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롱-티보 콩쿠르 그랑프리 차지한 김준희 & 어머니의 특별한 학습법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 그랑프리 차지한 김준희 & 어머니의 특별한 학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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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다고 하면, ‘돈 많이 들었겠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프랑스에서 열린 롱-티보 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 신예 피아니스트 김준희는 이러한 통념을 단번에 깼다. 유학파도 아니고, 부잣집 아들도 아닌 평범한 소년이 국제 콩쿠르에서 성공하기까지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 그랑프리 차지한 김준희 & 어머니의 특별한 학습법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 그랑프리 차지한 김준희 & 어머니의 특별한 학습법

롱-티보 콩쿠르 그랑프리(2위)를 차지한 김준희(17). 거창한 타이틀과 달리 그는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어엿한 대학생이 됐지만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이다.

“우승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어요. 예심에 통과한 것도 신기했고, 1차만 붙어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죠. 청소년 대회는 경험이 있었지만, 성인 자격으로 나가는 콩쿠르는 처음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모두 처음 연주하는 곡이었죠. 욕심 없이 나의 음악적인 면만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그런 점을 더 높이 평가한 것 같아요.”

준희에게 이번 대회 상위 입상만큼이나 기쁜 일이 있었다. 바로 소년의 영웅이었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아내 윤정희씨와 함께 응원을 해준 것이다.

“꿈만 같아서 처음에는 아무 말도 못했어요. 같이 식사를 하는데 그분이 제 이름을 부르는 게 정말 꿈만 같았죠.”
대견하게 아들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말을 거든다.

“우리는 1차만 통과하면 목표 달성이라고 생각했어요. 6명을 뽑는 1차에 통과해 ‘6등 안에 들었으니, 편안하게 하라’고 했죠. 그래서인지 1등을 하려는 욕심을 보이지 않고 편안하게 연주했대요. 물론 본선으로 올라갈수록 진지함을 보였죠. 대회에 참가한 청중 중 어떤 분은 ‘네 음악이 무척 좋았다. 다음 음악은 듣지 않고 가겠다’고 하셨대요.”


음악적 재능을 발견해 방향을 잡아준 어머니
준희는 어린 시절 무척 극성맞은 아이였다. 엄마 등에 업히지 않으면 온 집 안을 헤집고 다닐 정도였다. 그런 그가 달라진 건 다섯 살이 되던 해 피아노를 만나면서부터였다.

“극성맞은 아이가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얌전해졌어요. 어느 날 혼자 노래 멜로디를 외워서 치더라고요. 준희 형이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서는 레슨비를 따로 받지 않겠으니 준희를 그냥 보내라고 했어요. 그 또래 아이들은 잘 배우지 못한다면서요. 놀러 다니라고 별 기대 없이 보냈죠. 그런데 예상외로 정말 열심히 배우더라고요.”

준희는 피아노와 함께 바이올린도 배웠다. 그러나 피아노와 달리 바이올린은 악기비만 해도 만만치 않은 탓에 곧 피아노에만 집중했다. 준희는 음악에 관련된 건 모두 잘했다. 노래도 잘했고, 시 낭송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개인 레슨을 받았어요. 레슨이 끝나면 시키지 않아도 혼자서 그 다음 부분을 예습했죠. 진도가 빨랐어요. 그렇게 1년을 배우고 난 뒤 콩쿠르에 도전했어요. 결과는 실패였죠. 준희가 그 충격으로 밥도 먹지 않고 3시간이나 울더라고요. 어린 나이에도 그만큼 욕심이 있었던 거죠.”

준희는 피아노 앞에 앉으면 몇 시간이 지나도 일어날 줄 몰랐다. 이 덕분에 겨울에도 엉덩이에 땀띠가 가시질 않았고 팬티는 늘 아랫부분만 닳았다.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 그랑프리 차지한 김준희 & 어머니의 특별한 학습법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 그랑프리 차지한 김준희 & 어머니의 특별한 학습법

“사람들은 극성맞은 아이가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180도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놀라더라고요. 집 안에서 음악을 한 사람은 전혀 없어요. 그래서 다들 준희를 보고 돌연변이라고 하죠.”

피아노를 제일 좋아했던 준희에게도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학원을 다니거나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을 때였다.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연습하고, 저녁 먹고 10시까지 연습했어요. 어머니는 제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시곤 친구들과 놀려는 저를 데리고 올라가셨죠.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친구들하고 마냥 놀고 싶어서 1년 동안 연습을 안 하기도 했어요. 5학년 때는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투정부리기도 했고요.”

어머니는 “네가 공부를 하면 1등을 못하는데, 피아노는 1등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준희를 달랬다. 악역을 담당하는 것도, 연습 의지를 불어넣은 것도, 아이의 스트레스를 적당히 풀어주는 것도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예술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시간을 정해놓고 매니저처럼 연습을 시켰어요. 소풍도 안 가고 물론 휴가도 안 갔죠. 아이니까 노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연습만 하는 게 너무 안되서 매일 밤 10시까지 연습시키고 그 이후에 공원에 나가 둘이 놀았어요. 늦게까지 문을 여는 서점에들러 책도 사주고요. 쉬는 날이면 친구들을 모아 함께 놀게 해주었어요.”


“공부든 음악이든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 중요해요”
준희가 몇 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할 때, 어머니는 늘 아들 곁에 앉아 있었다. 아들의 연주를 들어주고, 악보를 넘겨주기도 했으며 때로는 연주에 대한 조언을 했다. 덕분에 그는 지루하지 않게, 외롭지 않게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럴수록 어머니에게 개인 시간은 거의 없었다. 모임에도 나갈 수 없었고, 집안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준희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가 잠깐 외출한 뒤 돌아와보니 아들이 혼자 연습을 하고 있었다.

“혼자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내가 없어도 연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에 대한 믿음이 생긴 거죠. 그때부터는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연습을 하더군요.”
어머니의 말에 대해 준희가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다.

“처음부터 혼자 알아서 하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요. 어느 선까지는 억지로라도 시켜서 틀을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죠. 그 시점은 사람마다 다르죠. 스스로 하는 걸 일찍 터득하면 좋은 거고요. 어느 시점부터는 내 욕심 때문에 연습을 했어요. 곡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곡을 더 잘 연주하고 싶어서 연습을 하게 되는 거죠.”

준희의 실력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다. 피아니스트 이경숙씨에게 레슨을 받을 때였다. 중학생인 그에게 이경숙은 스스로 곡을 해석해오라고 시켰다. 그 전까지만 해도 스승의 해석을 받아 연습하는 것에 그쳤던 그에게는 눈앞이 캄캄해질 만큼 두려운 주문이었다.

“그때부터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아요. 스스로 연구하고 연습하는 법을 터득했죠. 당장은 티가 나지 않았어요. 왜 하나 싶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이만큼 와 있더라고요. 어느 날 갑자기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하면서 된 것 같아요.”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 그랑프리 차지한 김준희 & 어머니의 특별한 학습법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 그랑프리 차지한 김준희 & 어머니의 특별한 학습법

준희가 스스로 찾아서 하는 건 피아노만이 아니었다.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성적이 평균 90점 이하로 떨어져본 적이 없었다. 공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새벽까지 보충을 했다. 스스로 연습하고 공부하다 보니 따로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음악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필수인 작은 선생님(연습 선생님)도 두지 않았다.

“음악을 공부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돈이 거의 들지 않았어요. 보통 음악을 전공하더라도 입시학원을 다니거나 연습실을 빌리고, 작은 선생님도 두죠. 그래서 돈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준희는 학원을 다녀본 적도 없고, 남들이 합숙해서 연습할 때도 연습실을 빌려본 적이 없어요. 저는 아이가 피곤할까 봐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온 것밖에 한 게 없어요. 레슨 받고 나오면서 선생님이 지도했던 부분을 수첩에 꼼꼼히 적어서 연습할 뿐이에요. 서민적이고 평범한 아이죠.”

연습실은 보통 아이들의 독서실과 같다. 그런데 준희는 어려서부터 집에서 연습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3, 4시간, 콩쿠르 있을 때는 6, 7시간 정도 연습해요. 연습은 집에서 해요. 학교에서는 아이들하고 놀기 바쁘지만, 집에 오면 집중이 돼요. 어려서부터 집에서 연습해왔으니까요. 집에서는 TV를 보더라도 연습할 시간은 나던 걸요.”

다른 아이들처럼 예민하지 않았다는 점도 준희의 장점. 그는 오히려 어머니가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고 평가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이 연구한 부분이 있으면 어머니에게 들려주며 의견을 묻기도 한다고.


“1등보다 2등이 더 좋아요”
최근 국내파 음악인들이 뜨고 있다. 한국에서만 공부해서도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할 수 있을 정도로 국내 음악 교육 여건이 많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클래식 음악을 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유학은 꼭 거쳐야 할 필수 코스라는 점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한국에서만 공부했던 준희에게도 유학은 큰 유혹이었다고 한다.

“유학이 정말 필요하긴 해요. 조기 유학 가는 친구들도 많죠. 지난해 콩쿠르에서 3등을 했을 때 저도 ‘한국에서만 있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다들 유학파였으니까요. 1년 동안 정말 많이 생각했죠. ‘왜 유학을 가면 연주를 잘할까’를 생각했어요. 그 요인을 잘 분석해 한국에서도 잘만 적용하면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유학을 간다고 해서 내가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보다 먼저 한국에서 그만큼의 맛을 느껴보고 유학을 간다면 더 많은 걸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콩쿠르에서 입상을 하고 난 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축하와 더불어 우려 섞인 조언을 들었다. 앞으로 갈 길이 먼, 아직 어린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이다.

“백건우 선생님도 어릴 때 콩쿠르에서 상을 타면 자만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셨어요. 우승을 좋은 기회로 삼으라면서요. 이제까지 콩쿠르에 도전해오면서 생각나는 건 떨어졌을 때인 것 같아요. 실패했을 때 느꼈던 것들이 지나고 나면 더 많은 도움이 되죠. 3등을 했을 때는 1등을 못했으니까 조금만 더 열심히 해서 1등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2등(롱-티보 콩쿠르에서는 1, 2, 3등에게 모두 그랑프리를 수여한다)이 무척 좋아요.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앞으로도 출전할 대회가 많잖아요.”

콩쿠르 입상 후 그는 프랑스, 일본 등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는 유명인사가 됐다. 귀국 전 일본 공연과 창원 공연이 잡혔을 정도다.

“입상을 하고 나니 공연이나 음반 제의가 들어왔고 메일도 계속 쏟아지고 있어요. 프랑스 여러 곳에서 페스티벌 초청이 들오더라고요. 그런데 섣불리 결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능력이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완성된 상태를 보여주어야 하는 거니까. 음반은 아직 이른 것 같아요.”

준희에게는 3개의 수첩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루 스케줄을 짜는 수첩, 연습 진도 목표를 세우는 수첩, 연습이나 레슨을 받은 뒤 스스로 평가하는 수첩. 성공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준희의 수첩은 성공으로 인도하는 나침반이었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이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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