우기 시작한 지는 10년이 됐다. 지난 2000년, 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소믈리에 학교 CAFA에서 공부했다. ‘CAFA(꺄파)’는 프랑스에서 포도 재배와 양조 분야에 명성이 높은 전문학교다.
“와인은 지금도 재미있습니다. 와인에 대한 얘기는 밤을 새워서도 할 수 있어요(웃음).”
와인 즐기기의 첫걸음은
와인은 복잡하고 어렵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포도가 재배되는 지역의 특성에 따라,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의 기술에 따라, 숙성 정도에 따라 개성이 도드라지는 술이 와인이다. 방금 잔에 따른 와인의 맛과 몇 분 지난 후의 맛도 다르다. 사람의 개성처럼 독특하고 다양하다.
“와인을 제대로 즐기려면 공부를 좀 하는 것이 좋아요. 그래야 제대로 맛을 느낄 수 있고, 표현도 할 수 있죠.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문화고, 에티켓입니다.”
‘와인은 비싸다’는 말은 이제 편견이 됐다. 편의점에 가면 싸고 맛있는 와인이 가득하다. 전문적인 지식은 아니더라도, 안내원의 추천을 받으면 좋아하는 맛을 고를 수 있다. “쓴 것 보다는 달콤한 게 좋아요”, “달콤하게 넘어가지만 끝 맛이 강한 걸 찾고 있어요”라는 말로도 구미에 맞는 와인을 고를 수 있다. 이제 막 와인을 마시는 ‘초보’라면, 굳이 비싼 와인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가격 대 성능비’가 우수한 칠레나 이탈리아 와인으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진열대에는, 몇 배나 비싼 프랑스 와인 부럽지 않은 맛과 향을 지닌 ‘물건’들이 숨어 있다.
예를 들면, 당분간은 ‘까베르네 쇼비뇽’만 골라서 맛을 보는 식이다. 까베르네 쇼비뇽은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주로 나는 포도의 품종이다. 약간 푸른색을 띄고 있는 적포도로, ‘타닌’이 강해 떫은맛이 난다. 생산지에 따라, 생산년도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양하게 마셔보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품종이라도 프랑스와 칠레 와인은 다르다. 그 차이를 느끼기 시작하면, 점점 재미가 붙는다. 실제로 까베르네 쇼비뇽은 처음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즐겨 마시다 결국은 흠뻑 빠지고 마는 매력적인 품종이다.
Tip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샤또 마르고 와인
소믈리에 김창용씨가 처음 샤또 마르고를 방문한 것은 지난 2001년이었다. 샤또 마르고는 와인으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와인을 둘러싼 역사 또한 흥미로운 곳이다.
세계2차대전 직후, 전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서독 총리가 독일과 프랑스의 우호 증진을 위해 방문해 양국 정상이 만난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히딩크 국가대표팀 감독이 “우리는 아직 배가 고프다”며 마시고 싶다고 했던 와인 또한 샤또 마르고이다.
헤밍웨이는 와인에 대한 애착이 유달리 강한 작가였다. 샤또 마르고 와인을 너무 좋아해 손녀의 이름을 ‘마르고’라 지었을 정도다. 그는 “와인은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것”이라고 예찬했다.
샤또 마르고는 지롱드 강 어귀에 자리한 지역이다. 자갈의 평지와 석회석, 점토로 구성된 토양은 배수가 훌륭하고 태양열의 보존이 뛰어나다. 점토 성분은 지하수를 보존하고, 자갈과 진흙은 포도 재배에 이상적인 토양 조건을 제공한다.
특히 2000년산 샤또 마르고는 풍부한 매력을 가진 와인으로 그 맛이 향기롭고 우아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잔에 담긴 샤또 마르고는 짙은 루비색, 가장자리는 자줏빛 뉘앙스가 선명하다. 블랙베리, 감초, 미네랄 향은 마음을 사로잡고 잘 익은 과일 향은 비강을 압도한다. 전체적으로 꽉 찬 느낌과 긴 여운이 사랑스럽다.
■ 글 / 정우성 기자 ■자료 제공 / 김창용(소믈리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