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워낸 건 어머니와 바다.고향에 대한 의무를 다할 겁니다”
인터뷰 중에도 그의 전화기는 쉬지 않고 울렸다. 한나라당 태안 유조선 사고 대책위 소위 위원장을 맡아 전 과정을 도맡았던 만큼 고향 사람들뿐 아니라 인수위 실무자들도 그를 믿고 필요로 하는 듯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는 가장 깊숙한 곳에서 태안을 위해 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건 아마도 그가 바다의 아들이어서일 것이다.
시커먼 기름띠가 태안 앞바다를 덮쳤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지난 12월 7일, 헐레벌떡 고향으로 차를 몰던 성일종 대표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 태안으로 내려가던 그날도 오늘처럼 차가 속력을 내지 못해서 애를 먹었다.
“평생을 고생만 하신 어머니세요. 손톱과 발톱이 다 빠지도록 일해서 우리 형제들을 훌륭하게 길러내셨죠. 태안 바다가 우리 가족의 삶터였고 일터였는데. 태안 하면 어머니, 어머니 하면 언제나 바다가 생각나요. 그런 바다가 저렇게 됐으니 정말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한겨울 매섭게 몰아쳤던 바람에도 저녁 늦게까지 갯벌에서 조개를 캐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 그다. 그런 어머니의 땀과 눈물에 대한 기억이 그로 하여금 ‘태안’이라고 하면 열일 제쳐두고 뛰어들도록 만드는 모양이다. 성 대표 자신이 바로 ‘바다의 아들’, 어머니의 아들이기 때문에 몸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사실 새삼 성 대표와 태안 사이에 얽혀 있는 관계를 따지자면 몇 백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4대 조부 때부터 이어 온 할아버지들의 삶은 이곳 태안의 역사와 궤를 같이할 정도다.
“14대 조부이신 성응길이라는 어른이 임진왜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전사한 뒤 임금께서 지금의 태안 쪽을 후손들에게 사패지지로 하사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이곳이 계속 바닷물이 드나드니까 농사가 안 되잖아요. 그래서 둑으로 바닷물을 막아 언암리라는 마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 간척사업인 셈이죠.”
그러나 아버지 대에 이르러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가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던 땅을 다 팔아버리고 사업마저 실패하는 바람에 어머니는 식당 일이며, 가정부 생활을 전전하다 바다로 나가시게 된 것이었다.
고생해서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 마을에 교회를 세운 것도 그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새벽마다 일어나 교회의 종을 울리셨다. 영혼을 실어 사람들을 깨우던 어머니의 종소리를 들으며 그는 자랐다. 그때 어머니의 기도 덕에 성 대표를 비롯한 4형제가 이렇게 반듯하게 자라 사회에서 이만큼 인정받으며 살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뿐이다.
고향에 대한 애틋함이 큰 만큼 상처 입은 태안을 보는 성 대표의 시름도 깊다. 가장 마음이 쓰이는 부분은 그의 어머니처럼 바다와 함께 호흡하며 기대 살아왔던 사람들이 일자리는 물론, 희망과 의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어민, 양식업 하시는 분들은 말할 것도 없구요, 숙박업, 요식업까지 다 망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고, 태안이 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도약하려면 획기적인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당장 먹고살 곳을 빼앗긴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게 뭐겠습니까? 계속적으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죠.”
성 대표는 태안에 대한 뚜렷한 나름의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 ‘내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을 법한 구체적인 것들이다.
“태안은 원래 관광도시입니다. 장기적으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을 만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할 필요가 있지 않겠어요? 예를 들면 해양 리조트 단지나 요트 단지 등을 개발하고 컨퍼런스 등이 열릴 수 있을 만한 컨벤션 센터를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겠죠. 천혜의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니 예술과도 접목시켜 자연환경과 문화가 결합된 패러다임을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극한 위기 상황에 닥친 만큼 절망에만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발판 삼아 두 걸음 뛰어오르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물론 어느 개인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와 국민들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하다. 지금처럼 태안에 쏟아지는 기적 같은 자원봉사자들의 관심이 있다면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성 대표 본인이 주도적으로 나서 궂은일을 도맡을 각오도 되어 있다.
“지금 자원봉사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활약, 태안이 되살아나는 모습은 물론 처음의 절망스러웠던 순간, 파괴된 생태계 등을 모두 담은 기념관 같은 것을 지을 필요도 있습니다. 현장을 잘 보존해 현장학습장도 만들고요. 환경 파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고 먹이사슬이 살아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걸리는지 보게 하는 겁니다.”
환경 관련 사업을 오래 해온 그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1, 2년만 유효한 눈가림식 복구가 아니라 환경 복구에 대한 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일 또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특히 화공 물질에 의한 유류 사고는 가장 극복이 어려운 유형이기 때문에 일반 재난 지역과는 달리 특수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성 대표는 한동안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미뤄두고 실질적인 태안 대책을 세우는 데 매달려왔다. 감사하게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한 실무진 및 의원들이 태안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성 대표의 의견을 수용해주고 있어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두고 있다.
“현재 여야가 특별법을 만들겠다는 것은 합의된 상태입니다. 그러니 무조건 특별법을 제정해달라는 구호만을 얘기할 때가 아닙니다. ‘특별법 안에 이런 내용을 넣어 근본적인 보장을 약속하라’는 목소리를 내야죠. 저한테 전해진 내용들은 실제로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가감 없이 전달하겠습니다. 나를 키워준 고향에 대한 당연한 의무니까요.”
성 대표는 지금 쏟아지는 국민들의 관심이 시간이 지나면 옅어져버릴까 걱정스럽다.
“당장의 보상은 당연하고, 멀리 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앞으로 30년, 50년, 그 이상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 우리 고향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같이 고민해봅시다. 우리가 그렇게 조개를 캐고 낙지를 잡아도 다음날이면 또 채워줬던 어머니 품처럼 넉넉한 바다잖아요. 어머니는 우리를 안아주실 겁니다.”
■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