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전경린이 신간 「엄마의 집」을 발간했다. 이 따뜻한 소설은 3년이나 작가의 손에서 나올 줄 몰랐다. 건강이 나빠져 큰 수술을 받아야 했고, 내부 소란을 다스리느라 자주 중단됐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 기다림만큼이나 농밀했다.
전경린은 1년 전 파주로 이사했다. “서울은 어딜 가나 실내 같은 분위기 때문에 거리를 걸어도 복도를 걷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곳은 비어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좋아요. 들판도 비어 있고 자연 하천도 있으니 마음도 비우게 되네요.”
서울에서 파주로 오면서, 도착해 여기저기 휘휘 돌아보며 느꼈던 기분이 바로 그것, 여백과 여유로움에 대한 편안함이었다.
몇 달간의 투병을 거치며 달라진 눈
전경린은 헤이리로 이사 와서 두 가지 큰일을 겪었다. 하나는 3년 동안 집필해왔던 소설 「엄마의 집」을 출간한 것이고, 또 하나는 건강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은 것이다. 소설 출간일이 늦춰진 것은 예상치 못했던 수술 때문이기도 했다.
“2005년부터 시작한 소설이었는데, 초고를 만들고 탈고하는 데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어요. 2007년에 이상문학상을 받고 나서는 좀 쉬었고요. 그러던 중 갑자기 병이 발견되어 수술을 하게 됐어요. 신장 위 부신 위에 혹이 생겼거든요. 수술을 하고 나서도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생사의 귀로에 선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이었다.
“수술 전 한 달 동안 ‘수술 전 처치’라고 해서 약을 먹고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요. 혹이 양성인지 악성인지는 수술을 해야 가려지는 상황이었죠. 반반의 확률이었어요. 그런 상태로 한 달을 견뎠어요. 굉장히 힘들었죠. 그렇게 되니 일을 놓게 되더라고요.”
많은 생각이 교차했던 한 달이었다. 생사를 오갔던 그 시간을 견디고, 수술과 회복 시간을 포함한 몇 달의 시간들… 그러나 그 힘든 시간들은 그녀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엄마의 집」은 이혼으로 해체된 한 가족 구성원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고 또 화해해나가게 되는지를 잔잔하게 그린 작품이다. 재혼한 여자가 남기고 간 딸을 키우는 아빠의 이야기,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엄마의 이야기 또 이 둘을 바라보는 딸 세 겹의 이야기가 맞물려 진행된다. 그녀 자신도 싱글맘이어서일까. 작품을 쓰며 혹독한 내부 소란도 겪었다.
“제 소설이 바로 현재를 다루는 작품이잖아요. 이런저런 취재 부분도 있지만 내 삶 속의 실제 음성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걸려서 중단되고, 또 중단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 덕분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을 두고 보게 되면서 작품이 더 밀도 있어진 것 같아요.”
책 제목이 「엄마의 집」이다 보니 작가는 엄마들의 삶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엄마의 행복, 엄마의 사랑, 또 엄마의 독립… 이 소설은 모든 엄마들에게 바치는 행복 제안서다. 작가와 엄마에 대해, 가족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부모 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
부모의 이혼으로 흩어져 사는 가족들의 이야기지만 매우 희망적이고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내용이 어떤 면으로는 춥고, 슬픈 내용이기 때문에 환하고 따뜻하게 다루고 싶었어요. 바로 전 세대야말로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곁에서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겠죠.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느 정도 깊은 불화를 가지고 있는데 소설 끝에 가면 다시 가족이 화해하는 모습으로 맺어져요. 가족이 분리되고, 해체되어 있더라도 영역을 잃어버리지 않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 안에서 엄마가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게 했죠.”
헤어져 있어도 놓을 수 없는 끈끈한 정, 결국 가족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
“아니에요. 가족이기 때문에 더 불행하게 단절되는 경우가 많아요.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에 대한 노력이 없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죠. 제 소설을 그런 가족들이 읽는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너무 태만하게 타성적으로 서로를 대하다 보면 가정에 활기가 없고 형식만 남아서 내용이 공허해지는 가족들을 많이 봐왔거든요.”
소설 속에서 전남편의 딸을 아내(엄마)가 받아들이는 모습이 나온다.
“친척 아줌마 정도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옛날에 우리 사회가 복지라는 말을 몰랐을 때도 친척이라는 안정망은 있었어요. 부모가 없어도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살아갔죠. 적어도 아이를 키워본 엄마라면 다른 아이에 대해서도 최소한 친척 아줌마와 같이 품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마치 영화 ‘가족의 탄생’과 같은 느낌이었다. 전남편의 딸과 잘 지내는 아내, 또 아빠의 또 다른 딸과 자매처럼 지내는 친딸… 대안 가족에 대한 메시지가 느껴진다.
“예술이 삶을 모방한다고 하지만, 삶도 예술을 모방하거든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제 소설을 읽고 그 안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를 발견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책을 읽는 동안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자기 삶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작가는 이런 사회 현상을 다룰 의무가 있어요. 앞으로 계속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화두가 되지 않을까 해요. 과거의 가치관과 윤리 척도만으로 ‘반쪽가족’, ‘결손가족’이라는 폭력적인 단어가 아닌, 건강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가족 구성원 중 딸을 화자로 해서 서술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사실은 딸이 화자지만 중심인물은 엄마예요. 엄마의 모습을 가까운 위치에서 이야기해줄 화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딸을 화자로 두었죠. 아들보다 딸이 엄마와 더 가까운 관계인 것 같아요. 같은 여자니까 공명도 잘 일어날 거고요. 엄마의 모습을 통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딸이니까요.”
소설에서 딸이 엄마를 ‘미스엔’이라고 부른다. ‘미스엔’이라는 단어는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 비취지게 하는 것 같다.
“엄마라는 이름이 한 여자에게는 굉장히 중요하지만, 동시에 한 여자의 부분이기도 해요. 엄마이기 때문에 삶 전체가 갇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지나치게 붙잡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다 보면 자기의 영역이 사라지고 억압받게 되죠. 훨씬 자유로울 권리가 있는데도요. 그걸 강조하기 위해 엄마를 ‘미스엔’이라고 했어요. 요즘 직장 여성들 중에는 결혼은 못해도 애는 낳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더군요. 그럴 경우에 엄마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새로운 엄마의 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육아가 끝난 뒤에 자기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하죠. 제 소설을 통해서 모든 엄마들에게 제안을 해보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아이와의 관계은 나의 집, 어떤 형태를 지닐 것인가? 실제로 싱글맘들의 현실적인 고민이 이런 것이 아닐까요?”
엄마로서도 성장을 해나가는가? ‘세상도 내 뱃속으로 지나가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당연하죠. 아이를 낳았다고 해도 바로 모성애가 주어지지는 않아요. 이 소설에서는 ‘내가 너를 안을 때마다 엄마로서 커가고 있다’는 대목이 나와요. 점점 심화되는 모성이죠. 노모들을 보면 여신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비밀이 뭘까?’ 생각하게 되죠. 우리는 ‘태어나져서 살도록 유도받은’ 존재들이에요. 엄마들은 아이를 태어나도록 하는 야만성이 있죠. 그걸 엄마가 한 생명에게 한 거예요. 생명을 만드는 것에 동참한 사람이죠. 그러면서 엄마들은 아이에 대해 미안함, 사랑, 죄의식과 동시에 엄청난 자긍심을 갖게 되죠. 엄마가 한 생명을 낳은 건 거대한 우주가 이 세계를 낳은 것과 같아요. 심화되고 심화되면 거기까지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끊임없이 기도하는 마음, 노모들에게는 그럼 마음이 있을 거예요. 아무리 미안해 해도 부족함이 있는 마음이겠죠.”
소설에서 딸이 동성애 감정을 느끼는데, 거기에 거리낌이 전혀 없어 보인다. 동성애,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열린 시각이 보이는데, 실제로 그런가?
“동생애는 범죄가 아니잖아요. 이성애는 안 위험한가요? 이성애도 정말 위험해요. 너무나 나쁜 경험도 할 수 있죠. 동성애가 위험하고 나쁘다는 건 어디서 온 거죠? 어떤 책의 서평이 9개는 재미있다, 1개는 재미없다가 달렸다고 해요. 그러면 나는 이 책을 읽어야 할까? 한 명에 속할 수도 있는 거고, 9명에 속할 수도 있는 거예요. 보편성이란 단지 양이 많은 거예요. 이성애가 우위도 아니고요. 보편성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을 생각해야 해요. 문학은 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딸이 혹시 커밍아웃을 해도 그럴 것 같나?
“물론이에요. 다만 소수자의 길은 기회의 폭이 좁다는 걸 미리 강조를 해주겠죠.”
특히 딸이 이 책을 남다르게 읽을 것 같다.
“딸은 아직 읽지 못했어요. 인도 여행 중이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궁금해 하고 있죠. 아들은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주인공의 나이가 딸과 같다. 딸에게 힌트를 많이 얻었을 것 같은데, 딸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가?
“아이들이 제게 무언가를 이야기해주면 너무너무 좋아요. 행복해요. 그래서 자식을 낳는 거겠죠. 마치 리포트가 현장을 전하는 것 같죠. 저는 삶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 있잖아요. 딸은 세상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중이에요. 자기에게 벌어지는 일을, 같이 경험하는 일들을 이야기해주죠. 그러면 삶이 풍부하게 퍼지는 것 같아 좋아요.”
딸과 단둘이 사는 싱글맘, 어떤 이들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자전적 소설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이런 일이 있다면, 그걸 써서 과연 이야기가 될까요? 불가능해요. 이런 경우는 있어요. 제가 어떤 문제 속에서 살고 있고, 또 그 문제로 인해 경험하고 일이 생겨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묘하게 사회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개인적인 문제와 사회와의 접점이 생겼을 때, 그 이야기는 사회적 테마로 성숙을 해요. 폭넓은 공감을 형성할 만한 가치가 있을 때 그걸 쓸 수 있겠죠.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소설로 쓰면 절대 안 돼요. 소설은 사유의 작품이지 경험의 작품은 아니니까요.”
보통 책을 쓰는 일을 아이를 낳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가.
“그런 비유를 하긴 하는데, 둘은 아예 다른 작업이에요. 책을 읽고 독자가 나에게 어땠다 반응을 하지만 책은 더 자라는 것 같지는 않아요. 책을 내면 그야말로 철저히 내 것이 아니게 되거든요. 책은 나오면 나를 떠나요. 자식은 자라야 하는 과정이 있으니 다르죠. 아이를 낳기만 한다면 얼마나 쉬울까요. 엄마는 영원히 계속되는 일이에요.”
■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이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