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행동은 그만! 새해에는 멋진 남편이 되어주세요”
오전 11시. 남편은 회사에, 아이들은 유치원에 보낸 한가로운 시간, 인천의 한 아파트에 사는 네 명의 주부가 여유로운 티 타임을 가졌다. 이웃사촌으로 만나 허물없는 친구같이 지내는 이들의 대화 소재는 영원한 화두인 남편이다. 남편의 철없는 행동, 안쓰러운 모습부터 시작해 남편에게 띄우는 신년 메시지까지… 네 명의 주부가 풀어놓는 막강 수다 한 판!
“아이 과자 좀 뺏어 먹지 마!”
서인영_ 우리 형부는 언니가 아이들 먹으라고 사다 놓은 과자를 TV 보면서 다 먹어버리더라고.
김영아_ 우리 아주버님이 그래. 군것질을 굉장히 좋아하시지.
박현주_ 아이와 외출할 때 사탕이나 과자 같은 군것질거리를 가져가잖아. 남편이 같이 있으면 어느새 없어지는 거야. 내가 “과자 어딨어?” 그러면서 찾으면 “내가 먹었는데?”라고 해. 아이 목마를까 봐 물이나 요구르트를 가져가면 어느새 자기 목마르다고 다 마셔버리고. 나는 과자가 뭉개져서 버리는 한이 있어도 안 먹고, 목말라도 참는데 먹지 좀 말라고 해도 어느새 없어져.
서인영_ 엄마들은 나중에 비상사태에 대비해서 먹지 않지. 남편들은 아이가 칭얼대는 상황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
이희진_ 내 친구 남편은 식탐이 많은 거야. 아이들하고 음식을 먹으면 줄어드는 게 싫어서 “그만 들어가서 공부해라” 하고는 나머지를 먹는다고 하더라고.
박현주_ 마트에 가면 남편이 시리얼을 사달라고 졸라. 그리고 남편하고 아들이 둘이서 아침에 시리얼 먹자고 속닥속닥하는 거야. 엄마들은 아이들이 밥 먹기를 원하잖아. 그래서 할 수 없이 밥하고 시리얼 둘 다 먹이게 됐지. 우리 남편은 자기가 뭐가 먹고 싶으면 아이를 꼬드겨.
서인영_ 남편이 군것질을 좋아하면 많이 다투더라. 엄마들은 밥이 우선이잖아. 그런데 남편이 과자라고 사와서 아이들하고 같이 먹으면 나중에 밥을 못 먹는 거야. 그러니까 싸울 수 밖에.
“아직도 장난감이 그렇게 좋아?”
서인영_ 아이들하고 같이 놀아주니 좋겠는데?
이희진_ 아냐. 비행기 같은 건 비싸니까 못 만지게 해.
박현주_ 그래도 남편이 장난감을 좋아하면 아이와 밖에 나가서 놀기도 하더라고. 그건 좋은 것 같아.
이희진_ 우리 남편은 총으로 바퀴벌레를 잡으면서, “이게 얼마나 좋은데”라고 하는데.
박현주_ 우리 친정 오빠가 그래. 조립하는 거와 로봇에 관심이 많지. 딸만 둘 있는데 아이들이 관심 없는데도 로봇을 하나씩 사주고, 파워레인저 영화를 보러 가더라고.
서인영_ 낼모레 마흔인데 밤새도록 게임에 빠져 있는 남자들도 있어. 내 친구 남편은 밤새 당구를 한대. 우리 남편은 고등학교 때 다 떼었다는데. 그 친구 남편은 밤 10시쯤 되면 “나 잠깐 놀다 올게” 한대. 그래서 아내가 “12시까지 들어와” 하면 아침 7시에 문 살며시 열고 들어온다고 하더라고. 남편 친구 중 미혼이 많을수록 더 그런 것 같아. 그 친구는 한번 걸리면 당구대를 엎는다고 작정하고 있어.
김영아_ 게임하는 남편들이 많긴 많나 봐. 어떤 남편들은 아이템을 팔아서 요긴하게 쓰기도 한다잖아.
박현주_ 얼마 전 남편이 시험을 준비했거든. 그런데 공부할 때 안경을 끼고 싶어 하더라고. 남편 시력이 2.0인데도 안경을 폼으로 끼고 싶은 거야. 그래서 나한테 계속 눈이 침침하다고 하는 거야. 내가 안과에 가보라고 했지. 병원에서는 괜찮다고 하면서 알약을 처방해줬더라고. 그런데도 포기가 안 되나 봐. 그래서 내가 보호 안경으로 하나 골라줄 테니까 나중에 같이 사러가자고 했거든. 그런데 어느 날 안경을 직접 해왔더라고. 그것도 뿔테도 아닌 얇디얇은 안경테로.
서인영_ 혹시 금융계 쪽 남자들이 많이 쓰는 그 금속테?
박현주_ 응. 어울리지도 않고 돈에 맞추다 보니 별로 좋은 건 아닌 것 같아. 내가 왜 이런 걸 사왔느냐고 하니까 안경원에서 잘 어울린다고 했대.
김영아_ 여름에는 형부 선글라스도 쓰고 다녔잖아.
박현주_ 아, 그거? 싸구려였어. 그래도 주변에서 “선글라스 멋지다” 하면, 응 “좀 줬어~”라고 했나 봐.
이희진_ 우리 남편은 쇼핑 갔다 와서 내 것과 아이 것만 사오면 아쉬운 얼굴로 짐을 뒤지면서 표정이 별로 안 좋아져. 같이 쇼핑 나가는 건 싫어하는데 내가 “뭐 하나 사줄게” 그러면 “뭐 사줄 건데? 그럼 나 얼마짜리 뭐 사줘” 하면서 따라오지. 그러곤 내내 자기 것만 보는 거야. 내 옷 좀 봐달라고 해도 건성으로 보고 자기 것에만 관심을 가져. “네가 입으면 그게 그거지” 하면서 자기 것은 몇 시간씩 사. 남자들이 정말 애 같은 면이 많은 것 같아.
서인영_ 그래. 남자들은 쇼핑 가자고 하면 싫어하고 자기 것 필요 없다고 하지만, 막상 사 오면 무지 좋아해.
김영아_ 아플 때는 정말 아이 같아. 자기 좀 안아달라고 하면서 엄살을 부려.
박현주_ 며칠 전 남편이 체해서 구토를 했는데, 세상 끝까지 가본 것 같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뭣 좀 갖다 달라고 하고.
이희진_ 맞아. 조금만 아프면 물수건 갖고 와라, 체온계 좀 갖다 달라….
서인영_ 우리 남편은 아파서 흰죽을 쑤어다 줬는데 “여기에 뭐 좀 넣으면 안 되느냐”, “닭 좀 넣자” 그러더라.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엄살이 더 심한 것 같아.
박현주_ 몸이 조금 안 좋으면 피로해소제, 감기 기운이 있다 싶으면 쌍화탕을 찾아. 그것도 꼭 유명 브랜드거 먹어. 약국에서 덜 유명한 제품을 서비스로 주면 절대 안 먹어.
서인영_ 우리 남편은 약은 잘 안 먹는데, 개고기 같은 보양식을 엄청 좋아해. 고기도 야들야들 맛있고, 힘이 난다나.
이희진_ 아내가 아플 때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으면서 자기 아픈 건 되게 챙겨. 그럴 때는 정말 얄밉지.
Part 02 우리 가족 위해 애쓰는 남편, 안쓰러워!
“남편이 돈 버는 기계처럼 느껴질 땐 정말 안쓰러워”
서인영_ 가족이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새 아이들이 차 안에서 잠들면 남편이 잠든 아이 둘을 업어서 나르고 짐까지 들고 올라오잖아. 그리고 다시 내려가서 차 주차하고. 그럴 때는 안쓰럽더라. 엄마들은 먼저 올라가서 아이 눕히고 옷 벗기고 해야 하잖아.
서인영_ 그런가? 재활용 버리는 날인데, 그 전주에 깜빡 잊고 안 버린 거야. 엄청나게 많이 쌓인 재활용 봉지 들고 나갈 때도 안쓰러워.
김영아_ 그럼 나도 안쓰럽겠네. 우리 집에선 내가 재활용 쓰레기 버리거든. 이거 여자가 안쓰럽다고 바꿔야 하는 거 아니야?
이희진_ 뭐니 뭐니 해도 남자들이 가장 안쓰러울 때는 일할 때지. 야근하고 늦게 들어올 때.
서인영_ 맞아. 야근하고 늦게 들어왔는데 집에 먹을 게 아무것도 없을 때 안쓰러워. 또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데 밥도 못 먹고 나갈 때. 그럴 땐 남편이 돈 벌어다 주는 기계처럼 느껴지거든.
박현주_ 며칠 야근하고 들어왔는데 아이들이 아빠를 본체만체하는 거야. 심지어 아이가 낯설다고 울기도 하고.
이희진_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침대에 누웠는데 바로 잘 때도 있어. 정말 피곤해서.
서인영_ 그건 안쓰러운 게 아니라 안타까운 거 아냐?
박현주_ 모임에서 분위기상 남편이 돈을 내야 할 상황인데도, 내 눈치 보고 있을 때도 안쓰럽지.
서인영_ 맞아. 예전에 잘나갈 때는 자기가 ‘쏜다’는 소리 많이 했는데 지금은 직장을 다니니까 그 소리를 잘 안 하더라고. 그럴 때는 정말 안쓰러워.
김영아_ 예전에는 잔돈이 생기면 다 집에 놔두고 안 썼거든. 그런데 어느새 잔돈까지 다 모아서 용돈을 마련할 때. 그 모습도 정말 안쓰러웠어.
“너무 내 생각만 하는 건가?”
박현주_ 장거리 운전할 때도 안쓰러워. 나는 면허가 있어도 장롱 면허라 도와줄 수 없거든.
김영아_ 맞아. 장거리 운전이라 피곤할 텐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지.
서인영_ 연애 때는 옆에서 입에 사탕이나 과자도 넣어주고 했는데, 아이 낳고는 아이들 챙기느라 그럴 새가 없잖아. 반찬도 아이들 위주로 만들 때 미안하더라. 또 똑같은 국이 네 끼 연달아 올라갈 때. 그럴 때면 남편이 한마디 하지. “이거 아직도 남았냐?”
이희진_ 그러면 얄밉지. 어제 먹은 거라도 가짓수 맞추느라고 상에 올리잖아. 반찬이 너무 없으면 미안하니까.
서인영_ 같이 돈 번다고 가사 일을 분담해서 시킬 때도 그런 것 같아.
김영아_ 그건 당연하지 않아?
서인영_ 여자들은 시키면서도 좀 안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박현주_ 맞아. 남편이 굳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세탁기 돌리고 설거지 해 놓을 때. 고마우면서도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
이희진_ 나와 시댁 사이의 관계에서 곤란할 때도 그래.
서인영_ 친정에서 너무 부려먹을 때도 있거든. 어디 갈 때 기사인 양 부릴 때, 내가 다 민망하더라고.
김영아_ 시댁은 어쩌다 한 번 가고, 친정은 훨씬 자주 가거든. 겉으로 내색은 안 하지만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지.
Part 03 2008년 새해, 내 남편에게 바란다
박현주_ 우리 남편 새해에는 살 좀 쪘으면 좋겠어. 주변 사람들이 “결혼하면 찐다고 하는데 넌 왜 빠지느냐”고 할 때는 정말 기분이 나쁘거든. 내가 잘 못해줘서 안 찌는 것처럼 보이잖아. 정작 나는 살이 찌는데 말이야.
서인영_ 돈 좀 많이 벌어왔으면 좋겠고, 더 건강을 생각했으면 좋겠어. 이건 모든 주부들의 소망이 아닐까? 지금도 행복하지만 이상적인 목적을 세우고 계획적인 삶을 산다면 바랄 게 없겠다.
이희진_ 건강이 제일이지.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녔으면 좋겠어. 남자들은 정말 자동차 중독인 것 같아. 슈퍼 갈 때도 무조건 차를 갖고 가잖아. 시동 걸고, 주차하는 거 생각하면 더 오래 걸릴 텐데 귀찮지도 않나 봐. 걸어 다니면 운동도 되고 얼마나 좋아. 새해에는 자동차 사용 양을 줄였으면 좋겠어.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이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