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최고의 순간 꿈꾸는 여자 핸드볼 대표팀 임영철 감독

다시 한번 최고의 순간 꿈꾸는 여자 핸드볼 대표팀 임영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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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4년 전의 일… 2008년 베이징에서
다시 한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기대합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 핸드볼 강국 덴마크와 만난 한국 여자대표팀은 숨 막히는 접전 끝에 36-38로 아쉽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2008년 겨울,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다시 태어난 그때의 감동은 우리를 다시 한번 4년 전 아테네로 데려갔다. 그렇게 우리가 4년 전으로 내달리는 동안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다시 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이 코앞이었다.


다시 한번 최고의 순간 꿈꾸는 여자 핸드볼 대표팀 임영철 감독

다시 한번 최고의 순간 꿈꾸는 여자 핸드볼 대표팀 임영철 감독

‘우생순’은 참 고마운 영화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임영철 감독(49)은 조급한 모습이었다. 작년 8월, 중동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다시 치르기로 한 베이징 남녀 핸드볼 지역예선 경기 일정이 열흘 뒤로 확정됐기 때문이다. 3일 전에 선수촌에 들어왔으니 이제 경기 때까지 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재경기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국제 연맹에 제소해서 이뤄낸 것이 기쁘기는 하지만 아직 선수 소집이 안 돼 마음이 급하네요.”

요즘 임 감독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흥행으로 톡톡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극중 엄태웅이 맡은 ‘안승필’ 감독의 모델이 바로 임영철 감독이다. 영화 흥행과 함께 여기저기서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정신이 없을 정도다. 극중 인물과 실제 인물들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영화는 그때의 상황과 분위기를 호소력 있게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핸드볼인으로서 감명 깊게 봤습니다. 즐겁고 반가웠어요. 그 당시 상황을 완벽하게 재현한 건 아니었지만 자꾸 경기 때가 떠오르더라구요. 많은 분들이 감동적이었다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한편으로는 과연 제가 그렇게 칭찬받을 정도로 훌륭한 일을 했는지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4년 전의 일이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겠지만 그때의 안타까움을 조금은 털어버렸을까.
“잊을 수가 없죠. 사실 지금도 그때 일은 생각하기조차 싫어요. 경기 후 많은 분들이 ‘잘 싸웠다’며 격려를 많이 해주셨지만 아쉽고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어요. 감독인 제가 그랬는데 직접 경기를 뛴 선수들은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두 번 다시 코트에서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극중 감독 엄태웅과 선수들이 ‘지더라도 울지 말자’고 약속하지만 실제로 약속은 하지 않았다. 그저 관중들 앞에서 눈물은 보이지 말자, 밝은 얼굴로 인사하고 웃으면서 가자고 선수들을 다독였다. 그래도 비집고 나오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눈물 섞인 임영철 감독의 인터뷰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깊은 인상으로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꺼져가던 핸드볼에 대한 관심의 불씨를 영화 ‘우생순’이 다시 한번 지펴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생순’은 참 고마운 영화다.


다시 한번 최고의 순간 꿈꾸는 여자 핸드볼 대표팀 임영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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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임 감독이 맨 처음 핸드볼을 시작했을 때가 1975년,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현역 시절 스타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리다 선수 겸 코치 생활을 시작한 것이 1984년이었으니 올해로 지도자 생활만 24년째다. 돌이켜보면 백수 아닌 백수 생활도 겪으며 아픔도 많았다.

“1989년 한국체대 조교 정리 기간에 정리 대상이 됐어요. 당시 남자대표팀 코치였는데, 선수들 수당 지급도 안 되고 열악한 상황이었거든요. 1992년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까지 실업자였어요.”

올림픽이 끝나고 종근당 제약 여자 핸드볼팀 초대 감독을 지냈지만 1997년 IMF를 맞으며 팀이 해체되어 또다시 일터를 잃었다. 그후로 올림픽이 있을 때마다 다시 대표팀에 합류하고 떠나오기를 반복,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에서 감독 제의를 받고 1년 동안 감독 생활을 했지만 그 당시 세르비아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때문에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어차피 감독, 코치 직은 한시 직이에요. 경기와 훈련 때만 합류했다 경기가 끝나면 다시 실업자가 되는 거죠.”
안타깝지만 핸드볼 프로팀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따낸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말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떨어졌어요. 중국이 진출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세계선수권대회를 한 달 앞두고 감독 제의를 받았죠. 당시에는 세계선수권 5위까지 올림픽 진출이 가능했거든요. 사실 한 달 동안 할 수 있을까 설왕설래했는데 결국 3위를 해서 진출권을 따냈죠. 그때서야 아테네 메달이 보이더라구요.”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선수들을 불러들이는 일이었다. 메달의 주역이 된 임오경, 오성옥, 오영란, 이상은 선수 등 선수들을 소집하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 그나마 그때는 해외에 있던 선수가 임오경, 오성옥 선수 둘뿐이었다. 지금은 유럽에만 7명의 선수가 나가 있다. 언제 실업자가 될지 모르는 한국 핸드볼의 불안한 상황에 선수들이 외국 실업팀으로 떠난 것이다. 아테네 올림픽 이후로 대한체육회의 지원이 좀 나아지긴 했지만 상황은 훨씬 안 좋다.

“선수가 없어요. 지원적인 문제는 나아졌지만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게 안 돼요. 핸드볼을 하는 어린 선수들이 없어요. 선수들 나이는 많아지는데 세대교체가 되지 않으니 정말 큰일입니다.”

지난해 12월 프랑스에서 열린 제18회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우리 대표팀 선수들 평균 나이가 33.4세, 세계 최고령이다. 당장 열흘 앞으로 다가온 일본과의 재경기도 걱정이다. 사람들은 ‘일본 정도는 우습다’고 하지만 임 감독이 보기에 일본은 만만치 않은 상대다. 활발한 선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답보 상태에 있는 한국 핸드볼에 비해 일본 핸드볼의 성장이 심상치 않다.

“일본 핸드볼은 많이 성장했어요. 반면에 저희는 정체죠. 그리고 이게 리그전이라 여러 경기를 통해 실력이 입증되면 괜찮은데 이건 단 한 번의 경기로 결정되는 녹다운 게임이에요. 경기 당일 선수들 컨디션과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변수에 대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그쪽은 홈경기다. 임 감독의 마음이 급하다. 요즘 같아서는 전주에 있는 집에 한 달에 한 번 내려갈까 말까다. 집에 가서도 핸드볼 이야기는 입도 뻥끗 안 한다. “힘들어도 저 혼자 힘들어야죠. 집사람은 그냥 일반인이에요. 상의한다고 어려운 일, 힘들었던 일 다 얘기하다 보면 병납니다(웃음).”

그렇게 힘든데, 그가 핸드볼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핸드볼은 최고의 스포츠예요. 달리고, 뛰고, 던지고, 받고, 구르고, 점프하고, 모든 요소가 집합되어 있습니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핸드볼 할 겁니다.”

다시 한번 최고의 순간 꿈꾸는 여자 핸드볼 대표팀 임영철 감독

다시 한번 최고의 순간 꿈꾸는 여자 핸드볼 대표팀 임영철 감독

한국의 어머니, 아줌마들의 힘
올해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늦둥이 아들이 ‘우생순’을 보고 엄마에게 물었단다. 정말 감독과 선수 사이에 ‘섬싱’이 있느냐고. 매일 여자 선수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아빠가 슬그머니 걱정이 된 것이다. 웃어 넘겼지만 예리한 질문이다. 아무리 운동선수라도 여자는 여자다.

“여자는 바람 부는 쪽으로 넘어집니다.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져요. 여자팀 지도자들은 간 쓸개 다 빼야 된다는 말이 있어요(웃음). 저는 비위를 잘 안 맞추는 편인데 나이를 먹었다는 걸 요즘 느낍니다. 요즘엔 선수들 기분도 맞춰주는 편이에요.”

스파르타식 감독으로 유명한 임 감독도 요즘엔 선수들의 눈치를 살핀다. 특히 요즘처럼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많아지면 외국에 오래 있다 온 선수들은 그쪽과 우리의 훈련 방식의 차이 때문에 힘들어할 때가 있다. 아무래도 유럽 쪽은 분위기가 자율적이다.

예전에는 유럽 선수들에 비해 훨씬 민첩하고 빠른 스피드가 한국형 핸드볼의 강점이었지만 지금은 덩치 큰 유럽 선수들도 우리만큼 속도를 낸다. 환경적인 열악함과 무관심 때문에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임 감독은 대한민국 여자들의 힘을 믿는다.

“핸드볼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힘. 바로 우리 어머니, 아줌마들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자기를 다 버리고 헌신하면서도 처절하게 가족과 자식을 위하는 게 바로 대한민국 어머니들입니다. 그 여인들의 성실함과 책임감, 그리고 목표를 향한 강한 집중력이 대한민국 핸드볼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현재 임영철 감독의 목표는 금메달이 아니다. 우선은 베이징 티켓을 따는 것이고, 그 뒤에 차근차근 금메달을 향해 가는 것이다. 물론 최고의 목표를 두는 것이 좋지만 좋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큰 목표를 바라보게 되면 훈련이 공허해진다. 현실에 맞게, 기본에 충실하게, 작은 것부터 시작해 한 단계에 올라서면 그 다음 단계를 볼 것이다. 국민들에게도 뜨겁게 왔다 차갑게 가버리는 관심은 바라지 않는다. “시간이 되시면, 경기장을 찾아주세요. 제가 장담하건데 핸드볼 경기 두세 번만 보시면 매료되실 겁니다. 핸드볼, 굉장히 매력적인 스포츠예요. 당장 큰 사랑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계속해서 관심 가져주시고, 저희가 차근차근 문제점을 개선하며 올라가는 과정을 기대해주세요.”


한국 핸드볼은 분명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간은 촉박하고 선수들은 멀리 있다. 그럼에도 결코 경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국 핸드볼은 승리했었다. 포기할 수 없는 희망으로, 관심의 힘으로, 2008년 한국 핸드볼은 다시 한번 생애 최고의 순간을 꿈꾼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원상희, 경향신문사 포토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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