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공개수배’  이재현 PD가 말하는 방송 뒷이야기

‘특명공개수배’ 이재현 PD가 말하는 방송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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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공개수배’는 집요하다. 한 회에 수배되는 용의자는 2명, 방송에서는 사건 개요와 함께 최소 세 번 용의자의 얼굴이 노출된다. 5주에 한 번씩은 미검 용의자들을 모아 다시 방송한다. 프로그램의 성과는 검거율이 적으로 드러낸다. 12월 18일 현재, 검거율은 46%, 방송된 두 명의 용의자 중 한 명은 잡혔거나 자수했다.


‘특명공개수배’  이재현 PD가 말하는 방송 뒷이야기

‘특명공개수배’ 이재현 PD가 말하는 방송 뒷이야기

‘검거율’의 의미와 방송의 힘
방송 프로그램의 흥행 여부는 ‘시청률’로 가늠한다. 보통은 그렇다. ‘검거율’은 KBS-2TV ‘특명공개수배’만의 기준이다.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는 증거고, 존재 의미를 증명하는 단단한 수치다. 이재현 PD를 만났던 지난 12월 14일, 검거율은 조금 떨어져 있었다.

“2주 정도 검거가 뜸하고 방송은 계속 나가니까 검거율이 떨어지네요. 지금은 42%예요(웃음).”
특명공개수배의 목적은 범인 검거다. 범죄에 대해, 사회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고 엄단하겠다는 집단 의지의 표출이다. 프로그램은 경찰과 시민 사이를 중계한다. 많은 사람들이 방송 스튜디오에서 전화 받는 ‘요원’들이 ‘액세서리’인 줄 알지만 그건 착각이다. 생방송 중 걸려오는 전화는 2백~3백 건 정도다. 문자 메시지는 3백~4백 건 정도 된다. 제보는 진지하다.

“어제는 문자 메시지가 3백4건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장난 전화가 많이 오면 어쩌나 걱정도 했죠. 귀중한 수사 인력이 엉뚱하게 소비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프로그램의 제작 의도도, 경찰의 협조도 멀어질 겁니다.”
장난 전화의 비율은 무시할 수 있는 정도다. 때로는 제보자와 경찰 또한 헷갈릴 만큼의 제보도 있다.

“어디선가 용의자를 봤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했는데, 정말 똑같이 닮은 사람이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죠(웃음).”

경상북도를 근거지로 삼고 있는 용의자를 공개 수배했는데 경기도 지역에서 봤다는 제보가 압도적인 때도 있다.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단 잡고 보면, 실제로 제보가 빗발쳤던 그 시기에 용의자는 경기도에서 도피 중이었다.

“시청자의 제보가 하나의 ‘점’에 그친다면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개의 점이 한 지역에 뭉쳐 있다면 의미가 크죠. 누굴 만나기 위해서 갔든, 피신하기 위해 갔든 동선 자체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합니다.”

결국, 시청자의 제보가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는 뜻이다. 제작진의 입장에서도, 방송의 힘은 상상보다 컸다. 살인미수 용의자의 신분으로 3년 동안 도망 중이던 피의자 김 모씨는 방송 하루 만에 자수했다. 경찰에서 김씨는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범행을 저지른 것은 지난 2004년 10월이 때다. 마흔 살이 넘어서도 혼자였던 김씨는 한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고 가까워졌다.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여자의 생각은 달랐다. 관계가 소원해지자 여자에게 과도한 집착을 보이던 김씨는 협박과 폭행을 일삼았다. 칼로 피해자의 왼쪽 가슴 윗부분을 찌른 것은 홧김이었다. 범행 후에는 3년 동안 도망 다녔다. 방송 후 자수한 용의자는 김씨를 포함 총 8명이다.

“우발적인 범행 후 ‘도망자’의 신분으로 있다가 방송 후에는 정말 갈 곳이 없다고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자수하고 나면 ‘속 시원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죠. 대부분 본인이 직접 방송을 보거나 지인이 보고 알려주는 경우입니다. 인터넷으로 보고 본인의 범죄가 알려졌다는 것을 인지하기도 하죠.”


‘특명공개수배’  이재현 PD가 말하는 방송 뒷이야기

‘특명공개수배’ 이재현 PD가 말하는 방송 뒷이야기

경찰과 피해자, 범인 사이에 선 제작진의 역할
프로그램 제작은 경찰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경찰 입장에서는 미디어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탐탁지 않을 수도 있다. 수사력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촬영 장소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일어난 강도 사건의 경우, CCTV의 위치나 사각지대의 특수성 때문에 반드시 그 장소에서 촬영해야 한다. 그러나 사건 이후 흉흉해진 민심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집값 떨어진다”며 거부하기 십상이다. 설득은 PD의 몫이다. “절대 위치나 명칭이 노출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가까스로 촬영에 임한다. 피해자도, 제작진도 위험을 감수한다.

“경찰 협조, 장소 섭외도 다 됐는데, 피해자가 제동을 거는 경우도 있습니다. 용의자의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죠. 한번은, 포항 쪽 경찰서에서 제작진과 상의 없이 특명공개수배에 방송이 나간다는 정보를 흘린 적이 있습니다.”
용의자의 위치는 파악했지만 정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용의자를 잡기 위해 경찰이 정보를 흘렸다. 경찰이 파악하고 있는 용의자의 지인들에게 “곧 방송이 나간다”고 했다. 용의자는 자수했다.

“그런 경우는 ‘특명공개수배’의 이름만 빌어서 잡은 거죠. 형사들이 기지가 있다고 해야 하나(웃음). 웃고 넘길 수 있는 일이에요.”

아이템 취재를 하고, 섭외도 마치고 제작이 한창일 때 정보가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용의자가 흉악범일 경우, 해당 사건을 취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미리 알려지면 제작진이 위험하다. 현장에서 제작에 임하는 인원은 20~30명 정도, 제작은 신원이 완전히 노출된 상태에서 진행된다.

“상당히 위험할 수 있죠. 그래서 답사를 할 때부터 취재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도록 당부합니다. 혹시 일어날 수도 있는 사고에 대비하라는 차원에서 주지시키는 거죠.”


‘분노의 힘’으로 취재했던 사건
모든 사건이 어렵지만, 흉악 범죄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지난 6월 7일 방송됐던 ‘독신녀 토막 살인사건’을 담당했던 PD는 “분노의 힘으로 취재했다”고 말했다. 용의자의 보복이나 취재 과정의 어려움은 차치하고, 사건의 잔인성과 사건 이후 완전범죄를 계획했던 용의자의 뻔뻔함은 치가 떨린다.

“용의자는 사기 전과 10범의 사기꾼이었어요. 골프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여성 회원에게 접근해 관계를 맺고 돈을 뜯어내는 사람이었죠. 사기 행각을 눈치 챈 한 여성 회원이 ‘사기행각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자 목 졸라 죽인 겁니다. 그리고 공구를 이용해 토막을 내고, 충북 제천의 배수로 공사 현장에 갖다 버린 사건이죠.”

‘살인’도, ‘토막’도 끔찍하다. 용의자는 범행 이후에도 침착했다. 같은 동호회에서 3개월을 더 활동했다. 그동안 사기 행각을 벌였던 여성들과의 관계를 정리할 시간을 갖고, 자신이 살해한 여성의 아이디로 동호회에 접속해 다른 회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피해 여성이 아직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용의자는 관계를 다 정리하고 도망쳤습니다. 토막 난 사체가 발견된 뒤에야 범죄 용의자라는 것을 알게 됐죠. 말씀드리면서도 끔찍하네요. 지능적인 범죄자들은 잘 안 잡혀요. 안타깝습니다.”

범죄 현장을 취재하다 보면, 형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부분을 PD가 지적하기도 한다. 운전석에 통장을, 조수석에 도장을 두고 내려 5천6백만원을 통장에서 인출해간 차량털이범의 사건이 그랬다. 지난 12월 13일 방송된 ‘용인 5천만원대 통장 절도사건’이다.

“통장과 도장이 있어도 비밀번호가 없으면 돈을 찾을 수 없죠. 형사들은 ‘그냥 맞혔을 것’이라며 넘어갔는데 담당 PD가 피해자에게 ‘차량에 수첩을 놓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마침 차 안에는 수첩이 있었고, 수첩에는 비밀번호 5개가 적혀 있었습니다.”

해당 계좌의 ARS 조회 흔적을 확인하니, 범인은 다섯 번 만에 통장의 비밀번호를 맞혔다. 수첩에 적힌 숫자들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결정적인 단서는 아니지만, PD들이 아마추어 입장에서 궁금한 것을 묻거나 나름의 추리를 했는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결정적인 도움은 아직 한 번도 없죠(웃음).”

‘용인 5천만원대 통장 절도사건’의 용의자는 방송 하루 만인 지난 12월 14일 검거됐다. 방송을 통해 CCTV가 공개된 이후 빗발친 제보를 바탕으로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용의자는 강남의 한 건물 주차장에서 잡혔다.


‘특명공개수배’  이재현 PD가 말하는 방송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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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범죄’와 효과적인 예방법
“요새 범죄의 가장 무서운 점은, 돈이 목적이면 돈만 빼앗으면 될 것을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겁니다.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거죠. 범죄 대상도 힘으로 윽박지를 수 있거나 제압할 수 있는 대상을 고릅니다. 아이나 여성, 노인이죠. 남자가 대상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별다른 이유나 계기가 없다는 것도 최근 범죄의 무서운 점이다. 언제, 어디서, 왜 당하는지 모르고 당하는 데는 속수무책이다.

“이유 없는 사건이 가장 무섭죠. 백화점 주차장에서 느닷없이 돌멩이가 든 가방으로 내리친다든가 하는 사건들이 많습니다.”

범죄의 속성은 비겁하다. 용의자는 원하는 것을 가장 빨리, 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범죄’를 택한다. “내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다른 사람의 돈을 빼앗는다”는 식이다. 이런 범죄를 100% 예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지만, 최소한의 예방 조치는 할 수 있다. 이재현 PD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일상적이지만 소홀하기 쉬운 부분이다.

“본인의 소재와 행선지를 알리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남편이든 아버지든, 남자친구든 내가 지금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디를 향한다는 것을 알리고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그래야 어디서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 긴급 문자 서비스’도 하나의 방법이다. 단축키로 미리 지정해놓은 사람에게 구호 메시지를 보내는 서비스다. 일단 문자가 발송된 뒤에는 지속적으로 위치를 알려준다. 문자를 받은 사람이 경찰에 연락하면, 메시지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추적을 할 수 있다.

“약간의 부가 서비스 요금으로 안전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활동이 많은 사람의 경우에는 특히 유용합니다. 저도 하고 있어요(웃음).”

범죄 상황에 처했을 때는 당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갑작스러운 범죄는, 정신만 차리면 살아나올 수 있는 호랑이 굴이다.

“범인의 요구를 빨리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돈인지, 몸인지, 범행의 의도와 목적을 빨리 파악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을 먼저 주고 순순히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면서 범인을 달래야 해요.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범행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생존 확률은 높아집니다.”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힌 피해자가 범인을 달래고 ‘기지’를 발휘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작년 10월 경찰서에서 취재했던 사건을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택배회사 직원을 가장해 집으로 들어와 전기충격기로 협박하고 30대 주부를 강간하려 했지만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다. 피해 여성은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말하고 옷을 벗으며 20대 범인을 안정시켰다. 마침 현관 쪽에서 문이 열려는 소리가 들렸다. “딸이 온 것 같으니 옆집으로 보내고 오겠다”고 말하고 현관으로 간 피해자는, 딸을 안고 나체로 도망쳤다.

“아동 범죄는 아직 다뤄보지 않았지만 비슷하다고 봅니다. 행선지를 알리고, 학교나 학원 선생님과 항상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 좋죠. 이동통신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결정적인 수훈은 ‘시청자’의 몫
선정성, 폭력성, 모방범죄의 위험성은 항상 신경을 쓴다. 범죄 묘사에 필수 요소인 흉기나 피, 상처를 묘사할 때는 특히 조심스럽다. 필요에 의해 표현한다고 해도 수위를 조절한다. 새로운 범죄 형태는 모방범죄 방지 차원에서 자세한 표현을 피한다.

“PD가 연출에 매몰될 가능성도 있어요. 영화를 찍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더 잔혹하게,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론의 뭇매를 맞기 시작하죠. 하지만 그 유혹에 넘어가면 걷잡을 수 없어요.”

표현 수위는 서너 번의 회의를 거쳐 조율한다. 그래도 적확한 수위를 조절할 수 없을 때는 자문위원의 도움을 받는다.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경찰대 교수님, 검찰 출신 변호사. 이렇게 세 분을 자문위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여러 방향에서 볼 수 있도록 구성했죠. 매주 방송을 모니터하고, 평을 보내주십니다. 아직 한 번도 지적받은 적은 없어요(웃음).”

이재현 PD는 “‘특명공개수배’가 범인을 잡는다는 것은 오해”라고 말한다. PD는 자료를 보고, 피해자의 진술을 충실히 듣고 기록한다. 경찰 수사의 진행 상황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용의자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는 그림을 만든다. 현장에서 수사하는 것은 경찰의 몫이고, 적극적인 제보로 검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은 전적으로 시청자의 몫이다.

“우리는 경찰과 시민의 매개자죠. 그 역할에 충실합니다. ‘특명공개수배’가 범인을 잡은 것이 아니라 ‘시민의 제보’로 ‘경찰’이 잡은 겁니다. 연결은 우리가 하죠. PD가 몇 명이나 된다고요. 얼마 되지도 않아요(웃음).”

2007년 12월 6일 현재, ‘특명공개수배’는 총 59명의 용의자를 수배했다. 자수자 8명을 포함, 26명을 검거했다. 결정적인 시청자 제보가 14건, 경찰 검거가 2건, 방송 전 검거가 1건, 자살한 용의자가 1명 있었다. 검거율은 46%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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