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줌마의 슈퍼우먼 되기, 제가 이뤘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가능성은 예상했던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위기의 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 예감하기도 하고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작’이 있어야 한다는 것. 5년 전, 한 남자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였던 심순희씨의 가능성은 미약한 시작에서 울창하게 자랐다. 평범한 ‘아줌마’가 ‘슈퍼우먼’이 되기까지..
(주)청호나이스 플래너 노원지점의 심순희(41) 팀장은 전형적인 주부사원의 성공 모델이다. 2002년 입사 후 4년 만에 팀장으로 승진, 30명의 플래너를 거느리고 2007년 하반기 우수실적과 매출 1등 실적을 달성했다. 1년 평균 유상 계약 금액은 6천~7천만원. 연봉은 5천만원이다. 6년 전 서른다섯 살의 나이로 플래너 일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이러한 성공은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미처 바라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일을 시작한 건 아이들 유치원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둘째와 셋째가 연년생이었어요. 유치원비 3개월치를 분기별로 내야 했는데 한 아이당 입학금, 체육복, 가방, 준비물까지 포함해서 80만원이더라구요. 남편 혼자 벌어서 아이들 교육비 마련는 게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일단 ‘아이들 유치원비라도 벌어보자’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별한 기술이나 전공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스물일곱 살에 결혼해서 10년 동안 평범한 주부로 지내다 하루아침에 사회생활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욕심도 생겼다.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었어요. 아이들과 남편한테 소홀해지거나 피해주지 않고 일도 잘하고 싶었죠.”
당시 심 팀장의 기상 시간은 새벽 5시. 아이들과 남편 도시락을 싸고 아침 준비와 청소까지 완벽하게 하고 집을 나섰다. 일 때문에 집안일에 소홀하다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남편이 반대를 많이 했다. 오죽하면 신입사원 연수도 남편 몰래 갔을까.
“주부사원 뽑아 놓고 연수 보내는 데가 많지 않잖아요. 안 그래도 반대가 심한데 다단계나 피라미드로 오해할까 봐 학교 엄마들과 여행 간다고 하고 연수를 갔어요. 아이들은 시어머니께 맡겼죠.”
심 팀장은 결혼 전 4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학교 졸업 후 89년부터 93년까지 쌍용제지에서 근무하다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뒀다.
어쩌면 예전의 사회생활이 그리웠던 것일까. 일을 하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그때 가서 그만두더라도 한번 시작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때가 큰딸이 초등학교 1학년, 둘째와 셋째가 유치원을 다닐 때였다. 그때부터 큰딸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 일을 계속 하고 있다.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 달 실적이 안 좋았다. 힘들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처음부터 반대가 심했던 남편에게 ‘그럼 그렇지’하는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았다. 오기로 마음을 다잡고 고비를 이겨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악바리 근성이 나왔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원래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어요. 결혼하고 나서 공직자 남편과 살다 보니 성격이 내성적으로 바뀌더라구요. 제가 남편을 굉장히 좋아하고 존경하는 편이거든요. ‘남편이 하는 말은 다 옳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남편한테 최대한 맞추다보니 어느덧 현모양처 스타일이 되어 있더라구요. 일을 하면서부터 원래의 활발한 성격이 다시 살아난 것 같아요.”
한 가지 일에 조용히 집중하는 스타일이면서도 일에 있어서는 굉장히 적극적인 편이다.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꼭 하고 마는 성격이다. 이러한 성격이 고객 유치에 어떻게 작용했을까.
“보시다시피 제가 애교 많고 사근사근한 인상은 아니잖아요. 신중하게 다가가는 편이에요. 업무적으로나 일적으로 처음에는 꼼꼼히 따지고 완벽하게 접근하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적극적으로 다가가요.”
가장 행복할 때는 ‘심순희’를 인정해줄 때
주부 10년 차의 꼼꼼함은 역시 빛을 발했다. 심 팀장은 고객 유치의 기본으로 언제나 시간 약속을 목숨처럼 지켰다고 강조한다. 정기적으로 고객을 방문해 정수기 상태를 점검하고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하는 직업이니만큼 방문 시간을 꼼꼼히 챙기는 것은 필수. 1분 아니, 1초만 늦어도 고객과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기본에 충실했던 심 팀장은 입사 4년 만에 플래너에서 팀장으로 승진했다.
입사 초기, 집안일과 직장에 모두 충실한 ‘슈퍼우먼’이 되고 싶었다는 심 팀장. 그 꿈을 이뤘을까? 대답부터 하자면 ‘이뤘다’. 하지만 혼자 이룬 것은 아니다. 남편과 아이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이 점점 많아지니까 어쩔 수 없이 가정 일에 소홀하게 되더라구요. 처음엔 힘들었는데 하나하나 고쳐 나갔어요.”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아이들에게 인스턴트식품을 전혀 먹이지 않았다. 아이들도 집에서 엄마가 만든 반찬을 좋아했고 피자나 라면에는 입도 안 댔다.
“학교 다녀와서 엄마가 없고, 매일 만들어주던 간식이 없으니까 힘들어하더라구요. 플래너 때만 해도 아이들 학교에 녹색어머니회, 명예교사, 어머니회 다 했어요. 팀장이 되면서 포기하는 부분도 생겼지만 그만큼 아이들과 남편이 채워줘요. 너무 고맙죠.”
맨 처음 그렇게 반대했던 남편도 요즘 주부 습진에 걸렸다고 할 정도로 집안일을 도와준다. 아이들도 엄마가 하는 일을 인정해준다.
“월 초 목표가 정해지면 아이들에게 공표를 했어요. ‘엄마 이달엔 5백만원 도전이야!’ 라구요. 이제는 아이들도 함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해요.”
그렇게 목표를 달성해서 받은 월급으로 신랑에게 용돈 줬을 때 그렇게 기분이 좋았단다. 이제 집에서도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심순희’를 인정해준다. 그렇게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인정해줄 때, 그때가 제일 행복하다.
심 팀장은 직접 겪어본 사람으로서 누구라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주부들에게 두려워말고 도전하라고 조언한다.
“집에서 집안일 하듯, 청소하고 빨래하듯 부담 없이 생각하세요.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직업입니다.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용기와 적극적인 마인드만 가지고 시작하세요.”
인터뷰 내내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던 심순희 팀장. 인터뷰를 마친 소감은 어떨까?
“이 기사를 보고 주부들이 ‘저 사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열심히 하니까 성공하는구나.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이렇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것뿐이에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