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5세인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그린 자화상이 공개됐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동성중·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전에서다. 김수환 추기경의 자화상 ‘바보야’를 통해 그가 전하는 참뜻을 헤아려본다.
오랜만에 김수환 추기경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0월 1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열린 동성중·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전에서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1941년, 동성중·고등학교의 전신인 동성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인연으로 기념전에 참석하게 됐다.
“추기경님이 연로하셔서 몸 상태가 좋지만은 않아요. 다행히 오늘 컨디션이 좋으셔서 이렇게 기념전 개막 행사에 참석하시게 된 거지요.”
이번 기념전의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익대 미대 한진만 학장의 말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컨디션이 좋은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후배들이 정성스레 마련한 의미 있는 전시회이기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라도 참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번 전시에 드로잉 14점과 평소 아끼던 글을 쓴 판화 7점을 내놨다. 모두 지난 5월 30일에 그린 작품들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이번에 처음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동성중`?고등학교 동문인 후배 셋이 찾아와 그림을 청했기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동문들의 마음을 모아서 만든 기념전이므로 뭘 그려도 그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추기경님께서 머물고 계시는 서울 헤화동의 주교관에서 5월 30일에 그리셨어요. 아주 즐거운 분위기에서 그리셨답니다. ‘이런 거 그리시면 어떨까요’라고 제안드리기도 하면서요. 추기경님께서 연로하셔서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유성 파스텔을 오래 못 들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중간 중간 쉬시는 동안 팔을 주물러드리곤 했어요. 몸은 불편하셔도 정신은 얼마나 맑은지 모르세요. 유머 감각도 뛰어나시고요.”
정직하고 성실하게, 어려운 이웃 도우며 살아야
전시회 개막 행사가 시작되기 20여 분 전,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의 자화상 ‘바보야’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해주었다. 동그란 얼굴에 눈, 코, 입 등을 단순하게 그린 그림이 자화상 ‘바보야’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김수환 추기경은 “‘아이고 미련스럽다. 이걸 무슨 작품이라고 내놨나’ 할 사람들이 많을 거다”라면서 부담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자화상 제목을 왜 ‘바보야’라고 쓰셨느냐”고 묻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자신을 가리키며 “바보같이 안 보여요?”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그는 “자화상 안의 내 모습이 바보같이 보인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그림 중에 뭐가 제일 마음에 드시느냐”는 질문에 그는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대신 판화에 적은 글귀는 모두 좋은 글들이라고. 이어 그는 자신이 판화에 적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구절을 읊조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게 괜찮은 삶인지, 귀감이 될 만한 말씀을 부탁드렸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거야 누구나 아는 얘기 아닌가”라면서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울 줄 알고, 양심적으로 살아야 해요. 그걸 실천하는 게 괜찮은 삶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1922년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1951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됐던 김수환 추기경. 그동안 좋은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었던 그가 이제는 그림으로 감동을 주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을 꼭 빼닮은 순수한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듯하다.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