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든, 인터넷보다는 아날로그가 우선입니다.
종이 가계부를 쓰는 습관을 먼저 들이세요”
주식이 1,700선을 치고, 큰맘 먹고 주식과 펀드에 투자한 사람들은 갈팡질팡했다. 마이너스 수익률에 가슴 졸였다. 이럴 땐 잠시 쉬어가는 게 좋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마음 편하다. 재테크의 기본은 가계부다.
가계부가 돈을 벌어주지는 않는다. 씀씀이를 기록하는 게 전부다. 그마저도 부지런하고 꼼꼼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쓰는 것과 같다. 써본 사람은 안다. 가계부가 돈을 벌어주지는 않지만, 절약에는 탁월한 계기가 된다.
“막연하게 지출을 줄이려고 애쓰는 것과,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알고 줄이는 것은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지출 내역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 아무래도 합리적으로 씀씀이가 줄어들게 되죠. 가계부의 첫 번째 목적은 재테크입니다.”
이지데이(www.ezday.co.kr)는 가계부 부문 1위인 여성 포털 사이트다. 이인경 대표(36) 부부도 이지데이 가계부 서비스를 이용한다. 게시판에는 가계부를 쓰는 부부들의 사연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그중에는 ‘지출 내역을 보고 남편과 싸웠다, 누가 잘못한 것이냐’고 물어오는 사연도 있다.
“부부가 2백만원씩 벌고 있는데, 양가 부모님 용돈을 20만원씩 드린다.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질문에는 다양한 덧글이 달린다. “남편이 식비를 줄이라고 하는데, 어떤 항목을 줄여야 하나요”라는 질문에는 “많이 쓰긴 쓰셨네요” “고기를 좀 줄이세요” 등의 반응이 달리는 식이다.
“일기든 가계부든 뭔가 쓴다는 것은 분석과 통계를 위한 겁니다. 비교를 위한 거죠. 가계부를 쓰면 소비 성향을 일목요연하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 계산이 나오는 거죠.”
비교 분석이 쉽다는 것은 인터넷 가계부의 장점이다. 오프라인, 즉 손으로 쓰는 가계부는 합산도, 분석도 어렵다. 1년 동안 쓴 외식비가 궁금하면 일일이 찾아서 합산해야 한다. 항목별 정리가 빠르고 원하는 기간의 소비를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것도 인터넷 가계부만의 강점이다. ‘화장품’이라고 입력하면 화장품을 구매하는 데 소비한 내역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처음 쓰시는 분들은 어려워합니다. 이용자의 다양한 욕구에 맞추다 보니 기능이 점점 개인화되고 복잡해졌거든요. 몇 시간 투자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인경 대표는 오프라인 가계부부터 적는 습관을 들이라고 조언한다. 종이 가계부를 쓰다 보면 필요한 기능이 생각나게 돼 있다. 더 필요한 기능에 대한 욕구가 생겼을 때, 인터넷 가계부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지난 12월 「레이디경향」 별책부록이 가계부였다. 기본 씀씀이를 줄이고, 차분하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습관을 기르는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아날로그 쭭 디지털
두 살배기 아들을 둔 주부 5년 차 김용주씨는 인터넷 가계부 3년 차다. 시작은 인터넷 `다이어리였다. 집안의 대소사를 효율적으로 챙기기 위한 습관이었다. 아이가 생기고, 살림이 커지면서 각종 공과금, 보험료, 카드대금 인출 날짜, 영수증, 경조사비, 부모님 용돈, 양육비 등 신경 써야 하는 항목들이 늘어갔다. 모든 것을 일일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챙기는 것도 부담이 됐다.
“처음에는 모르는 용어도 많고 사용법도 어려워 수입과 지출 등록만 사용했어요. 별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한 달 지출 내역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되니 다른 기능들도 익히고 싶어졌죠.”- 김용주씨
지금은 계좌통합기능, 각 통장의 거래내역 및 잔고, 카드사용내역, 보험료 및 각종 마일리지 조회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는 ‘고수’가 됐다. 계획하지 않은 부분의 지출이 줄어들고 소비를 자제하면서 점점 늘어가는 통장 잔고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에는 기념일 관리, 메모, 일기 등 ‘다이어리’ 서비스와 인맥 관리 서비스로 시작했어요. 그리고 돈 관리 기능을 추가한 거죠. 여성들이 돈 관리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습니다. ‘이런 기능을 추가해달라’는 요구도 많아졌어요.”
무턱대고 인터넷으로 시작하는 가계부 계획은 작심삼일에 그치기 쉽다. 간단한 다이어리를 소지하고, 소비하는 즉시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먼저다. 지나가는 길에 구입한 담배 한 갑의 지출을 기입하기 위해 ‘인터넷’을 찾는 것은 또 다른 낭비다.
“뭐든지 ‘아날로그’가 먼저 입니다. 그것을 더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IT’ 즉 ‘인터넷 가계부’죠. 하루면 하루, 일주일이면 일주일 계획을 세워서 차분히 옮겨 적는 습관을 들이는 게 지혜로운 가계부 습관입니다.”
인터넷으로 용돈까지
게시판에는 자연스럽게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모임을 꾸리고 오프라인에서도 활동한다. ‘일기장’ 서비스는 공개/비공개 설정을 할 수 있다. 공개 일기장 사연에도 다양한 덧글이 달린다. ‘만나자’ ‘이달의 오프 모임은 셋째 주 금요일입니다’ 등의 글도 눈에 띈다.
“개인 정보 관리를 하는 사람은 애착이 갈 수밖에 없어요. 매일 들어와서 써야 하니까요.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또 다른 애착을 갖게 되고요. 요리, 리빙 등에 관련해서는 일명 ‘사용자 작가’ 분들도 계세요.”
남다른 글재주와 감각으로 수많은 회원들의 공감과 호응을 얻는 회원들은 ‘사용자 작가’로 대우한다. 따로 게시판을 만들어 월 업로드 횟수를 미리 협의하고 한 달에 적게는 10만원, 많게는 60만원 정도의 부수입을 올리는 주부도 있다.
“육아 관련 글을 쓰고 계시는 분인데요, 작가는 아니지만 취미로 올리다가 ‘아르바이트’처럼 된 경우죠. 두 가지예요. 원래 작가이셨던 분, 쓰다 보니 호응이 좋아서 작가처럼 마니아 수준으로 올라가신 분.”
가계부 서비스 부문 1위를 고수하고 있는 만큼, 주부들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관건이다. 이인경 대표는 출산과 육아로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주부들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한 기획을 하고 있다. 요리, 꽃꽂이 등의 취미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마당’을 제공한다. 취미가 직업이 될 수도, 생산적인 투잡(Two Job)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는 소비자 입장에서 여러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어요. 많은 회원들이 모이면 물건을 싸게 살 수도, 가족사진을 싸게 찍을 수도 있겠죠.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나 피해에 대해서는 같이 대항할 수도 있을 거고요(웃음).”
직장인이 한 달에 소비하는 커피값이 1만8천763원이라는 통계가 있다. 유명 테이크아웃 전문점에서 한 잔에 3천원으로 계산하면 한 달에 여섯 잔이라는 대략의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카페형 인간’이라면 일주일도 버티기 힘든 액수다.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의 술값, 담뱃값도 ‘나도 모르게’ 지출하는 대표적인 항목이다. 긁는 순간 잊는다. 무계획한 지출의 효과적인 통제는 가계부로 시작할 수 있다. ‘인터넷 가계부’를 쓰면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부가 서비스는 덤이다.
■ 글 / 정우성 기자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