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5월 5일 어린이날 받고 싶은 선물로 주저 없이 ‘만화 둘리!’를 외쳤다. 해마다 열리는 운동회 때면 ‘요리 보고 조리 봐도’로 시작하는 둘리의 주제곡에 맞춰 매스게임을 했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 자란 둘리는 얼마 전 4월 22일, 만 25세 생일을 맞았다. 이제 아기공룡은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다시 찾아올 둘리를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둘리 아빠’김수정을 만났다.
새로 태어나는 둘리와 지속적인 감정 교류를 이어갔으면
“극장용 애니메이션도 ‘얼음별 대모험’이 상영된 게 1996년이니까 정말 오랜만의 작업이에요. 둘리 만화 연재가 끝난 것도 1994년이었고. 1980년대 방영했던 둘리가 한 편당 12~13분인 것에 비해 이번에는 에피소드별로 22~23분씩 26편을 구상해야 해요. 좀 더 이야기를 보강하고 극적으로 드라마적인 요소를 가미했어요.”
10여 년 만의 재집필이다. 그도 둘리를 마주 대한 감회가 새롭다. 기존 만화를 원작으로 하지만, 종이 위의 캐릭터들을 화면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책으로 보는 감칠맛 나는 화면 분할 효과는 덜할지도 모르지만, 진지한 삶의 굴곡은 더 잘 표현될 수 있을 겁니다.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은 ‘둘리의 기본’을 잃지 말자는 거예요. 처음 둘리가 태어났을 때의 모습과 성격, 매력을 부활시키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사실 둘리가 맨 처음 만화에서는 ‘귀엽다’기보다는 다소 강한 캐릭터였거든요. 짓궂기도 하고 때에 따라 사납고 못되게 굴기도 했죠. 얼굴 모습도 회를 거듭하고, 또 상품화되면서 예쁘게 변했는데 처음에는 공룡에 가까운 모습이었어요.”
둘리의 본 모습을 찾아가려고 하다 보니 일부 팬들 중에는 ‘내가 알던 둘리가 아니다’라며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얼마 전 진행되고 있는 작업의 일부를 UCC로 만들어 인터넷에 올렸는데 이를 본 이들의 반응이 여러 가지로 엇갈렸다. 하지만 김수정씨는 둘리를 더욱더 ‘둘리답게’ 만들어내고 싶다고 한다. 처음에는 좀 낯설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고뭉치 둘리를 사랑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게 바로 둘리야’라며 반가워할 거라는 생각이다.
“사실 작업에 임하는 자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작가들이 만화를 그리면서 하는 생각은 딱 한 가지예요. ‘내 만화를 보고 사람들이 즐거워할 것인가’라는 거죠. ‘얼마나 많이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함께요. 이번 애니메이션도 ‘재미’와 ‘공감’이라는 큰 축을 정해두고 작업하고 있어요.”
하지만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지금, ‘요즘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 ‘재밌는’ 만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둘리가 처음 세상의 빛을 본 1983년과 지금은 사회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전체 줄거리에 크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배경이나 인물들의 이야기를 현대화시키는 과정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김수정 작가는 그 시절 둘리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또 만화를 좋아하는 그들의 아이들이 새로 태어나는 둘리와 지속적인 감정 교류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더욱더 애니메이션 작업의 작은 것 하나까지 직접 챙기게 된다.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감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캐릭터 디자인에 전체적인 연출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애니메이션은 배우들이 나오는 게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움직이는 만화 영상을 만드는 거잖아요. 아무리 좋은 기술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원작자의 만화적 감각만큼은 다른 누군가가, 혹은 기계가 대신 표현해주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직접 다 체크하고 있어요. 사실 이건 제가 욕심을 부리는 건지도 몰라요. 내 감각이 건재하다는 착각도 하는 것 같고(웃음). 120명이나 되는 유능한 스태프들이 함께 일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둘리 아빠’니까. 친 아빠는 아무래도 특별한 데가 있지 않겠어요?”
둘리네 동네 쌍문동에 들어설 ‘둘리 마을’
‘호이~호이~’ 초능력을 외치던 1983년생 둘리는 올해 만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지난 4월 22일은 둘리의 생일이기도 했다. 고길동 아저씨의 속을 많이도 썩였던 말썽꾸러기 둘리가 자라온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다. 사실 둘리가 등장하기 전까지 척박하기만 했던 만화 산업은 둘리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둘리로 인해 발전했다. 출판 만화로는 처음으로 TV 시리즈 방영,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개봉 및 한 해 흥행 순위 4위 기록, 뮤지컬 공연, 유엔아동기금 카드 후견인 지정, 캐릭터 활용, 최초 만화 주인공 우표 발행 등 기록을 다 나열하기도 벅찰 정도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그 시간 동안 꾸준히, 변함없이, 대중의 사랑을 누려왔다는 것이다.
“둘리는 특정 시대에 맞춰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에요. 주변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가족과 아이들의 모습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과 계속 교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트렌드는 바뀌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잖아요. 처음 둘리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자신 있게 ‘재밌다’며 권할 수 있는 캐릭터가 바로 둘리죠.”
이러한 장점을 무기로 둘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성장을 거듭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둘리 마을’ 조성 계획도 발표됐다. 만화 둘리의 배경이 된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 쌍문근린공원에 기념관, 만화미술관, 야외전시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오는 2011년 어린이날로 완공 날짜를 잡고 김수정씨의 기초 설계안을 바탕으로 공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처음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 자리를 잡은 곳인 쌍문동에 대한 김수정씨의 애정은 각별하다. 매일 같이 오가던 거리와 동산은 그대로 만화 속에 옮겨졌다. 고길동의 집은 실제로 김수정씨가 자취하던 집과 구조며 모습이 거의 똑같다.
“사실 그 동네가 문화적 서비스 여건이 약한 편에 속합니다. 저도 20년 넘게 살면서 제대로 쉴 만한 곳이나 즐길 만한 곳을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둘리 마을이 문화 사랑방 같은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작은 공간이지만 편하게 이용하면서 함께 쉬고 즐길 수 있는 곳이요. 둘리를 추억할 수 있는 과거가 스며 있기도 하지만, 디지털 시대도 반영할 수 있는 그런 공간. 욕심 같아서는 극장도 몇 개 지어서 항상 애니메이션이나 어린이 영화를 상영했으면 좋겠고, 아담한 테마파크 형태가 됐으면 하는데 너무 과한가요? 둘리 마을이 생기면 집값도 좀 올랐으면 좋겠는데…(웃음).”
김수정씨는 둘리, 또치, 도우너가 천방지축 헤집고 다니던 그 시절 쌍문동 뒷산과 골목이 아직도 생생한 모양이다. ‘나에게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구나’라며 힘들어했던 그때의 고민이 동네 곳곳에 묻어 있기 때문일 테다.
가난도 좌절도 꺾지 못한 만화가의 꿈
그 힘들었던 어린 시절부터 만화는 그의 목표였다. 김수정씨가 만화를 처음 접한 것은 여섯 살 때. 형을 따라 만화가게에 갔던 그는 순식간에 만화에 매료되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형들의 공책 귀퉁이에 책에서 봤던 그림을 그렸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연필 한번 잡아보기 어려웠던 그때, 기막힌 그의 그림 솜씨에 식구 모두 놀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만화가의 꿈이 영글어갔다.
“만화가 너무 좋았어요. 주변에서는 그렇게 가난으로 고생했으면 됐지 왜 또 배고픈 만화가가 되려 하느냐고 만류했지만 어쩔 수 있나요. 좋은데. 한때는 저도 만화를 접고 영업 일을 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꼬박꼬박 월급도 나오고 하니까 좋았는데, 몇 달이 지나니까 계속 뭔가 피폐해져가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우연히 제가 그린 그림을 본 동료가 “만화가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하는데 ‘정말 내가 여기서 뭘 하나’ 싶어서 만화로 다시 돌아오게 됐어요.”
그렇게 만화는 김수정에게 운명적 끌림 같은 것이었다. 살면서 또 한 번 한창 ‘중동 바람’이 불 무렵, 회사마다 신청을 해보았지만 원서를 내는 족족 다 떨어졌고, 결국 만화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만류하는 가족들에게 큰소리를 치고 만화를 쫓아 올라온 서울에서도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잡지 등을 보며 혼자 배우고 연습했던 그의 만화 원고를 받아주는 출판사는 없었고, 한 출판사에서 문하생으로 들어가라며 소개해준 유명 만화가는 참담한 평가만 남기고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전화위복이었다. 기존 작가와 화풍이 비슷한 그림은 우선 탈락시킨다는 심사 기준이 문하생 생활 한번 해보지 못해 ‘개성 있는’ 그림체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그를 살렸다. 그리고 힘들었던 지난 시절은 ‘1남 4녀 막순이’ ‘일곱 개의 숟가락’ 등 사람 냄새 나면서도 가슴 찡한 작품의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막상 만화가로 등단하고 나니 더 큰 어려움이 있었다. 먹고사는 것보다 더 절절한 문제는 바로 ‘만화의 빙하기’라 불리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 도덕 교과서보다 더한 잣대를 들이대는 심의 규정 때문에 당시 많은 만화가들이 업계를 떠나거나 골머리를 썩어야만 했다. 얼토당토않은 규정들은 그의 창작열을 옭아맸고 스트레스는 날로 심해만 갔다.
“하지만 만화를 버릴 수는 없었죠. 저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해서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는데 심의를 피하려면 아이보다는 동물을 의인화해서 내세우는 편이 낫겠다 싶었어요. 어떤 동물이 좋을까 고민을 했는데, 제가 또 남들이 했던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거든요. 기존에 만화로 그려지지 않았으면서도 순수함을 간직한 동물을 찾다보니 공룡이 떠올랐습니다. 공룡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무서워하지만 천진난만한 아기 공룡으로 주인공을 정하면 신선하고 친근하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태어난 것이 바로 ‘외로운 둘리.’ 여기에 30, 40대 보편적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길동, 단순하면서도 다혈질인 도우너, 약삭빠르지만 귀여운 또치, 꿈을 좇는 순진한 청년 마이콜, 사랑받고 싶어하는 아기 희동이까지 기본 인물 라인업이 완성됐다. 모두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성격의 등장인물들이다. 한 가지 귀띔을 하자면, 카메오처럼 등장하는 만화 작가 ‘김파마’는 김수정씨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다. 스타처럼 보이지만 불쌍한 인물이라는 ‘김파마’는 바로 만화가 본인의 모습이라고 하니 주의 깊게 살펴봐야겠다.
둘리 가족을 통해 소중한 가족의 이야기 전할 것
둘리가 나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아기 공룡 둘리를 사랑했던 독자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어른이 되었다. 만화가 김수정도 어느덧 덥수룩하던 머리카락이 성글어진 (주)둘리나라의 감독이 되었다. 만화가로서 최고의 성공은 ‘자신이 그린 만화를 보고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좋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따지면 김수정은 이미 만화가로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맛본 셈이다. 그러나 아직 여기가 결승선은 아니다.
“꿈을 이루면 또 새로운 꿈을 꾸게 되죠. 현재 작업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이 ‘대박’ 났으면 좋겠어요. 사실 한동안 만화를 그리는 일을 쉬었어요. 이번에 재탄생하는 둘리가 사람들의 친구가 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이제는 세계적인 캐릭터로 둘리를 키우고 싶어요.”
올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둘리와 김수정씨. 둘리 아빠는 둘리와 그 친구들에게 한 가지 다짐의 말을 남겼다.
“만화를 그리는 동안만큼은 나이를 먹지 않으려고 노력할 겁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겠지만, 둘리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순수하려고 노력해야죠. 둘리를 통해 맑은 이야기들,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속내, 사람과 사람이 맞부딪치는 일상 그리고 인간애 등, 이런 것들을 둘리를 가슴속 좋은 친구로 기억하는 분들께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들려드리겠습니다.”
■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