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돈 버는 힘 기르기…‘줌마네’ 자유기고가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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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차려주는 엄마’는 자연스럽지만, ‘글 쓰는 엄마’는 어쩐지 어색하다. ‘아이들을 데리러 나가는 아내’는 익숙하지만, ‘취재하러 나가는 아내’는 낯설다. 이러한 고정된 틀을 깨고 펜을 들고 사회로 나선 ‘아줌마’들이 있다. 가정에 꽁꽁 매여 있던 밧줄을 끊고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여행의 닻을 올린 아줌마들은 오늘도 또 다른 목표를 찾아 순항 중이다.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이들이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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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 가정집에서는 자발적인 ‘아줌마’들의 공동체 ‘줌마네 학교(www.zoomanet.co.kr)’의 글쓰기 수업이 한창이다. 2001년부터 시작한 ‘글쓰기로 돈 버는 힘 기르기’라는 자유기고가 교육과정은 꾸준히 졸업생을 배출하며 현재 9기 신입생을 맞았다. 강좌가 끝나면 바로 자유기고가로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기사의 기획, 취재, 작성의 전 과정을 배우게 된다. 실제로 이 수업을 거쳐 간 많은 아줌마들이 육아지, 여성지 등의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단행본을 발행하는 등 유능한 자유기고가로 다시 태어났다.

‘글쓰기’라고 하면 어렵게만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줌마네’의 수업도 원래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회원들 중에 이 과정을 밟기 전까지 제대로 글을 써본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혹은 무언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곳을 찾는다.

자유기고가 과정 3기 졸업생인 김해영씨(57)는 수업을 통해 인생이 바뀐 대표적인 경우다. 어려운 집안 형편때문에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던 그녀는 몇 십 년을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았다. 아이들도 크고, ‘삶이 참 허무하다’고 느끼던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줌마네 자유기고가 과정’에 관한 기사를 읽게 됐다. 평범한 아줌마들이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얘기에 순간적으로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동안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이것저것 재면서 포기하기 일쑤였는데, 이번만큼은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줌마네’의 문을 두드렸다.

“나이도 많고 배운 것도 없어서 처음에는 망설였던 게 사실이에요. 글쓰기를 배우러 다니겠다고 했더니 남편도 ‘뜬금없이 웬 글쓰기? 주제를 알라’고 했어요. 솔직히 저도 걱정이 됐지만 아이들이 ‘더 나이 들면 못한다’고 용기를 줬어요. 글 솜씨가 없더라도 기사 작성 같은 것은 열심히 따라 배우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용기를 냈죠.”

꼭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이곳을 찾는 것은 아니다. 4기 졸업생 김성혜씨(41)는 ‘줌마네’에서 하는 ‘창조성 깨우기 과정’의 수강생이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가정 일에 치이며 살다가 ‘뭔가 나의 꿈을 실현해보고 싶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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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뭐든 준비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이는 성격이거든요. 계속 고민만 하다가 아까운 시간 다 보내겠다 싶더라구요. 일단 무슨 일이든 하면서 내가 뭘 원하는지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 글쓰기 수업을 한번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새롭게 발견한 나의 꿈, 나의 내일
그렇게 모여 펜을 든 아줌마들은 이제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기 소광숙씨(44)는 ‘줌마네’ 웹진 편집장을 맡아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줌마네’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린 매체인 웹진은 졸업생들이 자유롭게 글쓰기를 연습하고 생각을 표출하는 소통의 장이 되고 있다.

“물론 수업을 듣는다고 저절로 글을 잘 쓰게 되는 건 아니에요. 저도 처음에는 인터뷰 대상을 섭외하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어요. 낑낑대며 취재를 하고 기사를 완성하는데 거의 한 달이 지났더라고요. 마감 일정 때문에 밤도 많이 샜고요.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생해서 쓴 기사를 날리기도 했어요. 아마도 저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겪는 과정일 거예요.”

웹진 기사는 주로 졸업이 오래지 않은 6, 7, 8기들이 도맡아 쓰고 있다. 7기 김태연씨(38)는 생활 속 소소한 이야기들부터 갖가지 주제의 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동기 중에는 정기적으로 영화 칼럼을 쓰는 이들도 있다. 얼마 전 가졌던 단행본 기획회의에서 김태연씨가 낸 기획안을 보고 관심을 표하는 출판사가 있어 조만간 책을 낼지도 모르겠다고. 김성혜씨는 이미 여러 권의 단행본을 낸 저자다. 본인은 실력이 쑥쑥 늘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고민을 털어놓지만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글 쓰는 재미를 깨우쳐가고 있는 중이다.

자유기고가 과정을 수료했다고 해서 모두 글 쓰는 일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넓은 공간에서 함께 부대끼며 여러 경험을 쌓다 보니 잃었던 꿈도 되살아나고 새로운 목표도 세우게 됐다.

김해영씨는 과정 수료 후 중·고등 검정고시에 도전했다. 내친김에 전문대 진학도 이뤘다. 7명이나 되는 형제들과 시골에서 자라면서 일찌감치 접어야 했던 공부의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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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진학을 결심했던 당시만 해도 어머니가 살아계셨거든요. 제가 나이도 있고 하니 사회복지를 배워서 어머니를 모시며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회복지가 정말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 일인 데다가 체력도 뒷받침되어야겠더라고요. 학교에서 실습을 나가면 몸이 무척 힘들었어요. 나이는 못 속이겠던데요. 그래도 과에서 2등 한 적도 있어요(웃음).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앞으로 우리 어머니나 저 같은 50, 60대 여성들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어요. 평생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얼마 전 막 과정을 수료한 풋풋한 졸업생 김은하씨(32)도 적성에 맞는 일을 발견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규과정을 끝내고 후속 프로그램으로 단행본 기획 발표를 했는데 ‘어린이 책’에 관한 기획이 호응이 좋았단다. 동화에 대한 관심을 살려 제대로 준비해보려고 최근에는 그림책과 동화책을 수집해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직접 지은 동화를 조곤조곤 들려준다는 김씨. 그녀의 소망은 「강아지똥」의 고 권정생 작가처럼 일상의 담백함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엄마·아내를 존중하게 된 가족들
‘줌마네’ 자유기고가 과정을 밟으면서 회원들 스스로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태도 또한 크게 달라졌다. 처음에는 ‘뭣 하러 그런 데를 다니느냐’던 가족들이 이제는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주제를 알라’며 냉정한 반응을 보였던 김해영씨의 남편은 어느 날 아내가 자신의 칼럼이 실린 신문의 웹페이지를 보여주며 “이게 내 주제다”라고 말한 뒤부터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지금은 아내가 쓴 책을 사서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자랑할 정도라고.

“늘 가정에서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던 아줌마가 글 써서 돈 벌 거라며 밖으로 나가니까 처음에는 굉장히 싫어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밥도 알아서 먹겠다고 하고, 무조건 밀어줘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엄마를 뿌듯해한다는 사실이 무척 행복해요. 가족들이 제가 이룬 것을 함께 기뻐해주니까 살아가는 재미도 더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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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씨의 친정어머니는 요즘 은근히 그녀를 부러워하는 눈치다. “살림이나 잘하지”라며 딸의 외도(?)를 걱정하던 어머니는 “나는 못하고 살았지만 너는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살아야 한다”는 주의로 돌아섰다. 요즘에 김씨는 한창 관심이 많은 사진을 배우러 다니는데 어머니도 배우고 싶어 하신다고. 열심히 배워서 어머니께 가르쳐드릴 생각이다.

사실 외부 활동을 꿈꾸지만 나서지 못하는 엄마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육아 문제다. 김성혜씨에게도 한때 육아는 무거운 짐이었다.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 아이와 진정한 교감을 나눌 수 있게 된 데도 ‘줌마네’ 자유기고가 과정의 도움이 컸다.

“처음 큰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때, 아이가 엄마랑 떨어져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무척 걱정했어요. 그런데 3일쯤 불안하게 있다 보니까 아이가 나와 떨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이로부터 떨어지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러다간 계속 아이를 쫓아다니는 엄마가 될 것 같더라고요. 스스로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죠. 그 문제는 제가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서 저절로 극복할 수 있었어요.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도 더 눈에 잘 들어오고요.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들거나 부담된다는 생각 대신, 즐겁고 행복하다는 마음이 든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에요.”

뿐만이 아니다. 글 쓰는 엄마, 일하는 엄마의 모습은 아이들에게도 좋은 역할 모델이 된다. 사회생활을 하는 아빠에 비해 엄마가 하는 일의 가치를 낮게 평가했던 아이들도 엄마의 일에 관심을 갖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처음에는 불쑥불쑥 엄마를 방해하던 아이들이었지만 이제는 “엄마, 글 쓰세요? 얘기해도 괜찮아요?”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온다.

김성혜씨의 남편은 취재로 아내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늘어나자 집안일을 일정 부분 도맡았다. 하지만 전혀 불평하지 않는다. 아내가 생계에 큰 보탬이 될 만큼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집에만 있을 때보다 가사에 신경 쓰지 못하지만, 그래도 김성혜씨에게 찾아온 삶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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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글을 쓰고 일을 하면서 많이 밝아졌대요. 덕분에 집안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하구요. 사실 집안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엄마의 몫이잖아요. 아이들에게 취재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들려줄 수 있어서 좋아요.”


서로 질책하고 고민을 해결해주는 자유로운 공동체
찾아보면 글쓰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은 많다. 스스로 실력을 쌓아야 하는 영역이다 보니 굳이 이곳을 찾지 않아도 마음만 있다면 글쓰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줌마네’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보통 체면 때문에,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뭔가를 마음먹어도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줌마네’ 사람들은 언제나 뭐든 해야 한다고 부추겨요. 나를 가두고 제한했던 것들을 ‘할 수 있다’고 ‘더 많이 해보라’고 격려해주죠.”

김해영씨의 말처럼 ‘줌마네’ 식구들은 서로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편집장으로 후배들을 키워내고 있는 소광숙씨는 같은 아줌마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고 전한다. 요즘에는 아줌마의 시각으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글들이 속속 튀어나오고 있어 더욱 기쁘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자신의 글도 돌아보게 되고, 생각도 나눌 수 있다. 수업이 끝나고 한데 모여서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영화를 보거나 각자 처한 어려움을 털어놓는 시간은 무척 소중하다. 보통 자유기고가는 ‘개인전’이기 때문에 난관에 부딪치면 혼자서 끙끙 앓게 마련인데, ‘줌마네’ 식구들끼리 머리를 맞대면 어렵지 않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김태연씨는 ‘자신이 꼭 해야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버틸 수 없는 곳’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안 좋은 소리도 많이 들어요. 왜 그렇게밖에 못하느냐고 질책하기도 하고, 혼도 많이 내구요. 자극을 팍팍 주죠(웃음). 친절하게 ‘다음에 꼭 나오세요’라고 권유하는 것도 아니에요. 다들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죠. 그래서 더 편안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어색할 수도 있어요.”

동그랗게 구심점을 이루지만 또 한편으로는 언제든 튕겨나갈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는 공동체. ‘줌마네’는 그런 곳이다. 이곳에서 자유기고가 과정을 수강하며 펜을 잡은 이들은 꿈과 에너지를 얻어 다시 자신을 찾아 떠난다. 새롭게 시작한 자유기고가 9기 과정은 더욱 주체적인 활동을 찾아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생생한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숨 쉬는 곳, ‘줌마네’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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