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으며 대한민국 경제를 꼭 살리겠습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는 어린 시절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무사히 대학교까지 졸업했고, 이후 현대건설에 입사해 초고속승진으로 35세 CEO 자리에 올랐다. 이후
정치권에 입문해 2002년 서울시장을 역임하면서 ‘청계천 복원사업’ 등 괄목할 만한 성과로 국민들에게 그 능력을 인정받으며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명박 당선자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의 여정을 살펴본다.
어느 때보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민심을 뒤흔들던 ‘대선 열풍’은 한 차례 폭풍우처럼 사라지고, 이제 국민들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일만 남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으며,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경제를 반드시 살리겠다”며 당선 소감을 밝혔다. ‘반드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 이 당선자가 여러 가지 비리 연루 의혹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유 중 하나다. “침체된 경제를 살려달라”는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 것.
그렇다면 국민들이 이 당선자에게 이토록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는 이유가 뭘까. 국민들이 이 당선자를 신뢰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드라마보다 더 격정적인 인생 여정에 있다. 이 때문에 이 당선자를 모델로 하는 TV 드라마가 두 편이나 제작되기도 했다.
가난한 시골 출신인 이 당선자는 중학교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길거리에서 풀빵 장사를 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후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부모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마쳤다.
대학 졸업 이후, 현대건설에 입사한 이 당선자는 선천적인 성실함과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단시간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결국 29세에 이사로 승진,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현대건설의 CEO가 됐다. 이 당선자는 당시,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대형 공사를 수차례 따내면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총애를 받았다. 부인인 ‘김윤옥 여사’와 결혼한 것도 당선자가 현대건설에서 이사로 재직할 때였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가진 CEO 출신 대통령
사업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으며, 인생의 탄탄대로를 걷던 그가 정치권에 발을 들인 것은 지난 1992년 당시 신한국당 대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전국구 공천을 통해서다.
이렇게 서울시장 재임 당시, 시민들로부터 ‘추진력 강하고 능력 있는 CEO 출신 시장’이라는 인정을 받은 이 당선자는 자신감을 얻어 바로 대권 행보를 시작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투톱 체제를 구축하며, 국민에게 지지를 얻었고, 2007년 8월 경선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당당하게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됐다. 이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 선언과 BBK 비리 연루 의혹이 대두되면서, 이 당선자의 대선 행보에 암운이 드리워지지 않을까 염려했다. 하지만 결국 검찰의 ‘무혐의’ 발표와 ‘경제를 살려달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합쳐지면서 이 당선자는 2007년 12월 19일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당선 직후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가야 한다”면서 새로운 정부는 ‘경제의 선진화’에 무엇보다 주력할 것임을 밝히고, 이어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남북은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이 당선자의 주요 공약은 10가지다. 이 당선자의 대표 공약은 ‘한반도 대운하’다. 기존 하천을 토대로 남한에 2100km, 북한에 1000km를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어 경제 회생의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이는 환경단체 반대, 효율성 등 여러 가지 논란의 소지가 있어 발표 당시부터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당선자는 현재 4%대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7%’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또 노무현 정부 때 유난히 침체됐던 ‘부동산정책’ 또한 사람들의 주요 관심거리다. 이 당선자는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다양한 형태의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을 기본으로 한 ‘부동산정책’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밖에 ‘주택담보대출 금리인하’, ‘공교육 내실화’, ‘중소기업 맞춤형 지원’, ‘세계 최강 디지털 코리아’, ‘빈곤층 계층 할당제’, ‘실리 외교’ 등을 주요 공약 정책으로 내놓았다.
1천1백만 표를 얻어 50%에 가까운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당선자. 경제 침체가 길어지면서 늘 진취적인 행보를 펼쳐온 이 당선자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가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지치고 힘들어하는 국민들에게 얼마나 ‘숨 쉴 수 있는 숨통’을 틔워줄 수 있을지 앞으로의 5년이 주목된다.
예비 퍼스트레이디, 김윤옥 여사의 ‘그림자’ 내조
평소 털털하고, 통이 큰 성격으로 유명한 김 여사는 슬하에 1남 3녀를 두고 있으며, 남편 대신 자식들에게는 매우 엄한 교육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김 여사는 이 당선자에게 직접적인 고언을 잘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경선을 할 때도 “여자 이기는 남자 없다”며 “박 대표와 싸우지 말 것”을 조언했다. 이런 조언 덕분인지 이 당선자는 결국 박 대표와의 경선에서 승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었던 지난 22일 동안, 김 여사는 이명박 당선자가 가지 못하는 ‘재래시장’과 ‘여성, 독거노인’들을 찾아가 지원 유세 활동을 벌였다. 특히 김 여사는 노인 복지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 당선자가 회사에 입사해 월급을 받았을 때는 이미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효도를 할 수가 없었다”며 “그래서 ‘노인 복지’에 관심이 많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 여사는 추운 날씨에도 하루에 보통 5~10개 정도의 지원 유세 일정을 소화하며, 이명박 당선자를 위한 ‘한 표’를 호소했으니, 가히 대통령 당선의 숨은 공로자라 할 만하다.
이 당선자가 대통령으로 뽑히던 날은 이들의 결혼기념일임과 동시에 이명박 당선자의 생일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기 위해 이 당선자의 생일에 결혼 날짜를 잡았는데, 공교롭게 대선 투표일과도 겹치게 된 것이다. 이보다 기막힌 우연이 또 어디에 있을까. 평소 남편을 위해 고언도 아끼지 않는 털털한 성격의 김윤옥 여사가 앞으로 어떤 ‘영부인’의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성훈,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