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 부작용 그 후, ‘선풍기 아줌마’ 한혜경의 다시 찾은 삶

성형 부작용 그 후, ‘선풍기 아줌마’ 한혜경의 다시 찾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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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어렵게 얻은 직장 오래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명 ‘선풍기 아줌마’로 불리는 한혜경씨가 얼마 전, 한 아침 방송에 출연하면서 또다시 화제다.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얼굴이 한껏 부풀어 올라 ‘선풍기 아줌마’라는 별명을 갖게 된 그는 여러 번의 수술을 거치면서 얼굴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선풍기 아줌마’ 한혜경씨의 다시 찾은 삶에 관한 속내.


성형 부작용 그 후, ‘선풍기 아줌마’ 한혜경의 다시 찾은 삶

성형 부작용 그 후, ‘선풍기 아줌마’ 한혜경의 다시 찾은 삶

지난6월 중순 어느 일요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 5동에 위치한 한혜경씨(47) 집을 찾았다. 도로에서 약간 떨어진 주택가 골목 안쪽에 자리한 허름한 빌라 지하. 벨을 누르자 얼마 안 있어 그가 문을 열고 기자 일행을 맞았다. 인터뷰에 응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자 그는 “방송 출연도 했는데요, 뭘”이라면서 “제가 원래 거절을 잘 못해요”라고 덧붙인다. 그의 얼굴은 예전보다 훨씬 나았고, 표정 역시 밝아 보였다.


‘한미옥’이 아닌 ‘한혜경’으로 살기까지
‘선풍기 아줌마’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건 지난 2004년 11월이다. 당시 SBS-TV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불법 성형 시술 중독으로 일반인보다 서너 배나 큰 얼굴을 갖게 된 한미옥씨의 사연이 방송되면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젊은 시절, 한국과 일본에서 가수로 활동한 바 있는 한미옥씨는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였다. 조금 더 예뻐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불법 성형 시술을 한 게 화근이었다. 얼굴은 일반인의 서너 배 가까이 커졌고, 눈, 코, 입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성형 시술 이후 더 이상 가수 활동도 하지 못했다. 공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얼마 못 가 그만둬야 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성형 시술의 부작용은 정신분열증으로 이어졌다. 그는 “환청과 환각에 시달려 얼굴에 콩기름과 파라핀 등을 주입했다”고 고백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됐다. 급기야 그는 자신의 손등에 파라핀을 주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가 자살을 생각한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점점 이상해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꿈도 희망도 모두 잃었다. 한미옥씨가 세상과 등을 진 건 그때부터였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질 않았어요. 절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죽을 만큼 싫었거든요. 매일 매일 집에만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집에서 하루 종일 뭐 하겠어요. ‘내 얼굴이 왜 이렇게 됐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와 원망밖에 안 들어요. 그런 생각을 잊기 위해 잠을 청하지만 잠도 잘 안 와요. 억지로 잠을 청하다 보니 머리를 비롯한 온몸이 다 아팠어요.”

1년 뒤인 2005년 11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는 한미옥씨의 재활기를 방송했다. 수술과 재활 치료를 받은 한미옥씨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미옥씨는 신경정신과 치료와 성형수술을 받으며 ‘잃어버린 얼굴 찾기’에 나섰다. 성형수술로 인해 늘어난 목 주위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수술도 했고, 얼굴의 윤곽과 균형을 맞추는 대수술도 치렀다. 치료가 진행되면서 한미옥씨도 삶에 대한 새로운 의지를 다져갔다. 정신 건강도 호전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풍기 아줌마’의 이름은 ‘한미옥’이었다. 하지만 1년이 흐른 2006년 11월, 한 방송에 출연한 그는 자신의 본명이 ‘한혜경’이라고 밝혔다. “처음 한동안은 내 이름이 밝혀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은 그는 “이제야 한혜경이라는 이름으로 세상 앞에 당당히 서게 됐다”고 말했다.


유일한 가족은 10년째 함께 사는 강아지
한혜경씨는 성형수술 부작용을 겪은 후 10년째 혼자 살고 있다. 그의 유일한 가족은 올해 열 살 된 강아지, 제트다. 제트는 그의 가족이자 친구다. 그의 말을 들어주기도 하고, 함께 산책을 가기도 한다. 인터뷰 도중에도 제트는 한혜경씨 곁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았다. 제트는 그의 보호자이기도 했다.

그에게 가족이 없는 건 아니다. 언니, 오빠, 남동생이 있다. 하지만 그들을 본 지는 무척 오래됐다. 다행히 언니하고는 가끔 연락을 한다.

“가족들 중에 언니만 저를 이해해줬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언니하고 가끔 연락은 하지만 만난 지는 꽤 됐어요. 아주 먼 곳에 사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거리가 좀 돼요. 언니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거기까지 가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가까이 살면 자주 왔다 갔다 할 텐데….”

오빠는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그는 “얼굴이 이러니까 선뜻 가지 못하겠다”고 한다. 오빠가 자신을 찾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은 없다.

성형 부작용 그 후, ‘선풍기 아줌마’ 한혜경의 다시 찾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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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한테 서운한 생각은 전혀 없어요. 오빠가 제 얼굴이 이렇기 때문에 보러 오지 않을 사람은 아니거든요. 거리가 멀기도 하고, 또 결혼해서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기 식구를 먼저 생각하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는 남동생에게도 서운해하지 않는다.

“남동생은 제 얼굴이 이렇게 된 걸 이해하지 못해요. 제가 원망스럽기도 하겠죠. 그렇다고 해서 남동생에게 서운한 마음은 없어요. 예전에 가수로 활동할 때 남동생이 제 운전기사도 해줬어요. 대학에 다닐 때였는데, 자기 공부할 시간을 쪼개서 저를 도와준 착한 아이예요. 그런 걸 생각하면 남동생이 제가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죠. 제가 동생한테 잘해준 것도 없고 하니까 그냥 이해해요.”

가족 이야기를 하던 한혜경씨는 “가족은 가족대로, 나는 나대로 살아가면 된다”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결국 남는 건 가족밖에 없다’는 말은 한혜경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듯했다.

“저는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우울증 때문에 외로운 거예요.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게 외롭고 힘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저를 외면하는 데서 오는 외로움과 괴로움이 더 크죠.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그걸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버텨낸 걸 보면 신기할 정도예요.”

그는 스스로를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혼자서도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성형 시술만은 예외였다. 한번 의지가 꺾이고 나니,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후회스럽다. 3년 반 전쯤에 고인이 된 어머니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3년 반 정도 됐어요. 치매를 앓으셨는데, 밤에 주무시다가 돌아가신 거라 유언 한마디 못 남기셨어요. 당시 어머니의 죽음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눈물도 제대로 못 흘렸어요. ‘사람이 죽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걸 느꼈죠.”

어머니는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얼굴이 변한 딸을 못 알아봤다. 그는 “엄마, 나 혜경이야”라는 말에 “네가 혜경이라고?” 하며 깜짝 놀라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성형수술 한 후에는 어머니가 저를 싫어하셨어요. 아니, 외면하셨다는 말이 더 맞을 거예요. 제 얼굴이 그렇게 변한 걸 받아들이는 게 힘드셨나 봐요. 하지만 나중에는 결국 받아들이셨어요. 딸이니까요.”


친한 언니와 일 덕분에 우울증 극복해
2008년 6월, 한혜경씨는 전보다 더 밝아진 모습이었다. 강북삼성병원에서 무료로 성형수술을 몇 차례 받은 뒤였다. 성형수술을 통해 잃어버렸던 얼굴을 점차 회복한 그는 닫혔던 마음의 문도 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준 동네 주민들의 따뜻한 관심 덕분에 밝아졌다고 말한다. 심한 우울증으로 세상과 단절된 채 지내던 그는 수유동으로 이사한 뒤 이웃의 사랑으로 우울증을 극복하게 됐다.

“모든 게 다 이 동네로 이사 와서 처음 만난 언니 덕분이에요. 이사 와서 동네에 대해 아는 게 없던 제가 앞동에 사는 언니에게 뭔가를 물어봤는데, 아주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거예요. 그 뒤로 언니랑 친해졌고, 언니 덕분에 더 많은 동네 아주머니들과 대화를 나누게 됐어요. 여름에 집에 있으면 더우니까 밖에 나가 나무 그늘 아래서 같이 이야기하곤 하거든요. 그러면서 우울증이 조금씩 사라졌어요.”

덕분에 한혜경씨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찾았다. 예전에는 외출할 때면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자전거를 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히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한다. 물론 아직도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 하지만 조금 더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제가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 같아요. 세상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보니까 저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얼굴이) 창피한 것도 알게 됐고요. 예전에는 저를 보고 손가락질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욕까지는 아니어도 맞대응을 했어요. ‘`너희 엄마가 이상한 사람 보면 그렇게 손가락질하라고 했니?’라고 소리 지르기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제게 손가락질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이상하게 생긴 게 맞거든요. 우울증이 심했을 때는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어요. 지금이라도 저 자신을 바로 볼 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한혜경씨에게는 기쁜 일이 하나 더 생겼다. 방송 출연 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을 통해 일자리를 얻게 된 것. 그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수거해온 물품을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직 정식 직원은 아니다. 한 달 동안 일하는 걸 지켜본 뒤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한다. 인터뷰 당일, 그는 출근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고 했다.

“성형수술을 많이 한다고 해도 예전처럼 예뻐질 수 없잖아요.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지금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어렵게 얻은 직장인 만큼 잘 다녔으면 좋겠어요. 같이 일하는 언니들하고도 잘 지내고요. 제가 못해서 그만두는 일이 생기지 않게, 일을 꾸준히 잘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바람이에요.”

한혜경씨는 지금까지 한 달에 30여만원씩 지급되는 국가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직장을 다니게 됐으니 이제 국가보조금은 중단될 수도 있다. 그는 “그동안 국가보조금에 집착한 게 사실이다. 일을 하면 국가보조금을 못 받을 것 같아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지 않은 면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장애인에 대해 관심 갖는 계기
지난 10년 동안,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남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던 한혜경씨. 그의 삶은 그에게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

“제가 얼굴이 이렇게 되기 전에는 장애인에 대해 관심이 아예 없었어요. 하지만 저에게도 장애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고 나니까 장애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더라구요. 특히 얼굴에 장애가 있는 분들에게요. 텔레비전을 볼 때도 얼굴에 장애가 있는 분이 나오면 ‘저런 분은 꼭 도와줘야 하는데…’라고 생각하죠. 저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렇게 변했으니까 작으나마 남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예전에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한혜경씨. 이제는 장애인들을 보면 한 번 더 쳐다보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란다고 한다. 그는 “손이나 발이 없는 분들을 보면 예전에는 징그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저런 분들은 나라에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형 부작용으로 보낸 10년이라는 세월이 그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준 것이다.

“성형 부작용이 있기 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착해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가끔이긴 하지만 살면서 이렇게 남을 위한 생각을 한다는 게 좋기도 하고요. 건방지고 거만했던 제가 얼굴은 비록 이렇게 됐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본다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조금씩이라도 모아서 그분들을 도와드리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 한혜경씨는 다시 한번 직장 이야기를 꺼냈다. 10년 만에 다시 일을 하게 된 그는 직장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한 듯 보였다. 그에게 일은 다시 찾은 삶의 희망이었다.

글 / 김민정 기자 사진 / 원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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