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의 대화가 아이를 ‘말짱’으로 만들어요”
집에서는 말을 잘하지만, 사람들 앞에 서면 말을 더듬거나 횡설수설하는 아이들. 무엇이 문제일까? 국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박사 1호 KBS 김은성 아나운서가 어린이들을 위한 말하기 비법을 공개했다. 부모의 관심과 노력만 있다면 누구든 ‘말짱’이 될 수 있다.
가족간의 대화가 말 잘하는 아이를 만든다
KBS 아나운서 김은성(38)은 딸 예원(10)과 대화의 시간을 자주 갖는다. 대화의 방법도 꽤 적극적이다. 이야기의 소재를 찾고, 자연스럽게 대화하기 위해 재미있는 놀이나 체험을 힘께한다.
“아빠와 원카드 게임을 할 때가 제일 즐거워요.”
“딸아이와 게임을 자주 하는 편이에요. 카드 게임을 하거나 스타 크래프트 같은 컴퓨터 게임도 하죠. 카드 게임을 하면서 예원이와 계속 이야기를 해요. 배워온 게임을 서로에게 가르쳐주기도 하고, 때로는 게임을 하면서 서로 속이기도 하죠. 어떨 때는 딸이 공부해야 하는데 마냥 같이 놀기만 한다고 아내에게 혼나기도 해요.”
그는 주말이면 딸과 함께 여러 곳을 방문해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도록 했고, 바로 그 경험을 토대로 아이에게 말하는 훈련을 시켰다.
“지난주에는 가족과 함께 경주에 갔어요. 아이와 석굴암을 둘러보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죠. 아이가 석굴암을 둘러보면서 느낀 점들을 제게 이야기하고, 저는 그 이야기를 받아 다시 질문을 던졌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가 더 깊게 생각하게 하고, 그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도록 하는 거죠.”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관람한 아이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아이가 같을까? 대화는 아이의 경험을 구체화시키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준다.
“요즘에는 말하기 훈련을 시키기 위해 학원을 보내기도 한대요. 안타까워요. 말하기 능력은 부모의 관심과 노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키워나갈 수 있거든요. 함께 경험하고, 느낀 것을 나누고, 다시 되새기게 하고, 일기를 쓰게 하고, 발표를 하게 한다면 점점 좋아질 거예요.”
사회는 점점 말 잘하는 사람을 요구한다. 특목고 입시나 학교 시험, 토익에서도 말하기가 도입됐다. 대화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하지만, 대화가 단절된 가정은 얼마나 많은가. KBS-TV ‘개그콘서트’의 코너 ‘대화가 필요해’의 가족들처럼 말이다.
김은성 역시 지금의 말 잘하는 아나운서가 되기까지 어린 시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께서는 교회 활동을 비롯해 사회 활동을 많이 하셔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저는 누나만 둘이라서 소극적으로 자랐지만, 사람들과 친해지면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죠. 교회에 다니면서 학생회장으로 회의 진행을 많이 해왔던 것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체계적인 훈련으로 말짱이 될 수 있다
현재 ‘KBS 뉴스광장(주말)’ 진행을 맡고 있는 김은성은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국내 1호 박사로 말에 관한 한 국내에서 그를 따를 자가 없을 듯하다. 사내에서는 아나운서 교육을 맡고 있고, 서울대, 경희대, 한국외대 등에서 겸임교수로, 스피치 관련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술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아나운서의 연예인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요즘, 아나운서 본연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의 행보가 오히려 특별하게 비춰진다. 한창 주목받고 있는 스타 아나운서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지난해 「파워스피치」라는 책을 펴내 좋은 반응을 얻은 그가 딸과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이를 위한 스피치」를 발간했다. 「파워스피치」의 어린이 버전인 셈이다. 그는 예원이를 포함한 7명의 어린이, 또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11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론을 적용했고, 실제로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기존의 말하기에 관해서는 원칙과 방법은 있었지만 훈련 방법에 관한 책은 없었어요. 학교 교육도 말하기와 쓰기가 한데 섞여 있는 데다가 말하기에 세밀한 부분 즉 발음, 발성, 커뮤니케이션 등이 빠져 있더라고요. 말하기도 스키를 타는 것과 같이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능력이에요. 제대로 방향을 잡아 훈련을 해야 합니다.”
김은성의 말하기 수업은 2년 전부터 딸 예원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예원이의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새 소식 발표 시간이 있어요. 이 발표에 맞춰 말하기 훈련을 시작했죠. 제 이름이 ‘은성’이니 ‘실버스타 박사’라는 별명을 짓고는, ‘실버스타 박사의 스피치 교실’라는 시간을 만들어서 아이와 수업을 했어요. 수업을 할 때는 존댓말을 쓰면서 진지하게 진행했죠. 아이가 재미있어 했어요.”
말하기 수업 첫 번째 단계는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적어보게 하는 일이다. 학교에서 친구와 싸웠다거나 새로운 놀이를 했다거나 아빠와 석굴암에 갔다거나 했던 일 등을 소소하게 써보게 했다. 그 다음 단계로 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을 선정해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한 것’, ‘생각이나 느낌’, ‘배운 점’ 등을 쓰게 했다. 그 다음 단계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구어체로 적어보는 일이다.
“말 잘하기로 유명한 미국 시스코의 존 챔버스 회장은 발표를 하기 전 직접 원고를 써보는 것으로 유명해요.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는가 하면 도중에 언제 물을 마실지, 어떤 대목에서 청중을 바라볼지도 적어놓습니다. 연구 결과 이렇게 직접 써보는 것이 말하기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스피치 개요서에는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내용과 말하는 순서, 외우기 어려운 숫자, 어려운 낱말 같은 것을 적으면 돼요. 말을 하다가 생각이 나지 않으면 중요한 부분만 살짝 볼 수 있도록 작성하면 되죠.”
‘스피치 개요서’까지 작성했다면 실제처럼 연습에 돌입한다. 실제로 발표하듯 연습하는 것이 포인트. 중간에 끊지 말고, 최소 5분 이상 해야 효과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캠코더로 녹화를 해보는 것이다. 녹화된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고칠 방법이 눈에 보일 테니까.
“저도 아빠처럼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요”
말하기 훈련을 통해 예원이는 스스로 스피치 개요서를 만들 정도로 말하기 준비에 능숙해졌다. 이 덕분에 예원이는 학교에서 ‘말짱’으로 통한다고.
“다른 친구들은 다 써온 것을 보고 발표를 해요. 그런데 저는 중요한 것만 적어서 나가고 거의 대부분 기억을 떠올리면서 말을 했더니 선생님께서 아주 잘했다고 칭찬해주셨어요. 또 한번은 선생님이 예고 없이 시 발표를 시키셨는데, 시가 길었는데도 잘 되더라고요. 제 발표에 대해 선생님은 노래하듯 했다며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정말 기분이 좋았죠.”
“예전에는 예원이가 어린아이의 말투(아성)가 있었는데 많이 없어졌고, 발음도 좋아졌어요. 말하기에 자신감이 생기니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더라고요. 자기 의사도 명확해졌죠. 그런데 곤란할 때도 많아요. 예전에는 하라는 대로 했는데, 이제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논리적으로 말하고, 무엇보다 말이 많아졌어요(웃음).”
예원이에게 아빠는 가장 큰 자랑이다. 친구들과 말하기 훈련을 함께하면서 아빠에 대한 자랑스러운 마음이 더 커졌다.
“아빠를 너무 잘 만난 것 같아요. 친구들 모두 저희 아빠를 무척 존경해요. 특히 제 친구 예지는 말하기 훈련 덕분에 친구들에게 인기를 끌었다며 ‘정말 고마워. 다 너희 아빠 덕분이야’라고 하더라고요.”
아빠의 영향 때문일까? 예원이의 꿈은 아나운서다.
말 잘하는 예원이는 책 읽기도 열심이다. 책을 많이 읽는 데에는 엄마의 영향이 크다고.
“아내는 예원이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주었어요. 그러니 지금도 자기 전에 꼭 책을 볼 정도로 책 읽는 걸 좋아해요. 독서는 말하기에 있어서도 좋은 바탕이 돼요.”
예원이가 요즘 열심히 읽는 책은 과학 서적. 그중에서도 정자와 난자가 만나 아기가 생기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정자와 난자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예원이를 바라보며 기자가 조금 당황해하자, 김은성은 “올 7월에 동생이 태어나거든요”라고 덧붙인다. 동생이 생기는 것이 신기하고 즐거운 모양이다.
“동생이 생기면 책도 읽어주고 선생님 놀이 하면서 놀 거예요. 특히 말하기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싶어요. 2월이 되면 아들인지, 딸인지 알 수 있는데, 저는 여동생이 더 좋아요. 제가 입던 드레스가 있는데 작아서 이젠 못 입거든요. 그걸 입혀주고 싶어요. 인형한테 입힐 수도 없고, 버리기는 아깝고요.”
예원이의 너무나 현실적인 말에 기자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역시 말하기 훈련 덕분인가!
■ 글 / 두경아 기자 ■참고 서적 / 「어린이를 위한 파워 스피치」(시공사주니어, 김은성) ■ 가구 협찬 / 데
코룸(www.decoroom.co.kr) ■사진 / 이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