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돌잔치까지만 살고 싶다는 엄마의 약속은 지켜졌다. 그러나 돌잔치는 미뤄졌다. 대신 아내는 돌잔치를 잘 치러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남편은 유언대로 딸의 돌잔치를 성대히 치렀다. 아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날 태어난 딸이었다.
딸의 돌잔치 날까지만 살고 싶다는 엄마의 약속은 지켜졌다. 그러나 돌잔치는 미뤄졌다. 마지막 날, 의식을 잃은 안소봉씨를 붙든 건 “돌잔치 해야지”라는 말이었다. 그는 이 말에 반짝 눈을 떴고, 일으켜 달라고 했다. 예쁜 딸을 놔두고 그렇게 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의식도 반짝 곧 영원한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안소봉씨는 딸 소윤이와 지극 정성으로 자신을 돌본 남편 김재문씨(31)를 두고 지난해 10월 1일 세상을 떠났다.
안소봉·김재문 부부의 이야기는 MBC 휴먼다큐멘터리 ‘사랑’의 제4화 ‘엄마의 약속’편을 통해 방영됐다. 지난해 5월 방영에 이어, 올 5월 그 후의 이야기가 방영되어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지난해 방영분에서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이들의 사연은 「엄마의 약속」(플리북스)이라는 책으로 발간되기도 했다. 안소봉씨는 그렇게 잘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제 그는 세상에 없다.
아내가 남긴 최고의 선물은 아내를 꼭 닮은 딸
다큐멘터리 방영 이후, 아내를 보낸 김재문씨와 엄마를 잃은 소윤이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현재 그들은 경남 마산에 살고 있었다. 김재문씨와 연락이 닿아 이메일로나마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편지는 “아내의 기억을 떠올리는 게 생각보다 힘드네요. ‘이제는 괜찮겠지’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은 상처가 아물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됐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마음은 딸 소윤이가 달래준다. 무엇보다 소봉씨가 남기고 간 최고의 선물인 소윤이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한다.
“소윤이는 아내를 많이 닮았어요. 어떤 때는 아내와 함께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내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아이입니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가족에게 웃음을 주는, 오아시스 같은 아이예요.”
어디가 그렇게 닮았느냐고 물으니 그는 “씩 웃을 때랑 삐쳐 있을 때 아내와 정말 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자랑스러운 돌잔치는 아내의 바람이었다. 소봉씨는 돌잔치 장소와 소윤이의 어린이집 그리고 가족 여행을 갈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그 유언을 재문씨는 하나하나 지켜가고 있다.
“돌잔치도 잘 끝냈어요. 아내가 꼭 함께하고 싶어 했던 돌잔치였기에 아내 생각이 많이 났죠. 아내가 함께 있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즐겁게 치렀습니다. 가족 여행 중 휴양림에 가라고 한 부분을 지키지 못했어요. 휴양림은 일찍 예약이 차버려서 가기 힘들고, 올여름에는 펜션으로 휴가를 갈까 합니다.”
아내의 유언처럼 소윤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소봉씨는 마산, 창원, 진해 지역 유치원 영어 파견 교사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어린이집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내는 이미 소윤이가 다닐 어린이집까지 선별해놓은 상태였다.
방송에서 잠깐 비친 돌복이 궁금했다. 소윤이는 돌잔치 때 아내가 손수 지어준 옷을 입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일 아쉽게도 다른 옷을 입고 등장했다.
“막상 돌이 되니 조금 작은 듯했습니다. 아내가 있었다면 수선을 해서 더 예쁘게 입혔을 텐데…. 아내가 직접 만든 옷이라 소박하지만, 다른 옷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예뻐요.”
아이 취학 전에는 엄마에 대해 말해줄 터
어린 소윤이가 벌써 22개월이 되었다. 엄마의 부재, 아빠의 슬픔과 관계없이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소윤이는 특히 말이 빨리 늘고 있어요. ‘아빠 있네, 아빠 없네’라는 말을 할 때면 너무 귀여워요. 재롱도 늘어 자기가 춤을 출 때면 가족이 모두 박수를 치도록 유도하곤 해요. 그럴 때는 정말 아내를 많이 닮았죠. 소윤이 덕분에 하루하루가 항상 즐거워요.”
처가와 본가에서 양육을 돕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의 손이 아쉬울 터. 앞으로 점점 아내의 빈자리를 느낄 듯하다.
“여자아이다 보니 머리도 묶어주고, 먹이는 것도 챙겨줘야 하는데 제가 그런 것을 잘 못해요. 지금은 어머니가 하고 계신데, 앞으로 육아와 교육 면에서 아내의 빈자리가 많이 느껴질 것 같아요. 아내가 영·유아 영어 교육을 했기 때문에, 살아 있었다면 소윤이가 아마 엄마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을 거예요.”
소윤이에게 엄마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너무 어려 기억하지 못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많은 걸 기억하고 있었다. 돌복을 입히려고 하니 처음에는 거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족사진 속의 아내를 보여주면 외면하기도 한다. 소윤이의 기억 속에 엄마는 늘 아픈 모습이었기 때문일까.
소윤이가 더 자라면 엄마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으로 인해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만큼 엄마를 잃은 슬픔도 클 듯하다. 소윤이가 얼마나 크면 엄마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엄마에 대해 궁금해 할 때 가르쳐줄 생각이에요. 제 생각에는 초등학교 취학 전에 가르쳐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방송된 다큐멘터리나 책을 통해 많이 알게 되겠죠. 누구보다 그리고 자기 목숨보다 소윤이를 사랑했다고 이야기하고 싶고, 정말 멋지고 존경스러운 엄마였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남겨진 자들의 슬픔
돌이켜보면 후회되지 않는 것이 왜 없을까.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그토록 헌신적으로 병간호에 매달렸지만, 생각하면 모든 것이 후회뿐이다.
“‘아내의 암이 조금이라도 일찍 발견되어 수술만이라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지금처럼 아내를 떠나보내지 않아도 됐을 텐데…’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내가 임신해서 구토가 심할 때 입덧이라고 넘긴 것도 그렇죠. 제가 당시 야근이 많아서 아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탓이에요. 또 아내가 소윤이와 보낼 시간을 많이 주지 못한 게 미안해요. 그 점이 가장 미안하네요.”
혼자 몸으로 소봉씨를 키워온, 그의 친정어머니의 슬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장모님이 젊었을 때 사고로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대요. 그때 장모님 인생에서 이것보다 더 큰일은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대요. 그런데 아내가 암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장모님은 정말 받아들일 수 없으셨다고 합니다. 다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 장모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으셨을 거예요.”
“아내는 항상 저를 지지해주고, 사랑해주는 제 ‘왕팬’이었어요. 솔메이트였다고 할까요. 항상 밝은 성격에 통통 튀는 매력을 가진 진취적인 사람이었죠.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결혼해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아내는 항상 제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김재문씨의 사랑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아직도 그 사랑은 그가 살아가는 이유다. 하루하루 그는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은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아내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은 여전하다.
■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제공 / 김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