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드라마는 꿈을 꾸게 했으면 좋겠어요.
외면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돌아볼수 있도록 말이죠”
‘상두야 학교가자’,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죽일 놈의 사랑’, ‘고맙습니다’ 등 수많은 인기 드라마를 집필해온 이경희 작가. 지난 연말에는 누구보다 바빴다. ‘고맙습니다’로 드라마 부문 한국방송작가상을 수상했고, 각종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드라마를 통해 많은 이들의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셔준 그가 들려준 사랑, 행복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인터뷰.
작가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만나보니 다른 것 같다.
- 보통 작가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 골방에 갇혀서 담배만 피울 것 같은 분위기….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도 “되게 깐깐하고 무서울 줄 알았는데 아니네”라고 한다. 작가를 괴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오히려 내 주위의 작가들은 다들 순둥이고 매우 고지식하다. 그래서 “우리는 진짜 사기 잘 당할 거야”라고 한다. 요즘 세대의 작가들은 다른 것 같다. 자기만의 문화도 갖고 있고.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를 좋아했나?
-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드라마를 좋아했지만, 전파도 잘 안 잡히고 공부도 안 한다고 부모님이 TV를 없앴다. 상대적으로 책을 많이 보게 됐다. 아버지 친구 분이 책 외판원이셨는데, 그 덕에 집에는 문고판 책들이 많았다. 그 책을 모조리 읽었다. 국어선생님이셨던 아버지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대학에서 광주 항쟁 접하고 가치관이 달라졌다”
국문과를 다닐 때는 어떤 꿈이 있었나?
- 교직을 이수해서 교사가 되고 싶었다. 작가를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방송반 활동도 했다. 그러다 우연하게도 최성실 작가를 소개받았고, 그분의 보조 작가로 일하게 됐다. 그때 많이 배웠고, 현장에서 직접 일을 익힐 수 있었다. 최 선생님과 4년 정도 같이 일하다가 단막극으로 입봉하고, 시추에이션 드라마를 하고, 지금까지 온 것이다.
방송반 활동도 했다니 방송에 관심이 많았나?
- 방송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작가를 생각하고 활동했던 것은 아니지만 방송반 활동은 분명 도움이 됐다. 대학에 들어가 광주 항쟁에 대해 처음 알게 됐고, 가치관이 바뀌었다. 1980년대였는데, 독재 치하에서 이념이 우선이었던 시기였다. 방송도 당연히 그런 색을 띠었다. 이념을 떠나서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그 시절에는 시보다는 성명서를 많이 읽었다. 순수 문학이 아니라 사회주의 문학에 심취했다. 당시 순수 문학은 사치였다.
그 시절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쓰지 않는 건가?
- 아니다. 드라마 ‘꼭지’ 때도 1970년대 이야기였지만 체제에 대항하는 형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부러 피해가는 건 아니다. 다음 작품인 ‘사계’에는 아마 그 시대에 관한 이야기가 일부 나올 것이다.
- 아니다. 책을 많이 읽었지만 여학생들이 즐겨 읽었던 할리퀸이나 만화는 읽지 않았다. 오히려 작가가 된 뒤 만화나 로맨스 소설을 읽게 됐다. 드라마는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야 하기 때문이다. 철학서나 자기 고백서, 일기장이 아니다. 순댓국집 아줌마도 알아들어야 하고, 8~9세 어린이도 알아들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만화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만화를 하위 장르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죽음은 삶과 연결되어 있다”
이제까지의 드라마는 지독한 사랑이 나오지만 그보다 더 절절한 가족애도 등장한다.
- 내 작품의 기본적인 모티브는 가족이다. 항상 작품은 멜로보다는 가족에서 출발한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도 무혁(소지섭 분)과 어머니 이야기가 없었으면, ‘상두야 학교가자’에서 상두(비 분)와 딸 보리 등의 설정이 등장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고맙습니다’도 마찬가지다. 그걸 배제하고는 쓰지 못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고 울었다. 작가도 극본을 쓰면서 우는가?
- 당연하다. 그 인물에 몰입하면 그렇게 된다. 힘든 장면을 쓰고 나면 몇 시간을 누워 있어야 한다. ‘상두’ 때도 상두와 은환(공효진 분)이 마지막으로 주고받는 대사들을 쓰면서 너무 힘들었다. “나는 네가 불행한 아이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돼. 너 때문에 내가 살았다.” 이 부분을 쓰고 나서 두 시간 동안 누워 있었다. 내 안에서 폭풍을 겪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무혁이 어머니가 끓여주는 라면을 먹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소지섭이 그 장면 촬영하고 나서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완벽했다.
이제껏 드라마의 결말은 대부분 죽음으로 끝났다. 집필하면서 혹시 살리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가?
- ‘이죽사’ 때 그랬다. 복구(비 분)한테 삶을 주고 싶었다. 살아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복구의 행복이겠다 싶었다. 나는 항상 캐릭터들이 가장 행복해할 수 있는 결말을 내렸다. 내가 이렇게 죽어서 억울하다고 항의한 캐릭터는 한 번도 없었다. ‘미사’의 무혁이도 어머니의 행복을 깨닫고 죽고, 태어나서 한 번도 자신의 뜻대로 살아보지 못한 은채(임수정 분)는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걸 선택한다. “이번 한 번만 나를 위해 살겠다”고 하면서. 자기만 위해서 이기적인 결론을 내린 거다. ‘이죽사’의 복구도 고맙다고 하면서 죽었고. ‘고맙습니다’의 미스타리(신구 분)조차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죽는다. 오히려 ‘죽이면 안 돼’ 하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죽음이라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또 다른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 다소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 같다.
- 이집트에 갔더니 무덤 아래 지하실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생과 사가 공존하는 것이다. ‘고맙습니다’에서도 미스타리가 죽음을 앞두고 “잠깐 갔다 오겠다”고 한다. 죽음을 미화시키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건 아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죽음은 끔찍하거나 끝이거나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있나?
-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내가 드라마를 작업할 때마다 절에서 백일기도를 하셨다. 여든 살이 넘으셨는데 ‘미사’를 할 때 백일기도 하시다가 넘어져서 그 뒤로 못 일어나셨다. 그리고 ‘미사’의 마지막 방송을 열흘 남겨놓고 돌아가셨다. 내겐 부모님만큼이나 특별한 분이셨다. 내가 드라마 작가가 됐을 때 누구보다 기뻐하셨던 분이다. 드라마가 방영되면 졸릴까 봐 커피를 두세 잔이나 마시면서 보시곤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을 고쳐먹었다. ‘할머니는 어딘가에서 나와 함께 계실 거다, 영원히 떠나신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막막한 아픔이 극복되더라. 이런 경험이 ‘고맙습니다’에 투영된 것 같다.
“이제껏 같이 일했던 배우들, 능력 이상의 실력을 발휘했다”
신민아, 공효진, 임수정… 모두 단순히 예쁜 것만이 아니라 개성 있고, 매력 있는 배우들이다.
- 맞다. 모두 끌어당기는 힘, 흡입력이 있는 배우들이다. 만날 사람들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공효진과 신민아, 임수정 이 세 배우가 굉장히 친하다. 비도 영화에서 (임)수정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됐다. 이미 다 정해진 드라마를 내가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캐스팅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 배역에 맞는, 인연이 되는 사람이 올 것이다. 그게 누구든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것이다.
기대 없이 뽑았는데, 기대 이상의 힘을 발휘한 배우도 있을 것 같다.
-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의 비다. 캐스팅됐을 당시 비는 연기가 처음이었고, 공효진은 워낙 연기를 잘한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때문에 비가 연기를 못하면 효진이 쪽으로 좀 더 치중해 끌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가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효진이조차 감탄했다. 나중에는 오히려 비 위주로 가게 됐다.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경우는 주연부터 조연, 꼬마까지 신들린 연기를 해서 놀랐다. 드라마 ‘꼭지’에서 원빈도 생각 이상으로 힘을 발휘한 배우다. 배우들이 무섭게 돌진하면 작가도 그 힘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대신 연기를 못하거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줄도 쓸 수가 없다. 드라마는 생물과 같다. 그런 면에서는 소설보다 드라마가 더 좋은 것 같다. 내가 하는 작업이 지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태어나는 것 같은 희열을 느낀다.
반대로 맘에 들지 않아 캐릭터를 죽여본 적이 있나? 시청자들은 중간에 캐릭터가 어이없이 죽으면 그런 생각도 한다.
- 아까도 말했듯이 죽음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지만, 가볍게도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 계획 없이 죽이는 일은 없다. 그건 무책임하고 굉장히 무서운 일이다. 글은 총이나 칼보다 더 무서운 무기인 것 같다. 요즘 공익광고에서 ‘악플이 가장 무섭다’고 하지 않나. 글을 쓸 때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그래서 ‘이 글에 대해 감당할 수 있나?’, ‘내가 뱉어놓은 말에 책임질 수 있나?’ 하고 생각한다. 내 글이 누군가를 고통받게 하거나 심장을 겨눌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는 순간부터 무섭다. 영화나 소설과는 달리 드라마는 누구든지 볼 수 있다. 죽음이 미화되어서 아무나 따라 죽는다든지 조폭 주인공 때문에 아이들 장래희망이 조폭이 된다든지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꿈을 꾸게 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
어느 정도 사회적인 이슈를 안고 있는 드라마를 집필했다. ‘미사’에서는 입양아, ‘고맙습니다’에서는 AIDS. 의도하고 있는 것인가?
- 나는 문제 제기를 할 뿐이다. ‘이렇게 해야 된다’가 아니라 그냥 보여주는 거다. 처음 작가를 준비할 때 ‘모래시계’가 인기를 끌었다. 그때는 ‘드라마 하나가 세상을 바꾸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쓴 드라마가 세상을 바꿀 수 있겠구나’ 했다. 그런데 생각이 점점 바뀌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 내 드라마를 보고 부모님께 따뜻한 내의라도 한 벌 선물하고, 형에게 ‘고마워’라고 말한다면 좋겠다. 미혼모나 치매 환자를 이상하고 ‘나쁘다’가 아니라 ‘다르다’라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 김은정 작가가 이런 드라마를 쓰길 바란다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느 꼽추 아이가 있었는데, 아이의 어머니는 꼽추를 개의치 않고 사랑으로 보살폈지만 그만 돌아가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맞이한 새어머니는 아이를 학대하고 이층 방에 숨겼다. 아이는 그때 ‘꼽추라는 것이 부끄러운 거구나’라고 깨달았다. 그리곤 죽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이층 방에서 뛰어내렸는데 등에서 날개가 돋아나 하늘까지 날아갔다.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네 등에 날개를 감추어두었다.” 그래서 아이는 “내 등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구나. 엄마가 날개를 숨겨놓았구나”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꼽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 드라마는 그래야 하지 않을까”라고 하셨다. 내 드라마는 꿈을 꾸게 했으면 좋겠다. ‘사랑이 어딨어?’ 하거나, 외면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드라마마다 목숨 걸고 하는 사랑이 등장한다. 본인의 사랑도 그런 것인가?
- 사랑은 모든 걸 다 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감히 사랑한다고 할 때 자신의 모든 걸 줄 수 있어야 한다. 사랑에 의해 상처받고, 모든 걸 잃게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다만 그 사람이 배신하고 떠났다고 해서 사랑이 아닌 거라고 절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서 한 사랑, 누구를 탓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할 동안 얼마나 행복했나, 그것만으로 감사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내 자신이 편해지더라.
드라마 작업을 하지 않을 때 일상이 궁금하다.
- 친구들을 만나고, 영화 보고 여행을 떠난다.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을 제일 좋아한다. 또 목욕을 굉장히 좋아한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목욕탕에 간다. 작업실과 목욕탕 두 군데만 다닐 정도다. 몸을 물에 담그고 있으면 굉장히 편안하다. 깔끔해지는 느낌도 좋고, 목욕하면서 나를 정리하게 된다. 자주 가는 스파가 있는데 그곳에서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난다.
사람을 좋아해서인가? 드라마가 따뜻하다.
- 나무는 어떤 햇빛, 어떤 물을 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이야말로 환경의 동물이다.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은 모두 따뜻했다. 가족, 친구, 배우… 내가 따뜻한 드라마를 쓰고, 누군가에게 등불이 됐다면 “내가 당신에게 기적을 주었다면 당신이 먼저 제 삶에 기적을 주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배운 대로 한다. 세상이 따뜻하고 넉넉하고 살 만한 곳이라고 알려준, 실망하지 않게 해준 사람들에게도 감사한다. 동료 작가들과 만나면 “사는 게 너무 행복하지 않니?”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너와 함께하게 되어서, 이 세월을 함께하게 되어서 너무 기쁘다”고. 그런 힘들이 내 드라마의 원천이다.
만일 인생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 그런 상상 많이 해봤다. 수정할 것 투성이다. 그런데 돌아가서 다시 살라고 하면 똑같이 살 것 같다. 내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때 좀 더 공부를 많이 할 걸 후회하지만, 그때 열정이 없었으면 오늘의 내가 없다는 생각도 한다. 좋은 경험이건 나쁜 경험이건 다 거름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아직 결혼도 못했고, 내 또래처럼 평범한 생활을 누려보지 못했다. 대학 때 꿈이 현모양처였고, 형제가 없어서 결혼하면 축구단 만들 생각이었다. 많은 걸 못했다. 아쉬움은 있지만 다 가질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때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만일 수정한다면 드라마가 아닐까? 돌아가서 쓴다면 더 잘 쓸 것 같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민영주 ■장소 협찬 / 카페 ‘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