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를 위한 재테크 만화 펴낸 신일숙 작가와의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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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는 문외한인 저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그렸어요”


순정만화 작가는 베일에 쌓여 있다. 책장을 넘기다 간간이 만날 수 있는 약식 캐릭터 안에서만 작가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직접 들은 한국 순정만화의 현실은 암담했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리니지」「파라오의 연인」의 작가 신일숙이 재테크 기본서를 만화로 펴냈다.


초보를 위한 재테크 만화 펴낸 신일숙 작가와의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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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와 경제학
신일숙(47)의 작품들은 한국 순정만화의 클래식이 됐다. 순정만화가 ‘소녀적 감수성’만을 간질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방대한 서사와 굵직한 이야기의 진행선도 순정만화만의 매력이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 「리니지」 등 다음 편을 기다리다 지치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인 작품을 그려온 신일숙 작가가 이번에는 경제서를 들고 나섰다. 「Mr. 경제학과 데이트」는 ‘재테크’의 기본을 순정만화로 풀었다.

“처음에는 쉽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시작했어요. 경제 서적을 주로 만드는 곳에서 의뢰를 해왔죠. 그런데 하다 보니 어렵게 됐어요. 제 캐릭터로 설명해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 시작했는데, 제 캐릭터로 경제를 설명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두 명의 캐릭터를 내세웠다. 일단, 경제 코치 ‘유니스 장’씨(여, 나이 미상)가 있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해박한 경제 상식을 갖춘 전문가다. 재테크에는 관심도 없던 사람들에게 필요성을 설명하고 명쾌하게 독자를 인도한다. 두 번째 캐릭터는 ‘Mr. 경제학’이다. 나이 서른둘, 키 187cm, 몸무게 70kg, 혈액형은 B형이다. 경제에 관한 모든 것에 관심이 있는 금발 미남이다. 유니스 장은 독자로 하여금 Mr. 경제학이 어떤 남자인지 알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도우미다.

“돈을 버는 여성들, 혹은 돈을 관리하는 여성들을 염두에 두고 그렸어요. 제 세대의 팬들을 생각했죠. 중·고등학교 때 제 만화를 보고 자란 여성들이 이제는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글은 여성경제연구회가 맡았다. 여성경제연구회는 ‘이제 여성이 경제를 알아야 할 때’라는 취지로 경제 전문지 기자들이 만든 단체다. 신일숙 작가도 경제에는 문외한이었다. 펀드, 주식이라는 것이 있는지는 알았지만 자세히는 몰랐다.

“재테크 ‘생초보’들이 이해하기 쉬운 책이에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글이 넘어오면 그냥 그린 것이 아니라 ‘이해가 안 간다, 쉽게 풀어줄 수 없겠느냐’고 요구했어요. 저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하니까요. 오히려 경제 지식에 해박한 사람보다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완성하는 데 2년이 걸렸다. 다른 작품을 그릴 때보다 더 어려웠다. 자신의 작품을 그릴 때는 ‘창작’이 우선이다. 시간과 자신과의 싸움일 뿐, 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Mr. 경제학과 데이트」의 내용은 여성경제연구회가 맡고 있다 보니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다.

초보를 위한 재테크 만화 펴낸 신일숙 작가와의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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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만화를 그리면서 얻은 노하우로 경제를 쉽게 풀어주는 것이었어요. ‘연출’을 빌려준 거죠.”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접근도 어려운 것이 경제다. 만화는 ‘쉬운 전달’에 적격인 매체다. 만화를 그리는 동안 신일숙 작가도 재테크에 눈이 뜨였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펀드를 추천받으면 직원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고사 직전의 한국 만화
만화시장이 전에 없이 침체돼 있는 탓이기도 하지만, 그중에도 순정만화 작가들의 행방은 묘연하다. 신일숙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만화를 좋아하는 팬들은 책 중간 중간에 가끔 등장하는 작가의 캐릭터가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로 작가의 일상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전부였다. 약식으로 그린 작가의 캐릭터와 일상은 순정만화를 읽는 재미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마저도 보기 힘들어졌다. 그 많던 순정만화 작가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벌어놓은 돈을 까먹고 있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겠죠. 암담한 현실이에요. 만화가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은 다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한국 만화의 르네상스는 1990년대였다. 주간, 격주간, 월간 만화 잡지가 인기를 끌었고 출판사는 작가가 모자라서 힘든 지경이었다. 순정만화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금은 만화를 그려도 실을 곳이 없다. 그 많던 순정만화 작가들이 사라지기 전에 먼저 없어진 것은 ‘그 많던’ 잡지들이다. 단행본은 꾸준히 나오지만 전국에 즐비한 대여점에 한 권씩 들어가고 나면 정작 개인이 소장하는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돈 내고 사보는 사람이 줄었다는 뜻이다. 인터넷에서 무료 음악을 다운 받듯 만화를 다운 받아 보는 경우도 흔하고, 대여점에서 3백~5백원에 빌려보는 것에 익숙하다.

“너무 학원물 위주의 작품을 그렸던 잡지 체제도 문제가 있었어요. 학원물은 어린 세대가 주로 보니까요. 지금은 다 커서 아주머니가 됐는데 학원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나이, 세대에 맞는 다양한 문화가 형성됐어야 했는데 끊어진 거죠.”

신일숙 작가는 일본으로 떠났던 백제 도공을 예로 들었다. 건너간 도공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거부했다. 고향이지만, 기능인으로서 천시를 받기보다 타국에서 대우받는 편을 택했다. 한국의 만화가들도 다르지 않다. 만화는 여전히 비주류다. ‘애들이나 읽는 것’ ‘가벼운 것’이라는 편견이 짙다.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죠.”
「Mr. 경제학과 데이트」는 ‘공부하는 기분’으로 그렸다. 글과 그림을 전담하던 이전과 달랐던 작업 과정도 낯설었지만 순정과는 상극일 것 같았던 ‘재테크’를 본격적으로 그린 것은 새로운 시도다. 신일숙 작가는 “제 독자들이 반갑게 생각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기는 했지만, 경제를 알고자 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게 그렸어요”라고 말했다.

지금은 「카야」라는 SF물을 연재 중이다. 처음으로 본격적인 SF 장편을 그리는 작가의 마음은 한국 만화의 르네상스였던 그때와 다르지 않다. 순정만화 시장은 고사 직전이지만, 작가의 마음은 추억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이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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