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아동들과 함께한 흙 놀이 작품으로 전시회 여는 이은희씨

장애 아동들과 함께한 흙 놀이 작품으로 전시회 여는 이은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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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35)씨는 한국인 최초의 독일 도자기 마이스터다. 분야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이들에게만 수여되는 마이스터 지위를 얻기까지 그는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건 그를 믿어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아직은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날개를 펼 거라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제 그는 누군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른 이의 가능성을 보았고 믿게 됐다. 그리고 ‘그 희망의 씨앗에 더 많은 이들이 물을 줬으면’하는 마음으로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장애 아동들과 함께한 흙 놀이 작품으로 전시회 여는 이은희씨

장애 아동들과 함께한 흙 놀이 작품으로 전시회 여는 이은희씨

근육과 오감을 자극하는 흙 놀이
아이는 흙덩어리를 가만두지 않았다. 한 움큼 쥐어주면 다른 아이들처럼 주무르거나 밀거나 하지 않고 잘게 조각내버렸다. 뜯고 또 뜯어서 가루처럼 만들기만 했다. 사람들은 정서장애를 앓고 있는 이 아이가 사람들을,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거라고 했다. 그러던 아이가 1년 반 만에 흙으로 가족을 만들어 이은희씨 앞에 내놓았다.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았대요”라고 작품을 설명하는 아이를 보면서 그녀는 눈물이 났다. 그렇게 아이들이 변화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흙 놀이는 정말 큰 도움이 돼요. 흙 놀이는 물리 치료의 한 방법이 될 수 있거든요. 장애 아동들은 소근육이 약한 경우가 많아요. 가느다란 연필 한 자루도 제대로 못 쥐는 아이들도 있는데 흙을 자꾸 만지면 근육을 키울 수 있어요. 더 중요한 건 뭔가 만들어냈다는 성취감이에요. 칭찬이나 호응을 해주면 자존감도 키울 수 있죠. 또래들과 흙 놀이를 즐기면서 스트레스도 해소하고요.”

이은희씨는 노원발달센터에서 일주일에 네 번, 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흙 놀이 수업을 진행한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흙을 만지고 느끼고 덩어리를 뭉쳤다 뗐다 하며 자유로운 생각들을 표현해본다. 아직은 어떤 형태를 직접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은희씨가 틀을 만들어놓으면 거기에 자기들이 만든 것을 붙여서 이야기를 만든다. 주변에서는 “장애아들이 그런 것도 해?”라며 의아해하지만 그는 오히려 아이들의 독창적인 세계를 몰라주는 이들이 더욱 의아하다.

“아이들이 만든 작품을 보여주면 심지어 부모들조차 ‘선생님이 만들어준 것 아니냐’며 못 믿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절대 아이들 작품을 도와주지 않아요. 다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줄 뿐이에요. 한편으로는 당장 뭔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질책하거나 그만두게 하는 부모들도 있어요. 굉장히 천천히 움직이지만 분명 한 단계씩 성장하고 있는데 말이죠. 이 센터에서 처음 수업을 맡기 전에 부모님들께 단단히 일러두었죠. 결과물을 기대하신다면 전 수업 안 맡겠다고(웃음).”

그는 계속해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수업이 아니라 놀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대화를 많이 나눈다. 흙덩어리를 어떤 형태로 변화시키고 싶은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흙이 변해가는 과정은 어떤지를 생각하고 설명하게 한다.

“처음에 아이들하고 대화하기까지는 정말 오래 걸렸어요. 말을 걸면 오히려 귀찮아했거든요. 아이들이 사람들 속에서 상처를 많이 받아서 경계심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그냥 옆에 앉아 같이 흙을 갖고 놀았어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조금씩 마음을 열고 ‘이건 뭐예요?’하고 말을 걸어와요.”


“오는 2월 14일부터 16일까지 아이들 작품 보러 오세요”
안타까운 것은 장애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낯선 시선이다. ‘장애를 가진’, ‘그것도 어린아이들’이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일방적인 오해가 아이들을 더욱 위축되게 만드는 것 같아 너무 속상한 그녀다.

장애 아동들과 함께한 흙 놀이 작품으로 전시회 여는 이은희씨

장애 아동들과 함께한 흙 놀이 작품으로 전시회 여는 이은희씨

“비장애아들이 한두 번 손을 움직여서 어떤 모양을 만들었다면 우리 아이들은 수백 번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어요. 스스로 완성해내기까지의 노력이 의미 있는 거죠. 비장애아들 중에 어느 누가 그렇게까지 한 가지 일에 노력을 쏟나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의 노력과 숨겨진 재능을 알아주고 격려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마음에서 이은희씨는 요즘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수업에 참여했던 21명의 아이들이 만든 작품 중 각각 10여 점을 골라 노원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마음의 날개 달기’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노력의 과정을 널리 알려 장애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바꾸고 아이들에게는 문화적 기회도 제공하면서 더 많은 동기부여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처음에는 다들 ‘말도 안 돼. 장애인이 어떻게 수영대회에 나가? 마라톤을 어떻게 해?’라고 했잖아요. 실제로 누군가 하는 것을 보고서야 ‘장애가 있어도 우리와 똑같이 할 수 있구나’라고 알게 된 거죠. 우리 아이들이 흙을 통해서 작품을 만들고 세상을 담아내는 일을 할 수 있음을 아이들 스스로도, 사회에서도 알게 됐으면 해요.”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장애 아이들이 소속된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를 찾아가 또래 친구들과 함께 만든 공동 작품도 있어 눈길을 끈다. 장애를 겪는 친구를 ‘괴물’이라며 놀리던 아이들이 함께 흙 놀이를 하고 그 친구가 만든 훌륭한 작품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품어 안는 과정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렇게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장애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더불어 살았으면 하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이은희씨 혼자서 기획과 전시를 모두 도맡아 하기에 어려움도 많다. 처음에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답답함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우연히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희아의 콘서트에 갔어요. 그때 희아가 무대에서 했던 말이 큰 도움이 됐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큼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내가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져줄 수는 없지만 지금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기회를 마련해줘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도예, 미술 분야에 소질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는 만큼 전문가들도 전시회에 많이 찾아와 능력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원해줬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장애 아동들과 함께한 흙 놀이 작품으로 전시회 여는 이은희씨

장애 아동들과 함께한 흙 놀이 작품으로 전시회 여는 이은희씨

“요즘 조기교육이 대세라죠? 하지만 진짜 조기교육이 필요한 이들은 바로 우리 장애 아이들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는 학습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 필요성을 정부나 사회는 잘 못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도움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거죠. ‘할 수 있겠나’라는 의심을 거두고 실질적인 통합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줘야 해요.”

물론 그도 이런 전시회 한 번으로 큰 진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발판 삼아 계속 확대되고 벽을 허물어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나를 믿어준 사람들, 내가 믿고 있는
이들, 우리가 믿어야 할 가능성의 힘

이은희씨가 아이들에게서 가능성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갖고 있던 싹을 움트게 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바로 어머니.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원하는 대로 하라’며 격려해주신 어머니는 지금도 매일 손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격려해주신다. 또 가끔 아이들 때문에 속상해 하는 그에게 ‘그 아이들도 오죽하겠니’라며 ‘이해해주고 믿어주라’고 조언한다.

국내 최초로 도자기마이스터가 되면서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사실 운도 많이 따랐다. 가장 어려웠던 이론 두 과목이 국립도자기전문학교에서 이수한 것으로 대체되면서 합격권에 들 수 있었던 것. 합격 가능 점수보다 불과 2, 3점을 더 얻어 시험에 통과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그에게 마이스터증을 수여하던 분이 한 말은 지금껏 그를 지탱해준 힘이 됐다. “지금 당신 실력을 보고 이 증서를 주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10년, 20년 뒤에는 마이스터로서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드리는 겁니다. 당신에게 가능성을 보았고 언젠가는 빛을 발할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도자기와 인연을 맺고 흙에 안겨 살고 있지만 원래 그는 화학도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회에 눈을 떠 운동권에서 활동하다 보니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지 못했고 그를 대신해 큰언니가 실기 시험이 없는 한양여대 도예과에 원서를 넣는 바람에 도예를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놀러만 다녔죠. 그런데 흙은 정말 솔직해요. 내 마음 상태나 준비 정도를 그대로 새겨요. 흙 앞에서만큼은 솔직하게 집중해야 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죠. 뒤늦게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졸업 후 무작정 독일로 떠났어요. 그리고는 완전 드라마예요. 우연히 저지른 실수에,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의 도움으로, 우연한 기회의 조합들로 국립도자기전문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됐죠.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에요.”
그는 인터뷰 내내 ‘운’에 감사했지만 그 운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끈질긴 그의 노력의 결과다.

또 그의 노력을 편견 없이 바라봐주고 그 노력의 바탕에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찾아내준 이를 만났다는 건 그가 경험한 가장 큰 ‘행운’이다.

이제 자신이 받은 것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이은희씨. 그가 장애 아이들에게서 발견한 가능성이라는 작은 씨앗은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으며 커 나갈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믿음’이라는 빛을 쏘아주는 것이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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